[인터뷰…공감] 경인지역 총장들 대표하는 이원희 한경국립대 총장 시급한 현안에 '학령인구 감소·수년째 학비 동결·역차별' 등 꼽아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맞게 구성원 비율 조정·교육방식 개편 주장외곽지역 낙후학교 규제완화 해법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신설' 제시"경인지역 대학들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다양한 현안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데 진력을 다하겠습니다."경인지역총장협의회는 지난 2월 정기총회를 통해 제10대 회장으로 한경국립대 이원희 총장을 선출했다. 임기는 지난 3월부터 내년 2월까지 1년이다.경인지역총장협의회는 경기도와 인천시에 소재한 4년제 대학교 총장들이 대학 발전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2014년 4월에 창립한 단체다. 정기총회와 회장단 회의, 정책 세미나 등을 통해 경인지역 대학들의 교육 환경 개선과 발전 등에 많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2024년 4월 현재 한경국립대를 비롯해 강남대, 성결대, 경기대, 한국항공대, 가천대, 인하대 등 33개 대학 총장들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이 총장이 기라성 같은 경인지역 대학 총장들 사이에서 절대적 신임을 받아 만장일치로 회장에 선출된 것에는 이 총장의 이력이 한몫 한 것으로 풀이된다.현 시대에 수도권 소재 대학들이 처한 다양한 문제 해결을 위해선 정부는 물론, 지방정부 및 지자체와의 소통과 협력을 이끌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이에 행정학 박사로서 2020년에는 제55대 한국행정학회 회장 등을 역임해 정부와 지방정부, 지자체 관계자들과 긴밀한 협력 체계가 구축돼 있는 이 총장이 적임자로 낙점된 것이다.이 총장은 이러한 경인지역 총장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임기 동안 대학과 정부 및 지자체 간의 가교역할에 주안점을 두고, 수도권 대학들의 현안 문제를 해소해 나갈 계획이다.이 총장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각 대학들의 새로운 교육환경 변화와 적응방법', '수십년째 동결된 등록금 문제', '수도권 정비법에 따른 각종 규제로 인한 역차별 문제' 등을 꼽았다.먼저 이 총장은 "학령인구 감소 문제의 해법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만큼 대학의 기능과 역할을 시대의 변화상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며 "과거 대학은 고등교육 즉 엘리트 교육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맞게 대학 구성원 비율이 고교 졸업생 50%, 외국학생 30%, 평생교육생 20%로 맞춰져야 하며, 그에 따른 교육방식과 과정도 개편해야 한다"고 설파했다.또 이 총장은 다소 예민한 등록금 인상 문제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이 총장은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등록금 인상 문제는 예민할 수밖에 없지만 현재 대학들이 양질의 교육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선 반드시 해결해야 할 난제"라며 "각 대학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20여년간 등록금이 동결된 상태에서 저출산 문제로 학생 수까지 급감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물가대비 상승률을 고려해 소폭이라도 등록금을 인상하지 않으면 재학생들에게 질 좋은 교육환경이 제공되기 힘든 상황임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도록 설득해 나가겠다"고 말했다.이 밖에 이 총장은 경인지역 대학들의 숙원인 수도권 정비법에 따른 각종 규제 완화에 대한 해법으로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신설'을 제시했다.이 총장은 "사실 수도권 정비법으로 인한 각종 규제로 인해 경인지역 대학들이 지방 대학과 비교해 역차별을 받고 있는 현실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수긍할 만큼 잘 알려져 있는 문제"라며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경기북부특별자치도를 신실해 경기도 외곽지역에 위치한 대학들을 수도권에서 제외시켜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총장은 "실질적으로 경기도 외곽지역에 위치한 대학들은 수도권이라 볼 수 없을 만큼 환경적으로 낙후돼 있는데 반해 행정법상 수도권으로 분류돼 대학 발전에 많은 저해요소가 되고 있다"며 "수도권 정비법의 취지는 난개발과 수도권 집중화를 막기 위한 것이지만 교육은 그 문제와 무관한 만큼 정부와 지방정부에 지속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소통을 이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이 총장은 또 임기 동안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이하 RISE사업·Regional Innovation System Education)사업의 성공과 그에 따른 대학별 공유플랫폼 구축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약속했다.이 총장은 "RISE사업은 지자체들의 대학지원 권한 확대와 맞춤형 규제 완화를 통해 지자체와 대학, 기업 등이 협력해 동반 성장을 이끌어 내는 제도로 지난해 2월 경상남·북도와 대구, 부산, 전라남·북도, 충청북도 등 7개 지역이 시범지역으로 지정된 데 이어 올해는 그 범위가 수도권까지 넓혀질 계획"이라며 "RISE사업의 성패는 그동안 각자도생의 길을 걷던 경인지역 대학들이 각 대학의 특·장점을 활용한 공유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이 총장은 "쉽게 말해 각 대학에 중복된 학과들이 즐비하지만 그 위상은 각자 다르다"며 "우리 대학의 경우 농업과 생명공학이, 아주대와 가천대 등은 의료 분야가, 평택대 등은 사회복지 분야 등이 우수한 만큼 RISE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이러한 분야별 지원 사업이 중복되지 않고, 특·장점을 가진 대학들에게 효율적으로 배분해 지원이 집중될 수 있도록 연계 협력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마지막으로 이 총장은 경인지역 이외에 전국에 산재한 대학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이 총장은 "국내 대학들은 학령인구 감소는 물론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로 유발된 위기를 공통적으로 겪고 있다"며 "다만 '위기는 곧 기회'라는 생각을 갖고 대응한다면 각 대학이 처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이 총장은 "지금까지 대학은 표준화된 인재 양성이 주된 목표였지만 대한민국의 산업구조 개편에 따라 산업이 복합화된 만큼 대학의 기능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며 "우리 대학들은 교육 방식의 재구조화를 통해 융·복합화 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설파했다.특히 이 총장은 "코로나19 시대에 어쩔 수 없이 비대면 화상 수업 방식이 도입됐지만 이를 낭비라 생각하지 않고, 화상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구축된 플랫폼과 강의 동영상 자료 등이 축적돼 있는 만큼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또한 산업구조가 복합화 된 만큼 단순히 '농업학과'라고 해서 농업 재배 기술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컴퓨터학과'에서 배우는 컴퓨터 기술까지 교육시키는 'AI농업학과' 등을 신설해 현 시대가 요구하는 '스마트팜'을 현실화할 수 있는 만능형 인재를 양성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글/민웅기기자 muk@kyeongin.com■이원희 경인지역총장협의회 회장은?▲1962년 부산 출생▲서울대 경제학과 졸업(1985년)▲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박사 취득(1987년·1994년)▲국회 입법조사분석실 연구관(1993년)▲한경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임용(1996년~현재)▲한국조세재정연구원 공공기관 연구센터 소장(2014년)▲제55대 한국행정학회 회장(2020년)▲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위원(2021년 6월~현재)▲한경대학교 제8대 총장(2021년 10월~2023년 2월)▲한경국립대 제1대 총장(2023년 3월~현재)▲경인지역대학총장협의회 회장(2024년 3월~현재)경인지역총장협의회장으로 지난 3월 취임한 이원희 한경국립대학교 총장은 "임기동안 대학과 정부, 지자체간의 가교역할에 중점을 두고 수도권 대학들의 현안문제를 해소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경국립대 제공
설립 과정 민간 주도… 정치권까지 합심10여년 시간 '정치적 논쟁' 좌초 위기도독일에 대한 이해 일부로서 의미 갖게돼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설립 과정에서 시민이 주도적으로 나서고, 정치권에서도 뜻을 모았다는 특징을 가진다.1988년 처음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제안한 것은 저널리스트 레아 로쉬였다. 그는 역사가 에버하르트 야켈과 함께 시민단체 '퍼스펙티브 베를린(Perspektive Berlin)'의 요청을 받아 기념비 건립을 제안했다.당초 이들은 베를린 남부의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에 기념비를 건립할 계획이었다. 이후 헬무트 콜 총리가 아돌프 히틀러의 지하벙커가 있던 인근 부지 제공에 동의하면서 지금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 베를린 한가운데에 자리잡게 된다.퍼스펙티브 베를린은 지식인과 시민단체의 서명을 모았고, 1999년 독일 연방의회는 기념비와 이를 관리할 재단을 설립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이후 건축 디자인 공모전을 통해 피터 아이젠만이 선정되는 등의 논의를 거쳐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2005년 5월 10일에 문을 열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69주년에 맞춰 개관했으며, 기념비 설립이 제안된 지 17년 만이었다.이 과정에서 눈여겨봐야할 점은 시민사회가 주도한 서명 운동과 시민 발의 결의안이다. 시민사회가 지식인들과 뜻을 모아 의견을 전달한 과정이 있었기에 독일 시민에게도 의미 있는 공간으로 탄생했다.물론,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또한 설립 과정에서 정치적 논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헬무트 콜 총리는 1994년 개최된 첫 공모전의 당선작을 반대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기념비 건립 사업까지 좌초될 위기였다고 한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당시 상황을 두고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라고 표현할 정도였다.순탄치 않은 과정이었지만 시민사회가 합심해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 완성됐고, 베를린의 일상에까지 스며들었다.베를린 투로대학(Touro College Berlin)의 유대인 연구 전공 스테판 렌슈테트 교수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의 건립 과정을 볼 때, 거의 모든 경우에 추모와 추모를 요구한 것은 시민사회였다"며 "실제로 추모비를 건립하고 자금을 조달하려면 정치가 필요하기 때문에 복잡한 과정이었다. 그래서 건립에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결국 독일 국가에 대한 이해의 일부로서 의미를 갖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영지기자 bbangzi@kyeongin.com※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됐습니다.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비석은 24시간 관람 가능하다. 2024.4.13 /이영지기자 bbangzi@kyeongin.com
해외에선 어떻게 참사를 기억하나-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600만명 유대인 학살 비석 미로처럼 배치도심 위치 조성 일상 속 스며든 휴식공간'희생자 엄숙해야…' 통념 깨고 자유로움독일의 수도 베를린 한복판에 회색빛 콘크리트 비석 2천710개가 줄을 지어 박혀있다. 파릇파릇한 초록잎과 선선한 봄바람이 조화를 이루기 시작한 4월의 날씨와 대비되는 회색빛 풍경이다. 지난 14일 찾은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주말을 맞아 관광객과 베를린 시민들로 붐볐다. 이들은 회색 비석을 가로질러 들어가며 서로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도, 사색에 잠기며 혼자 걷기도 했다. 미로같은 비석 사이에서 서로를 발견해 놀라는 이도 꽤 많았다. 꺄르르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얼핏 들린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의 비석 높이는 제각각이다. 0.2~4.7m까지 다양하다. 초입에는 성인 기준 종아리 정도밖에 오지 않는 낮은 비석들이 세워져 있지만,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비석은 점점 크고 높아져 목을 꺾어 올려다봐야 하는 정도가 된다. 지형 또한 특이하다. 마치 파도가 치는 듯 땅이 울퉁불퉁하다. 굴곡진 땅 위에서 웅장한 회색 비석에 둘러싸여 있자니, 답답하고 억눌리는 느낌까지 든다. 한 걸음 한 걸음 깊숙이 들어갈수록 마치 지하로 가라앉는 듯하다. 하지만 추모공간이라고 해서 엄숙하기만 한 분위기를 예상했다면 오산이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추모 공간의 통념을 깨고 베를린의 일상에 완벽히 스며들었다. 600만명에 달하는 유대인 학살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서 시민과 관광객들은 자유롭게 추모한다. 가장자리의 낮은 비석 위에 걸터앉아 책을 읽기도, 가족들과 빵과 음료를 나눠 먹기도, 삼삼오오 모여 가벼운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비석 위에 올라가 뛰어다니는 등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는 한, 별다른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 자유로운 공간이다.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 베를린의 일상에 섞일 수 있었던 것은 베를린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덕분이기도 하다. 베를린 대표 관광지인 브란덴부르크 문과 불과 1.2㎞, 국회의사당과도 1.5㎞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길 하나만 건너면 되는, 걸어서 5분이 채 안되는 거리다. 이날 만난 한국인 관광객 김옥자(51)씨는 "어제 베를린에 도착했는데 베를린 중앙역에서 이동이 제일 편해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첫번째 관광지로 찾았다"며 "미디어를 통해서만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을 접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했는데, 실제로 와보니 경건해진다. 독일에 와보니 추모도 그렇고 여러 방면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다"고 말했다.브레멘에 거주하는 독일인 부부 루코브스키(71)씨와 훌세부쉬(64)씨는 베를린에 방문할 때마다 종종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들른다. 그들은 "독일의 안좋은 역사를 체험하고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루코브스키씨는 "방문할 때마다 가슴이 억눌리는 듯한 기분"이라며 "물론 독일인이라고 하더라도 (홀로코스트 메모리얼과 같이) 독일의 반성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서 이 공간도 조성되기까지 오래 걸렸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 속에서 결국 중요한 건 서로의 뜻이 모아지는 것이다. 가장 어렵지만 뜻이 모아져야 이런 공간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은 전후 60년이 지난 시점에서 '늦었다'는 비판도 무릅쓰고 베를린 중심부에 추모 공간을 만들었다. 학살된 유대인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공간을 통해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고 되짚으며 미래를 이야기한다. /이영지기자 bbangzi@kyeongin.com※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됐습니다.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안쪽으로 들어가면, 사람 키를 뛰어넘는 높이의 비석들이 세워져 있다. 2024.4.19 /이영지기자 bbangzi@kyeongin.com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서 시민과 관람객이 비석 위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24.4.14 /이영지기자 bbangzi@kyeongin.com
고요 속의 기도… 참사를 마주할 용기는 평화를 향한 의지 평화기념공원내 추도관 자리잡아중심에는 희생자 추모 연못 조성사망자 상징한 벽돌 14만개 빼곡분위기 경건, 사진촬영조차 조심"온전히 기도할수 있는 공간 필요" 세월호 유족들 염원하는 곳 닮아8시 15분. 큰 부채꼴과 작은 부채꼴이 어긋난 모양의 연못은 원자폭탄이 투하된 시간을 나타낸다. 국립 히로시마 평화기념 희생자 추도관은 1945년 8월 6일 8시 15분에 멈춰있다.중심에 있는 연못은 원자폭탄의 폭심지를 상징하며, 물을 찾다가 죽어간 원폭사망자를 추모하기 위한 연못으로 희생자들에게 물을 바친다는 의미다.지난 12일 찾은 국립 히로시마 평화기념 희생자 추도관은 사진을 촬영하는 소리조차 추모객에게 방해될까 우려할 정도로 고요한 분위기만 감돌았다.지상 1층에서 추도 공간인 지하로 내려가는 길엔 원폭이 투하된 시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가 상세히 적혀있다. 원폭이 히로시마 상공에서 폭발하면서 지표면 온도가 섭씨 4천도에 이르러 14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처참한 피해 상황과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메시지들이 벽면을 따라 쓰여져 있다.벽에서 천장을 떠받드는 12개의 기둥은 원폭의 희생이 있었던 슬픔과 현재의 연결을 의미한다. 기둥 앞에 나무 의자를 둬서 추모객들은 의자에 앉아 연못을 바라보고 희생자들을 기리는 기도를 하거나 생각에 잠기곤 한다.국립 히로시마 평화기념 희생자 추도관은 지난 1994년에 제정된 '원자폭탄 피폭자에 대한 지원에 관한 법률'에 기초해 조성됐다. 법안은 원자폭탄 투하 후 50년을 맞아 피폭자에 대한 보건, 의료 및 복지에 대한 종합적인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제정됐다.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원폭사망자 추모 시설을 빠르게 설치하도록 결정하고 피폭자와 사망자의 유족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시설이 되도록 추도관을 만들었다. 추도관도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설계한 단게 겐조가 설계해 곳곳에 디자인적 요소가 스며들어 있다.연못을 중심으로 벽면에는 피폭 후 거리의 모습이 생생하게 벽화로 새겨져 있다.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원폭돔(구 히로시마현 산업장려관)처럼 피폭으로부터 조금이나마 원형을 유지하는 건물들도 있지만 대부분 황폐해진 모습이 담겨있다.벽화 밑으로는 희생자를 의미하는 14만개의 벽돌에 피폭 당시의 마을 이름이 새겨져 있어 추모객들은 마을 이름을 어루만지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린다.이처럼 추도관은 평화기념공원 내에 위치해 자유롭게 일상을 보내면서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이 된다.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도 일상적인 추모 공간을 원한다는 의미에서 세월호와 히로시마 추도관이 연결된다.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인 강지은 씨는 "4월 16일 하루에만 와서 기억하고 추모하는 시설을 반기진 않는다"며 "1년 365일 언제든지 가족 단위나 청소년들이 와서 소풍을 즐기면서도, 기도하고 싶을 때 온전히 기도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 큐레이터이자 역사학자인 코야마 료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슬픔에 공감하고자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에 방문한 적도 있다. 그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역사적인 관점에서 기억적인 요소를 공부하기 위해 단원고를 방문했다"며 "단원고 교실엔 희생된 학생들의 책상이 놓여 있었고 빈 책상에 꽃이 놓인 광경을 보면서 너무 슬펐다. 많은 책상 위에 희생의 흔적들이 놓여 있었다"고 회상했다.그러면서 "평화기념자료관이 세워질 때도 실제로 살아계신 분들의 목소리가 우선시 됐다"며 "세월호가 배라는 관점에서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누가 어떻게 (추모 공간을 위한) 열의를 발산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히로시마/고건·이영선기자 zero@kyeongin.com※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됐습니다.국립 히로시마 평화기념 희생자 추도관에서 한 관광객이 추모하고 있다. 일본은 2002년 8월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에 평화기념 희생자 추도관을 개관했다. 추도관은 작은 연못을 중심으로 원폭 당시의 모습과 피폭된 마을 이름이 벽에 새겨져 있다. 2024.4.12 /이영선기자 zero@kyeongin.com국립 히로시마 원폭사망자 추도 평화기념관에서 관광객이 연못을 바라보고 있다. 일본은 2002년 8월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에 원폭사망자 추도 평화기념관을 개관했다. 작은 분수를 중심으로 원폭 당시의 모습을 벽에 새겼다.2024.04.12/이영선기자 zero@kyeongin.com
반핵 의지 담은 평화기념자료관 도시 파괴과정 3D 영상으로 생생히유품에는 피해자·기부자 이름 알려입구에 가장 최근 핵실험 날짜 표기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피해자들의 넋을 기리고 일본 국민들을 진정한 '치유'로 이끈 평화기념공원의 자료관은 원폭의 참상을 적극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지난 12일 방문한 히로시마 평화기념 자료관. 2층에 마련된 히로시마 원폭 투하 현장 재현 3D 전시관을 관람객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린 원자폭탄의 참상2분 정도의 3D 영상에는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한가운데 떨어진 원폭으로 도시 전체가 파괴되는 과정을 CG로 합성해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영상과 함께 전시관엔 폭발음과 피해자들의 비명들이 섞여 재생돼 그 파괴력과 잔혹함을 더욱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3D 전시관을 빠져나오면 원폭 투하로 폐허가 된 히로시마의 전경이 이어진다. 흑백에 폐허가 된 도시, 오직 철근만 남은 건물, 모두 불타버린 나무들. 이날 이어지는 사진들을 보는 관람객들은 사진을 촬영하거나 잡담을 하는 대신 숨죽이며 그 참상을 지켜봤다. 자료관 곳곳에는 '왜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됐는가'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한 소녀의 유품이 된 자전거와 더불어 누더기가 돼버린 피해자들의 옷가지, 그들이 착용한 장신구 등 원폭이 떨어진 날 일상을 보내던 히로시마 시민들의 실상이 그대로 보였다. 원폭의 피해는 하루아침에 끝나지 않는다는 점도 강력히 경고되고 있었다. 3층 전시관에는 원폭 투하 이후 피폭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자료들이 이어졌다. 인체가 방사능에 노출돼 온몸에 붉은 반점이 생긴 소년, 팔과 다리가 썩어가 온종일 누워 고통 속에 노출된 한 청년. 특히 피폭에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의 사진 다수가 미성년 어린이들이었기 때문에 관람하는 이들 중 일부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 반성·다짐의 공간으로 활용되는 자료관자료관을 가득 메운 관람객 대부분은 미국, 유럽 등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과 적대적 관계였던 국적이다. 참사의 원인인 원자폭탄으로 무고하게 희생당한 시민들에 대한 사과와 반성 의미도 크다는 게 현장의 설명이다.원폭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자료관 역시 추모 공간이기 때문이다. 자료관 곳곳엔 원폭으로 사망한 피해자들의 이름과 이들의 유품을 기부한 기부자들의 성명이 적혀 있었다. 특히 일본 내에서 '반핵'의 상징인 사사키 사다코의 전시도 발걸음이 모인다. 2살 때 피폭된 사다코는 10년 동안 백혈병에 고통받다 숨을 거뒀는데, 그가 남긴 고통에 대한 기록과 사진들이 숨김없이 공개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자료관 입구에는 히로시마 원폭이 떨어진 지 며칠이 지났고, 가장 최근 진행된 핵실험 일자가 적힌 종이와 시계가 걸려 있다. 히로시마 시장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원폭 참사를 반복할 수 있는 핵실험을 진행한 국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는 것인데, 지난 2019년 북한이 5차 핵실험을 진행할 당시에도 마쓰이 가즈미 시장이 북한에 "용서할 수 없다"는 비난과 함께 서한을 보냈다.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 학예사인 코야마 료는 "자료관에는 특히 서양인들도 굉장히 많이 온다. 히로시마에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가 됐다는 의미도 있지만, 서양의 전쟁과 역사와도 연관성이 높기 때문"이라며 "원폭 피해 당시 생존자와 그 가족들, 피해자협의회 같은 당사자들도 많이 와서 원폭의 위험성 등에 대한 목소리를 많이 제기한다"고 말했다. 히로시마/고건·이영선기자 gogosing@kyeongin.com※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됐습니다.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자료관에 방사능에 피폭된 사람들을 묘사한 그림과 사진이 전시돼있다. 자료관은 1955년 개관해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가한 피해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시하고 있다. 2024.4.12 /이영선기자 zero@kyeongin.com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자료관에 방사능에 피폭된 사람들의 사진이 전시돼있다. 자료관은 1955년 개관해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가한 피해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시하고 있다.2024.04.12/이영선기자 zero@kyeongin.com
"장학금 받고 어른되면 다시 기부 '선한 영향력' 전파" 30여년간 학생 2천명 10억 지원문산·금촌 등 1천명 어르신 급식장애인 경제적 도움 현장자활도"가장 밑에서 참여한다는 게, 회장까지 맡게 되어 쑥스럽습니다."파주시 재향군인여성회 박순옥(67) 회장은 "봉사는 내 자신의 삶을 편안하게 만드는 활동"이라면서 "누구나 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범시민 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2017년부터 재향군인여성회 나눔 활동을 하고 있는 박 회장은 소외 이웃 나눔 활동뿐 아니라 지역축제를 비롯한 각종 행사지원, 환경정화, 무료급식 등 다양한 봉사활동으로 하루가 짧다.재향군인회 여성회는 국내 최대 여성 안보단체로 여군 예비역은 물론 향군 회원의 가족과 지역사회 안보 및 봉사활동에 뜻을 가진 여성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으며, 중앙회와 전국 13개 시·도회, 224개 시·군·구 지회가 운영되고 있다. 파주시 재향군인여성회는 현재 32명의 회원이 문산 행복센터, 금촌 노인복지회관 등 1주일 각각 2차례씩 1천여 명 어르신들의 급식봉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봄에는 햇김치 담그기, 가을에는 김장김치 담그기를 통해 홀몸 어르신 및 조손가정 등에 나눔의 따뜻한 손길을 전달하고 있다."1985년 적십자 봉사회원으로 봉사의 즐거움을 알기 시작한 뒤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엄마로서 가정에 집중하던 몇 년을 빼고는 줄곧 봉사활동을 해왔던 것 같다"는 박 회장은 자녀들 양육에 집중하던 2003년에도 파주시 무궁화장학회 문산지역 회장을 맡아 나눔활동을 계속했다.1991년 설립된 무궁화장학회는 30여 년 동안 파주시 2천여 중·고·대학생들에게 10억원이 넘는 장학금을 지원했다. 박 회장은 "매년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는 초·중·고·대학생 60여 명에게 5천만~6천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면서 "이들 학생이 어른이 되어 또다시 장학회원으로 어려운 학생을 돕는 등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있다"고 범시민 운동으로의 발전 당위성을 설명했다.주부로서 가사 일과 또 문산지역 회장으로 장학회 활동을 계속해 오던 박 회장은 두 자녀가 고교와 대학에 진학하면서 2017년 재향군인회 여성회에 가입하며 나눔봉사에 날개를 단다.그는 "그냥 회원으로 가장 밑에서 참여한다는 게 회장이라는 중책까지 맡게 되었다"면서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 찾아가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박 회장은 "장애인들이 자활사업으로 봉투접기 등 몇 가지 수익사업을 하고 있는데, 몸이 불편하다 보니 생산성이 떨어져 경제적으로 별 도움이 못 된다는 소식을 듣고 착안했다"면서 "올해부터는 장애인들에게 경제적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현장 일을 돕는 '자활사업 지원'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파주/이종태기자 dolsaem@kyeongin.com
해외에선 어떻게 참사를 기억하나-일본 히로시마 에도시대부터 번화한 곳, 한순간 폐허정부 '특별법' 만들어 도시부흥 지원잔디밭·느티나무 사이… 시민들 휴식'순령' 희생자 위령비앞 관광객들 추모강제동원 피해자 등 한국인 위령비도기념공원 인근에 참상 알리는 미술관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의 참상을 알리는 원폭돔 너머에 있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엔 평온함만이 맴돌았다.푸른 잔디밭과 느티나무들 사이로 고등학생 무리가 자전거 벨소리를 울리며 달리고, 시민들은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피크닉을 즐긴다.지난 12일 찾은 평화기념공원엔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는 시민들과 희생된 영혼의 평화로운 휴식을 기리는 상징들도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종이학을 두손 높이 들고 있는 어린이 동상. 두 남녀가 아이를 안고 기도하고 있는 기념비.'순령'이라고 적힌 위령비 앞에서도 관광객들은 생수병을 올려두고 두손모아 기도하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린다. 원폭이 투하됐을 때 온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에 모든 사람들이 물을 찾았다는 이유에서 사람들은 위령비 앞에 생수병을 올려둔다.평화에 깃댄 공원은 시민의 염원, 지자체의 의지, 정부의 지원으로 일상 속의 추모공간이 된 동시에 도시 재건의 발판이 됐다.■ 도시 재건의 상징이 된 평화공원1945년 8월 6일 8시 15분, 지금의 평화기념공원 위에서 원자폭탄이 폭발하고 히로시마 일대는 폐허가 됐다. 공원이 있는 자리는 에도 시대부터 1920년대까지 히로시마의 번화가였다.그로부터 4년 뒤인 1949년 8월 6일 일본 정부는 히로시마평화기념도시건설법을 특별법으로 제정해 히로시마의 재건을 위해서 국가 예산을 투입했다. 특별법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주민투표를 무조건 진행해야 하는데 찬성이 90% 이상으로 도시 재건에 온 히로시마 시민의 염원이 담겨있었다.당시 히로시마는 특별법으로 도시 재건을 꾀할 수밖에 없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 학예사 코야마 료는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에 히로시마시에서 자체적으로 부흥도시계획을 추진했는데 재정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특별법 없이는 추진이 안될 정도로 히로시마 현실이 안좋았다"며 "결국 히로시마시가 정부에 예산을 건의해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재정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했다.히로시마시는 특별법에 포함된 도시 재건 계획을 기반으로 폭심지에서 가까운 위치에 공원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공원 설계를 위해서 145건의 응모를 받았다. 공모 결과 유명 건축가인 단게 겐조의 설계안이 선정돼 지금의 공원이 만들어졌다. 동시에 평화기념자료관도 건설되고 평화를 품은 계획도시가 세워지면서 '평화도시'로 부흥하기 시작했다.■ 히로시마에 스며든 추모의 물결평화기념공원 가운데에 있는 히로시마 원폭 사망자 위령비와 평화의 횃불, 원폭돔은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위치한다. 사람들은 위령비 앞에 줄지어 서 원폭돔을 바라보며 참상을 가슴에 새겼다.평화기념공원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도 서 있다. 원폭 당시 히로시마엔 강제동원 노동자 등 약 14만명의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었고, 5만명이 원폭 피해를 입었고 그중 3만명이 사망했다. 한국인들도 다녀간 듯, 한국 브랜드의 생수병도 그 곁을 지키고 있다.원폭을 추모하는 공간은 평화기념공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공원으로부터 1㎞ 떨어진 히로시마 미술관에도 원폭의 참상을 알리는 작품이 곳곳에 전시돼있다. 검붉은 화염으로 건물이 휘감겨진 피폭 후의 풍경, 원폭돔이 원폭 후의 버섯구름처럼 묘사된 작품은 관광객들을 생각에 잠기게 한다.공원 인근 혼가와초등학교 안에 원폭 피해의 참상을 담은 만화 '맨발의겐' 기념관도 있다. 그곳엔 폭탄으로 황폐화된 히로시마 일대의 모형도 있는데 모래사장을 연상케 했다.현재 히로시마는 평화기념공원을 중심으로 원폭의 흔적을 남긴채 완벽하게 재건됐다. 아울러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추모공간이 관광지가 되면서 관광도시로 성장했다는 평가도 받는다.코야마 료 학예사는 "원폭 피해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동시에 받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상징물은 히로시마에만 남게됐다"며 "히로시마의 원폭돔이 원형으로 보전될 수 있었던 이유는 국가와 시민의 열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히로시마/고건·이영선기자 zero@kyeongin.com※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됐습니다.지난 12일 방문한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 공원 내에 있는 추모비에서 관광객들이 원폭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이후 정부와 히로시마는 원폭 참사의 잔혹함을 알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특별법을 제정해 평화기념 공원을 지었다. 2024.4.12 /고건기자 gogosing@kyeongin.com지난 12일 방문한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 공원 내에 있는 추모비에서 관광객들이 원폭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이후 정부와 히로시마는 원폭 참사의 잔혹함을 알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특별법을 제정해 평화기념 공원을 지었다. 2024.4.12 /고건기자 gogosing@kyeongin.com지난 12일 방문한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 공원 내에 있는 추모비에서 관광객들이 원폭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이후 정부와 히로시마는 원폭 참사의 잔혹함을 알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특별법을 제정해 평화기념 공원을 지었다. 2024.4.12 /고건기자 gogosing@kyeongin.com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 히로시마 하면 떠오르는 '원폭돔' 1966년 보존 필요성 제기, 자발적 모금1989년 내부 부식 소식에 다시 뜻 모아참사의 기억 딛고 '치유'… 자부심으로앙상한 뼈대만 남은 지붕. 잔뜩 찢겨 색이 바래져 버린 외관의 콘크리트.곳곳에 난 균열로 지지대에 아슬하게 버티고 서있는 기둥.지난 19일 방문한 일본 히로시마 '원폭돔'은 외관의 모습과 원폭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에 걸맞지 않게 '평화기념공원' 한쪽에 우두커니 있었다.원폭돔 건물 사이를 3분 넘게 가만히 응시하던 한 서양인은 조용히 카메라를 들어 순간을 담는다. 그 주변의 한 일본 주민은 폐허가 됐던 현장과 피해자들의 사진을 양손에 들고 "잊지 말아달라"고 서글피 외치고 있다.누군가에겐 잔혹한 기억을 못 잊고 울부짖을 수 있으면서도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추억의 장소가 되는 이중적인 공간.사망자 14만명. 당시 히로시마 인구가 30만인 점을 감안하면 순식간에 인구 절반 가까이 사라지게 만든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평화기념공원과 원폭돔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참사에 직격당했던 일본 국민과 히로시마 시민들을 진정한 '치유'로 이끈 기제가 됐다. 방치될 수도 있었던 참사의 흔적인 원폭돔은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보존과 관리에 힘썼다는 점에서 일본 국민들이 느끼는 의미가 크다.원폭돔은 1945년 8월 6일 미국의 원자폭탄이 직접적으로 타격된 '폭심지'에서 가장 가까워 강한 폭격을 맞은 건물이다. 도시가 재건됨과 동시에 1966년 원폭돔 보존에 대한 필요성 여론도 높아지며 일본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모금 운동을 시작해 6천600만엔(약 6억원)을 모았다.이후 히로시마시의회는 원폭돔 보존 결의안을 채택, 정부까지 나서 '원폭돔 보존 프로젝트'에 돌입했는데, 1989년 돔 내부 부식이 심각하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또다시 히로시마 주민들을 중심으로 모금 운동이 시작돼 3억9천500만엔(약 36억원) 이상이 전달됐다.민관이 합심한 결과, 1996년 히로시마 원폭돔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될 수 있었다. 찬반 논란이 많은 전쟁 관련 유산 중 나치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인 폴란드 아우슈비츠에 이어 두 번째다.인구 120만명에, 일본 수출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할 정도로 '재건'에 성공한 현재 히로시마의 시민들에게 원폭돔이란 참사의 상처를 딛고 다음 날을 살아가게 한 희망이었으며, 이제는 자부심의 상징이 됐다.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 학예사인 코야마 료는 "히로시마가 처음부터 원폭돔을 관리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며 돔은 피해의 상징물이 됐고, 결과적으로 히로시마 주민과 국가라는 두 주체가 열의를 가지고 (보존하도록) 만들었다"며 "원폭돔과 평화공원, 기념관 등은 단순한 추모의 의미를 넘어 도시 재건, 부흥 등 다양한 형태로 완성되며 추진력을 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히로시마/고건·이영선기자 gogosing@kyeongin.com※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됐습니다.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 공원 내에 있는 원폭돔. 1945년 8월 6일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속에서 남겨진 사업 전시장 돔 건물을 정부와 히로시마시는 현재까지도 보존해 관광객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2024.4.19 /고건기자 gogosing@kyeongin.com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지역 떠나는 일 없도록 포천형 백년대계 올인 학교 자율성 커지고 지자체도 권한·책임 강화되면 대도시 못지않은 교육환경 조성 지역인재 양성해 취업까지 이어지는 정주형 초점… 드론·반려동물 산업 육성 집중 市, 학생선호도 높은 학과 파악… 필요시 일반고 → 인문계 자율형 공립고 개편 고려1차 시범지역 공모 아쉽게 고배… 현실성 있게 보완해 2차 교육발전특구 지정 사활'지방소멸'은 코앞에 닥친 현실이 되고 있다. 수도권이라고 해도 별수는 없다. 특히 휴전선이 가까운 도시일수록 근심은 깊어진다.포천시는 21년전 시 승격 당시 인구 15만명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며 버티고 있다. 인구가 줄어드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교육 환경은 우리나라에서 유독 중요한 요인이 된다. 교육환경이 8뒤떨어지면 일자리가 있더라도 자녀의 교육을 위해 대도시로 떠나는 게 현실이다.정부가 지방소멸 대책으로 내놓은 교육발전특구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방에서도 대도시 못지않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는 게 정부가 내세운 취지다. 시는 인구를 붙들어 두거나 끌어들이기 위해선 교육발전특구를 놓칠 수 없는 기회로 보고 1차 시범지역 공모에 도전했으나 아쉽게도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오는 6월 2차 시범지역 공모에 재도전하기로 했다. 그만큼 시로선 다른 도시와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해 절박하기 때문이다.시는 2차 도전을 위해 교육 계획을 보완하고 장기적인 교육 개선책을 마련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에 맞춰 시가 현재 추진 중인 교육발전특구 지정계획에 관해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 편집자 주■ 낙후된 교육 생태계 탈바꿈 기회시는 지역에 3개의 대학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겉보기엔 좋은 교육 여건을 갖춘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차이가 있다. 우선 중·고등학교가 획일화돼 있어 학생들의 선택의 폭이 좁다. 지역에 대학이 있어도 다른 지역 학생들과 똑같이 경쟁해 입학해야 한다. 지역에서 경쟁력을 키울 만한 교육이 제공되지 않아 굳이 포천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닐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결국 여건이 되는 가정은 자녀 교육을 위해 고향을 떠나게 된다.교육발전특구는 이런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교육 생태계를 바꿀 수 있다. 지금까지 이런 현실을 알면서도 지방재정으론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교육발전특구로 지정되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가능하게 된다.예를 들면, 학교의 자율성이 커지면서 지역 특성에 맞춘 교육과정을 편성할 수 있고 대학과 연계해 관련 인재를 장기적으로 육성할 수 있다. 지자체의 권한과 책임도 함께 강화돼 교육환경 개선을 방해하는 규제를 재량으로 완화할 수 있고 다양한 특례도 적용할 수 있다.지방소멸 위험도시 입장에서 교육발전특구의 최대 이점은 이렇게 대학까지 마친 인재를 지역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정주할 수 있도록 하는 장기적인 교육환경 개선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한 지역에서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전 교육과정을 마치고 취업해 계속 정주하는 교육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지역에서 학교 나와 취업까지시가 추진하는 교육발전특구 모델은 지역 인재를 양성해 취업까지 이어지게 하는 정주형에 초점을 둔다.현재 시가 육성하는 드론산업의 경우 초·중교에서 특기적성교육을 받은 뒤 상급학교인 영북고와 경복대·대진대 드론학과에 진학하거나 5군단 드론부사관으로 진로를 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또 최근 주목받고 있는 산업인 반려동물산업도 이 같은 방식으로 지원해 지역 기업 취업이나 창업으로 이어지도록 한다는 게 시의 구상이다.그러기 위해서는 지역 대학, 산업계와의 협력이 뒤따라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시는 이런 교육발전특구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포천지역 학생들의 선호도가 높은 학과를 파악해 해당 학과에 지역인재 비율을 확대하는 방안도 마련 중이다. 학생 선발 비율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필요할 경우 기존 일반고교를 인문계 자율형 공립고교로 개편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교육발전특구 시범지역으로 선정되면 3년간 최소 30억원에서 최대 100억원까지 교육예산(특별교부금)으로 확보할 수 있어 이 같은 교육발전특구 모델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크다.무엇보다 현재 하향식 교육정책 결정이 상향식으로 바뀌게 된다. 교육부에 시가 필요로 하는 특례를 거꾸로 요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교사 인사권이나 학교 운영 자율성, 맞춤형 교육과정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시는 나아가 교육부뿐 아니라 필요에 따라 다른 관련 부처에도 규제 완화를 요구할 계획이다.시 관계자는 "현재 교육발전특구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 포천형 교육모델을 계획하고 있다"며 "지역 인재들이 타 도시로 빠져나가지 않고 지역에서 취업해 정주하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정부에 관련 규제 완화도 강력히 요청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포천시 사활건 2차 공모교육부와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는 최근 교육발전특구 지원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자문위는 이주호 교육부 장관과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아 25명 자문위원의 의견을 모아 2차 교육발전특구 시범지역 지정을 자문하게 된다.경기도에서는 포천시와 파주시, 연천군이 예비지정 지역으로 자문위의 자문을 받아 2차 공모에 대비한 기획서를 작성하게 된다.시는 이와 별도로 최근 교육발전특구 공모와 관련해 시민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설문조사에 들어갔다. 설문조사를 통해 시민들이 원하는 교육발전 방향과 관심분야를 파악해 반영할 예정이다.시는 지역 발전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교육발전특구가 빠져선 안 될 동력으로 보고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인구 유출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교육환경 개선 없이는 혁신적인 지역발전 달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특히 특구의 장점을 잘 활용하면 그동안 지역 발전을 억눌렀던 각종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다.시는 지난 1차 공모 과정을 통해 기본적인 요건을 갖췄다고 보고 현재 이를 보완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역 특성과 여건에 맞춰 더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는 방안을 보완하고 있는 중으로 알려졌다.시는 교육발전특구에 시민들이 거는 기대가 크기에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2차 공모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며 지역 교육청과 일선 학교, 대학들도 나서 힘을 싣고 있다.백영현 시장은 "교육발전특구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지역인재를 양성하고 지역인재가 지역에서 일하고 싶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 포천의 미래인재 육성을 위한 핵심과제"라며 "백년지대계 교육발전을 위해 반드시 교육발전특구 지정을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포천/최재훈기자 cjh@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백영현 포천시장이 지난 3월 열린 포천고등학교 도서관 개관식에 참석,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포천시 제공청소년문화교육지원센터가 진행하는 드론교실에서 청소년들이 드론을 작동하고 있다. /포천시 제공백영현 포천시장이 지난 12일 선단5통 어린이놀이터 준공식에 참석해 어린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포천시 제공포천시는 올해 2월 교육발전특구 공모사업을 위해 교육청, 대학, 상공인단체 등 지역 관계기관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포천시 제공
'또다른 지구촌' 오산 대호중학교 전교생 493명 중 다문화학생 73명 전체 14.4%인근 지역 농장·공단 들어서면서 외국인 늘어외부 강사 학생 눈높이 맞춘 한국어 수업 진행'문화적 다양성 인식' 제도적 지원 대책도 시급"안녕하세요, 저의 이름은 파하드 입니다. 감사합니다."방글라데시에서 온 파하드는 서툴지만 한자 한자 또박또박 말했다. 올해 대호중학교에 입학한 파하드는 한국에 온 지 7개월 밖에 안된 다문화 학생이다. 또래 중학교 친구들 덕에 한국 문화에는 조금씩 적응하고 있지만,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힐 때가 많다. 파하드는 "감정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아서 가끔은 외톨이가 되는 것 같다"며 속상해했다. 한국어에 미숙한 다문화 학생을 위해 대호중학교는 매년 한국어 교실을 진행하고 있다. 파하드는 친구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기 위해 스스로 한국어 교실을 신청했다. 아직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하지만, 파하드는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한국어를 배우려는 의지는 누구보다 남달랐다.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도내 31개 시·군 지역별 초·중·고 다문화 학생 수는 작년 기준 4만8천966명이다. 2022년도 대비 학생 수는 10.9% 증가했다. 올해 4월 기준 대호중학교 전교생 총 493명 중 다문화 학생은 73명으로 전체 인원의 14.4%를 차지한다. 이러한 대호중학교 다문화 학생 비율은 오산 관내 중학교 중에서 가장 많다.학교 관계자는 "화성·평택 등 인근 지역에 농장 및 공업단지가 들어서면서 다양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며 "오산지역이 다문화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그 수도 점차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대호중학교에는 중국, 일본, 우즈베키스탄, 방글라데시, 카자흐스탄 등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모여있다. 다문화 학생들 중에는 어릴 적부터 한국에서 성장해 한국어에 능통한 학생도 있는 반면, 아직 한국어 및 한글 학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도 있다. 이러한 학생들을 위해 대호중학교는 화성오산교육지원청에서 한국어 교실 사업을 지원받고 있다. 한국어 자격증을 지닌 외부 강사를 채용해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참여형 수업을 진행한다. 이를 통해 교과 과정에 대한 이해도를 증진하고, 의사소통의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최항규 대호중학교 교장은 "경기도 내 다문화 학생들이 증가하는 가운데 다문화 학생들과 일반 학생들이 문화적 다양성을 인식하고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지원이 시급하다"며 "한국어 교실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대호중학교 다문화 학생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올해 한국어 교실을 신청한 다문화 학생들이 한글을 쓰고 있다.방글라데시 국적을 가진 3학년 파하드가 도서관에서 친구들과 책을 읽고 있다.알리나가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급식을 받고 있다.카자흐스탄 국적을 가진 2학년 알리나가 한문 수업을 듣고 있다.파하드가 점심 시간에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