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경기)

[이슈&스토리]달리는 외상센터 인천 '닥터-카'

인천시·가천대 길병원, '골든타임 확보' 닥터헬기 이어 국내 첫 도입구급차와 큰차이 없지만 '전문의·간호사 등 탑승' 이송단계부터 치료 119상황실-권역센터 정보 공유… 응급실 전전하다 맞는 불상사 차단정부 생존율 확대 노력속 부산·울산시 등 '타지자체 벤치마킹' 줄이어우리나라의 예방 가능한 외상사망률은 30.5%다. 국내에서 외상으로 숨진 환자 10명 가운데 3명은 제때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었음을 보여주는 숫자다. 바꿔말하면 숨진 3명은 사고 이후 적절한 처치를 받았다면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는 얘기다. 외상환자에게 '골든타임'이 중요한 이유다.중증외상환자를 '골든타임' 내에 신속히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는 전용 응급차량인 '닥터-카'가 최근 공개됐다. 지난달 12일 인천시와 가천대 길병원이 마련한 '닥터-카 출범식'이 열렸다. 닥터-카는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환자를 단 한 명이라도 줄이기 위해 도입됐다. 닥터-카를 도입한 건 인천이 전국 처음이다.인천은 지난 2011년부터 '응급의료전용 헬기(닥터헬기)'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인천은 닥터헬기와 함께 닥터-카를 도입·운영하게 되면서, 하늘과 땅에서 중증 외상환자를 안전하고 신속하게 이송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게 됐다. 중증외상을 입어도 목숨을 지킬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높아졌다.# 닥터-카, "이송 과정부터 치료한다"닥터-카는 외관상 일반 구급차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의사가 탑승해 외상환자를 이송단계부터 치료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일반 구급차와 큰 차이가 있다. 외상외과 전문의 1명, 간호사 1명, 응급구조사 1명, 기사 1명 등 4명을 1개 팀으로, 24시간 출동 대기한다. 현재 응급의료 관련 법률에는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가 정해져 있는데 응급구조사가 할 수 있는 처치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사람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기도 삽관이나 응급 약물 등의 응급처치도 의사의 지도가 없으면 할 수 없다. 이 같은 이유로 구급차에 의사 탑승 여부는 다친 환자의 생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인천시는 위급한 외상 환자임에도 병원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상황을 막기 위해 닥터-카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중증외상환자는 구급차에 의해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는 게 보통이다. 중증외상환자는 중환자실과 수술실이 상시 확보돼 즉시 수술이 가능한 권역외상센터로 바로 보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긴박한 조치가 필요한 중증외상환자를 앞에 두고 한시라도 빨리 의사를 만나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일반 병원 응급실을 먼저 찾는 것이다.이렇게 되면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가 적절한 조치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우선 중증·경증환자가 뒤섞여 있는 일반 응급실에선 수술실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특정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전문의가 없거나 중환자실이 부족해 환자를 진료하지 못하거나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일도 빚어진다. 처음부터 중증외상환자를 적절한 응급의료기관으로 이송하는 게 중요하다.닥터-카는 119 종합상황실과 정보를 공유하며 권역외상센터와 거리가 있는 곳에서도 환자가 전문 인력과 시설이 갖춰진 권역외상센터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닥터-카는 끼임사고나 붕괴, 추락 사고 등 상황에서도 생명을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환자를 현장에서 구조한 뒤 병원 이송 과정에서부터 병원 도착 전까지 전문적인 처치로 환자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치료 후 발생할 수 있는 장애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인천에는 공항과 항만, 대형산업단지, 발전시설 등이 몰려 있고, 경제자유구역을 중심으로 한 건설 현장도 많다. 다른 도시와 비교해 중증외상환자 발생 비율이 높다. 보건복지부 중앙응급의료센터에서 집계한 전국 중증외상환자 발생현황을 보면 인천의 경우 2014년 1만1천868명, 2015년 1만2천633명, 2016년에는 1만2천966명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인천과 같은 광역자치단체를 비교하면 부산의 경우 2016년 기준 중증외상환자 수가 7천680명, 대구 6천5명, 광주 8천11명, 울산 2천789명 등으로 같은 기간 인천의 중증외상환자 수(1만2천966명)와 비교해 차이가 크다. 닥터-카가 인천에서 더욱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타 지자체 벤치마킹 활발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닥터-카'를 벤치마킹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12일 '닥터-카 출범식' 개최 이후 인천시에는 여러 자치단체에서 관련 내용을 문의하는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부산시를 비롯해 충청남도, 울산시, 전남소방본부 등 여러 자치단체와 소방 기관 등에서도 관심을 보이며 닥터-카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지자체와 기관은 닥터-카 운영 매뉴얼과 관련 예산, 운영 방식 등을 자세히 문의하며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정부는 현재 30.5% 수준인 중증외상환자 예방가능 사망률을 23% 미만으로 낮추기 위한 계획을 세워두고 있는데, 이런 정부의 방침에 따라 중증외상환자 소생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고심하는 전국 자치단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닥터-카 운영 예산을 지원하는 인천시와 닥터-카 운영을 맡은 가천대 길병원을 비롯한 소방·구조 당국은 닥터-카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보다 실효성 있는 응급의료서비스 정책을 개발·확대해 나갈 방침이다.유병철 가천대 길병원 외상외과 교수는 "단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과감하게 시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닥터-카 운영 경험이 응급의료 체계를 개선해 나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인천시와 가천대 길병원이 중증외상환자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외과전문의를 비롯한 의료진이 탑승하는 '닥터-카'를 도입 운영 중이다. 사진은 닥터-카 출동 상황을 가정해 환자를 옮기는 시뮬레이션 모습. /가천대 길병원 제공닥터-카에는 외과 전문의와 간호사, 응급구조사, 기사가 탑승한다. /가천대 길병원 제공닥터-카 내부. /가천대 길병원 제공사고현장에 도착해 119구조대원과 함께 구조 작업을 진행하는 의료진. /가천대 길병원 제공

2019-04-04 김성호

[인터뷰… 공감]류은규 사진작가, 조선족의 잊혀진 흔적 "더 많이 알려졌으면…"

일제강점기 항일투쟁을 위해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과 그들의 후손인 조선족의 삶을 담아낸 사진전 '잊혀진 흔적' 전이 최근 막을 내렸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유명한 류은규(57) 옌볜대 교수가 26년 동안 현지에서 찍은 사진과 입수한 자료들로 꾸민 '잊혀진 흔적' 전은 지난 2월 28일부터 3월 31일까지 인천아트플랫폼 B동 전시장에서 개최됐다.1개월간 진행된 전시회엔 2천여명의 관람객이 찾아 성황을 이뤘다. 사료적 가치도 높은 류 교수의 사진과 자료들에 관람객들도 큰 호응을 보낸 것이다.류 교수와 그의 아내이자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도다 이쿠코 인천 관동갤러리 관장은 "전시회 초창기에는 역사적 관심으로 인해 많은 분들이 전시회를 찾는다는 느낌이었는데, 전시회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재차 전시회장을 찾는 분들이 생기고, 입소문이 더해지면서 가족 단위 관람객들도 많이 오셨다"고 말했다. 전시 막판에는 관람객이 줄기 마련인데, 마지막 주말이었던 지난달 30일에만 200여명의 관람객이 전시회를 보고 돌아갔다. 잘 알려지지 않은 만주일대의 독립운동사를 알리는 사진전이 한 달로 막을 내린다는 것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도 있었다. 류 교수는 "전시회를 보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라는 관람객의 말을 들었을 때 열심히 해야겠다고 한 번 더 다짐했다"면서 "인천 분들이 많이 오셨는데, 이외 지역으로도 퍼져서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밝혔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2019-04-02 김영준

[인터뷰… 공감]3·1운동 100주년 기념전 개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류은규

#'잊혀진 흔적' 展 많은 관심 끌었는데中서 항일운동 흔적 수집·조선족 살펴중립지키고 검증 신경써서 전시회 구성#조선족을 26년간 찍고 있는 이유는하얼빈서 우리역사 왜곡되는 것 목도만주지역 이주사 '객관적 기록' 결심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류은규(57) 옌볜대 사진학과 교수의 3·1운동 100주년 기념전 '잊혀진 흔적'이 지난 2월 28일부터 3월 31일까지 인천 아트플랫폼 B동 전시장과 윈도우갤러리에서 개최됐다.'잊혀진 흔적'전은 일제강점기 항일투쟁을 위해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과 그들의 후손인 조선족의 삶을 조망하기 위해 기획됐다. 1990년대 초부터 26년 동안 중국에서 항일운동의 흔적을 수집하고 독립운동가 후손과 재중동포의 모습을 찍어온 류 교수는 이번 전시회에 작품 70여점과 아카이브 250여점을 출품했다. 전시회는 '역사의 증언자들', '그리운 만남', '80년 전 수학여행', '삶의 터전', '또 하나의 문화' 등 5부로 구성됐다. 전시회는 2천여명의 관람객이 찾을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류 교수의 시선과 수고가 고스란히 담긴 작품들에 많은 사람들이 호응한 것이었다.류 교수에게 작품 활동과 이번 전시회에 관한 이야기, 앞으로 계획 등을 들어보기 위해 지난 1일 오전 인천 아트플랫폼 전시장을 찾았다. 류 교수는 아내인 도다 이쿠코 인천 관동갤러리 관장과 함께 전시장으로 들어섰다. 인터뷰 후 부부가 함께 전시 작품들을 떼어낼 예정이었다. 전시회 개막을 앞두고 부문 별로 나누고 작품들을 걸고, 전시회장을 꾸미는 데 1주일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지만, 떼어내는 데는 반나절이면 충분할 거란다.류 교수는 "학생들에게도 강조하는 부분인데 '역사 관련 전시회는 가장 중립적으로 올바르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으면서 한 쪽 편에 서서 찍을 순 있겠지만, 찍고 나선 중립을 지켜서 전시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서 "검증도 매우 중요하다. 중국 현지 교수와 국내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하고, 한·중·일 역사를 공부한 일본 사람인 아내의 도움도 크게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류 교수는 26년 동안 조선족을 찍고, 관련 자료를 모으는 건 사진으로 경계를 무너뜨리고 싶어서라고 했다. 류 교수의 이 같은 바람과 희망은 이번 전시회에 고스란히 투영됐다."국경, 시대, 사람과 사람 사이 등 세상에는 늘 경계가 존재합니다. 한국과 중국, 한국인과 조선족 뿐만 아니라 조선족 사이에서도 세대 차이나 지역 차이로 인한 경계가 존재하죠. 경계로 인해 갈등이 조장됩니다. 한국전쟁의 경우 민족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했지만,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룰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하죠. 그런 경계를 무너뜨리고 싶습니다. 사진가는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장의 사진을 풀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진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100년 전 간도에서 울려 퍼진 '독립만세'의 함성을 상기할 수 있었으며, 우리와 단절된 채 살아왔던 조선족의 발자취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류 교수가 조선족의 삶을 기록하고 자료 발굴을 시작한 건 1993년이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일본항공, 전일본공수 등의 기내지에 게재되는 사진을 찍으면서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을 때 하얼빈을 사진에 담게 됐다."한국 사람으로서 안중근 의사, 731부대(일본의 세균전 부대) 등을 떠올리며 하얼빈에 갔습니다. 한데, 제가 알던 역사적 사실들이 일본은 물론 중국 내에서도 공산당과 국민당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자신이 처한 시선에 맞춰 역사를 설명하고 있던 것이었죠. 이후 만주지역의 이주사를 객관적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사진으로 기록하고 항일 운동 하신 분들을 찾아다니면서 사진을 모았습니다."류 교수는 1995년 옌볜대 민족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위촉됐고, 2000년에 옌볜대에 사진학과가 만들어지면서 교수가 됐다. "아내와 겨우 6개월 된 아이를 둘러업고 옌볜대로 간 건 교수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이주사와 만주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항일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였어요. 오랜 호흡으로 동일한 주제의 다큐멘터리 사진을 계속 찍으려면 현장에 거주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올해까지 26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류 교수는 이 작업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옌볜은 중국과 조선 문화가 부딪히는 완충지대입니다. 이런 요인들을 통해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고요. 현재 200만 조선족 중 한국에 83만명이 가 있고, 베이징 등 대도시에 40만명이 나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 시골처럼 젊은이들은 얼마 안 남고 다수의 노인들이 옌볜에 있습니다. 중국 당국의 동북공정과도 어우러지면서 변화하고 없어지는 게 많아지고 있습니다. 1990년대부터 제가 기록한 사진들은 현재 없어지는 것들을 알 수 있는 객관적 자료입니다. 그러면서 느낍니다. 제 사진이 사료적 가치도 갖는다는 사실을요."#청학동 사진도 37년째 찍고 있는데우리나라 발전상 고스란히 녹아있어외국에서 '유토피아'로 소개 큰 반응#언제까지 활동을 이어갈 계획인가조선족·청학동 사진촬영은 계속 진행두 작업, 내가 카메라 놓는 날 끝날 것이주 조선인과 후손의 삶을 좇고 있는 류 교수는 37년 동안 지리산 청학동 사진을 담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981년께 일간신문 토픽란에 실린 작은 기사(등산객 한 명이 길을 잃고 헤매다 어느 마을을 찾아 들어갔다는 내용)를 본 류 교수는 이듬해 비둘기호 기차를 타고 진주를 거쳐 하동에서 시골 버스를 타고 내린 후에도 5㎞ 산길을 걸어서 청학동(당시 이름이 생기기 이전)에 갔다.매번 하동에서 쌀 2말을 사 짊어지고 지리산 골짜기까지 찾아드는 그를 청학동 사람들은 의아해 하다가 지금은 형제처럼 가까워져서 대소사를 알리고, 언제 오는지 기다릴 지경이 됐다고 한다."1982년 처음 청학동에 갔을 때 만난 10살 어린이가 현재 장가가서 슬하에 고등학생 자녀를 두고 있어요. 현재 우리나라의 발전상이 청학동에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여겨집니다. 자급자족하던 청학동에 전기, 전화, TV가 들어오고 공권력과 자본도 따라 들어오죠. 가게가 생기고, 민박, 식당도요. 자급자족할 땐 주민 간 갈등이 없었는데, 현재 갈등도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특히 청학동 사진을 좋아합니다. 서양엔 '유토피아'로, 중국에는 '이상세계'로 소개하는데, 유토피아나 이상세계는 실체가 아닌데, 제 사진을 통해 볼 수 있으니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청학동 전시는 지난해까지 외국에서만 연간 4~5차례 진행했습니다. 조선족 작업과 청학동 작업은 제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계혹할 것입니다. 두 작업은 제가 카메라 놓는 날 끝날 것입니다." 글/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류은규 교수는?서울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냈으며 신구대 사진과와 상명대 예술디자인대학원 사진학과 순수사진 과정(석사)을 졸업했다. 1988년 교도소를 주제로 광주학생회관에서 첫 전시회를 개최한 이후 지난달 '잊혀진 흔적'전까지 국내외에서 20여회 개인전을 열었으며, 15차례 단체전에 참여했다. 이번 '잊혀진 흔적'전의 3부에 구성됐던 '80년 전의 수학여행'을 최근 책으로 펴내는 등 8권의 사진 관련 서적을 내놓았다. 현재 인천 관동갤러리와 도서출판 토향의 대표로 있으면서 중국 옌볜대와 하얼빈대,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사진예술과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류은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전시회가 열렸던 아트플랫폼 전시장에서 포츠를 취하고 있다.

2019-04-02 김영준

[우리시대의 품앗이人(K-Pumassian)]'8년째 도시락봉사' 박유희 前남양주시의장

매주 수십명 찾아 안부 살피고 집수리"평생 보살필것"… 정치복귀 선긋기"말한마디 나눔이 가장 큰 봉사활동""지역주민들에게 지금까지 받은 사랑, 이제는 봉사로 갚아야죠." 3선 시의원을 지낸 박유희(56) 전 남양주시의회 의장은 정치계를 떠나 봉사하는 하루하루가 기쁨과 설렘으로 가득하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 2012년부터 매주 금요일 남양주 노인복지관에서 실시하는 도시락 방문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혼자 사시는 어르신 32분께 도시락 배달을 하며 말벗이 돼 안부를 살피고 사시는 집에 수리할 곳은 없는지 관찰한다. 단순한 도시락 배달이 아니기에 하루가 짧다. 지난여름엔 평소 찾아가 말벗을 해드리던 아흔 넘은 어르신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달음에 찾아간 집에는 어르신이 혼자 쓰러져계셨다. 박 전 의장이 병원으로 긴급후송하지 않았다면 어르신은 지금 박 전 의장과 함께 웃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도시락 배달 봉사활동에서 얻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누군가의 안위를 돌보고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조차 훈훈하게 한다"고 했다. 독거노인을 옆에서 본지 7년. 박 전 의장은 "가장 중요한 봉사는 따뜻한 말 한마디다.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화를 나누고 평소 안부를 묻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봉사의 기쁨을 체험한 만큼 박 전 의장은 일손이 필요한 곳이면 언제든지 나타난다. 또 지난해부터는 남양주 희망나눔복지넷에서 첫째·셋째 수요일에 급식과 설거지 봉사를 하고 있다.일부에선 박 전 의장의 봉사가 다시 정치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한다. 그러나 그는 "난 이미 시의원 3선을 했고, 정치를 떠났다. 남양주는 내가 태어난 곳이고 앞으로도 평생 이곳에 살 것이다. 지역에서 봉사활동은 내 부모, 내 지역 어르신을 보살피는 일이다"라고 단호히 정치와 선을 그었다. 박 전 의장은 "지역사회에서 삶은 자원봉사활동으로 개선된다. 서로 돕는 과정이 곧 사회참여이며 교육이다. 남양주에는 다른 이를 돕는 손길이 끊이지 않아 희망이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희망나눔복지넷의 장경재 위원장, 문향초 사무국장, 홍혜영 총무와 오남 한양병원 이사장을 특별히 언급하고 싶다. 명예나 이익도 없이 묵묵히 참된 봉사활동을 하는 이분들이 내 스승"이라며 존경을 표했다. 그는 "앞으로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에 나를 바치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남양주/이종우기자 ljw@kyeongin.com박유희 전 남양주시의회 의장이 "봉사의 참 기쁨을 느끼고 있어 어느 때보다 즐겁다"며 "가장 중요한 봉사는 따뜻한 말 한마디다.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화를 나누고 평소 안부를 묻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남양주/이종우기자 ljw@kyeongin.com

2019-04-01 이종우

[FOCUS 경기]김포교육지원청 생활협약 실험 1년

배려나눔 문화 정착·회의 효율화 개선 등 목표경어·청소 같은 지킬수 있는 12개 조항만 결정반신반의 했었지만 직원·부서간 '벽' 허물어져"당신은 스스로와의 약속을 얼마나 지키고 있습니까?"오랜 세월 뿌리내린 직장문화를 바꾸기 위해 김포교육지원청이 스스로 약속한 '생활협약'이 시행 1년을 맞았다. 직장에서 지켜야 할 신조를 명문화한 이 협약은 교육지원청 직원들이 수개월의 협의를 거쳐 다듬은 끝에 12개 조항으로 구성했다. 어느 회사에나 흔히 있을 법한 협약이 아니다. 현실에 적용해본 결과 무리가 따랐던 조항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정말 지킬 수 있는 조항으로 지금도 완성해 가고 있다. 무슨 변화가 있을까 싶었던 직원들은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졌다"고 말한다. 작지만 울림이 있는 변화다.■ '고치고 다듬고' 실제 지킬 것만 협약...직장문화 변화'일주일에 한 번 팀별, 한 달에 한 번 팀 대 팀 티타임을 합니다', '외부인이 방문했을 때 서로 차(茶)를 준비합니다', '업무 공유 및 행사 준비 시 팀이 함께 참여합니다', '수요일마다 자기 자리를 정돈하고 사무실을 청소합니다', '회의시간 시작과 끝을 준수하고 결과를 공유합니다'김포교육지원청 생활협약은 단순하다. 존중과 배려, 협력과 나눔의 문화를 정착시키고 실제적인 소통이 있는 효율적인 회의를 추구하자는 내용이다. 처음에는 다들 반신반의했다. 특별히 뭐가 달라지겠느냐는 의문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 작은 습관은 좀처럼 바뀔 것 같지 않던 경직된 조직문화에 서서히 변화를 불러왔다.황인석 장학사는 "벽이 허물어졌다는 게 가장 큰 변화였다"며 "그동안 '네 일 내 일'을 구분했다면, 생활협약이 적용되고부터는 서로의 일에 관심을 품게 되고 동료의 일도 나의 일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났다"고 했다. 권위주의가 허물어져 가는 것도 큰 변화다. 황 장학사는 "사소한 하나라도 토론과 동의를 거쳐 결정하는 문화가 정착하고 있고, 같은 이유로 부하를 하대하거나 무시하는 사례가 자취를 감췄다"고 전했다.의미 있는 변화를 가능케 한 건 '지킬 수 있는 것만 협약해야 한다'는 김정덕 교육장의 소신에서 비롯됐다.김 교육장은 "생활협약은 과거 김포 운유초 교장 시절 처음 시도했었고, 경기도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장을 지내면서도 추진했던 정책"이라며 "교육장을 맡아 학교 현실로 돌아왔더니 이런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유명무실해져 있더라"고 말했다. 이에 김 교육장은 거창한 구호만 앞세운 협약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판단, 실제 지킬 수 있는 협약을 구성원들 스스로 만들게 유도했다.시행해 보고 도저히 불가능하다 싶으면 탄력적으로 수정해 나가자고도 직원들에 제안했다. 일례로 김포교육지원청이 지난해 생활협약을 최초 시작할 때는 '하루에 한 번 스트레칭'이라는 조항이 있었으나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올해 생활협약에서는 제외했다.'교권침해·학생인권 갈등' 학교내로 확대 추진김정덕 교육장 "스스로 자정 노력해야지 효과"몽실학교·초등학교 공동학군제도 운영도 순항■ 교육환경 근본개선 위해 학생·학부모·교사 등으로 확대김포교육지원청의 생활협약이 주목되는 이유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 교육공동체로 확대할 예정이기 때문이다.김 교육장은 "요즘 교육현장에 갈등요소가 많다. 대표적으로 학생과 학생 간 학교폭력, 여기에 따른 학부모 간 갈등, '교권침해' 내지는 '학생인권'문제로 불거지는 학생과 교사 간 갈등이 적지 않다. 또 어떤 경우는 한두 명의 아이 때문에 학급 전체의 교육력이 저하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하고, 학폭 문제는 법정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진단했다.이 같은 갈등관계는 '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게 김 교육장의 지론이다. 김 교육장은 "공문을 하달해서, 또한 법을 따져가면서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그래서 학생이 지켜야 할 협약, 학부모가 지켜야 할 협약, 그리고 교사가 지켜야 할 협약을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교육공동체 구성원들이 스스로 자정하고 노력할 때에라야 학교현장의 수많은 갈등요소가 해소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각자 가정여건과 학교실태에 맞춰 지킬 수 있는 협약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김 교육장은 "예를 들어 학부모는 급한 일이 아니면 오후 8시 이후에 교사에게 전화를 하지 말자거나, 우리 가정은 오후 9시 이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하나하나 실천에 옮기면, 작은 협약이 실마리가 돼 학교현장에서 기적적인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면서 "내 권리만 찾지 말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며 존중하자는 게 생활협약의 기본정신"이라고 부연했다.김포교육지원청의 교육실험은 생활협약에 그치지 않는다. 경기도교육청 차원에서 설치한 의정부 소재 몽실학교에 이어 교육지원청 단위로는 최초로 지난해 문을 연 '김포몽실학교'도 운영 1년을 맞아 점점 커리큘럼이 진화하며 지역 교육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학교를 넘나들며 지역별 학교별 맞춤형 특성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소규모 초등학교 공동학군제 역시 순항 중이다.김 교육장은 "평화교육에서 더 나아간 '평화통일교육'이 접경지인 김포지역 혁신교육의 핵심 가치이자 브랜드인 만큼, 김포를 통일체험학습의 거점으로 발돋움시켜 김포의 아이들이 통일시대 인재로 우뚝 서기를 희망한다"며 활짝 웃었다.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아이클릭아트지난 달 초 김포교육지원청사에서 열린 생활협약식 광경. 지난해 첫 협약 후 전 직원 협의를 거쳐 현실적으로 지킬 수 있는 내용으로 수정됐다. /김포교육지원청 제공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아이클릭아트김정덕 교육장

2019-03-31 김우성

[이슈&스토리]산업혁명이 낳은 '미세먼지의 공습'

1952년 영국서 1만여명 목숨 잃은 '그레이트 스모그'캡슐서 공기받아 사는 '영화 인 더 더스트'도 재조명심각성 느낀 정부, 특위 설치·범국가기구 추진단 발족경기도등 지자체도 해결 적극 동참… 효과는 설왕설래1952년 12월 5일. 영국의 수도 런던의 하늘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웠다. 짙은 안개까지 더해지면서 대낮인데도 바로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졌고, 이 같은 현상은 10여일 동안 지속됐다. 이후 런던시민들은 호흡기와 심장의 통증을 호소하다 급기야 사망에 이르렀다. 사망 인원만 1만여명이 넘었다. 당시 영국은 런던 전역에 퍼진 정체불명의 먼지를 사망 원인으로 지목했다. 해당 먼지는 추후 'smoke(연기)'와 'fog(안개)'의 합성어인 'smog(스모그)'에다 'great(엄청난)'가 붙은 '그레이트 스모그'라 불렸다. # 미세먼지의 역습'그레이트 스모그'는 매연을 비롯한 도심 대기 속 오염물질이 기화해 안개 모양이 된 것을 가리키는데 요즘에는 일명 소리 없는 살인자로 불리는 '미세먼지'가 이에 빗대어 불리고 있다. 미세먼지는 석탄·석유 등의 화석연료를 태울 때나 공장·자동차 등의 배출가스에서 많이 발생하는 먼지가 대기 중에 떠다니거나 흩날려 내려오는 입자상 물질을 말한다.미세먼지 문제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 '인 더 더스트'에 더욱 자세히 나와 있다. 다니엘 로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지난해 11월 개봉한 해당 영화는 미세먼지가 인류에 미치는 영향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 작품은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가 연일 기승을 부리고 있는 우리나라의 미래 모습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뒤늦게 재조명되고 있다. 영화에는 밀폐된 캡슐 안에서 신선한 공기를 공급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는 마스크를 쓰고 등교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미래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것이다.이에 정부에서는 뒤늦게 나마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고려, 국무총리실 산하 민·관 합동 심의기구인 '미세먼지특별대책위원회(이하 특위)'를 설치하는가 하면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미세먼지 범국가기구' 설립추진단을 발족하기로 했다.미세먼지 특위는 반 전 총장이 이끌 범국가적 기구가 향후 미세먼지와 관련해 외교적인 협력을 도출하면 이 내용을 토대로 정책화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반 전 총장은 '미세먼지 범국가기구' 설립추진단 발족에 앞서 지난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공직자 대상 특강에서 "우리 인류사회는 모든 타이틀이 긴밀하게 연계돼 있어 어떤 하나도 하나만을 가지고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대국민 합의를 이뤄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이와 함께 정부는 미세먼지 대책의 법적 기반이 되는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하 미세먼지 특별법)' 시행을 통해 ▲사업장, 건설공사장 가동률 조정 및 공사시간 변경 ▲자동차 운행제한 ▲학교 등의 휴업 및 수업시간 단축 등을 추진하며 2022년까지 35.8%(2014년 배출 기준)의 미세먼지 감축 달성 목표를 세웠다. # 경기도 미세먼지 골머리경기도 역시 정부의 미세먼지 문제 해결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경기도는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오는 2022년까지 13억4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산하 25개 공공기관에 전기차 55대를 보급하기로 했다. 이번 조처는 경기도가 추진 중인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수송 분야 대책의 하나로 도는 지난 1월 미세먼지 저감 대책으로 2022년까지 6천643억원을 들여 전기차, 수소차, 전기버스 등 친환경 차량 3만3천569대를 보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경기도는 교체 시기가 된 노후 차량 8대를 새 차로 교환하고 임차 차량 47대는 현 임차 계약이 끝나면 전기차로 전환할 방침이다. 경기도시공사, 경기문화재단 등 7개 기관에 전기차 충전기 10기를 추가로 설치해, 총 24기를 확보하기로 했다.경기도 관계자는 "친환경 차 보유 확대로 교통 분야 미세먼지 저감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정부와 협력해 공공기관의 친환경 차 보유 비율을 계속해서 늘려나가겠다"고 말했다.하지만 경기도의 미세먼지 특별대책이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3월 12일 주간 논평을 갖고 "경기도 민선 6기 '알프스프로젝트'는 임시방편 대책이었고, 민선 7기도 특별대책을 추진한다고 하지만 효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알프스프로젝트'는 도가 지난 2016년 6월부터 도내 미세먼지 배출량을 2020년까지 3분의 1로 줄이는 내용의 골자로 추진되는 사업이다. 도는 2015년 기준 연간 4천400t(PM10 기준)인 도내 미세먼지 배출량을 2020년 1천500t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운바 있다. /김종찬기자 chani@kyeongin.com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2019-03-28 김종찬

[인터뷰… 공감]'수원 야구 붐' 꿈꾸는 이숭용 KT 단장

■수원과 인연이 깊은데현대 시절 한국시리즈 정상 올라KT 만원관중서 흥행 가능성 확신■야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아버지 따라 축구를 시작했지만유니폼 멋있어서 야구부에 가입추억의 팀 태평양과 현대를 아는 프로야구 팬들은 수원 KT 이숭용 단장은 꾸준함과 리더십이 뛰어났던 선수로 떠올린다. 이단장은 1994년 신인선수드래프트에서 2차1라운드(전체 1번)에서 태평양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후 현대를 거쳐 넥센에서 은퇴를 했다.재정적으로 어려웠던 태평양에서 신인 시절을 보냈고, 현대 왕조의 전성기와 신생팀으로 뛰어든 히어로즈선수단에서는 주장으로서 선수단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이 단장에게 프로야구팬들은 캡틴, 미스터 쾌남, 마지막 황태자라는 애칭을 붙여줬다.신생팀 KT의 창단 코칭스태프로 수원으로 돌아온 이번 시즌부터 단장으로서 수원 야구의 붐을 확신하고 있다. 이 단장의 야구인으로서의 철학과 단장으로 꿈꾸는 야구를 들어 봤다.# 전율을 느꼈던 그 순간, 수원 야구의 가능성을 봤다.서울에서 태어난 이 단장은 스스럼 없이 수원을 자신의 제2의 고향이라고 한다. 인천을 연고로 했던 태평양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현대 유니폼을 입고 수원에서 현대 왕조의 우승 순간을 함께했다. 이 단장은 "아직도 2015년 3월28일 창단 후 첫 1군 홈 개막전이 열리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kt위즈파크에 수원 야구 팬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질때 발바닥부터 전율이 시작돼 온 몸으로 퍼졌다. 그 모습에 수원 야구의 가능성을 봤고 KT와 함께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그는 "현대가 목동으로 가기전 수원야구장을 홈경기장으로 사용했지만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열기였다.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던 순간에도 수원야구장은 비어 있었다. 그랬던 수원야구장에 KT라는 신생팀의 첫번째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온, 가득찬 수원 야구팬들의 모습에 감동했었다. 현대 왕조에서 느끼지 못했던 전율을 느꼈고 수원 야구는 분명히 꽃을 피울 것이라고 믿게 됐다"고 했다.이어 이 단장은 "당시 창단한지 얼마 안된 상황이기에 선수단 자체는 미흡했고 많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선수단의 실력은 만들어가면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역의 열기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프로스포츠 선수들은 팬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성장한다. 수원의 열기는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재능을 폭발할 수밖에 없도록 이끌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팀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과 함께하고 싶었고, 완성된 모습을 본다면 정말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창단 후 첫 홈개막전 경기를 회상했다.# 유니폼이 멋있어서 시작한 야구선수, 나는 평범한 선수였다.이 단장의 프로 선수 생활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90년대 야구가 투고타저였던 점도 있지만 야구선수로서 이상적인 신체 조건에도 이 단장은 프로야구 선수로 활약했던 18시즌 동안 162개의 홈런만 기록했다. 통산 2천1경기 출전해 이부문 역대 7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통산 타율 0.281, 통산 안타 1천727개를 기록했다.자신의 야구에 점수를 매겨 달라고 묻자 "고교때까지는 그저그런 평범한 선수였다. 대학교때부터 야구에 대해 눈을 뜬거 같다. 현대에는 워낙 슈퍼스타들이 많았기 때문에 내 명함을 내밀 수 없었다. 슈퍼스타는 아니었지만 선수로서 나에게 점수를 주라면 B+를 주고 싶다"고 밝혔다.이 단장은 "사실 아버지께서 축구선수 생활을 하셨기에 저도 축구로 스포츠에 입문했다. 근데 축구부가 없어지고 야구부가 창단 됐는데, 유니폼이 너무 멋있었다. 유니폼이 멋있어서 야구부에 가입했고, 야구를 하다 보니 야구가 재미 있어서 그라운드를 떠나지 않고 지금까지 온거 같다. 그냥 공을 던지고 치고, 수비하는게 좋았다. 유니폼을 입고 있었을때 가장 행복했었다"고 전했다.캡틴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리더십의 상징이 된 이유에 대해 이 단장은 "주연이 되려고 많은 노력을 했는데, 제 실력이 그정도까지는 안됐다. 주연보다 조연 역할을 했는데, 그 조연 중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고민을 했다. 야구는 야구대로 하면서 내가 이렇게해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현대에서 주장을 맡으며 그라운드 안에서 최고의 선수가 되지는 못하지만 동료들과 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야구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선수단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런 역할을 했기 때문에 구단에서도 이숭용이라는 선수에 대해 많은 것을 준거 같다"고 말했다. ■내 야구에 점수를 준다면팬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려 최선슈퍼스타 아니었지만 'B+' 정도■코치로도 활동했는데선수와 소통하기 위해 많은 노력오랜기간 주장했던 경험, 큰 도움# 선수출신 단장, 그에게 주어진 고민들.이 단장은 "선수 시절에 부끄럽지 않은 야구를 하자는 게 목표였었다면 코치로 KT의 창단코칭스태프로 합류할때는 '소통하는 야구'를 생각했다. 코치로 선수들과 처음 만났을때 선수들에게 '함께 동행하자'고 말했다. 제 나름의 야구 철학 중 하나는 '코치는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계약이라는게 있기 때문에 언제 헤어질지 모른다. 코치가 갖고 있는 타격 이론과 야구 이론이 절대적일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만 옳다고 말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코치는 선수가 본인의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함께 동행하자'고 말했다"고 말했다."그러기 위해서는 선수들이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수들에게 다가가고 그 선수를 이해하기 위해 성격과 성향도 파악하고, 가족관계까지 알려고 했다. 서로간에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노력했다. 서로간에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건 신뢰가 쌓이는 것을 의미한다. 선수시절 오랜기간 주장을 했던 점이 코치로서 생활할때 많은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단장이라는 자리를 꿈꿔 보지 않았기에 지금 이 단장은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감독과 단장으로 성공신화를 쓴 염경엽 현 SK감독을 비롯해 다른 팀 단장들에게도 많은 조언을 구하고 있다.이 단장은 "현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있을때 몰랐던 부분을 많이 보고 배우고 있다. 코치만 했다면 프런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을 것 같다. 프런트라는 자리가 굉장히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현장에 있을때는 제가 직접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현장은 감독님과 코칭스태프에 믿고 맡겨야 한다. 관리 보다는 관심을 갖고 무엇을 해야 현장에서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에게 도움이 될지에 대해 고민한다"고 전했다.그는 "시즌 중에는 프런트와 현장에서 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다. 그럴때 어떻게 지혜롭게 풀어갈지 늘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다. 연승을 할때, 연패를 할때, 선수들 또는 코칭스태프가 힘든 상황일때 단장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현장 출신이기에 현장에 부담을 주지 않고 상황에 따라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어떤 야구를 보여주고 싶나KT 선수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팬 위해 한발 더 뛰는 모습 보일것# 초보 단장 이숭용 단장이 꿈꾸는 야구, 그리고 약속.이 단장은 "감독님과 팀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화를 나누면서 공감대를 갖는 건 우리 팀, KT가 미래가 밝다는 거다. 코치 시절에는 타격코치라 타자들만 바라 봤지만 단장으로서 구단을 넓게 바라보니 투수쪽에도 좋은 선수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 엄상백과 정성곤, 김재윤이 필승조로 자리잡아주고, 선발에서는 김민과 이대은, 외국인선수들이 자리잡아 준다면 2~3년 안에 안정된 전력으로 완성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이어 이 단장은 "유망주들을 육성해 내는 2군은 많은 부분을 바꿨다. 코칭스태프와 시간 날때마다 회의를 했고, KT만의 색깔이 뭔지 같이 고민하자고 했다.코칭스태프와 육성팀이 같이 고민해서 만들어가자고 했다. 하나 하나 만들어 가다보면 KT만의 색깔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봤다. 현대 출신 선수들이 현대라는 이름에 자부심을 갖듯 KT 선수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 환경을 만들자고 했다.신인드래프트에서 아마추어 선수들이 KT에 지명 받았을때 환호성을 지를 수 있는 명문 구단이 될 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 파트별로 육성쪽에서는 다양하게 프로그램을 짜고 있다. 체계화가 돼서 기본기, 팀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끔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그는 "KT는 1군 데뷔 5년차인 팀이다. 신생팀이라는 색깔을 가지면 안된다. 상대팀과 싸울 수 있는 힘을 갖춰야 한다. 그 힘을 극대화 시켜서 성적이라는 것으로 팬들에게 보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마지막으로 이 단장은 "수원 팬들은 열정적이다. 한발 더 뛰는 야구로 팬들이 원하는 성적과 야구를 보여주고 싶다. 팬들의 기대치를 저희가 높여 드려야 한다. 수원야구의 봄이 시작될 수 있도록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이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 팬들께서도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많은 격려와 박수 부탁드린다"고 말했다.글/김종화기자 jhkim@kyeongin.com 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이숭용 단장은?▲ 학력 : 서울 용암초 - 중앙중 - 중앙고 - 경희대▲ 프로입단 : 1994년 2차 1라운드 지명(전체 1번, 태평양)▲ 통산 성적 : 2천1경기 출장(역대 7위), 타율 0.281, 안타 1천727개, 홈런 162개▲ 소속팀 : 태평양(1994~1995)-현대 (1996~2007)-우리(2008)-히어로즈(2009)-넥센(2010~2011)▲ 지도자 경력 : 수원 KT 타격코치 (2014~2018) ▲ 프런트 경력 : 수원 KT 단장 (2019~)제2의 고향을 수원이라고 말하는 프로야구 수원 KT의 이숭용 단장이 자신이 꿈꾸는 KT야구단의 미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9-03-26 김종화

[우리시대의 품앗이人(K-Pumassian)]부천 실력파 모임 '깔깔깔 가요봉사단'

단원 30여명 年 100여차례 봉사활동간호사·노래강사·주부 등 직업 다양"암·우울증 '싹' 건강되찾아 늘 감사""다음에 또 올 거지?" 부천의 요양원, 경로당 등지에서 노래봉사활동을 하는 '깔깔깔 가요봉사단'(단장·장복순)은 공연이 끝난 후 어르신이 "언제 또 오냐"며 아쉬워할 때마다 제대로 약속을 못해 늘 마음이 무겁다고 한다.'빛깔·색깔·성깔'을 뜻한다는 '깔깔깔' 가요봉사단은 부천시 여성가요제에서 입상한 실력파들이 모인 노래봉사단체다. 요양원, 다문화 가정, 독거노인 가정, 경로잔치, 부천시 축제 등지에서 연간 100여차례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어르신들을 뵙는 날이 가장 신나고 기쁘죠."'깔깔깔' 가요봉사단원 30여명은 어르신들과 만나는 날이면 아침부터 분주하다. 1시간가량 예쁜 옷에 화장도 하고 소품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지만 마음만은 어느 때보다 즐겁다.7~8명이 한팀이 돼 기획사 대표가 편곡해 준 빠른 템포의 '얼치기 민요', 가요 등을 어르신들 앞에서 춤과 함께 선보이는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간호사인 양영순(60·여)씨는 오후 9시부터 오전 8시 30분까지 근무하고 잠을 줄여서 노래 봉사활동을 한다. 쪽잠을 자며 '양수아'라는 예명으로 가수활동도 하고, 작사·작곡까지 한다. "섬기고 나누고, 배려하는 자세로 사는 게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한다.장복순(59·여)씨는 우유 배달을 하면서 봉사활동을 해 거래처가 줄어들기도 했지만 봉사단 활동으로 위안을 삼기도 한다. 색소폰 연주, 전통고전무용도 하며 노래강사로 활동한다. 이연자(54·여)씨는 부동산 보조 중개원으로 일하며 노래강사로 활동한다.암 투병을 하던 강인선(55·여)씨는 가요제에서 입상한 후 깔깔깔 봉사단을 찾아왔다. 노래로 우울증 치료를 하고 건강도 되찾았다며 봉사단에 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깔깔깔 여성회 조아진(56·여) 회장은 전업주부 출신.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다 가요제에서 대상을 탄 게 계기가 됐고, 총무 이미선(57·여)씨는 회사원이다.깔깔깔 가요봉사단은 경희대 미래교육원과 노래지도자 양성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노래강사 자격증 아카데미도 운영하고 있다. 3개월 코스로 기수당 10~14명씩 5기생을 배출했다.'깔깔깔'은 부천뿐 아니라 충청도, 전라도 등 출장봉사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은 기름값 정도만 받고 어르신들께 즐거움을 드릴 수만 있다면 언제, 어디든 달려가겠다고 한다. 부천/장철순기자 soon@kyeongin.com조아진(왼쪽에서 4번째) '깔깔깔 가요봉사단' 회장과 임원진들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부천/장철순기자 soon@kyeongin.com

2019-03-25 장철순

[인터뷰… 공감]인천시민이 좋아하는 쌀막걸리 '소성주' 키워낸 정규성 인천탁주 대표

#막걸리협회 신임 회장직을 맡았는데회원사들 한목소리 낼 수 있도록 노력업계 간 기술교류 없는 문제 개선할것#시민 사랑 받도록 성장시킨 비결은?장기간 주주배당 않고 품질개선에 투자기본 충실하려고 했던 노력, 결실 맺어"비결 같은 건 없어요. 돌아보면 그저 못살게 될까봐 두렵고 겁났습니다. '금수저'까지는 아니어도 '은수저'쯤 쥐고 태어났는데, 그래서 주변에 늘 잘 사는 사람들이 있었죠. 그런데 그 부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폐지를 주워야 할 정도로 무너지는 경우를 자주 목격했어요. 그게 두려웠습니다. 살아남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했습니다."인천 사람들이 사랑하는 쌀막걸리 소성주를 만드는 인천탁주제조 제1공장(이하 인천탁주)의 정규성(62) 대표의 이야기다.정규성 대표는 한때 맥주에 밀려 '아무도 찾지 않던 술'로 전락했던 지역 막걸리를 시민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지금의 '소성주'로 키워낸 주인공이다.그는 1996년부터 인천탁주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인천탁주는 11명의 주주가 운영하는 협동조합 형태의 회사로, 인천지역 11개 탁주 양조장이 연합해 1974년 설립됐다.정규성 대표는 최근 전국의 크고 작은 100여개 막걸리 제조 기업이 모인 단체인 사단법인 한국막걸리협회 회장직을 맡게 됐다. 인천의 소성주뿐만 아니라 전국의 막걸리를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술로 키워내는 역할까지 해야 해 어깨가 무겁다. 지난 10일 청천동에 있는 공장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신임 막걸리협회 회장직을 맡아 어깨가 무거울 것 같다. 어떠한 계획을 갖고 있나."대형 막걸리 회사인 대한탁약주제조중앙회 회장직도 맡고 있는데, 크고 작은 막걸리 회원사들이 한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취임사에서 말했습니다. 또 업계 간의 기술교류가 거의 없는데, 이 부분도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막걸리 업계가 전문가 그룹이 두텁지 않고 학문적으로도 연구가 많이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업계가 스스로 만들어가야 합니다."-IMF 직전인 1996년부터 인천탁주 대표를 맡아 지금까지 대표를 맡고 있다. 가장 힘든 시기는 언제였나."대표를 맡은 직후가 가장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때 회사를 파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공장 연매출이 20억원 정도로 큰 슈퍼마켓 매출에 불과할 정도로 바닥을 치던 시절이었습니다. 인천에서 인천 막걸리가 아닌 타지역 막걸리가 70%이상 판매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계양구에 농사짓는 분들이 많았는데, 그 분들조차 막걸리가 아닌 맥주를 마시던 상황으로 참 힘들었습니다. 그때가 제일 힘들었습니다. 오히려 IMF가 찾아온 이후에는 막걸리가 서민주인 탓에 반짝 매출이 오르기도 했습니다. 2000년도 막걸리의 타지역 판매가 자율화하면서 다시 위기를 맞았습니다."-인천 시민의 사랑을 받는 막걸리로 성장시킨 비결을 듣고 싶다."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할 줄 아는 게 없었습니다. 사실 주류 시장이 특별한 비결이 필요한 시장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거래처를 갖고 태어나는 물건은 술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막걸리만 제대로 만들면 다 받아 줄 텐데, 막걸리 사업을 망하면 아무 사업도 못할 거라고 합니다. 기본에 충실하려고 했던 노력이 지금의 사랑을 받는 비결이 아닐까 합니다. 1996년 대표를 하면서부터 10년 가까이 주주 배당을 하지 않고 품질 개선에 투자했습니다. 맛없으면 할머니가 해준 떡도 안 먹는다는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형편없던 종업원 월급도 다른 공장 수준에 맞추려고 노력했지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주주들도 많이 희생했습니다."-2000년대 초반 막걸리의 지역 경계가 없어지면서 위기를 맞은 이후 어떻게 극복했나."지역 판매가 자율화하면서 여러모로 혁신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포천의 막걸리가 전국을 주름잡던 시절이었습니다. 인천탁주는 그때부터 그동안 간섭하지 않던 유통 부문을 대대적으로 정리했습니다. 예를 들면 당시 막걸리를 판매하시는 분들이 중구에 기반을 갖고 계신 분들이 부평지역에 납품하고, 부평에 기반이 있는 분들이 중구에 납품하고 서로 경계가 없었는데 이것부터 정리했습니다. 사실 거래처라는 게 별것도 아닌데, 영업비밀이라며 정보를 공유하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판매하는 분들을 설득하기가 힘들었지만, 결국 서로에게 이득이 된다는 사실을 알리고 설득하며 추진했습니다." #막걸리 세계화 가장 먼저 시도했는데반짝인기였을뿐 큰 의미 두고 싶지 않아한국인이 즐기는 술, 그 자체가 더 중요#인천탁주에서 이루고 싶은 꿈은?월급 많지 않지만 직원들 행복했으면사랑받는 만큼 보답… 기부활동 희망-인천탁주는 막걸리의 세계화를 위한 시도를 가장 먼저하고 결실도 얻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막걸리의 세계화는 값어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천탁주는 1992년 막걸리를 장기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 '테트라팩'에 담은 멸균탁주 '농주(農酒)'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일본 등에 수출하기도 했는데, 막걸리 정식 수출은 처음이었습니다. 이듬해에는 미국 LA와 시카고에서 열리는 국제식품쇼에 출품하기도 했고 1994년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음료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세계 속에서 인천을 대표하는 술이 된 줄 알았죠. 하지만 당시 그것은 인천 막걸리의 세계화가 아니라 세계화 추세 속에 인천의 막걸리가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잘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했는데 마케팅 능력도 없었습니다. 반짝 인기를 끌었을 뿐 큰 의미를 두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남을 의식하지 말고 우리끼리 즐기는 술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베트남이나 일본에도 막걸리와 비슷한 술이 있다고 합니다. 막걸리를 모든 한국사람들이 즐기는 술이라는 그 자체가 중요한 거지 막걸리가 세계화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인천 시민의 사랑을 받는 소성주가 어떤 술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나."막걸리를 서민들의 술이라고 합니다. 소성주도 계속 서민들의 곁을 지켜주는 서민주로 오래도록 사랑을 받으며 이어갔으면 합니다. 막걸리 고급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싸게 즐기는 서민들의 술로 오래도록 그들의 삶과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또 사라지는 한국문화유산이 많아 슬픕니다. 막걸리가 한국인이 자랑스럽게 세계 사람들에게 내세우는 한국의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가 됐으면 합니다. 소성주를 비롯한 막걸리를 즐겨 찾아주는 국민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인천탁주에서 이루고 싶은 꿈은 어떤 것인가."가식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직원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월급을 많이 주진 못하지만 직원들이 행복하고 즐거웠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회사는 공부 잘하고 뛰어난 능력이 필요한 직원들이 많아야 하는 곳은 아닙니다. 우리 공장에는 외국인노동자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도 일자리가 얻기 힘든데 외국인에게까지 일자리를 뺏기는 게 안타깝더라고요. 또 민속주를 외국인이 만들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공장은 평범한 분들이 일하는 곳이죠. 이 공장 안에서 그 분들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월급 받고 행복을 느끼며 살았으면 합니다. 또 소원이 있다면 막걸리를 즐겨 마셔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함을 잊지 말고. 기부 활동도 많이 하고 싶습니다. 사랑받는 만큼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정규성 인천탁주 대표는?▲ 1957년 인천 출생▲ 축현초등학교, 상인천중학교, 송도고등학교, 제주대학교 식품공학과▲ 1989년 대화주조 주식회사 대표이사 취임▲ 1996년 인천탁주제조 제1공장 대표 취임▲ 2017년 대한탁약주제조중앙회 회장▲ 2019년 사단법인 한국막걸리협회 회장-주요 수상내역▲ 2013년 대한적십자상(기부분야)▲ 2014 사랑의 열매 대상(기부분야)▲ 보건복지부 2015년 제1회 행복나눔상 ▲ 2017년 농림축산식품부장관 표창정규성 인천탁주 대표가 회사 경영이 힘들었던 시기에 대해 말하며 웃고 있다. 정 대표는 그저 못살게 될까봐 두렵고 겁이나 열심히 일했다고 말했다.

2019-03-19 김성호

[우리시대의 품앗이人(K-Pumassian)]'의정부보호관찰소 청소년 상담' 김애랑씨

10여년째 봉사… 지역에선 꽤 유명출소자 일자리 알선 자립기반 마련"바삐 지내다보니 중년기 젊게 살아""봉사활동이 내가 사는 지역사회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의정부지역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김애랑(59)씨는 10여년 전만 해도 평범한 주부였다. 김씨는 "보통 주부들처럼 일상을 보내다 문뜩 나도 뭔가 보람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봉사활동을 하면서부터 무기력했던 삶에 활력을 얻었다"고 말했다.본격적인 봉사는 2009년 의정부보호관찰소에서 청소년을 상담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앳된 얼굴의 아이들이 저마다 불우한 사정으로 잘못된 길로 접어든 현실이 그저 안타까웠다. 상담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가다듬고 진심 어린 대화로 아이들을 보듬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학교로 발길을 돌리는 아이들이 하나둘 생겼다. 10여 년 전 가출과 탈선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져 있던 한 17세 소년은 김씨의 끈질긴 설득과 보살핌 덕분에 꿈꾸던 대학에 들어가 대학원까지 졸업한 뒤 이제 어엿한 직장인으로서 성실히 살아가고 있다. 김씨는 "무엇보다 아직 어린 청소년이 혼자 감당하기 힘든 일이 많아 마음이 아팠다"며 "나 자신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게 뿌듯했다.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보람"이라고 말했다.지금도 보호관찰소에서 틈만 나면 청소년들을 상담하고 있는 김씨는 2015년부터 출소자들의 자립을 돕는 일에도 뛰어들었다. 청소년들을 돌보며 출소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냉랭한 시선을 실제로 경험한 것이 봉사활동을 확장한 이유다. 김씨는 "사회적 편견이 오히려 재범률을 높이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출소자를 돕는 민간조직에 몸담으며 이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활동에 참여했다. 단기적인 물질적 지원뿐 아니라 일자리를 알선해 실질적인 자립기반을 마련해줬다. 출소자를 마주하리라고 상상도 못한 중년 주부가 이제는 이들의 자립을 손수 챙기고 있다. 김씨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정말 뜻밖의 일들을 수없이 경험하고 있다"며 "여러 봉사로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도 늘어가고 하루하루 바삐 살다 보니 중년기 흔히 겪는 심리적 문제없이 오히려 젊게 살고 있다"고 웃었다. 의정부/최재훈기자 cjh@kyeongin.com김애랑씨는 지난 10년간 봉사활동을 하며 생활에 많은 변화를 느꼈다고 말했다. 의정부/최재훈기자 cjh@kyeongin.com

2019-03-18 최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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