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인천)

[zoom in 송도]송도국제도시 브리핑

■국제영어토론대회, 참가자 5월15일까지 모집한국조지메이슨대학교가 미국 조지메이슨대학교 토론학 연구소와 공동 주최하는 '제2회 국제영어토론대회' 고등학생 참가자를 5월 15일까지 모집한다.영어토론대회는 1·2차 예선, 결선으로 진행된다. 1·2등 팀에게는 소정의 상금과 미국 조지메이슨대학교 토론학 연구소에서 발급하는 공식 상장이 전달된다. 최종 우승팀에게는 미국 토론학 연구소에서 운영하는 조지메이슨대학교 인터내셔널 스피치 콘테스트(GMUK International Speech Contest) 참관, 조지메이슨대학교 토론학 연구소 미국 캠프(GMIF USA Camp) 참여 등 다양한 기회가 제공된다. 1차 예선 참가를 원하는 학생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미국과 한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What can the US and ROK do to protect each other from DPRK aggression?)'를 주제로 5~7분 분량의 영상을 제작해 제출하면 된다. ┃포스터 참조예선을 거쳐 선발된 한국 학생은 미국 고등학교 학생과 2인 1조를 이뤄 주어진 주제와 관련해 찬반 토론을 진행한다. 대회에는 미국 조지메이슨대학교 본교 토론학 연구소 피터 포버 교수(Dr. Peter Pober)와 강사진들이 참여해 참가 학생들에게 '토론의 원리와 이론', '토론에서의 반론 제기', '현대 연구 관행의 기법과 전략', '설득의 기술' 등에 대해 강의한다.■경제자유구역홍보관, 2년간 37만여명 방문인천 송도국제도시 G타워 33층에 위치한 인천경제자유구역(IFEZ) 홍보관에 개관 후 지난 2년 동안 37만여명이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지난 24일 개관 2주년을 맞은 IFEZ 홍보관에 총 37만여명, 하루 평균 540명이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인천경제청 관계자는 "특히 지난해에 하루 평균 방문객이 641명에 달하는 등 점차 방문객 수가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송도에 오면 꼭 방문해야 하는 필수 코스가 되면서 IFEZ를 알리고 투자유치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홍보관은 전면이 유리로 돼 있어 360도로 송도를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홍보관에 마련된 VR(가상현실) 체험부스에서는 청라국제도시 커낼웨이, 영종지구 자연 풍경 등을 느낄 수 있다. '디지털 포토존'은 방문객이 배경(IFEZ 내 시설 등)과 의상을 선택하고 사진을 촬영하면 곧바로 문자메시지, 이메일 등으로 받아 볼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홍현기기자 hhk@kyeongin.com

2017-03-26 홍현기

[zoom in 송도]송도국제도시 쇼핑몰 90%이상 입점 계약… '트리플스트리트' 다음달 27일 개장

다양한 테마공간 조성 차별화 대형아웃렛 지하연결 '시너지'지하·옥상에 쇼핑객 휴식시설오픈기념 '포켓몬 페스티벌'도인천 송도국제도시 거리형 쇼핑몰 '트리플스트리트(TRIPLE STREET)' 개장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트리플스트리트는 600m에 달하는 거리를 따라 꾸며진 여러 테마 공간이 다른 쇼핑몰과 차별화되는 요소로 꼽힌다.인천경제자유구역청 등에 따르면 송도 7공구 인천도시철도 1호선 테크노파크역 인근에 연면적 29만8천775㎡ 규모로 조성되는 트리플스트리트가 다음 달 27일 개장한다.3월 중순 현재 95%를 넘어서는 공정률을 보이고 있고, 90% 이상 입점계약이 이뤄진 것으로 집계됐다.트리플스트리트는 지하, 지상, 옥상 3개의 특색있는 쇼핑 거리로 조성됐다.지상 1~2층 '그라운드 스트리트'에는 여러 패션 브랜드 점포, 수공예품 상점, 카페, 팝업스토어, 영화관 등이 들어선다.지하 1층 '언더 스트리트'에는 거리를 따라 다양한 F&B(식음료), 생활에 필요한 '라이프스타일' 연계 제품을 파는 점포가 조성된다.지하 중앙에는 공원을 마련해 쇼핑몰 이용객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지하에는 인근 현대프리미엄아울렛과 연결되는 지하 통로를 만들어 쇼핑몰 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했다.지상 3층 옥상은 여유와 휴식을 테마로 하는 '파크 스트리트'로 꾸며진다. 정원과 글램핑 공간, 스포츠필드 등이 마련된다.트리플스트리트는 오픈을 기념해 개장일부터 오는 5월 21일까지 국내 최대 규모 '포켓몬 페스티벌'을 개최할 계획이다.트리플스트리트 곳곳에 포켓몬 조형물과 다양한 체험 공간을 조성할 예정이다.인천경제청 관계자는 "최근 모바일 게임 등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포켓몬을 소재로 하는 포켓몬 페스티벌로 많은 사람이 트리플스트리트에 대해 알게 되고, 많은 이용객이 모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송도 스트리트몰 조성사업은 지난 2008년부터 (재)인천테크노파크가 추진했지만, 사업성 악화로 중단됐다.인천경제청이 2013년 토지를 인수한 뒤, 인천시와 민간이 참여하는 (주)인천투자펀드가 출자한 회사 (주)에스디프런티어 주도로 사업이 추진됐다.인천투자펀드는 이 회사에 750억원을 출자해 39.5%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홍현기기자 hhk@kyeongin.com다음 달 27일 개장을 앞둔 인천 송도국제도시 거리형 쇼핑몰 '트리플스트리트(TRIPLE STREET)' . 송도 7공구 인천도시철도 1호선 테크노파크역 인근에 연면적 29만8천775㎡ 규모로 조성되는 트리플스트리트는 600m에 달하는 거리를 따라 꾸며져 여러 테마공간이 조성된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트리플스트리트 정면 조감도.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

2017-03-26 홍현기

[실향민이야기 꿈엔들 잊힐리야·11]황해도 연백 출신 고구한 할아버지 (下)

해성면 해남리 고향 동네는 100여명 모여살던 고씨 집성촌최대 곡창지대답게 부친도 맨손으로 논과 밭 수천평 일궈염전은 '염전로동자구'로 불려… 위성사진으로 봐도 장대평야서 많이 나온 '토탄'은 타 지역 연료난 해결에도 도움고구한(81) 할아버지는 지금도 고향 집 주소를 기억하고 있다. 황해도 연백군 해성면 해남리 한율동 269번지. 고향 동네에는 100여명이 살았는데, 고씨 집성촌이었다. 동네 남쪽으로는 드넓은 염전이 있었고 하천이 마을을 휘돌아 서해로 나갔다. 앞바다는 썰물 때면 드넓은 갯벌을 드러냈다. 갯벌에서 소라를 잡아 깬 뒤 그물에 달아 던지면 물고기가 몰려들었다. 할아버지의 부친은 대나무로 만든 대 끝에 그물을 붙여 얕은 바닷물 속을 밀고 다니는 '사도질'을 했는데, 금세 망둥이나 새우를 잡아냈다. '사도질'은 아마도 손잡이가 길고 국자처럼 생긴, 고기 잡는 그물인 '사둘'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할아버지 고향 앞바다에서는 강화도 교동 등 인근에서도 배를 끌고 나와 물고기를 잡을 정도로 어장이 풍성했다."고기가 엄청나게 많아. 낚시질도 잘되고 투망도 잘되고, 미끼를 던지면 망둥이나 숭어 이런 것이 엄청나게 달려들었지. '모찌'라 부르는 숭어 새끼는 물들어올 때 '자자자착'하면서 뛰어다니고 지금 생각해도 참 좋아." 연백은 곡창지대로도 유명했다. 30년간 소래포구에서 쌀 장사를 한 할아버지는 자신 있게 연백쌀이 최고라고 말했다. 당시 신문기사에도 중요 곡창지대로 '연백평야'가 여러 번 등장한다.동아일보 1949년 4월28일자는 "해방 후 해마다 봄이 되어 파종기를 당하면 연 100만석을 산출하는 연백평야(延白平野)"라고 전한다. 동아일보는 1937년 9월12일자 '연백기자단(記者團) 설립'을 알리는 기사에서 "연백은 황해, 연해양수리조합의 몽리면적 2만여 정보(二萬餘町步)의 옥토가 연백평야에 가로 놓이고 미산지로서 전 조선적 곡창인 동시에 인구팽창과 아울러 급진적 발전 도정에 있는 신흥지대이다"고 소개하고 있다. 한국 전쟁 후 남한에서는 쌀값이 폭등했는데, 그 원인 중 하나로 남한 땅이었던 연백평야가 북한으로 넘어간 것을 꼽기도 했다.이북5도청 황해도에서 지난 1970년 발행한 '황해도지'를 보면 연안(延安)과 배천(白川)이 합쳐져 1914년 연백군이 됐다. 주위의 평야지대는 쌀의 품질이 좋아 임금에게 진상하기도 했다.고구한 할아버지 가족도 연백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주로 조와 밀을 많이 심었다. 조를 수확한 뒤에는 콩을 심는 이모작을 했다. 할아버지의 부친은 물려받은 것도 없이 남의 논에서 일을 시작해 3천여 평의 논과 2천여 평의 밭을 일궜다."그때는 장남한테만 재산을 줬어. 큰아버지는 재산을 받아서 머슴을 두고 일하고, 서당 선생도 하고 했는데, 밑에 4형제는 아무것도 못 받았어. 아버지는 남의 논에서 일하면서 번 것으로 땅을 사기 시작해서 논밭을 사고 집을 사고 이렇게 한 것을 보면 참 대단해. 장사를 하신 것도 아니고 온전히 노동으로만 땅을 사셨으니까."연백에서는 소금도 많이 생산됐다. 할아버지 고향 마을이 있는 연백 해성면(海城面) 일대가 염전이었다. 할아버지는 고향 마을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드넓은 염전과 염전에서 일하는 인부가 머무는 사택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이 염전은 지금은 '염전로동자구'로 불린다. 국가지식포털 '북한지역정보넷'은 황해남도 연안군 해남리를 "1958년 (황해남도 연안군 해남리의)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염전로동자구를 신설했다"고 소개한다.연백염전은 당시 국내 염전 가운데 가장 넓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아일보는 1939년 11월1일자에서 1천670정보(町步) 면적의 연백염전 조성 공사가 시작됐다는 소식을 전하며 "조선 안에서 제일 큰 염전이 출현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 완공했을 때는 그 규모가 약간 작아지기는 했는데 그 거대함은 지금 위성사진으로 봐도 장대하다.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이라는 책에는 1943년 황해도 연백군에 완성된 천일염전 규모가 1천250정보라고 나와 있다.남한 땅에 속했던 연백염전이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 귀속되면서 남한에서 천일염전 개간이 본격화됐다. 전국 소금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던 연백염전을 전쟁통에 잃게 되면서 이를 대체할 염전을 개발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1950년대 초 전라남도 신안과 무안 등에서 천일염전이 개발됐다. 일제강점기 관(官) 염전을 제외하고 서해안의 천일염전은 대부분 한국전쟁 이후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세워진 것이다. 한국전쟁 중 정부는 염전 확대, 소금 생산을 위해 '염증산5개년계획(1952~1956)'을 수립했다. 북에서 내려온 피란민은 염전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노동력을 채웠다.고구한 할아버지도 피란을 나와 강화 석모도에서 염전 개간하는 일을 했다. 할아버지가 소래포구에 왔을 때 소래 일대에 조성된 소래염전 인부 대부분이 실향민 출신이었다고 할아버지는 말했다. 할아버지는 연백염전과 소래염전의 운영 방식이 같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소래염전 바닥에는 '타일' 같은 것을 깔아 소금 결정이 맺히기 쉽게 했는데, 연백염전에는 특별히 깔린 것이 없었다. "소래에는 타이루 같은 거를 까는데 연안염전(연백염전)은 바닥이 좋았나봐 그냥 맨바닥이었어." 일제시기에는 염전의 바닥이 흙으로 된 '토판'이었는데, 한국전쟁 이후에는 옹기조각을 까는 '옹기판'과 '타일판'으로 10여 년 사이에 진화했다고 할 수 있다.그런데 할아버지 가족에게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연백염전이 마냥 반가운 존재만은 아니었다. 고향 마을 사람들은 한 가족처럼 서로를 믿고 챙겼는데, 염전이 생긴 뒤에는 마을에 도둑이 들 정도로 동네 분위기가 흉흉해졌다."평안도나 전라도 지방에서 염전에 일하러 많이들 왔어. 이 사람들 오고 나서는 도둑만 생기는 거야. 집 앞에 땔감도 훔쳐가고, 동네에 있는 나무란 나무는 다 잘라다가 땠어. 기르는 닭 같은 것도 많이도 훔쳐갔어."당시 염전 인부는 노동의 대가로 쌀을 받기도 했지만, 연료 토탄(土炭)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았다. 토탄은 석탄의 일종인데 탄이 묻힌 깊이가 석탄보다 깊지 않고, 묻힌 기간도 짧다. 당시 연백의 넓은 평야에서 토탄이 많이 났다.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연백에서 생산되는 토탄은 서울 등 다른 지역에도 공급돼 연료난 해결에 큰 도움을 줬다. 동아일보 1947년 11월28일자는 "금융조합연합회에서는 추위에 울고 있는 세궁민들을 위해서 연백군 일대에서 채취되는 약 600만 개의 토탄을 서울시로 운반하여 염가로 배급하는데 이리되면 각하(刻下) 핍박한 연료사정은 약간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황해도중앙도민회가 지난 2012년3월 1일 펴낸 '황해민보'에 실린 '내 고향 황해도' '연백군편'을 보면 연백평야에서는 1m 이하 지하층에서 토탄(연료)이 광범위하게 채굴돼 주민들의 연료로 쓰였고, 명산물로 다른 지역에 공급되기도 했다.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강화군협의회가 2008년 4월 펴낸 실향민 증언록 '격강천리라더니'에는 연백 출신 실향민 여럿이 토탄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이 담겼다. 차세룡 할아버지는 "특산품으로 토탄이 산출되는 곳인데 땅을 한 5m 정도 파면 토탄이 나오는데 그것을 캐서 논두렁에 말려서 땔감으로 사용했다"고 회고했다.고구한 할아버지 고향에는 나지막한 산도 있었는데 '봉화산'이라 불렸다. 조선시대 봉화를 올렸던 산이다. 조선 중기 편찬된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연안도호부편'을 보면 연안에는 5개 '봉수(烽燧)'가 있었다. 이 중 할아버지가 말하는 봉화산은 각산(角山) 봉수인 것으로 추정된다. 각산 봉수는 서쪽으로는 백석산(白石山), 동쪽으로는 배천군 봉재산(鳳在山)에 응했다고 기록돼 있다. 남쪽으로는 경기도 교동현 수정산(修井山)과 응한다. 이는 조선 후기 각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책으로 엮은 전국 읍지 '여지도서'에 기록된 내용과 동일하다. 황해도지는 각산에 대해 "옛날 연안, 배천의 경계요 경기도 강화군의 교동도로 건너가는 요진이었다. 고려사 중에 보이는 사실로, 공민왕 7년(서기 1358) 3월에 왜(倭)가 각산성에 침구(侵寇)하여 와서 전선(戰船) 30척(隻)을 불태웠다는 각산성은 이곳을 말하는 것이다. 산상에 봉화대가 있었기 때문에 산명을 봉화산이라 하기도 하였으며 지금 봉화리의 지명도 여기서 연기(綠起)된 것이다"고 했다.할아버지가 회장을 맡고 있는 고향 동네 향우회 이름도 봉화산의 이름을 따 '봉화회'다. 회원 수가 100여 명으로 조그만 동네 향우회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회원 수가 많다. 매년 정월 초이튿날과 하지(夏至)에 2번 정기적으로 모인다. 1960년대 인천, 시흥 등에 사는 사람이 서로 연락이 되면서 모이기 시작했다. 1세대 실향민은 벌써 여럿이 세상을 떴고, 실향민 2세대가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향우회에서는 돈을 모아서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에 있는 산 약 2만㎡(6천평)를 샀다. 하성면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한 지역이다."죽어서라도 한곳에서 고향 사람이 같이 있자고 해서 향우회에서 공동으로 산을 샀어. 거기에 우리 아버지, 어머니, 막내가 묻혀 있어."글/홍현기기자 hhk@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동아일보 1947년 11월 28일자에는 연백군에서 채취한 토탄 600만개를 서울시로 운반해 저렴한 가격에 '세궁민'에 배급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2017-03-22 홍현기

[zoom in 송도]송도국제도시 브리핑

■인천경제청, 스마트마이스 2차연도 사업 추진인천지역 마이스(MICE) 관련 행사 참가자, 주최 측이 모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전시 관리 시스템 등을 구축하는 '스마트 마이스(SMART MICE) 조성 2차연도 사업'이 추진된다. ┃그래픽 참조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17일 송도 G타워 대회의실에서 '스마트 마이스 조성사업 2차연도 착수 보고회'를 개최하고 사업 추진 계획을 밝혔다.이 사업은 ▲모바일 티켓 발급, 개인 맞춤형 정보제공 등 전시관리 시스템 구축 ▲바이어와 기업 간 비즈니스 매칭시스템 ▲지역 상권 할인 혜택, 포인트 적립 등 기능을 갖춘 '인천 패스' 서비스 구축 ▲가상현실(VR)·스토리텔링 콘텐츠 구축 ▲송도컨벤시아 멀티비전 구축 등을 골자로 한다.인천경제청은 지난 1차연도 사업에서는 컴퓨터, 스마트폰 등 다양한 기기에서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포털 등 통합 플랫폼을 구축했고, 송도컨벤시아 내에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대형 멀티비전과 VR 체험관 등을 설치한 바 있다.■이상네트웍스, 29~31일까지 '코팅 코리아 산업전'이상네트웍스는 오는 29~31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국내 최대 규모 국제코팅접착필름산업전 '코팅 코리아(COATING KOREA)'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포스터코팅코리아는 코팅·접착·필름산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내 최대 전문 전시회로 꼽힌다. 같은 기간, 같은 장소에서 '국제표면처리·도금·도장산업전(SURTECH KOREA)'도 개최돼 연계 산업 전시회 간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지난해 열린 전시회에는 미국, 일본, 중국, 대만 등에서 온 기업의 전문 바이어 약 1만8천여 명이 참석했다. 올해는 전시회 대상 산업군을 기존의 코팅, 접착, 필름에서 나노기술, 소재 등까지 확대해 관련 업계의 높은 관심이 예상된다.이번 전시회에는 중국에서 손꼽히는 소재 업체와 인도의 표면처리 화학 기업도 참가할 예정이다. 행사 기간 중 전시장 내에서는 다양한 세미나도 열린다. 문의 : 전시회 사무국(02-3397-0133~4). /홍현기기자 hhk@kyeongin.com스마트 마이스(SMART MICE) 조성 사업 추진계획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

2017-03-19 홍현기

[zoom in 송도]송도 워터프런트 긴급 정책토론회

정부 감사 지적… 사업 축소 필요성 제기'11공구 제외 추진' 인천시 내부의견 모여정창일 시의원 "계획변경 주민 우롱행정"물순환시스템 취지실종 예산낭비 지적도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송도국제도시에 'ㄷ' 형태의 수로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송도 워터프런트'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달 타당성 조사를 시작으로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는 계획인데, 기존 'ㅁ' 형태에서 'ㄷ' 형태로 워터프런트 사업 방향이 변경된 것을 놓고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지난 17일 인천 송도 G타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민경욱 국회의원 주최 긴급 정책토론회 '송도 워터프런트,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에서 인천경제청 홍종대 개발계획총괄과장은 송도 북측 수로, 6·8공구 수로(서측), 남측 수로를 연결하는 워터프런트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당초 송도 워터프런트 사업은 이들 3개 수로에 송도 11공구 수로를 연결해 물이 순환할 수 있는 'ㅁ' 형태로 추진할 계획이었지만, 정부 합동감사 등에서 사업비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ㄷ' 형태로 '축소'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감사 지적사항을 반영해 11공구 수로 조성 비용을 사업비에 포함하면, 송도 워터프런트 사업의 B/C(비용대비 편익)값은 0.63으로 떨어진다.경제성이 확보됐다고 보는 기준인 '1' 미만이라 사업 추진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에 워터프런트 사업 대상에서 송도 11공구를 제외하고 'ㄷ' 형태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쪽으로 인천시 내부 의견이 모였다. 11공구를 제외할 경우 송도 워터프런트 사업의 B/C값은 '1.31'로, 경제성이 있다는 분석 결과가 있다.인천경제청은 'ㄷ' 형태 워터프런트 사업을 1단계(6·8공구 호수와 북측수로 연결), 2단계(남측수로 조성)로 나눠 추진한다는 계획이다.인천경제청은 이달부터 오는 10월까지 사업 타당성 조사와 투자 심사를 완료하고, 연말에는 실시설계에 착수할 것이라고 이날 밝혔다. 내년 상반기에는 기본·실시설계를 진행하고, 하반기부터 1단계 공사를 시작한다는 것이다.하지만 'ㅁ'이 아닌 'ㄷ' 형태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을 놓고 반대 의견이 계속 나오고 있다.인천시의회 정창일 의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인천경제청은 고시 등을 통해 모두 'ㅁ' 형태로 워터프런트 사업을 하겠다고 해놓고 'ㄷ'자로 변경하는 것은 워터프런트 계획을 보고 입주한 송도 주민 11만 명과 앞으로 입주할 송도 주민을 우롱하는 행정"이라고 지적했다. 또 "앞으로 (검토를 거쳐) 시의회에서 특위 구성을 통해 이 문제를 따질 계획도 있다"고 했다.송도 워터프런트 사업의 애초 취지 자체가 '수순환시스템 구축'이었기 때문에, 물이 제대로 순환하지 못하는 'ㄷ' 형태 수로 조성은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약 6천여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해 'ㄷ' 형태 수로를 조성하는 것은 예산 낭비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홍현기기자 hhk@kyeongin.com17일 인천 송도 G타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민경욱 국회의원 주최 긴급 정책토론회 '송도 워터프런트,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홍현기기자 hhk@kyeongin.com송도 워터프런트 사업 관련 조감도.기존 송도 11공구 수로를 포함한 'ㅁ' 형태 송도 워터프런트. 앞으로 'ㄷ' 형태로 사업이 추진되면 초록색의 송도 11공구 수로가 워터프런트 사업 대상에서 제외된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

2017-03-19 홍현기

[실향민이야기 꿈엔들 잊힐리야·10]황해도 연백 출신 고구한 할아버지 (中)

원주민에 밀린 피란민 1960년대 황량한 소래포구 정착 '실향민촌'이라 봐도 무방시흥 등 곡창지대서 나룻배 대신 철길위 자전거로 품질 좋은 쌀 실어다가 되팔아외상으로 가져가는 탓에 큰 돈 못벌어 "밀린 외상값은 받고 떠난다" 오기로 버텨고구한(81) 할아버지가 노렴나루라 불리던 지금의 소래포구에 정착한 1960년대 중반 이 일대에는 10여 명이 사는 판잣집이 전부였다. 그야말로 사람의 인적이라고는 찾기 어려운 한적하기 그지없는 갯가일 뿐이었다. 그런 소래포구가 매년 수백만 명이 찾는 수도권 최대 관광지 중 한 곳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고구한 할아버지와 같은 실향민이 있었다. 실향민들이 노렴나루에 자리를 잡고 어업을 시작하면서 시끌벅적한 소래포구는 태동했다. 인천시립박물관에서 펴낸 '인천연안의 어업과 염업'이란 책에는 "1963년 당시 실향민 6가구 17명이 전마선, 범선(무동력선) 등으로 연안에서 새우잡이를 시작했다"고 당시 노렴나루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시흥시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시흥시사'도 "소래어촌은 이북에서 내려온 월남민들의 해안정착촌으로 번창하기 시작했다"고 기술했다. 소래포구는 '실향민촌'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실향민과 깊은 관련이 있다. 지금도 소래포구 어시장에서는 '황해도 옹진상회', '연백상회', '개성상회' 등의 간판을 볼 수 있다.인천 중구, 동구 등지의 해안가에 터를 잡았던 피란민들은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곳의 원주민에 밀려 황량한 소래포구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다. 실향민의 아픔을 소설로 풀어낸 이원규의 단편 '포구의 황혼'(1987년)의 배경도 소래포구다. 이원규는 소설을 쓸 당시 소래포구의 70~80%가 실향민이었다고 했다. 작가 이원규는 경인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마도 화수부두, 만석부두 등 기존의 포구가 포화상태가 되면서 포구가 좁아지고 충돌 우려가 있으니까 월남하신 분들이 본토박이를 피해 나오게 된 것"이라고 했다.고구한 할아버지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심정으로 소래포구에 왔다. 지금의 소래포구 성당 인근에 가게를 냈다. 교통환경이 열악한 소래포구에서 쌀장사를 하면 경쟁자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곡창지대가 있는 군자 등 시흥 서북부지역에서 소래 등 인천으로 오려면 월곶과 노렴(소래포구 일대 옛 지명)을 잇는 노렴나루에서 나룻배를 타야 했다. 나룻배에는 많은 짐을 싣지 못했고 운반 시간도 오래 걸렸다. 인하대박물관에서 펴낸 '인천장도포대지'에 수록된 '노렴마을과 소래포구의 민속생활문화'에 따르면, 군자면 사람들이 곡물 등을 짊어지고 노렴나루를 통해 인천 시내로 나가 다른 물자를 바꿔 오곤 했다. 인천 쪽 사람들이 노렴나루를 건너 시흥 방면으로 가는 일은 드물었다."소래포구라고 아무것도 없었어. 전부가 무허가 판잣집이었어. 배도 그렇게 많지 않았고, 고기를 잡아도 팔 데가 없어서 서로 사가라고 내놓고 했지. 지금 있는 어시장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어. 시흥 쪽으로 가려면 배를 타야 했는데 위험해서 짐을 싣기가 어려웠지."고구한 할아버지와 같은 피란민들이 정착하고 번창하기 시작하면서는 갯골 건너 큰 포구인 경기도 시흥 포리(현 포동게이트볼장 자리) 쪽이 쇠락했다. 포리는 현 시흥시 수암산에서 시작되는 보통천과 뱀내가 합쳐져 흐르는 물줄기 끝자락의 포구다.일제강점기 수인선 소래철교 건설로 선박 통행이 불편해진 점도 포리 포구 쇠퇴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소설가 이원규는 "소래가 일어나면서 시흥 포동(포리) 포구에 있던 사람들도 따라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시흥시사'에서도 '배를 타고 인천이나 시흥으로 월남한 정착민들이 소래포구를 부흥시켜 나갔다'고 해 이를 뒷받침한다.고구한 할아버지는 소래포구의 열악한 환경을 오히려 기회로 삼았다. 수인선 협궤열차마저 위태롭게 건너다니는 소래철교(소래포구~시흥) 철로에 자전거 두 바퀴를 올려 놓고 쌀을 실어 날랐다. 달월, 장곶, 거머리, 매화리 등 시흥 일대 정미소에서 쌀을 사 소래포구에서 되팔았다. 소래철교는 높이가 10m에 달하고, 다리 밑으로는 물살이 거세 담이 크지 않으면 맨몸으로도 건너기 어려웠다. 그런 철교를 이용해 할아버지는 자전거에 쌀 두 가마를 실어 날랐다. 철교 통행 자체가 금지된 때였고,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었다. '노렴마을과 소래포구의 민속생활문화'에 따르면 6·25전쟁 중에는 주민들이 소래철교 위에 널판을 깔아 사람들이 밑으로 떨어질 걱정 없이 철교를 건너다닐 수 있게 했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는 철교 통행을 금지했고 널판도 철거했다.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자전거를 끌고 외줄 타기를 하듯이 철길을 건넜다."그때는 다리에 초소가 있는데 경찰 2명이 나와서 위험하다고 철길로 다니지 못하게 했어. 나는 파출소랑 쌀 거래도 하고 자주 건너다니고 해서 막지를 않았어. 철길을 웬만한 사람은 어지러워서 못 건너. 나는 딴 길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철길 위에 바퀴를 올려놓고 건너오는 거지. 남들은 기운 좋고 재주 좋다고 그러지만 나는 그냥 간이 콩알만 한 거지. 그래도 한두 번 건너다보니까 계속 건넌 거야. 나는 짐을 실어도 빨리 건넜다고. 저기 소래 역전에 기차가 와서 '뿍뿍'해도 그동안에 건널 수 있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거기를 내가 어떻게 건넜나 싶어."소래철교를 건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얼마나 아찔한 일었던지 윤후명은 장편 '협궤열차'에서 소래철교를 건너다 한 해에 한두 명은 목숨을 잃었다 했다.'소래에서 남쪽으로의 유일한 통로인 이 협궤철도의 철교는 그토록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통로가 될 수 있다는 데는 틀림이 없다. 그래서 한 해에 어김없이 한둘은 이승의 집보다도 저승의 집을 택할 수 있었다. 드높이 걸려 있는 철교는 물론 단선인 데다 폭이 좁아서 웬만큼 담찬 사람이라도 오줌을 질금거리며 건너가야 한다. 협궤철도의 철교만큼 가냘픈 다리는 시골 시냇가에 걸쳐놓은 나무 징검다리를 제외하고는 없다. 그러나 시골의 나무 징검다리에서 미끄러지면 발을 깨끗하게 하는 이점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협궤철도의 철교에서 미끄러지면 전혀 다른 결과를 빚는다.'이렇게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건너 어렵사리 고구한 할아버지가 가져온 쌀은 인기가 좋았다. 품질이 좋은 쌀을 가져와 신문에 나온 곡물 시세를 기준으로 저렴하게 팔았다. 할아버지 가게는 '소래 쌀집'으로 통하며 인천의 반대편 동구 송림동까지 쌀을 공급하기도 했다. 인천 시내 부자들이 돈을 더 주고라도 사겠다고 소래 쌀집을 찾았다.하지만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다. 외상으로 쌀을 가져가고는 갚지 않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1만원어치 쌀을 준 뒤 매일 돈을 받는 '만원일수'를 하기도 했는데 그것도 밀렸다. 어민들이 물고기를 잡아도 소래포구를 찾는 사람이 없어 팔 길이 막막하던 때였다. 70년대 중반 소래포구가 '새우 파시(波市)'로 자리 잡고, 80년대 소래포구 어시장이 북적거려도 외상값은 줄지가 않았다. "돈을 벌어도 저금해서 이자를 받으려고 했어. 외상하면 이자가 없는데 저금하면 이자를 받는다는 생각이었던 거지."고구한 할아버지는 돈을 갚지 않는 소래포구 사람들이 싫어져서 다른 곳으로 떠날까 하다가도 '밀린 외상값은 받고 간다'는 오기로 버티다 보니 세월이 갔다고 했다."90년대에 들어오면서 슈퍼마켓이나 마트에서도 포대로 쌀을 팔기 시작해 쌀장사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쌀집을 그만뒀지. 소래포구에 와 1~2년 해보자고 시작한 쌀장사가 30년이 됐어. 외상도 안 갚고 사람들도 정이 안 간다고 다른 데로 떠야겠다고 했던 것이 지금까지 살고 있어. 인천 쌀장사, 부천 쌀장사, 서울 쌀장사, 안양 쌀장사 전부 다 트럭을 가지고 돈도 수없이 들이면서 장사를 했는데, 나는 달랑 자전거 하나로 하면서도 인심을 안 잃었기 때문에 언제나 사람들이 우리 가게를 찾았지."글/홍현기기자 hhk@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고구한 할아버지가 쌀 두 가마를 실은 자전거를 끌고 소래철교를 건넜을 당시의 모습을 그래픽으로 표현했다. 현 소래철교 위에서 자전거를 끄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촬영한 뒤 배경으로 옛 소래철교를 그려 넣었다.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1990년대 초 소래포구의 모습. /경인일보 DB소래포구 어시장에 있는 가게 간판에서도 실향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2017-03-16 홍현기

[zoom in 송도]송도국제도시 브리핑

■인천시·日 아마다사, '테크니컬센터' 건립 맞손판금가공 분야 세계 1위 기업인 일본 아마다(AMADA)사가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자사의 기계·소프트웨어 교육 등의 기능을 갖춘 '금속가공기계 테크니컬센터'를 건립한다. 인천시는 지난 10일 아마다사와 이 같은 내용의 투자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아마다사는 송도 지식정보산업단지 6천200㎡ 규모 부지에 200억 원을 투입해 내년 7월까지 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다.아마다사는 센터에서 자체 개발한 기계, 소프트웨어에 대해 교육을 진행한다. 각종 기계, 장치, 시스템, 금형 등과 관련한 노하우도 전달한다. 장기적으로 '아마다스쿨'을 설립해 금속가공기계 전문 인력을 양성한다는 계획도 있다.■송도컨벤시아에 야간 경관시설… 내년 5월 준공인천 송도컨벤시아에 야간 경관시설이 설치된다.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최근 '송도컨벤시아 야간 경관시설 구축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 착수 보고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번 경관시설 구축 기본·실시설계 과업지시서에는 송도컨벤시아 전시장, 다목적 광장 등에 야간 조명과 미디어파사드를 구축한다는 계획이 담겼다. 야간 경관 설계는 파도의 형상을 기본 콘셉트로,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이미지를 형상화했다.송도컨벤시아 야간 경관 시설 구축에는 총 사업비 18억5천만 원이 투입된다. 오는 8월께 착공하고, 2018년 5월 준공할 예정이다. /홍현기기자 hhk@kyeongin.com유정복 인천시장(사진 오른쪽)이 지난 10일 일본 이세하라에 위치한 아마다사를 방문해 오카모토 미츠오 회장(사진 왼쪽)과 투자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인천시 제공송도컨벤시아 야간 경관시설 조감도.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

2017-03-12 홍현기

[zoom in 송도]녹색기후기금 사무국 확장·조직 개편

온실가스 감축·기후 변화 취약지역 지원 국제기구G타워 추가공사, 내달까지 사무실 8개층으로 늘려올해말까지 사무국 정규직 66명서 140명까지 증원다음달 4~6일 송도 이사회… 추가사업등 결정키로인천 송도국제도시 G타워에 둥지를 튼 GCF(녹색기후기금) 사무국이 확장하고 있다.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다음 달까지 GCF 사무국 추가 사무 공간 조성공사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12일 밝혔다. GCF 사무국은 현재 G타워 9~13층, 15층 등 6개 층을 사용하는데, 이번 추가 조성공사에 따라 14·17층까지 모두 8개 층을 쓰게 된다. GCF 사무국은 G타워 입주 초기인 2013년 말 9~12층 등 4개 층을 쓰다가 지난해 1월부터 13, 15층도 사용해왔다.GCF 사무국의 사무 공간 추가 조성은 근무 인력 확대에 따른 것이다. 현재 GCF 사무국의 전체 근무 인력은 149명이고, 이 중 송도에서 104명이 근무한다. GCF 사무국의 정규직 근무 인력은 66명인데, 올해 말까지 정규직 인력이 140명으로 증원된다. GCF 사무국은 장기적으로 G타워 9~24층을 모두 사용하게 된다.GCF 사무국은 현재 ▲국가 프로그래밍(Director of Country Programming) ▲감축과 적응(Director of Mitigation & Adaptation) ▲민간부문기구(Director of Private Sector Facility) ▲행·재정 지원(Chief Financial Officer & Director of Support Service) 등 4개 국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와 별도로 비서실(Secretary to the Board), 법무실(General Counsel), 리스크 관리실(Risk Manage) 등 3개 실이 있다.인천시 관계자는 "GCF 사무국에서 '앞으로 추가 인력 증가가 있을 것'이라며 사무 공간 확장을 요청해 공사를 진행 중"이라면서 "앞으로 사무국 규모는 계속해 늘어나게 된다"고 말했다.GCF는 세계 194개 정부에 의해 설립된 국제기구다. 세계 각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거나 제한하고, 기후변화에 취약한 지역을 지원한다는 것이 설립 취지다. 한국정부와 인천시는 지난 2012년 10월 GCF 사무국 송도 유치를 확정했다.GCF는 이 같은 설립 취지를 이행하기 위해 세계 43개국 정부에서 기금을 받아 미화 103억 달러에 달하는 초기 재원을 조성한 단계다. GCF는 이 재원을 이용해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는 온실가스 감축 등 총 35개 사업에 14억9천만 달러 규모의 지원을 시작했다. GCF는 다음 달 4~6일 인천 송도에서 제16차 이사회를 열고, 추가 사업 등을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GCF 사무국은 호주 출신으로 유엔 기후변화대응 장기협력 대화채널(Dialogue on Long-term Cooperative Action on Climate Change by Enhancing Implementation of the Convention) 공동의장을 지낸 하워드 뱀지(Howard Bamsey) 사무총장이 이끌고 있다. 뱀지 사무총장은 지난해 10월 열린 GCF 14차 이사회에서 2대 GCF 사무총장으로 선임됐다. /홍현기기자 hhk@kyeongin.comGCF(녹색기후기금) 사무국이 입주해 있는 인천 송도국제도시 G타워. GCF 사무국은 현재 G타워 9~13층, 15층 등 6개 층을 사용하는데, 이번 추가 조성공사에 따라 14·17층까지 모두 8개 층을 쓰게 된다. GCF 사무국은 G타워 입주 초기인 2013년 말 9~12층 등 4개 층을 쓰다가 지난해 1월부터 13, 15층도 사용해왔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하워드 뱀지 사무총장

2017-03-12 홍현기

[실향민이야기 꿈엔들 잊힐리야·9]황해도 연백 출신 고구한 할아버지 (上)

7남매 중 장남 1·4후퇴때 교동으로 '피란'배 타고 고향땅 오가며 숨겨놓은 쌀 옮겨기관 통제 속 일부는 염전 소금 나르기도지뢰밭·인민군 총격 속에도 목숨 건 사투집도 준다는 정부 정책에 강화 본도 이주실상은 교동 인구 분산위한 당국 거짓말제대로 못 먹은 누이동생은 병으로 잃어소래포구서 쌀 장사… '쌀과의 질긴 인연'황해도 연백 출신 고구한(81) 할아버지는 인천 소래포구에서 30년 가까이 쌀장사를 했다. 경기도 시흥시 일대 정미소를 돌며 구한 쌀을 자전거로 소래포구에 가져와 팔았다. 자전거에 쌀 두 말을 싣고 그야말로 '산 넘고 바다 건너' 하루 100리(里) 이상을 다녔다. '남들이 잘 때 자고, 놀 때 놀면 안 된다'는 생활신조로 일했다. 할아버지는 산수(傘壽)를 넘긴 지금도 바쁘게 산다.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면서 소래포구 어시장 경비 일도 하고 있다. 소래경로당 회장, 고향 동네 향우회 '봉화회' 회장도 맡고 있다.고구한 할아버지는 7남매의 장남이었다. 1951년 1·4후퇴 때 남동생과 함께 강화 교동으로 피란을 나왔다. 젊은 남자는 인민군에 징집될 수 있다고 해 남자 형제들부터 먼저 고향을 떠났다. 부모님과 누나, 동생은 다시 연백이 수복될 것으로 보고 고향 땅에 남았다가 상황이 호전되지 않자 몇 개월 뒤 교동으로 건너왔다.피란 때 가장 귀한 재산은 쌀이었다. 할아버지는 쌀 3말을 짊어지고 교동으로 넘어 왔다. 피란살이가 길어지면서 먹을 것이 떨어지자 고향 땅 집안 곳곳에 숨겨놓은 쌀이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공산치하였다. 목숨을 이어줄 그 쌀을 가져 오기 위해서는 실제 목숨을 걸어야 했다. 고구한 할아버지의 조모는 논에 있는 짚가리와 집안 곳곳에 쌀을 숨겨 놓았다. 조모는 피란을 나갔다가 잠시 후면 다시 고향 땅에 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쌀을 감췄다. 그러나 전쟁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강화군협의회가 2008년 4월 펴낸 실향민 증언록 '격강천리라더니'에도 연백 출신 피란민이 전쟁 와중에 공산 치하에 들어간 고향 땅을 오간 사례가 나온다. 1·4후퇴 당시 20세였을 황해도 연백군 원전면 출신 조순희 할머니는 "삶에 있어서 배고픔은 마지막이지요. 그때마다 다시 뗏목 타고 가서 쌀도 가지고 왔었지요. 목숨 건 일이었어요"라고 증언했다. 당시 숨겨 놓은 쌀이 없는 피란민은 연백염전에 쌓여 있는 소금을 가져왔다. 온종일 배에 소금을 실어 나르면 '기관'이라는 곳에서 나와 쌀 5되 정도를 살 수 있는 돈을 줬다. 목숨 값 치고는 너무나 가벼웠다.피란을 나온 사람이 전선(戰線)을 뚫고 다시 고향 땅을 오가는 길은 위험천만이었다. 인민군이 습격하기도 했고, 나루 곳곳은 지뢰지대였다. 처음에는 고구한 할아버지의 부친이 혼자 쌀을 가지러 떠났다. 다른 가족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는 것을 원치 않아 당신이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연백으로 떠난 부친은 한동안 교동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교동으로 배가 들어올 때마다 고구한 할아버지가 나루로 나갔는데, 부친은 배에 없었다. 부친과 비슷한 때에 넘어 간 사람들이 지뢰를 밟아 몰살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배를 탔다. 아버지도 찾고 쌀도 가져오기 위해서였다. 기적이 일어났다. 고향 집 근처에서 성치 않은 몸으로 숨어 지내던 부친을 찾았다. 아버지는 쌀을 가지러 가다 발을 헛디뎌 다리를 다쳤고, 교동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이 그저 숨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는 부친이 가져오려고 했던 쌀 한 말과 함께 교동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도 가족들의 목숨 연장을 위해 쌀을 가지러 수차례 고향 땅을 다시 밟았다. 그때마다 공산군의 감시가 삼엄해 할아버지는 이승과 저승을 오가야 했다."교동에 있으면 먹고살 게 없어. 정부 기관인지 모르겠는데, 그때는 곡식을 가져오라며 북쪽으로 출항 허가를 해주는 기관이 있었어. 쌀이든 소금이든 가져오라고 했어. 쌀을 가지러 가다 지뢰가 터져 죽는 사람이 많았어. 그러면 중도에서 멈추고 돌아왔다가 또 다시 가는 거지. 배가 인민군의 습격을 받기도 했어. 습격할 때는 공식 같은 게 있었어. '딱꿍총'이라고 당겨서 쏘면 '딱꿍' 하는 소리가 나는 총을 쏘고 나서 둥그런 따발총을 '뚜루루' 쏘는 거지. 2번은 죽을 뻔했어."이때 할아버지의 나이는 지금의 중학교 3학년에 해당하는 16세였다. 지금 같으면 부모에게 반찬 투정을 할 나이에 목숨을 내놓고 바다를 건넌 것이다. 쌀을 가지러 가지 않으면 교동에 남아 굶어 죽으니 어쩔 수 없었다. 고은 시인이 역사 인물 5천600명을 담은 연작시 '만인보'에서 표현한 것처럼 피란민의 배고픔은 죽음보다도 무서웠다.배고픔이 극에 달하면 사람도 괴물로 변할 수 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전쟁과 배고픔이 겹치고는 하는데 그때는 상상 이상이다. 1845년부터 5년에 걸쳐 되풀이된 감자역병으로 발생한 '아일랜드 대기근'을 다룬 '검은 감자'라는 책에 따르면, 배고픈 사람들은 콜레라에 걸려 죽은 돼지도 먹었다. 사람이 길섶에 쓰러져 죽거나 관도 없이 그냥 땅에 묻히면 걸신들린 개가 그 시체를 뜯어먹었다. 그런 개는 다시 굶주린 사람에게 잡아먹히면서 전염병이 퍼져나가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기도 한다. 300만 명이 굶어 죽었다는 중국 허난의 대기근을 다룬 '1942 대기근'이라는 책에는 친딸까지 잡아먹은 부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허난에서는 남편에게 잡아먹힐 것이 무서워 어두운 밤을 틈타 도망가다가 길에서 굶어 죽은 아내의 사례도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 임진왜란 때도 배고픔에 시달리다 인육을 먹었다는 얘기가 1594년 당시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다. '어떤 사람들은 산 사람을 도살하여 내장과 골수까지 먹는다고 합니다'('선조실록' 27년 1월 27일자). '죽은 사람의 살점만 먹을 뿐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도 서로 잡아먹는데 포도군이 적어서 제대로 금지하지를 못합니다'('선조실록' 27년 3월 20일자).이토록 처참한 아비규환의 전쟁 통 배고픔을 벗어나기 위해 어린 나이의 고구한 할아버지는 도망 나온 그 고향 땅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인민군의 기관총 세례와 지뢰밭을 피해가며 어렵사리 가져온 쌀로 가족들은 하루 1끼를 먹었다. 밥은 돌을 올려놓은 냄비에다 끓였다. 밥이 잘 되는 날도 있었지만 죽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온종일 고향 땅을 쳐다보는 게 일이었다.전쟁이 더 길어지자 할아버지 일가족은 당국의 얘기를 듣고 강화 본도로 옮겼다. 거기서는 쌀이 떨어져 밀가루를 만들고 남은 말분(末粉)을 먹었고, 보릿겨, 쌀겨로 버텨냈다. 교동에 있을 때 정부 쪽 인사가 나와 강화 본도로 이주하면 배급도 하고, 집도 준다며 이주 신청을 하라고 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당시 연백 출신 피란민이 교동에 몰리자 인구를 분산하기 위해 이 같은 이주정책을 편 것으로 보인다. 2003년 발간된 '신편 강화사'는 한국전쟁 때 강화로 온 피란민 수가 3만 명에 달한다고 했다.고구한 할아버지의 부친은 어선을 타는 등 닥치는 대로 일했지만 그 일터에서는 일한 사람 혼자만 먹을 수 있는 밥을 줬다. 이때 제대로 먹지 못한 탓인지 할아버지의 누이동생은 이름 모를 병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 할아버지는 강화 석모도에서 3년 동안 염전을 개간하는 막노동을 하면서 끼니를 때웠다.할아버지의 인생에서는 쌀이 중요 포인트로 남아 있다. 어려서는 쌀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 밥을 얻기 위해 막노동을 했으며 그리고 1960년대 이후에는 소래포구에 자리를 잡고서 쌀 장사를 했다. 그때도 갯골 수로 몇 길 낭떠러지 높이 위에 아스라이 가로 놓인 철교 위를 목숨을 내놓고 쌀을 실어 날랐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살아온 날이 그저 까마득할 뿐이다.할아버지는 1958년 중매를 통해 황해도 평산 출신인 아내를 만났고, 나이 스물 되던 1960년 결혼을 했다. 그 이듬해인 1961년 군대에 갔고, 3년 동안 복무했다. 실제로는 1936년생인 할아버지는 1939년으로 주민등록이 돼 있어 군대에 늦게 갔다고 했다. 남동생 둘과 함께 삼 형제가 군에 동시에 입대했다. 소래포구에 온 것은 1964년도다. 이때 지금은 수협 지점장을 하는 큰딸이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있다.글/홍현기기자 hhk@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고구한 할아버지 등 피란민이 황해도 연백에서 배를 타고 강화 교동으로 쌀을 옮기면서 위와 같은 경로를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인천 남동구 논현동에 있는 소래경로당에서 만난 고구한 할아버지가 피란 당시 기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2017-03-08 홍현기

[zoom in 송도]송도국제도시 브리핑

■한국조지메이슨대, 2017학년도 신입생 입학식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인천글로벌캠퍼스에 입주한 한국조지메이슨대학교가 지난 3일 오전 캠퍼스 겐트 빌딩에서 2017학년도 신입생 입학식을 개최했다. 이번 입학식에는 신입생 102명과 학부모, 스티븐 리 한국조지메이슨대 총장, 방종설 인천글로벌캠퍼스 운영재단대표,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 등이 참석했다.스티븐 리 총장은 축사를 통해 "한국조지메이슨대학교는 국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외국 대학"이라며 "곧 사회에 중요한 첫걸음을 내디딜 신입생들에게 최고의 전문가와 프로그램을 제공해 학생들이 스스로의 길을 개척할 수 있는 자신감과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송도 진입교량 경관 조명 친환경 LED 교체공사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관문 역할을 하는 교량 송도국제교(송도1교), 컨벤시아교(송도2교), 아트센터교(송도3교) 등에 설치된 경관조명을 친환경 LED로 교체한다고 최근 밝혔다.이번 경관조명 교체공사에는 총 2억5천만원이 투입된다. 기존에 있던 조명시설이 노후화되고 고장이 빈번했던 점을 고려해 이번에는 조명기구를 에너지 효율이 높은 친환경 LED로 교체하게 됐다.인천경제청 관계자는 "송도 진입 교량을 아름다운 경관조명으로 개선해 시민들은 물론 송도국제도시를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에게도 볼거리를 제공하겠다"며 "아름답고 깨끗한 도시 이미지를 각인시켜 송도국제도시가 오랫동안 기억되는 도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홍현기기자 hhk@kyeongin.com한국조지메이슨대학교의 2017학년도 봄학기 신입생 입학식이 지난 3일 오전 9시 30분 인천글로벌캠퍼스 겐트빌딩에서 개최됐다. /한국조지메이슨대 제공야간 경관 교체 후 송도국제교의 예상 모습.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

2017-03-05 홍현기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