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인천)

['대한민국 나들목' 인천공항 이야기·(11)]활주로

이·착륙 '마의 11분' 안전 핵심항공기 하중 지탱 포장두께 1m 넘어표면은 매끄럽되…또 미끄러우면 안돼눈·비 등 악천후에도 마찰계수 0.4 이상 유지작은 노면 이물질도 사고 가능성차량 운행자들 'FOD' 의무 수거해야음파·엽총 활용 '버드 스트라이크' 예방백령도 '사곶해변' 세계적 희귀 천연 활주로활주로(滑走路)는 비행기에 있어서 어머니의 품과 같은 존재다. 비행기가 그 품을 떠나는 순간이 운항과정에서 가장 위험하다. 그 품에 살포시 안겼을 때 승객들은 드디어 안도하게 된다. 활주로를 뜨고 내리는 게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활주로는 한자 말 그대로 미끄러져 달리는 길을 말한다. 좋은 이륙과 훌륭한 착륙은 이 미끄러짐에 있다. 미끄러지듯 날아오르고, 미끄러지듯 내려앉아야 한다. 비행장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을 꼽으라면 단연 활주로다.활주로는 이 세상 어떤 도로보다도 단단하다. 500t이 넘는 항공기가 시속 200㎞ 안팎의 속도로 지상으로 내려올 때 받는 하중을 견뎌야 한다. 이 때문에 일반도로의 두께는 15~30㎝이지만 활주로는 몇 배 더 두껍다. 인천공항 활주로의 포장두께는 105㎝에 이른다. 하중을 견디는 것 외에도 안전을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우선 활주로 표면이 매끄러워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미끄러워도 안 된다. 매끄러우면서도 미끄러우면 안 된다니, 참으로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공항 운영기관들은 항공기의 이·착륙에 적합한 마찰력이 유지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신경을 쓴다. 인천공항은 지난달 모두 7차례에 걸쳐 마찰력 정기측정을 진행했다. 전문적인 용어를 쓰자면, 마찰력은 0~1μ(마찰계수)로 표현되며, 1에 가까울수록 마찰력이 커 제동하기에 좋고 0에 가까울수록 미끄러워 제동거리가 길어진다. 인천공항의 이번 측정에서는 평균 0.78μ를 기록했다. 지극히 정상 수준이다. 마찰력이 0.6 이하로 떨어지면 유지보수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또 비가 오거나 눈이 왔을 때에도 마찰력을 측정하는 데 0.4 이상을 유지하도록 한다. 0.26 이하가 되면 항공기 이·착륙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활주로에는 항공기 이·착륙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물건이 있어서는 안 된다. FOD(Foreign Object Debris)는 활주로 있는, 제거해야 하는 모든 것을 일컫는다. FOD를 제거하는 것은 공항 안전에 중요한 요소다. 인천국제공항에는 3개의 활주로가 있다. 제1·2활주로의 길이는 3천750m, 제3활주로는 4천m다. 항공기는 이·착륙할 시기가 가장 중요하면서도 위험한 때다. 이륙할 때 3분, 착륙할 때 8분을 '마의 11분(critical eleven minutes)'이라고 부르기도 한다.항공기가 활주로에서 주행하는 거리는 이륙할 때가 더 길고, 활주로가 받는 하중은 착륙할 때가 더 크다. 항공기는 뜨기 위해 양력을 받아야 하는 데 충분한 속도가 필요하고, 착륙할 때는 속도를 줄인다. 대형 항공기인 A380은 이륙할 때 3천m, 착륙할 때 2천100m가 필요하다. 활주로는 이륙할 때 필요한 길이와 착륙할 때 받는 하중을 모두 만족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항공기가 이륙하기 전이나 착륙한 뒤에 이동하는 도로를 유도로(taxiway)라고 한다.인천공항에서도 활주로나 유도로 FOD 제거작업이 수시로 이뤄진다. 활주로 외에도 계류장 등 항공기와 가까운 곳에서 운행하는 차량과 장비가 1만여대에 이른다. 차량에서 떨어진 나사나 볼트, 장비 등이 바닥에 있으면 항공기가 이동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한 아무리 작은 것들이라고 해도 항공기가 이·착륙할 때 바퀴와 부딪쳐 튕겨 나가게 되면 주변의 장비나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인천공항 계류장 등을 오갈 수 있도록 허가받은 차량의 운전자는 FOD를 발견하면 의무적으로 수거해야 한다.인천공항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FOD는 무엇일까. '타이어 찌꺼기'라고 한다. 항공기가 착륙할 때 타이어 바퀴가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생긴 마찰열로 인해 타이어 일부가 녹아 활주로에 달라붙는 것을 타이어 찌꺼기라고 한다. 인천공항공사는 고압의 물을 뿌리는 방식으로 바닥에 붙은 타이어 찌꺼기를 정기적으로 제거한다. 인천공항공사 유덕기 운항안전팀장은 "지금은 고무제거를 위해서 첨단장비를 활용하지만 오래전에는 활주로를 관리하는 직원들이 일일이 손으로 활주로에 달라붙은 고무를 제거하기도 했다"고 이야기했다. 인천공항은 다행히 FOD로 인한 항공기 사고는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다.인천공항을 운영하는 인천공항공사는 항공기 안전을 위해 FOD 수거 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한다. 이·착륙시설에 대한 점검을 하루 4차례 진행하고, 계류장 등을 순찰하며 과속을 하거나, 장비 사용 후 이를 방치하는 등의 규정 위반자를 적발해 낸다. 유덕기 팀장은 "활주로와 유도로, 계류장 등 접근이 제한된 공간인 '에어사이드'에서 공항 운영기관은 안전관리부터 사건·사고 등에 대한 조사까지 진행한다"며 "공항 안전을 총괄하고 있기 때문에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일한다"고 했다. 항공기 운항에 영향을 주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요소는 '새'다. 사람이나 육상동물은 지상에서 통제가 가능하지만, 하늘을 나는 새는 막기가 쉽지 않다. 공항에 새들이 날아다니고, 그 새들이 항공기에 부딪히거나 엔진으로 빨려들어가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새로 인한 항공기 사고, 버드 스트라이크다. 이들 새가 각 공항 당국의 골칫덩이 중 하나다.인천공항도 연간 10건 안팎의 버드 스트라이크가 발생한다. 운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적도 한 차례 있는데, 2014년 3월 필리핀항공 여객기가 이륙 후 조류 충돌로 인해 엔진이 손상됐고, 다시 인천공항으로 회항해야 했다. 외국에서도 조류 충돌로 인한 항공기 운항 장애가 잇따르고 있다.인천공항공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조류를 퇴치하기 위해 힘쓴다. 조류들이 싫어하는 음파를 내보내는 '음파퇴치기'를 도입했고, 엽총으로 공항으로 들어오는 조류를 내보내기도 한다.활주로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세계 최초의 항공기는 윌버 라이트(Wilbur Wright·1867~1912)와 오빌 라이트(Orville Wright·1871~1948) 형제가 만들었다. '라이트 형제'는 1903년 12월 17일 조종이 가능한 비행기를 제작해 세계 최초로 동력 비행에 성공했다. 이때 항공기를 띄웠던 곳은 평평한 모래바닥이었다. 이곳이 최초의 활주로인 셈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활주로는 항공기가 나아가는 데 장애물이 없는 평평한 곳일 뿐이었다.하지만 모래바닥은 항공기를 이륙시키기에 좋은 조건이 아니다. 항공기의 무게를 못 이기고 모래에 바퀴가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빠르고, 더 무거운 항공기 개발이 이뤄지면서 뜨고 내리는 전용장소인 '공항'이 생겨났다. 그 공항에서 활주로는 핵심시설이 되었다. 1916년 건설된 여의도비행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항이다. 주로 군사용으로 사용됐으며, 활주로와 격납고로만 이뤄졌다. 이때 활주로 길이는 지금보다 훨씬 짧았다. 한국항공협회에 따르면 1930년대 각 비행장의 활주로는 500~750m였다. 대구비행장이 500m였고, 여의도에 있는 '경성비행장'이 750m로 가장 길었다. 활주로의 길이는 항공기의 크기·무게에 비례한다. 항공기가 무거울수록 이륙하기 위해서는 더 빠르게 긴 거리를 내달려야 하고, 착륙할 때도 제동할 때까지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하다. 일제강점기 운항했던 항공기는 탑승인원이 10명이 채 되지 않았고, 무게는 10t 안팎에 불과했다. 폭과 길이도 현재 여객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주로 포장된 도로에서 항공기가 뜨고 내리지만, 평평하고 단단한 모래바닥이 활주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인천 옹진군 백령도 사곶해변은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천연활주로다. 석영 성분의 모래가 두껍게 쌓여 이뤄진 사곶해변은 썰물 때가 되면 길이 2㎞, 폭 200m의 평평한 모래 바닥을 드러낸다. 길게 펼쳐진 이 해변은 한국전쟁 때 UN군이 활주로로 이용했다. '옹진군지'는 "콘크리트 바닥처럼 단단하여 자동차의 통행은 물론이고 천연비행장으로 쓰였다"고 기록하고 있다.한국전쟁 참전용사인 '바넷 월리스 로버트(Barnet Wallis Robert)'가 직접 찍어 옹진군에 제공한 사진은 사곶해변에 착륙한 항공기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2000년대 들어 이곳은 활주로로 쓰이진 않았다고 한다. 다만 헬기 이·착륙 장소로는 활용되기도 한다.전 세계 모든 공항에 활주로가 있고, 이 활주로에는 모두 이름이 있다. 활주로 이름은 활주로의 위치를 드러내기 위해서 지어지는 데 이름만으로도 그 기능을 알 수 있다. 공항 활주로 양 끝에 표시된 숫자와 알파벳이 활주로 이름이다. 이름을 짓는 기준은 방위각이다. 전체가 360도인 방위각 중 끝자리를 떼어낸 것이 활주로의 이름이다. 활주로 각도가 150도라면 15라고 표기되며, 그 정반대는 180도가 더해지기 때문에 33이 되는 식이다. 활주로 이름은 조종사에게 중요하다. 항공기 조종 방향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공항의 활주로 이름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다.글/정운기자 jw33@kyeongin.com인천공항 활주로 마찰력을 측정하는 모습. /인천공항공사 제공/인천공항공사 제공/인천공항공사 제공인천공항 활주로 전경. 인천공항은 모두 3개의 활주로가 있다. 1·2활주로의 길이는 3천750m, 3활주로는 4천m다. /인천공항공사 제공/인천공항공사 제공한국전쟁 참전군인인 '바넷 월리스 로버트(Barnet Wallis Robert)'가 1950년도에 촬영한 사곶해변에 항공기가 착륙해 있는 모습. 로버트 가족은 이 사진을 2003년에 옹진군에 기증했다. /옹진군 제공

2020-04-22 정운

['대한민국 나들목' 인천공항 이야기·(10)]인간, 하늘을 날다·(下)

첫 비행사 여성 권기옥·남성은 이윤호1922년 안창남 '금강호' 고국방문 비행일본서 우수한 성적 면허 '스타덤' 올라같은해 인천서 운행… 소감 수기로 남겨'한반도에서 처음으로 하늘을 난 이는 누구일까?'그리 간단히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한반도 상공의 첫 비행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었고, 우리나라 사람으로 처음 비행기를 조종한 인물과 처음으로 한반도 상공을 비행한 우리나라 조종사도 다르다. 한반도라는 '장소'에 방점을 두느냐, 한반도 사람이라는 '인물'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최초 비행'의 주인공은 달라진다.1903년 12월 17일 라이트 형제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동력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데 성공했다. 그 후 두달이 채 지나지 않은 1904년 2월 8일 인천 앞바다에서는 러일전쟁의 신호탄이 된 제물포해전이 발발했다. 비행기가 등장한 1900년대 초 한반도는 세계열강의 먹잇감이 돼 있었고, 곧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비행이라는 당대 최첨단 기술을 자력으로 도입할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었다. 그럼에도 '항공 여명기'라 불리는 20세기 초 한반도 상공에도 비행기는 떴다. 조선인에게는 쉽사리 비행이 허락되진 않았다. 그래서 일제에 협력하면서 당국의 허락을 얻어 비행하거나 일본을 벗어나 저항하기 위해 비행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이 때문에 해방 이후 여느 분야가 그랬듯 우리나라 항공산업과 공군은 항일·친일이 뒤섞여 있었다.여러 자료를 종합해 보면, 일본 최초의 민간인 비행사 나라하라 산지(奈良原三次·1877~1944)와 그의 제자가 처음으로 한반도 땅에서 비행기로 날았다. 나라하라 산지는 1913년 4월 3일부터 3일간 서울 용산연병장에서 시험비행했다. 그가 제작한 50마력짜리 '나라하라식' 비행기를 탔다. 당시 조선인 6만명이 몰렸다고 한다.1950년 4월 공군본부가 발간한 월간 '공군' 창간호를 보면, 1914년 일본군의 중국 칭다오 공격 때도 일본 비행기가 수차례 한반도를 오갔다. 1917년 9월에는 미국인 곡예비행사 아서 스미스(Arthur Roy Smith·1890~1926)가 조선을 찾아 서울, 평양 등지에서 곡예비행쇼를 선보였는데, 이 비행쇼에 매료된 여러 젊은 조선인이 훗날 우리나라의 초창기 비행사로 성장했다. 드디어 '처음으로' 한반도 상공을 난 조선인 비행사는 독립운동가 안창남(1901~1930)이다. 서울 출생인 안창남은 1919년 도일(渡日)해 도쿄 오구리비행학교에 입학했고, 졸업 이후 비행학교 교관으로 활동했다. 1921년 5월 일본 제국비행협회 첫 민간 비행사 시험에 응시한 안창남은 3등 비행사 시험에 합격해 일본의 민간 비행면허번호 '2번'을 달았다.이듬해 11월 안창남은 지금으로 따지면 '택배 빨리 보내기 대회'인 도쿄~오사카 간 현상우편비행대회에 참가해 악조건을 이겨내고 좋은 성적을 거두며 일본에서도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조선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동아일보 주최로 안창남의 '고국 방문 비행'이 성사됐다.1922년 12월 금의환향한 안창남은 같은 달 10일과 13일 여의도비행장에서 '금강호'를 이끌고 역사적인 고국 방문 비행행사를 열었다. 사이토 마코토(齋藤實·1858~1936) 조선 총독도 행사에 참석했다. 금강호는 당시 보통 비행기의 반밖에 되지 않는 작은 비행기였다고 하는데, 부품을 해체한 뒤 도쿄에서 인천항을 통해 배로 싣고 들여와 다시 조립했다. 한겨레 길윤형 기자가 2019년 쓴 '안창남 서른 해의 불꽃같은 삶'을 보면, 안창남은 5만 군중이 운집한 여의도비행장에서 1천m 고도에 도달해 서울 시내를 돈 뒤 '거꾸로 내리박히다 다시 두어 번 가로 재주넘는 묘기' 등 특수비행을 선보였다.여의도 비행이 끝난 13일 안창남의 다음 행선지는 인천이었다. 안창남은 처음으로 인천 상공을 비행한 조선인이 되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당시 인천은 어땠을까. 안창남은 1923년 1월 1일 발간된 잡지 '개벽' 제31호에 기고한 수기 '공중에서 본 경성과 인천'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인천에서는 200m의 저공비행을 하였으므로 시가 길거리에 모여 서서 쳐다보고 손뼉을 치는 모양까지 자세히 보였습니다. 그리고 비행기가 온 것을 알고 공설운동장에 이르는 세 갈래 신작로로 달음박질하면서 모여드는 것까지 보여서 나는 그것을 보고 반갑고 기꺼운 미소를 금치 못하였습니다.'옛 인천기상대를 지나 인천공설운동장 상공을 지난 안창남은 분명 인천 앞바다에 떠있는 영종도와 주변 섬들을 보았을 터다. 그 섬들이 훗날 인천국제공항으로 '상전벽해'가 될 줄을 안창남은 상상이나 했을까. 일제가 가장 일본다운 도시로 만들고 싶어했던 인천이 안창남의 서울 다음 행선지로 낙점된 것은 선전 효과를 고려하면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1923년 9월 도쿄에서 관동대지진 직후 학살될 뻔한 안창남은 이듬해 중국으로 넘어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는데 1930년 4월 산시성 타이위안에서 비행기 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안창남이 조선인 최초의 비행사는 아니었다. 항공역사를 연구하는 이윤식 작가가 2012년 펴낸 '항공독립운동과 임도현 비행사'를 보면, 재미교포 이윤호(Lee George)가 1918년 3월께 미 육군항공대에 입대해 비행훈련을 받고 있다는 신한민보 기사가 있고, 1919년 1월 2일자 신한민보는 이윤호가 조종사로 제1차 세계대전 중 유럽 전선에 참전했다고 보도했다. 1920년대 조선인 비행사 중에는 일본에서 비행학교를 나온 장덕창(1903∼1972)과 신용욱(1901∼1961), 중국에서 훈련받은 군 비행사 서왈보(1886~1928), 중화민국 공군 장교로 활동한 최용덕(1898~1969) 등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는 독립운동가 권기옥(1901~1988)이다.항일운동 최용덕 등 7인 공군창설 주역김정렬·박범집은 '일제육사 장교' 출신1948년 첫 민간 항공사 '대한국민공사'도산·국영화… 조중훈 인수 '대한항공'1920년대 우리나라 비행장은 용산연병장, 여의도비행장, 평양육군비행장이 있었다. 1930년대에 울산비행장, 대구비행장, 청진비행장, 광주비행장, 신의주비행장, 함흥비행장, 나리·오산·해주·강릉불시착장 등이 추가됐다. 김포국제공항의 전신인 김포비행장은 1942년 개장했다. 인천 부평에 있던 군수기지인 일본 육군 조병창에도 헬기 전용 비행장이 있었다. 모두 일본의 군사적 목적으로 조성됐다.조선과 일본 간 정기항공편도 있었다. 월간 '공군' 창간호를 보면, 1927년 6월 조선총독부 체신국이 항공법을 시행하고 1929년 9월부터 한일 간 1주일에 3회씩 여객수송을 시작했다. '항공독립운동과 임도현 비행사'에서 소개한 해방 전 민간항로는 '도쿄~진해~하이난다오', '도쿄~울산~대구~경성~평양~신의주', '도쿄~울산~경성~함흥~톈진' 등이다. 일본 국적 항공사인 일본항공이 이들 노선을 운영했다.조선인으로는 앞서 언급한 신용욱이 운영한 조선항공사업사가 1936년 '경성~이리~광주' 정기항로를 개척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자, 조선총독부는 조선항공사업사의 '경성~중국 하이난다오' 간 국제노선을 전쟁에 징용된 조선인 수송을 전담하도록 했다.일본 본토가 미군 폭격의 사정권에 들어오자, 1944년 10월 신용욱 주도로 군수업체인 조선항공공업주식회사가 설립됐다. 이 시기 기업가 박흥식(1903~1994)이 주도한 또 다른 군수업체 조선비행기공업주식회사도 창립했다. 그러나 해방 직후 이들 회사는 문을 닫았다. 신용욱은 1948년 10월 최초의 민간 항공사인 '대한국민공사'를 설립해 항공사업을 이어갔다. 1962년 경영악화로 도산한 대한국민공사는 국영기업인 '대한항공공사'로 바뀌었고,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이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을 청와대로 불러 대한항공공사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대한항공은 그렇게 태어났다.해방 후 공군 창설은 일본군 장교 출신과 항일운동가 출신인 '7인의 간부'가 주도했다. 항일운동가 출신은 최용덕과 이영무(1905?~?)다. 국무총리까지 오른 김정렬(1917~1992), 박범집(1917~1950) 등은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 항공부대 장교였고, 장덕창 등은 민간 비행학교 출신 베테랑 조종사였다.태평양전쟁 때 일본 항공 전대 소속으로 참전한 김정렬은 1993년 출간된 회고록 '항공의 경종'에서 일본 육사 출신, 소년비행학교 출신, 일본 학사장교 출신, 지원병 출신, 중국군 출신, 일본 항공대 군무원 출신, 일본 민간 항공사 출신, 국내 항공분야 종사자 출신이 대한민국 공군 창설 작업에 참여했다고 했다. 김정렬은 해방 직후 비행사 90여명, 3년 이상 경력의 정비사 300여명 등 항공분야에 약 500명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초기 공군은 육군 산하 항공기지부대로 있다가 1949년 10월 1일 육군으로부터 독립했다. 당시 연락기 20대에 병력 1천600명 규모였다.항공 여명기의 '전설'로 남은 안창남은 애석하게도 해방 후 항공산업과 공군을 일으켜 세울 때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었다. 그러나 공군은 월간 '공군' 창간호에서 "오늘날 독립된 대한을 보지 못한 채 또는 독립된 우리 공중을 날아보지 못하고 불행히도 비행기 사고로서 이역의 이슬이 되신 선배 또는 일본의 전쟁으로 전사한 동포"로 안창남 등을 부르며 대한민국 공군과 항공계 발전의 '수호신'으로 삼았다.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일러스트/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동아일보 1922년 12월 11일자 신문에 실린 안창남 '고국 방문 비행' 행사 화보. 이 행사는 동아일보사가 주최했다. 출처/동아디지털아카이브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 권기옥(왼쪽에서 두번째). 1935년 중국 공군에 복무할 당시 사진으로 알려졌다. 출처/월간 '공군' 2014년 6월호우리나라 첫 여성 비행사인 권기옥의 중국 국민혁명군 총사령부 동로항공사령부 비행사 위임장. 권기옥은 중국 공군에서 10여년 동안 복무하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출처/국가기록원'고국 방문 비행' 당시 비행기 '금강호'에 오른 안창남 사진.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1922년 12월 11일자 신문에 실렸다. 출처/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2020-04-15 박경호

[줌인 ifez]인천 주요후보들 '송도·청라·영종' 선거 공보 살펴보니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오는 15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된다. 4·15 총선 인천지역 후보들은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위해 선거구를 누비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송도·청라·영종 등 인천경제자유구역(IFEZ)이 해당하는 선거구는 총 4개다. IFEZ 지구별 선거구는 ▲송도=연수구을(송도1~4동 등) ▲청라=서구갑(청라1~2동 등)과 서구을(청라3동 등) ▲영종=중구·강화군·옹진군(중구 일원 등)이다. 후보자 수는 연수구을 4명, 서구갑 5명, 서구을 3명, 중구·강화군·옹진군 4명 등 총 16명이다. 더불어민주당, 미래통합당, 국가혁명배당금당은 4개 선거구에 후보를 냈다. 정의당은 연수구을(이정미)과 서구갑(김중삼)에 후보를 냈으며, 중구·강화군·옹진군에는 우리공화당 조수진 후보가 출마했다. 무소속은 서구갑(김용섭)에 1명이 있다.경인일보는 연수구을, 서구갑, 서구을, 중구·강화군·옹진군 선거구 주요 정당 후보들의 IFEZ 관련 공약을 분석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유권자들에게 배포한 '선거 공보'를 기준으로 했다. → 그래픽 참조'서울 접근성 부족' 주민의견 반영GTX-B 조기개통·M버스 등 집중인천 1호선 추가 연장안도 큰 관심■ 송도 '내가 현안 해결 적임자'송도국제도시 관련 공약은 현안 해결에 집중돼 있다.연수구을 더불어민주당 정일영 후보, 미래통합당 민경욱 후보, 정의당 이정미 후보는 교통분야 공약으로 GTX-B노선 조기 개통 및 서울남부광역급행철도 연계,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인천~안산구간 조기 착공, M버스(광역급행버스) 노선 확충과 준공영제 도입, 송도 내부 순환선(트램) 건설, 인천 3호선 남부순환선 추진, 인천 1호선 추가 연장 등을 내놓았다. 이는 서울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송도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인천~안산구간 조기 착공 공약은 인천항 신국제여객터미널(송도 9공구)과 신항(송도 10공구) 활성화를 위한 것으로, 화물차가 송도 내부에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측면도 있다. 송도 순환 트램은 GTX-B노선 개통 효과를 극대화하는 인프라다. GTX-B노선 역사가 송도에 1개만 생기기 때문에 트램이 지선(支線) 기능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천 1호선 추가 연장은 인천항 신국제여객터미널 활성화와 배후 부지(골든하버 프로젝트)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공약인데, 송도 8공구 주민들의 교통 편의를 강화하는 효과도 기대된다.교통분야 다음으로 눈에 띄는 공약은 '의료기관 건립'과 '인천타워 건립사업 재추진'이다. 3명의 후보는 송도 세브란스병원 조기 개원과 응급실을 갖춘 2차 의료기관 개설, 인천타워 재추진을 공약했다. 연세대가 추진 중인 송도 세브란스병원은 애초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다. 인천타워 건립사업은 송도 6·8공구에 151층 높이로 계획했었는데,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무산됐다. 인천타워 건립사업을 다시 추진해 송도의 랜드마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후보들의 생각이다. 송도의 오피스 공실률은 높은 편이어서 사업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경제분야는 'ㅁ'자형 송도 워터프런트 개발, 바이오 산업 및 스타트업 육성, 규제 완화, 송도 자산 이관 중단 및 제도개선 등의 공약이 있었다. 이들 후보는 송도에 세계적 수준의 중앙도서관을 건립하겠다는 공약도 제시했다.의료복합타운·로봇랜드 등 '답보''프로젝트' 상당수가 시작에 불과GTX-D노선 경유 한목소리 강조■ 청라 '개발 프로젝트 정상화 추진'청라국제도시는 개발 프로젝트가 지연되고 있다. 주민 수는 계획인구를 넘었지만, 개발 프로젝트 상당수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제3연륙교(청라~영종 연결 도로), 청라의료복합타운, 청라국제업무단지, 로봇랜드 등이 그렇다.인천시는 제3연륙교를 올해 착공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지만, 국토교통부 협의과정에서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청라의료복합타운 개발사업은 지난달 30일 사업자 선정에 실패해 재공모를 준비하고 있으며, 청라국제업무단지는 사업성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다. 민간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로봇랜드는 사업계획 변경이 필요한 상황이다.서구갑 더불어민주당 김교흥 후보는 제3연륙교 착공 및 청라 주민 무료 통행, 청라의료복합타운 조성, 청라국제업무단지 개발, 로봇랜드 개발 및 AR·VR 테마파크 조성 등을 공약했다. 미래통합당 이학재 후보는 제3연륙교 조기 완공 및 서구 주민 무료 통행 추진, 청라의료복합타운 사업 추진, 청라국제업무단지와 로봇랜드 활성화 등을 약속했다.두 후보는 GTX-D노선이 청라를 경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후보는 영종~청라~가정~강남~하남노선, 이 후보는 인천공항~청라~루원~강남 노선을 각각 제시했다. 지역 현안인 청라소각장 증설 논란에 대해선 둘 다 "폐쇄하겠다"고 했다.서구을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후보와 미래통합당 박종진 후보의 공통공약은 GTX-D노선 추진, 서울 9호선과 공항철도 직결 운행, 서울 7호선 청라 연장선 조기 개통, 청라소각장 반대·폐쇄 등이다. 신 후보는 청라 시티타워 건립 및 스타필드 조성사업을 챙기겠다고 했고, 박 후보는 청라에 실용예술고등학교를 설립하겠다고 했다.주민·공항종사자 위한 병원 화두제3연륙교·내부순환트램도 제시'공항철도 환승 할인'등 함께 목청■ 영종 '의료·교통·항공산업 책임지겠다'영종국제도시 현안 중 하나는 종합병원 유치다. 영종은 주민과 인천공항 종사자·이용객을 위한 종합병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영종에 종합병원을 유치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중구·강화군·옹진군 더불어민주당 조택상 후보는 '국립 영종종합병원 건립', 미래통합당 배준영 후보는 '종합(대학)병원 유치 및 응급실 24시간 가동을 위한 정부 지원 확대'를 내놨다.두 후보는 교통분야 공약으로 제3연륙교 및 영종 내부 순환 트램 추진, 공항철도 환승 할인 등을 제시했다. 조 후보는 'GTX-D노선 신설'과 '제2공항철도 및 9호선 급행열차 조기 추진', 배 후보는 '제2공항철도 추진 및 영종대교 상부 이용료 감면', '서울·인천 도심행 버스 노선 증차 및 요금 지원'도 약속했다.두 후보 모두 항공MRO(수리·정비·분해조립)단지 조성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공약했다.■ 공약 실행 방안은 부족IFEZ 해당 선거구 후보들이 선거 공보를 통해 다양한 공약을 내놓았지만, 재원 조달과 구체적 실행 방안에 대한 설명은 부족했다. 유권자 표심을 얻고자 지역현안 해결에 집중하다 보니 차별화된 공약을 찾기도 힘들었다. 한두 단어만 다를 뿐 공약 내용 대부분이 비슷비슷한 것이다. 이미 추진되고 있는 사업을 공약으로 제시하거나, 인천시나 인천시의회 또는 인천시교육청이 해야 할 일을 공약한 후보도 적지 않았다. 특히 신도시 특성상 교통과 개발 공약이 많았는데, 임기 내에 완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제21대 총선 후보들의 '선거 공보'는 선관위 정책·공약알리미 홈페이지(policy.nec.go.kr)에서 볼 수 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20-04-12 목동훈

['대한민국 나들목' 인천공항 이야기·(9)]인간, 하늘을 날다·(上)

마젤란 3년걸린 '세계일주' 오늘날 48시간안에1903년 라이트 형제, 36m 비행후 '압도적 단축'1차 세계대전 기간 유럽 '군용기'로 폭발적 보급전쟁 통해 빠른 발전… B-29, 일본에 원폭 투하전투기 기술 도입… 민간항공 '점보기 시대'로7월 15일 조선은 처음으로 서양국가(미국)에 외교 사절단인 보빙사(報聘使)를 파견했다. 보빙사 일행은 인천 제물포항에서 배를 타고 일본 요코하마를 거쳐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입항했고, 열차로 갈아탄 끝에 인천을 떠난 지 두 달여 만인 9월 18일 뉴욕에 당도했다. 2020년 4월 현재 인천국제공항에서 뉴욕 JFK공항까지는 대한항공이 운항하는 초대형 여객기 A380(에어버스)을 타면 직항으로 14시간20분이 걸린다. 인천~뉴욕 간 직항로는 약 1만1천㎞다.두 달과 열네 시간, 137년 사이 세계를 이토록 좁힌 건 비행기다. 우리는 하루도 채 걸리지 않는 사이에 인천에서 뉴욕으로 이동하는 시대를 너무도 당연한 듯 여기는데, 코로나19 팬데믹(세계 대유행)으로 하늘길이 막힌 요즘은 '날지 못하는 인간'의 고립감이 어떠한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세계적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bal Harari)는 2015년 펴낸 '사피엔스'에서 지난 500년 동안의 과학혁명을 이렇게 설명한다.'16세기 이전에는 지구를 일주한 인간이 아무도 없었다. 상황은 1522년에 바뀌었다. 마젤란의 배가 7만2천㎞를 항해한 끝에 스페인으로 돌아온 것이다. 항해에는 3년이 걸렸으며, 탐험대의 거의 전원이 희생됐다. (중략) 1873년에 쥘 베른은 필리어스 포그라는 부유한 영국인 모험가가 세계를 80일 만에 일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한 이야기를 썼다. 오늘날에는 중산층 정도의 수입이 있는 사람이라면 단 48시간 만에 쉽고 편안하게 지구를 일주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혁명의 핵심은 '시간의 단축'이다. 인류가 기원전 3천500년~3천년께 바퀴를 발명해낸 것도 작은 힘으로 빠른 시간에 물건을 나르거나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19세기 말 자동차 발명과 그 비슷한 시기 유럽에서 대중화된 자전거도 기원전에 등장한 바퀴로부터 이어진 과학혁명이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 태양 가까이 날아오르다 추락한 이카로스(Icaros)처럼 비행은 인간의 오랜 욕망이었다.비행기 발명가로 널리 알려진 윌버 라이트(Wilbur Wright·1867~1912)와 오빌 라이트(Orville Wright·1871~1948), 이른바 라이트 형제는 정확히 설명하면 역사상 처음으로 '유인 동력 비행기'를 날리는 데 성공한 인물들이다. 자전거포를 운영하기도 했던 라이트 형제의 초기 비행기는 대부분 부품을 자전거에서 동원했다고 한다.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기는 최대 출력이 12마력인 엔진을 동체에 달아 2개의 프로펠러를 가동하게 하는 날개 폭 12m에 길이 6m 크기의 '플라이어'(Flyer)다. 1903년 12월 17일 오전 처음 성공한 비행에서 11㎞/h 속도로 12초 동안 36m를 날았다.라이트형제 이전에도 하늘을 나는 사람들은 있었다. 1783년 최초의 열기구와 수소기구가 하늘에 떴고, 그해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으로 사람이 탄 열기구가 22m를 날아올라 비행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는 공기보다 가벼운 기체를 이용해 떠오르는 비행선의 시대였다. 프랑스 파리에 살던 브라질인 아우베르투 산투스두몽(Alberto Santos-Dumont·1873~1932)이 비행선 개발자 겸 조종사로 유명했는데, 그가 1899년 길이 20m짜리 1인승 비행선으로 에펠탑 주위를 선회하는 게 파리에서 가장 큰 볼거리였다. 산투스두몽이 공중에서 주머니에 든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보는 게 위험해서 당대 최고의 보석세공사 까르띠에(Cartier)가 고안해 전달한 시계가 바로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다. 오늘날 명품 브랜드가 된 그 까르띠에도 결국은 하늘을 나는 데서 탄생했다. 라이트 형제를 필두로 한 동력 비행기가 상업성을 인정받은 때는 형제가 1908년 유럽으로 건너가 잇따라 시험 비행을 성공한 이후부터다. 비행기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신기한 볼거리'에서 '전쟁의 주력'으로 실용화한다. 시험 비행으로 유럽을 순회한 라이트 형제의 목적도 결국은 군납품 계약이었다.'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발행인 폴 호프먼(Paul Hoffman)이 2003년 쓴 '광기의 날개'를 보면,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독일·프랑스·영국·이탈리아·러시아·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등 유럽국가들이 보유한 항공기는 약 700대에 불과했다. 전쟁 초기에는 비무장 정찰기로 썼다. 그러다 한 조종사가 상대편 비행기에 권총을 쏘기 시작했고, 곧 비행기에 기관총을 달았다. 1914년 8월 독일군 타우베(Taube) 단엽기가 파리의 한 기차역에 소형 폭탄 5개를 투하하면서 '공중 폭격'도 시작됐다. 이때 프랑스 여성 1명이 사망해 첫 폭격의 희생자로 기록에 남았다.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18년, 라이트 형제가 유럽에서 시험 비행한 지 10년 만에 이탈리아에서 220마력의 엔진에 최대 속도 220㎞/h까지 낼 수 있는 군용기가 등장했다. 이 기간 전쟁 참여국이 생산한 군용기는 약 18만대다. 제1차 세계대전이 성장시킨 항공기술은 곧바로 민간수송분야에 적용됐다. 1919년 2월 독일이 2인승 정찰기를 개조한 복엽기로 정기여객노선을 개설했고, 4월부터 항공우편 수송을 시작했다. 그해 8월 영국도 런던~파리 간 정기 여객기를 띄웠는데, 런던에서 출발한 여객기는 구름 위에 솟은 에펠탑을 보고 목적지를 식별했다.당시 비행사들은 육안으로 항공기를 몰아야 했다. 항공수송사업 경쟁은 위험을 무릅쓰고 야간비행까지 강행하게 했다. '어린왕자'(1943)로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ery·1900~1944)도 비행사 출신이다. 생텍쥐페리가 1931년 발표한 자전적 소설 '야간비행'을 보면 조종사들이 밤에 운전하는 것을 얼마나 힘겨워 했는지 알 수 있다.'엄청난 바람에 맞서 왼쪽으로 몸을 기울인 그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여전히 떠도는 저 희미한 불빛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것은 빛도 아니었다. 짙은 어둠 속에서 감지되는 아주 미세한 어둠의 농도 변화이거나 눈이 피곤해서 생긴 착시 현상이었다.'현재와 비슷한 모습의 근대적인 여객수송기는 193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탄생했다. 1933년 보잉사가 개발한 B-247(10석), 록히드사가 개발한 L-10(객석 10석)이 상용화됐고, 유나이티드항공사 등 여객기를 운항하는 항공사가 본격적으로 민간항공 노선을 운영했다. 여성들로 구성된 최초의 항공기 승무원도 이때 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민간 여객기는 52석 규모까지 성능을 향상했다.항공기술은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다시금 전환점을 맞았다. 참전국은 일일이 그 이름을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형화·고속화한 다양한 기종의 전투기와 폭격기를 경쟁적으로 개발해 전장에 투입했고, 어마어마한 파괴력으로 위협을 가했다. 비행기 속도를 700㎞/h 이상으로 끌어올린 '제트엔진'과 '레이더'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도입됐다. 미국 보잉사는 '슈퍼 하늘의 요새'(Super fortress)라 불린 폭 43m, 길이 30m에 무게가 64t에 달하는 당시 초대형 폭격기인 B-29를 개발했다. 미군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폭격기가 바로 B-29다.이 거대한 폭격기가 대형 민간 여객수송기의 뿌리다. 보잉사는 B-29 폭격기를 기본으로 설계한 여객기 377 스트라토크루저(Stratocruiser)를 1947년 7월 출시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전쟁, 베트남전, 걸프전 등을 거치면서 각국 신형 전투기들의 성능이 극대화 되었다. 특히 1990년대 걸프전쟁은 영미권 국가의 F-14, F-15, F-16, 스텔스 전투기 등 최신 군용기의 성능 시험장이 됐다. 전쟁이 비행기의 성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민간 항공기는 그 뒤를 따라가는 구조가 반복됐다.1940년대 군용기에 도입된 제트엔진이 1950년대 들어서는 보잉의 B-707, 더글러스의 DC-8 등 민간 여객기에도 탑재됐다. 1960년대 말에는 제트엔진을 단 중·단거리 수송기가 전 세계에 보급되면서 기차여행보다 항공여행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었다. 현재 인천국제공항을 오가는 B-747(500여석), A380(650여석) 등 이른바 '점보기'는 여객기가 점점 대형화한 결과다. 수천년 동안 하늘을 날고자 했던 인류는 1903년 비로소 자신의 힘으로 비행하게 되었는데, 그 66년 뒤인 1969년 우주를 날아 달에 착륙했다. 인간이 욕망한 바는 결국 과학으로 실현되었고, 그 발전 속도는 인류조차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흐르고 있다. 특히 항공기술의 발전이 전쟁과 군비경쟁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우리를 아프게 한다.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역사상 처음으로 '유인 동력 비행기'를 날리는 데 성공한 인물들인 윌버(오른쪽), 오빌 라이트 형제. 이들이 1908~1909년 유럽을 순회하며 첫 유인 동력비행기 시험 비행을 선보이는 모습(사진 오른쪽).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

2020-04-08 박경호

['대한민국 나들목' 인천공항 이야기·(8)]우여곡절 '인천공항' 이름표

1992년 신공항 명칭공모 '세종' 최다 득표서울·아리랑 등에도 밀려 '인천' 8위 불과1995년 '영종' 결정… 시민단체 반대 운동"변경" 60만명 요구 서명… 현재 이름으로인천국제공항이 지난달 29일 개항 19주년을 맞았다. 문을 연 지 19년, 인천국제공항은 대한민국의 관문이자 인천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인천국제공항 이용객들은 그렇게 '인천'을 기억한다. 그래서 공항의 이름은 '이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세계 각국의 공항 이름은 그 소재지 명칭이나 그 나라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따는 게 일반적이다. 대부분은 인천공항처럼 도시 이름을 붙이고 있다.인천국제공항에 '인천'이라는 이름표는 쉽게 단 게 아니다. 인천 입장에서 볼 때 참으로 우여곡절도 많았다. 인천국제공항 명칭 논의가 시작된 건 1992년부터다. 1990년 영종도 신공항 건설 계획이 확정된 뒤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는 1992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신공항 명칭 공모를 실시했다. 공모 결과 586종, 1천644건의 이름이 모였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했다고는 하지만 참여자가 너무 적었다. 1천644건 중 가장 많은 표를 받은 건 101표를 받은 '세종공항'이었다. 국제공항인 만큼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인 세종대왕의 이름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2위는 70표를 얻은 '서울공항'이 차지했고, '아리랑공항', '새서울공항' 등이 뒤를 이었다. '인천공항'은 8위(30표)에 그쳤다. '영종공항'이 6위(54표)로 인천을 앞선 게 눈에 띈다.공모 결과가 발표되자 인천 지역이 들끓었다. 인천시의회가 신공항특별위원회를 꾸려 1992년 7월부터 신공항 명칭에 '인천'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천 지명이 배제될 경우, 신공항 건설 저지 운동까지 펼치겠다고 했다. 국내 최대 공항이 건설되는 땅인 '인천'을 상징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결국 이듬해 정부는 공모 당선작 없이 ▲인천공항 ▲세종공항 ▲서울·영종공항 등 3편의 가작만을 발표했다.1995년 수도권신공항건설공단의 명칭 결정을 앞두고 경인일보는 신공항의 명칭으로 '인천국제공항'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의 기사를 1면에 실었다. 1995년 1월 23일자 신문을 보면, "'인천과학아카데미' 대학 등 학계에서도 인천의 국내외적인 인지도, 지역 이름을 따르는 공항 명칭의 통상적 기준, 영문 발음·표기상의 문제, 주민 여론·지역 정서 등을 고려해 인천국제공항으로 결정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며 "인천의 경우 6·25 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등으로 국내·외적 인지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영문 표기상으로도 양호하다"고 보도했다. 다른 후보인 세종은 외국인들에게 인지도가 낮은 데다 지역 대표성이 없고, 영종의 경우 발음 및 표기가 어렵다는 점을 들어 적절치 않다고 했다.하지만 수도권신공항건설공단은 1995년 1월 26일, 공항명칭 선정 심사위원회를 열고 신공항의 명칭을 '영종국제공항'으로 정했다. 영종이라는 이름이 건설 초기부터 널리 알려졌고, 지역성을 고려한 판단이라고 그 이유를 들었다. 결론이 내려졌음에도 인천 시민들은 '인천'이라는 명칭을 포기하지 않았다. 같은해 4월, 인천기독교연합회총회·인천YMCA 등 시민 단체들은 '인천국제공항 명칭제정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영종국제공항' 명칭 제정에 반대했다. 1995년 4월 19일자 경인일보에는 "시민 자존심 '영종' 용납 못해"라는 제목의 위원회 창립총회 개최 기사가 실렸다. 이날 창립총회에는 당시 심정구 국회의원 등을 비롯해 심상길 인천시의회 의장, 최기선 전 인천시장, 이종인 인천상의 부회장 등 500여 명의 각계 인사가 참여해 인천국제공항 명칭 제정을 촉구했다. 이때 최기선 전 시장은 1994년에 터진 '북구청 세무비리'와 관련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 있던 상황이었다. 명칭 변경을 촉구하는 인천 시민 동의까지 받았는데, 이에 서명한 시민이 약 60만명에 달했다. 당시 인천시의 인구가 약 235만명(KOSIS 국가통계포털 기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시민 4명 중 1명이 '인천국제공항'을 위해 적극 나섰던 셈이다.신공항 명칭은 당시 초대 민선시장 선거를 앞둔 후보들에게도 최대 현안이었다. 초대 민선 인천시장 후보로 나선 최기선·신용석·강우혁 등 3명의 후보는 영종국제공항으로 정해진 이름을 '인천국제공항'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결국 건설교통부는 수도권신공항건설공단의 결정을 뒤집고 1996년 3월 21일 수도권 신공항의 명칭을 '인천국제공항'으로 확정, 발표했다. 건설교통부는 전 세계 공항의 90% 정도가 지역 명칭을 사용하고 있어 공항이 소재한 인천시의 이름을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영종국제공항'은 국제적 인지도가 낮고, 발음도 어려워 피했다고 덧붙였다.정부 발표로 신공항을 둘러싼 명칭 공방은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세종국제공항 명칭추진위원회'까지 꾸려 명칭 선정 이후에도 공항명 변경을 주장했고, 인천 지역 사회도 이에 대응하는 대책위를 구성해 인천국제공항의 명칭을 바꿀 수 없다고 맞섰다.결국 개항을 1년여 앞둔 2000년 건설교통부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등에 공항명칭을 '인천국제공항'으로 제출해 마무리 지었다. 현재 인천을 오가는 모든 항공권에는 인천국제공항의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공항코드인 'ICN'이 표기돼 있다. 인천 영문(INCHEON)의 알파벳 첫 글자인 I와 중간의 C, 마지막 N의 조합이다.2006년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이계진 의원은 인천국제공항의 명칭을 '인천-세종국제공항'으로 바꿔야 한다며 인천국제공항공사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다시 한 번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인천의 90여개 시민단체는 '인천지역 경쟁력 강화를 위한 범시민협의회'를 구성해 이런 움직임에 맞섰고, 다시 한 번 '인천국제공항'을 지켜냈다.'서울 인천국제공항' 소재지 국제표기 논란 市 제외 요구에도 아시아나 안내방송 유지세계 4만여개 공항 대부분 '지역명칭' 사용"이름짓기도 서비스상품 브랜딩 과정 일부" 2011년부터는 인천국제공항을 둘러싸고 새로운 논란이 불거졌다. 정부가 발간하는 항공정보간행물(AIP), ICAO, IATA 등에 '서울'로 등록된 인천국제공항의 소재지를 인천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서울시가 강서구에 있는 김포공항의 이름을 서울공항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건설교통부는 2000년, 공항 이용 승객이 많은 중심 도시의 이름을 소재지로 명시하는 것이 국제 관례라며 ICAO 등에 서울을 인천국제공항의 소재지로 등록한 바 있다. 소재지는 서울, 공항명은 인천국제공항인 '서울 인천국제공항'이 된 것이다. 인천시는 국내 항공사에도 '서울 인천국제공항'이라는 안내 방송에서 '서울'을 제외해 줄 것을 요구했다. 현재 대부분의 항공사가 이를 수용한 상황이다. 대한항공뿐 아니라 진에어, 티웨이항공 등 대부분 저비용항공사 역시 서울 인천국제공항이 아닌 인천국제공항으로 안내 방송을 하고 있다. 현재까지 '서울 인천국제공항'으로 안내 방송하는 국내 항공사는 아시아나항공이 유일하다. 인천시는 올해 아시아나항공에도 재차 안내방송 변경을 요구할 계획이다. 인천시 항공정책팀 권정은 주무관은 "인천은 인구 300만에 경제자유구역까지 형성돼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해외 교류가 많아져 서울로 안내할 경우 인천을 찾는 외국인들의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며 "올해 하반기, 이 같은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아시아나항공에 다시 한 번 서울이 아닌 인천국제공항으로 안내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장기적으로 해외 항공사에도 요청할 계획"이라고 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도쿄 나리타공항이나 하네다공항처럼 IATA 등에 등록된 소재지와 공항명을 함께 안내하고 있는데, 인천국제공항도 이와 같은 경우"라며 "안내방송에 서울도 함께 방송하는 것은 오히려 고객에게 혼선을 주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세계 대부분 공항이 인천국제공항과 같이 지역 이름을 공항명으로 쓰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7개 모든 공항의 이름이 지역명으로 돼 있다. 인천국제공항, 김포국제공항, 김해국제공항, 대구국제공항, 청주국제공항 등이다. 라이트 형제가 1909년 미국 메릴랜드 주에 건설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항으로 알려진 '칼리지 파크(College Park)' 공항도 지역명을 공항 이름으로 정했다. '칼리지 파크'는 메릴랜드 주 중부 지역 이름이다. 북한의 주요 국제공항인 '평양 순안국제공항'도 지명을 활용했다. 유명인의 이름을 딴 공항도 적지는 않다. 미국 뉴욕의 '존 F. 케네디' 국제공항, 이탈리아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제공항, 프랑스 파리의 '샤를 드골' 국제공항, 인도 뉴델리의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 등이 대표적이다. 뉴욕의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의 경우, 1948년 개항할 때는 뉴욕국제공항으로 지명을 공항 이름으로 정했지만,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이후 케네디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1963년 명칭을 변경했다. IATA 공항코드도 현재는 이름의 약자를 딴 'JFK'로 쓰고 있다. 영종도와 같이 섬에 건설돼 그 섬의 이름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홍콩의 국제 관문인 '홍콩 첵랍콕(Chek Lap Kok) 국제공항' 등이다. 첵랍콕은 홍콩의 서부 해역에 있는 섬으로, 1998년 개항과 동시에 섬 이름을 공항명으로 쓰고 있다.한국항공대 이상학 경영학부 교수는 "마케팅 측면에서 볼 때 공항의 이름을 짓는 건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하는 최고의 서비스 상품을 브랜딩하는 하나의 과정"이라며 "지역 입장에서는 당연히 공항 이름에 지역명을 넣고 싶어 하고, 공항 입장에서는 항공사나 승객 유치를 위해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명칭을 쓰려고 열을 올리기 때문에 이름을 지을 때 조정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한국항공협회에 따르면 전 세계에는 4만 개가 넘는 공항이 있다. ICAO가 공항코드를 부여한 공항이다. 한국항공협회가 2년 주기로 발간하는 항공연감의 주요 공항을 보면, 공항이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이다. 전 세계 7천300여개의 주요 공항 중 약 23%(1천700여곳)가 미국에 몰려 있다. 반대로, 공항이 없는 주권 국가도 있다. 가톨릭 교황국인 바티칸시국, 입헌군주제 국가인 유럽의 리히텐슈타인 등이다. 바티칸시국으로 가려면 이탈리아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제공항을 이용해야 한다.글/공승배기자 ksb@kyeongin.com2007년 1월 18일 오전 인천 송도라마다호텔에서 '인천국제공항 명칭변경 추진관련 대책 간담회'가 열렸다. '인천지역경쟁력강화를위한범시민협의회' 주최로 진행됐으며, 당시 안상수 인천시장, 박창규 시의회 의장, 김정치 인천상공회의소 회장, 지역 국회의원 및 기관단체 대표들이 참석했다. /경인일보DB경인일보 1995년 1월 23일자 1면에는 "영종도건설 신공형 명칭, '인천국제공항' 바람직"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인천 지역사회에서는 인천의 국내외 인지도, 지역이름을 따르는 공항명칭의 통상적 기준 등을 고려해 인천국제공항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인천국제공항 전경. 활주로 인근에는 인천국제공항을 나타내는 'INCHEON'이 표시돼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제공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경인일보DB

2020-04-01 공승배

['대한민국 나들목' 인천공항 이야기·(7)]단절된 섬 이어준 대교

영종대교, 초기 인천공항 유일 접근로 역할인천대교, 2009년 개통후 인천도심 가까이제3연륙교, 청라 연결 5년뒤 완공목표 추진市, 신도~강화도~해주·개성 '평화도로' 구상공항물류 시너지… 국가도로망 반영 협의중'다리(橋)'는 바다와 강, 계곡을 건널 수 있도록 만든 구조물이다. 둘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처음 인연을 맺어주거나 끊어진 관계를 다시 연결해 주는 것을 '다리를 놓는다'고들 한다.영종도는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육지와 단절된 섬이었다. 지금이야 영종대교와 인천대교를 타고 아무 때나 섬과 육지를 오갈 수 있지만, 옛날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했다.영종도는 다리가 놓이면서 내륙 생활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됐다. 제1연륙교인 영종대교는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를 통해 서울과 직접 연결됐고, 제2연륙교인 인천대교는 제2경인고속도로를 통해 인천·경기 남부권과 이어졌다. 그리고 앞으로 들어설 제3연륙교는 경인고속도로와 연결될 예정이다.영종도는 또 하나의 다리를 꿈꾸고 있다. 바로 남과 북을 잇는 서해평화도로다. 이는 구조물로서의 다리이기도 하지만, 끊어진 남북관계를 다시 연결해주는 의미를 갖기도 한다. 영종도와 인천 사이에 다리를 놓아준 게 인천공항이듯이 남북의 중매쟁이도 바로 공항이 될 것이다. 인천공항이 있기에 영종도를 중심으로 한 다리들은 남북간 인적·물적 교류의 핵심 인프라가 될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 → 위치도 참조1990년 6월 인천 영종도가 수도권 신공항 입지로 확정되면서 다리 건설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섬을 육지와 연결하는 연륙교 계획과 함께 서울 도심에서 공항까지 45분 이내 도착을 목표로 한 고속도로 건설계획이 확정됐다. 2000년 11월 22일 개통한 영종대교는 인천공항 개항 초기 유일한 접근로였다. 우리나라 사회간접자본시설(SOC) 역사상 최초로 민자 사업으로 진행됐다. 영종대교는 공항과 경기도 고양을 연결하는 36.6㎞ 길이의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의 해상 구간이다. 인천 중구 운서동과 서구 경서동을 잇는 길이 4.42㎞의 다리를 49개의 교각이 떠받치고 있다. 상층엔 도로, 하층엔 철로(공항철도)가 놓여 흔하지 않은 복층 구조 다리라는 점이 특징이다. 11개 건설사의 출자로 설립된 민간사업시행자인 신공항하이웨이(주)가 총 사업비 1조7천342억원(육상구간 포함)을 투입해 건설했다.인천 송도국제도시와 공항을 연결하는 인천대교는 2009년 10월 16일 개통했다. 총 길이가 21.348㎞에 달하고 이 가운데 해상구간이 12.34㎞로 영종대교의 약 4배다. 사업비는 민자구간 1조5천201억원, 국가사업 구간 8천628억원을 합해 총 2조3천829억원에 이른다. 해상구간은 민자사업자인 인천대교(주)가 맡았고, 육상 연결도로는 한국도로공사가 시행했다.인천대교는 처음에는 해저터널로 계획됐지만, 막대한 비용과 오랜 공사 기간, 유지 관리 어려움이 걸림돌이 됐다. 1995년 11월 경인일보는 제2연륙교 해저터널의 타당성을 짚어보는 기획기사를 연재했는데 당시 기사를 보면 이런 이유 때문에 해저터널보다는 해상교량 방식이 더 낫다는 여론이 우세했다.초기 인천공항 접근 교통망은 서울 편의 위주로 짜였기 때문에 정작 인천시민들은 개항 효과를 누리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맞이한 인천대교의 개통은 인천 도심에서 공항으로의 이동을 더 수월하게 했다. 그저 '제2연륙교'로만 불리던 무명의 이 다리는 송도국제대교, 황해대교 등의 명칭이 거론됐으나 여러 공론화 과정을 거쳐 '인천대교'라는 이름을 얻어 인천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자리하게 됐다.영종대교와 인천대교의 건설은 그야말로 바다에 길을 내는 험난한 토목 사업이었다. 한강에 다리를 놓는 사업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고도의 기술력과 장비, 인력, 예산이 필요했다. 두 다리는 당시 토목기술의 '끝판왕'격이었다.아주 오래 전, 다리는 냇가에 큰 돌덩이 등을 놓은 징검다리나 통나무 다리 등 원시적인 형태로 시작했고 아치 형태의 교량부터 기술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경우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축조된 불국사의 청운교·백운교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다리로 꼽히는데 이는 석조 아치교다.다리는 하중을 어떻게 분산시키느냐가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건너는 구간이 짧다면 널빤지 형태의 구조물만 얹으면 되지만 거리가 길면 휘어질 우려가 있어 중간중간 교각을 놓아야 한다. 교각 사이 폭은 가까울수록 안정적이나 이 경우 선박이 다닐 수 없고 물의 흐름을 방해하게 된다. 그래서 나온 기술이 바로 주탑과 케이블을 이용해 교각 사이를 크게 벌리는 현수교와 사장교 방식이다.영종도 북단에 위치한 영종대교는 대형 선박이 많이 운항하지는 않아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인천대교는 사정이 달랐다. 인천항의 무역선과 여객선의 항로를 가로지르는 노선이어서 인천대교 하부를 선박이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숙제가 있었다. 하늘길을 열자고 바닷길을 막아서는 안 될 일이었다.인천대교는 일반적으로 30~50m인 교각 사이 폭을 800m까지 벌리기 위해 '사장교' 방식을 도입했다. 주탑에서 대각선으로 뻗어 나온 케이블의 수평력이 다리의 상판을 지탱해 휘어짐을 막는 방식이다. 인천대교의 가운데 뾰족하게 솟은 높이 225m '역 Y자' 형태의 두 개의 탑과 케이블은 장식용이 아니라 다리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구조물이다.주탑 간격 300m의 영종대교는 '현수교' 방식으로 지어졌다. 현수교는 사장교처럼 주탑과 케이블로 구성됐지만, 케이블이 대각선인 사장교와 달리 수직으로 설치된 게 다른 점이다. 샌프란시스코의 '골든 게이트(금문교)'가 대표적인 현수교다.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인천 앞바다의 특성상 두 대교의 건설은 바다와의 싸움이었다. 영종대교는 일부 해상구간에 차수막을 설치하고 물을 완전히 뺀 다음에 육상 구간처럼 공사했다. 그러나 인천대교는 물막이 작업 없이 해상에서 파일을 박고 육상에서 미리 만든 구조물을 얹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3천t의 장비를 들어 올릴 수 있는 크레인이 달린 바지를 띄워 공사를 했는데 이는 당시 세계에서 처음 선보이는 방식이었다.인천대교 사업에 참여한 (주)유신 구조부 이경훈 부사장(토목구조기술사)은 "바지 같은 해상장비를 바다에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해 놓고 그 위에 육상에서 사용하는 장비를 실어 기초공사를 해야 했는데 조수 간만의 차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며 "인천대교는 당시에는 국내에 없던 설계방식이 도입됐고, 빠른 진행을 위한 최적화 공법이 적용됐다"고 말했다. (주)유신은 영종대교의 기본 설계를 맡았고, 인천대교의 설계·시공 감리를 했다.이 부사장은 또 "인천대교의 해저터널이 무산된 이유는 경제성과 공사 기간 문제도 있었지만, 깊이 40m 이하로 들어가기 위한 경사도가 잘 나오지 않아 물리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영종도에는 영종대교와 인천대교에 이은 제3연륙교 건설이 추진 중이다. 제3연륙교 사업은 영종과 청라를 연결하는 길이 4.6㎞의 교량 건설 사업이다. 청라와 영종 경제자유구역 사업을 맡은 LH가 제3연륙교 건설비 5천억원을 조성원가에 반영해 2005년부터 건설을 추진했으나 15년째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제3연륙교 건설이 영종대교와 인천대교를 운영하는 민자 사업자에 손실을 끼칠 수 있어 손실 보상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은 이유가 컸다. 현재 실시설계 용역이 진행 중으로 2025년 하반기 개통이 목표다. 영종대교와 인천대교처럼 기존의 고속도로망과 직접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영종도에서는 3개의 연륙교 외에도 남북 평화시대를 대비한 대형 프로젝트가 최근 그 첫발을 내디뎠다. 바로 서해평화도로 1단계 사업인 영종~신도 간(3.8㎞) 다리 건설 사업이다. 서해평화도로는 영종도와 신도(옹진군 북도면), 강화도를 다리로 연결하고, 더 나아가 해주와 개성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연결하는 사업이다. 인천시는 4월 1단계 구간 설계·시공을 위한 업체 선정에 착수해 올해 말에는 착공할 예정으로 2단계 구간인 신도~강화도 구간(11.1㎞)이 '제2차 국가 도로망 종합계획'에 반영될 수 있도록 국토교통부와 협의 중이다. 서해평화도로의 구상은 바로 인천공항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개성공단과 같은 북녘의 공간이 남쪽의 인천항과 인천공항 등의 뛰어난 물류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거다.배용환 인천시 도로과장은 "국가 계획에 서해평화도로가 반영되면 인천에서 김포를 거치지 않고 영종도를 통해 강화도, 더 나아가 북한으로 곧장 이어지는 길이 만들어진다"며 "1단계 사업인 영종~신도 구간부터 차질없이 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글/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주탑 사이에 상판을 연결하기 전의 인천대교 공사 현장 모습. 총 길이 21.348㎞의 인천대교는 52개월 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2009년 10월 16일 개통했다. /인천대교(주) 제공영종대교의 낮. /신공항하이웨이(주) 제공영종대교의 밤. /신공항하이웨이(주) 제공제2연륙교(인천대교)의 해저터널 방식에 대한 문제점과 대안을 분석한 경인일보 1995년 11월 23일자 지면.

2020-03-25 김민재

[줌인 ifez]IFEZ 산업육성 플랫폼 연구·조사 완료

자동차·기계등 앵커 입주 불구'연구개발' 자산은 상대적 부족맞춤인재양성등 5개 전략 수립'산업단지 동반성장안'도 마련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인천연구원이 지난해 1월부터 '인천경제자유구역(IFEZ) 산업육성 플랫폼 운영을 위한 연구·조사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은 IFEZ 현 산업 구조를 진단·평가하고, '혁신성장 산업 생태계' 조성 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IFEZ 발전 패러다임은 '인프라 개발사업'에서 '산업 생태계 활성화'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가용 토지가 감소하면서 선택과 집중을 통한 투자 유치와 산업 육성이 요구되고 있다. IFEZ와 인근 산업단지가 함께 발전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인천경제청과 인천연구원은 최근 연구·조사사업을 완료하면서 'IFEZ 혁신성장 산업 생태계 구현'을 정책 목표로 설정했다. 또 ▲산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투자 유치 및 공급망 구축 ▲개방형 혁신 체계 구현을 위한 연구개발 자산 확보 ▲산업 맞춤형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훈련 체계 구축 ▲혁신 생태계 활성화 지원을 위한 조례 개정 및 조직 개편 등 5개 추진 전략을 제시했다. IFEZ 산업 구조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떤 부분을 개선·보완해야 하는지 이번 연구·조사사업에서 나온 내용을 정리했다. → 그래픽 참조■ 앵커는 있지만…IFEZ 주력 산업은 물류, 자동차·기계, 바이오다. IFEZ는 인천공항과 인천항을 중심으로 물류산업이 집적되면서 높은 수준의 거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화가 지연되고 있으며, 고부가 가치형 물류가 부재하다. 자동차·기계 분야는 앵커 기업들의 입주로 제조·생산시설은 우수하지만, 연구개발 자산은 부족하다. 자동차부품의 시험·인증·엔지니어링을 담당하는 기관도 없다. 바이오·헬스케어 분야는 글로벌 바이오 기업·연구소들이 입주하면서 중핵 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인천 내에서 바이오 원·부자재를 공급하는 기업이 거의 없다.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는 로봇·드론 분야는 청라 로봇랜드를 중심으로 관련 기업이 증가하고 있지만, 인천에서 수요가 높은 물류로봇 분야 기업 유치·육성이 필요한 실정이다. ■ 인천경제청, 혁신적 산업 생태계 조성 지원인천경제청은 이번 연구·조사사업에서 지적된 사항을 개선·보완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5개 추진 전략을 이행하기 위한 세부 사업 20개를 선정했으며, 해당 부서·기관과 협의해 사업계획을 구체화할 방침이다.인천경제청은 영종도 복합리조트에서 지역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식품 공급망을 구축하기로 했다. 또 수요가 많은 물류로봇, 바이오 원·부자재, 스마트 물류 분야 기업을 유치하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인천경제청은 지역혁신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민간 기업(대기업-중소기업-벤처·스타트업) 주도의 개방형 혁신 체계 구축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 산학연(기업-대학-연구소) 공동 연구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을 도입하기로 했다. 인천경제청과 인천연구원이 IFEZ 입주 기업 25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8%는 IFEZ 내에서 공동으로 연구개발을 수행할 의향이 있었다. 산업 생태계의 건전성을 확보하려면 벤처·스타트업 육성이 중요하다. 인천경제청은 벤처·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고자 앵커형 액셀러레이터와 글로벌 벤처캐피털을 유치하기로 했다.바이오·항공·관광 분야 전문 인력 양성에도 적극 나선다. 인천경제청은 인천테크노파크의 바이오공정센터 건립사업, 인천공항공사의 항공MRO 전문 인력 양성사업 등 관계 기관의 인력 양성 체계 구축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인천경제청은 IFEZ와 산업단지 동반 성장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송도-남동국가산업단지, 청라-서부산업단지와 북항 배후단지 등 IFEZ와 산업단지 간 시너지 창출 및 산업 융합이 일어날 수 있는 방안을 찾기로 했다. ■입주기업 근로자 1240명 조사… IFEZ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문제 "대중 교통"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인천연구원은 '인천경제자유구역(IFEZ) 산업육성 플랫폼 운영을 위한 연구·조사사업'을 진행하면서 IFEZ 입주 기업 근로자 1천240명을 대상으로 정주 여건 만족도 조사를 실시했다. 설문 조사(5점 척도) 결과는 IFEZ 거주자와 비거주자로 구분해 분석했다.IFEZ 거주자의 정주 여건 만족도는 청라 3.8점, 송도 3.6점, 영종 3.3점 순으로 조사됐다. 영종 거주자는 상업·문화·체육시설이 부족하고 응급의료시설 이용 환경이 열악하다고 평가했다. 영종뿐만 아니라 송도와 청라 거주자도 의료시설 이용 환경에 대해 매우 낮은 점수를 줬다.IFEZ 비거주자에게 향후 IFEZ에 거주할 의향을 물었더니, '없다'(46.3%)가 '있다'(21.6%)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거주 의향은 송도가 28.2%로 가장 높았고, 영종은 8.8%에 불과했다.IFEZ 입주 기업 근로자들은 '대중교통'을 가장 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할 문제로 꼽았다. IFEZ 거주자를 대상으로 한 생활 여건 만족도 조사에서 '대중교통'은 가장 낮은 2.6점을 받았다. IFEZ 비거주자에게 '어떤 요인을 개선했을 때 IFEZ에 거주할 의향이 있느냐'고 질문한 결과, 64%가 대중교통 문제를 1순위로 선정했다. 2순위까지 합하면 81%나 된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20-03-22 목동훈

['대한민국 나들목' 인천공항 이야기·(6)]바다위 공항

지반침하 우려 제기 속 성공적 건설일본 제치고 '벤치마킹' 사례로 꼽혀바다 위에 건설한 인천국제공항은 우리나라의 우수한 기술력을 세계로부터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바다를 메운 땅에 건설했지만 지반 침하 등의 문제가 전혀 나타나지 않으면서 세계적으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반면 일본 간사이국제공항은 지반 침하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토목 실패 사례'라는 불명예를 안았다.인천공항 지반공사 설계를 맡았던 (주)유신 최인걸 인천지사장은 "간사이국제공항은 대표적인 토목공사 실패 사례로 평가된다. 일본인들이 가장 부끄러워하는 건축물의 하나일 뿐 아니라 세계 공항에서도 간사이공항처럼 문제가 불거진 공항은 거의 없다"고 했다. (주)유신은 인천공항 건설사업 설계와 감리 업무를 수행했으며, 당시 최 지사장은 기술본부장을 맡고 있었다.그는 세계 3대 인명사전인 '마르퀴스 후즈 후'와 영국케임브리지국제인명센터(IBC)에서 발행하는 '세계 100대 엔지니어'에 등재된 토목 전문가다. 최 지사장은 "인천공항 개항 이전부터 지반 침하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시료 채취와 분석 등에 있어서 심혈을 기울였다"고 했다.그는 2000년 일본에서 열린 '지반공학 국제심포지엄(ISLT·International Symposium Lowland Technology)'에서 인천공항 건설 과정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다. 이 행사에는 미국, 유럽, 동남아 등 각국에서 온 학자들이 참여했고, 인천공항을 완성한 한국 건설산업의 우수한 기술력에 찬사를 보냈다. 반면 행사에 참여한 일본 학자들은 예상보다 빨리 침하하는 간사이공항 때문에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당시 일본은 내진 설계 등 토목 부문 기술력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지만, 간사이공항은 10m 넘게 침하했다.그는 "인천공항의 성공적인 건설이 대한민국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며 "대한민국의 토목 기술은 이제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라고 말했다.한국건설산업연구원 최석인 연구위원은 "지반 침하 문제는 간사이공항을 대표적인 토목 실패 사례로 거론하는 주요 이유"라며 "우리 인천공항을 간사이공항과 견주었을 때 그 성과는 더욱 극명하다"고 했다. → 연중기획 12면 /정운기자 jw33@kyeongin.com

2020-03-18 정운

['대한민국 나들목' 인천공항 이야기·(6)]바다위 공항

#첨단공법 과시 영종도 대공사1992년부터 공항면적의 82% 매립 공사200만대 착륙 불구 예상침하 절반 안돼11m 내려간 '日 간사이공항 섬'과 대조'4개의 섬' 생활권 묶여… 인근섬도 변화"교통환경 나아졌지만 교류기회는 줄어"'인천국제공항, 일본을 부끄럽게 하다!'일본 오사카에 있는 간사이국제공항 지반은 건설 당시보다 11m 이상 내려앉았다. 간사이공항은 육지에서 5㎞ 떨어진 바다를 매립해 조성한 인공섬 위에 건설됐으며, 1994년 개항했다. 매립 공항이라는 점 때문에 침하는 설계 때부터 예상됐으나, 침하 속도와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 예상대로라면 50년에 걸쳐 진행될 침하 폭이 조성 6년 만에 이뤄졌다. 속도는 더뎌졌으나 지금도 매년 침하가 이뤄지고 있다.인천국제공항도 바다를 메워 조성됐다. 간사이공항의 사례 때문에 인천공항도 부지 선정 때부터 개항 때까지 지반 침하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김포공항을 대체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신공항 부지로 인천 영종도가 선정된 것은 1990년 6월 14일이다. 설계를 거쳐 1992년 11월 1단계 부지조성공사가 시작됐다.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 바다를 메우는 공사가 뼈대였다. 인천공항 전체 부지면적 5천619만8천600㎡ 중에서 해상면적은 82%에 해당하는 4천600만㎡에 달했다. 특히 활주로, 계류장, 관제탑 등 인천공항 주요 시설들은 모두 해상 부분에 위치하는 것으로 설계됐다.공항은 수백 명의 승객을 태운 항공기가 뜨고 내리는 만큼, 큰 하중을 이겨낼 수 있도록 견고해야 한다. 하지만 인천공항이 해상을 매립해 들어선다는 이유로 지반 침하 주장이 불거졌다. 특히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환경파괴와 지반침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2000년 1월, "공사가 시작된 92년부터 시민사회단체들은 '갯벌을 매립해 공항을 건설했을 때 과연 첨단공법을 동원한다고 해도 부등침하를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었다"며 "영종도 공항은 너무나 넓은 면적에 두터운 뻘층이 다양한 양상으로 깔려 있기 때문에 예측하지 못한 결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는 어떨까. 인천공항은 개항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일각의 우려처럼 지반 침하 등의 문제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1991년부터 2020년 2월까지 인천공항 활주로 누적 침하량은 0.042~2.9㎝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인천공항 토목 설계 회사가 예측한 침하 폭 7.5㎝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규모다. 20년이 흘렀지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안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유도로와 계류장의 침하량도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항공기의 무게는 보통 승객과 화물까지 더하면 200~300t에 달한다. 그렇게 무거운 항공기가 시속 200㎞ 넘는 속도로 하강하다 굉음과 함께 활주로에 바퀴를 붙인다. 2001년 개항부터 인천공항 활주로에 내린 항공기는 총 200만대다. 이륙까지 포함한 운항횟수는 400만회를 넘었다.인천공항의 안전성은 침하가 급격히 이뤄지는 일본 간사이공항과 비교되고는 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최석인 연구위원은 "간사이공항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지반이 침하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며 "개항 6년 만에 여객빌딩 주변 지반이 12m 침하되고, 다른 곳도 평균 11m 가라앉아 '부등침하'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인천공항 건설 시에도 이러한 침하의 우려가 있었으나 침하와 관련한 아무런 문제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설계업체인 (주)유신의 최인걸 인천지사장은 인천공항 설계와 감리를 맡아 1995년부터 2001년 인천공항 개항 때까지 기술본부장을 맡았고 그 현장에 있었다.최 지사장은 "인천공항은 침하를 막기 위해 지반조사 등을 정밀하게 진행했고, 각 지질의 성질 등을 파악해 지반 침하를 막기 위한 첨단 방법을 동원했다"며 "안전하면서도 세계적인 공항으로 자리 잡은 모습을 보면 지금도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인천공항 조성 경험을 일본에서 소개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2000년 일본 사가대학교에서 열린 지반공학 국제심포지엄에서 인천공항 사례를 발표했다. 그는 "일본인들이 인천공항의 건설 기술에 대해 감탄했다"며 "간사이공항 침하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인 학자들이 부끄럽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1천년의 인천 해상매립 역사고려 강화도 천도후 식량확보 위해 메워김구, 젊은시절 일제 인천항 축조 동원도월미도·송도·남동·주안산단 등 '옛 바다'인천공항 입지 선정부터 안전성 우려가 제기된 만큼, 부지 조성 단계부터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지반조사는 부지조성구간 전체를 대상으로 2천300개소에서 시추조사를 진행했고, 3만2천212회의 현장시험과 2만7천267회의 실내시험을 거쳤다. 연약지반을 강화하기 위해 강관파일 3만2천여 개를 박았다. 강관파일은 일렬로 세우면 1천682㎞에 달한다. 서울과 부산을 2차례 왕복할 수 있는 길이이다.인천공항 건설을 위해 메워야 하는 바다는 만조 시 평균 수심이 1~2m로 얕았다. 그 규모는 여의도 면적의 13배에 해당한다. 이 너른 바다를 메우기 위해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에 총 길이 17.3㎞의 방조제를 쌓았다. 방조제로 막은 바다에 5m 두께로 1억8천만㎥ 토사를 부어 부지를 조성했다. 토사는 신불도와 삼목도의 산과 용유도 오성산을 깎아 마련했다. 이 때문에 100m를 넘던 이들 산의 높이는 절반 이하로 낮아졌다. 부족한 토사는 인근 바다에서 채취했다. 인천은 바다 매립과 관련해서는 1천년의 경험을 갖고 있는 특이한 이력의 도시이다. 그동안 꾸준히 바다를 메워 도시를 확장·발전해 왔다. 고려시대부터 바다를 메웠고, 그 땅은 농경지로, 공업단지로, 신도시로, 공항과 항만으로 활용되어 왔다.고려시대 강화도는 간척사업을 통해 농경지를 만들었다. 몽골의 침입으로 수도가 개성에서 강화도로 이전됐고, 강화에 급격한 늘어난 주민들의 식량과 군량미를 확보하기 위해 바다를 매립한 것이다. '고려사'에는 임금 고종이 몽골 침입 20여 년 뒤인 1256년 2월, 매립을 지시했다는 얘기가 실려 있다. "제포(梯浦)와 와포(瓦浦)에 둑을 쌓아 좌둔전(左屯田)으로 삼고, 이포(狸浦)와 초포(草浦)는 우둔전(右屯田)으로 삼도록 하라"는 내용이었다. 고종은 매립을 위한 인력 동원 방식과 자금 조달 방안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바다를 매립해 생긴 땅은 농경지로 활용했다. 이후에도 매립은 이어졌다. 조선시대에는 강화 석모도와 송가도를 이어 매립지가 만들어졌다. 현재 인천 지도를 보면 매립지가 도시 전체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다. 인천 중구 월미도는 소월미도와 합쳐졌다. 일제강점기 때 김구는 인천 앞바다를 매립해 만든 인천항 축조 공사에 동원됐다. 인천 경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남동국가산업단지, 주안국가산업단지도 과거엔 소금을 만드는 염전이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쓰레기장인 수도권매립지, 각종 국제기구와 글로벌 기업들이 운영되고 있는 송도국제도시도 바다 위에 세워졌다. 인천의 주요 시설 다수가 매립지 위에 조성된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인천공항 조성을 위한 바다 매립은 생활상의 변화를 가져왔다. 영종도와 용유도 등 각 섬에서 생활했던 주민들은 한 생활권으로 묶이게 됐다. 염전 등 바다와 관련된 직업이 대부분이었던 섬마을은 '공항 도시'로 바뀌었다. 이는 주변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영종도 서북쪽에 위치한 장봉도와 신도, 시도, 모도 주민들의 생활 방식이 크게 바뀌었다. 인천공항 조성 공사가 시작되기 전 이들 섬 주민들은 뭍으로 가기 위해 탄 배는 연안여객터미널이 종착지였다. 육지에서 섬으로 들어올 때는 그 반대였다. 이 배는 세어도, 신도, 시도, 모도, 장봉도 등 여러 섬을 거쳤고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 바다를 가로질렀다. 한 번 운행하는 데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됐다. 영종도와 용유도가 매립되면서 이 뱃길을 이용할 수 없게 됐고, 연안부두보다 가까운 곳에 삼목선착장이 조성됐다. 삼목선착장은 매립으로 영종도와 합쳐지기 전 삼목도 자리다. 거리가 가까워진 만큼 배 타는 시간은 30분으로 줄었다. 배 운항횟수도 기존엔 하루 1차례에 불과했으나 16차례로 늘어났다. 교통 환경이 나아졌다고 할 수 있지만, 연안부두 등 기존에 배를 타기 위해 들렀던 지역과는 왕래가 줄어들었다.장봉도 주민 박광국 씨는 "이제는 장봉도 주민들이 연안부두를 갈 이유가 없어졌다. 생활 권역이 바뀌게 된 것"이라며 "과거엔 선착장에서 주민들과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지금은 차에 탄 채로 배에 오르기 때문에 주민들과 교류하는 풍경은 없어졌다"고 했다.인천공항 건설은 주민들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와 함께 과거 삶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도 됐다. 인천 삼목도와 신불도 등에서는 신석기 시대 유물이 출토됐다. 인천공항의 건설을 계기로 문화재 조사가 진행됐다. 1차 발굴조사는 1995년 9월부터 1996년 9월까지 진행됐다. 그 결과 삼목도에서 신석기 후기로 추정되는 유물이 출토되는 등 서해 연안 도서 지역의 선사 문화를 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영종도 열병합발전소 예정지와 용유도 지역에서 진행된 2차 발굴조사에서도 빗살무늬 토기 등이 발견됐으며 현재까지 발굴된 유물만 모두 1만여 점에 이른다. 현재도 발굴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영종역사관 김연희 학예사는 "인천공항 건설을 계기로 진행된 유물 조사 결과 영종도는 국내 최대 신석기 유물이 출토됐다. 운서동 한 지점에서 유물이 58기 나왔고, 이는 지금까지 조사된 서울 암사동 유적(30기), 안산 신길 유적(24기), 시흥 능곡 유적(26기) 등과 비교해도 월등히 많다"며 "유적이 만들어진 시기도 전기 신석기 시대로서 한반도 신석기 시대 주거문화 연구를 위한 표준 유적으로 꼽히고 있다"고 설명했다./정운기자 jw33@kyeongin.com1993년부터 1999년까지 인천공항 부지를 항공촬영한 사진. 인천공항 매립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여준다.인천공항 부지조성 공사 현장. /인천국제공항공사 제공인천공항 건설을 위해 방조제를 쌓고 바다를 막는 '물막이'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제공

2020-03-18 정운

[줌인 ifez]송도 경원재 '앰배서더' 이름 5년 더

기준점수 60점 보다 높은 '88점'내일 본회의 통과 땐 운영 연장'트리플…' 이익금 회수도 추진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5성급 한옥호텔 '경원재'를 앰배서더 호텔 그룹이 5년 더 운영할 전망이다.인천시의회 산업경제위원회는 지난 13일 '인천한옥마을(경원재) 민간위탁 동의안'을 원안 가결했다.경원재는 인천 송도국제도시 G타워 인근에 있는 연면적 6천551㎡ 규모의 5성급 한옥호텔이다. 객실 30개, 연회장 2개, 미팅룸, 한식당, 체련장·홍보관 등을 갖추고 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사회 문화적 기반시설 확충을 위해 2015년 4월 건립했으며, 공모 방식을 통해 앰배서더 호텔 그룹((주)서한사)을 위탁 운영 업체로 선정했다. 호텔 운영은 전문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경험이 있는 민간 업체에 맡긴 것이다.위탁 운영 기간은 2015년 5월부터 2020년 4월 말까지 5년간이다. 인천경제청은 내달 말 위탁 운영 기간 만료를 앞두고 앰배서더 호텔 그룹의 경원재 운영 실적과 관리 능력 등을 평가했다. 전문가 5명이 6개 항목에 대해 평가한 결과, 기준점수(60점)보다 높은 88점이 나왔다. 위탁 운영 계약서를 보면, 1회에 한해 5년 연장할 수 있다. 동의안이 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앰배서더 호텔 그룹의 경원재 위탁 운영 기간이 5년 연장되는 것이다.인천경제청에 따르면 경원재는 첫해(2015년)에 약 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후 2016년부터 2018년까지 흑자를 냈으나, 지난해엔 6천800만원 적자로 돌아섰다. 하지만 지난해의 경우 예산상 손실은 없었다고 한다. 위탁 운영사는 인천경제청으로부터 운영 수수료를 받고, 수익 발생 시 인센티브를 얻는 구조라고 한다. 지난해 경원재 객실 점유율은 약 70%에 달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확대관광전략회의, 세계 5대 특허청 청장 회의, 아시아 태평양 환경부 장관 포럼 등 중요 행사가 경원재에서 개최됐다. 시의회 산업경제위원회는 이번 동의안을 원안 가결하면서 담당 부서 변경, 차별화 전략 수립, 관리·감독 강화 등을 인천경제청에 주문했다. '환경녹지과'가 호텔 운영 업무를 담당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송도 지역에 호텔이 많기 때문에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원재 인천경제청장은 "호텔 건립 당시 땅이 공원 부지라서 환경녹지과가 담당하게 됐다"며 "지금은 호텔이 운영 중이기 때문에 담당 부서를 변경·지정하겠다"고 답변했다.이날 (주)인천투자펀드의 투자금 일부와 투자 이익을 지분 매각 방식으로 회수하기 위한 '인천시 출자기관 (주)인천투자펀드 비례인적분할 동의안'도 산업경제위원회 동의를 얻었다. 인천투자펀드 비례인적분할은 송도 복합쇼핑몰 '트리플 스트리트' 투자금 250억원과 투자 이익 250억원 등 약 500억원을 회수하기 위한 방안(3월10일자 1면 보도)이다. 산업경제위원회는 인천투자펀드 비례인적분할에 동의하면서 투자 이익금이 예상보다 적을 경우 시의회 동의 절차를 다시 거쳐달라고 요구했다.산업경제위원회를 통과한 이들 동의안은 17일 본회의에서 최종 처리될 예정이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송도국제도시에 있는 5성급 한옥호텔 '경원재'. /인천경제청 제공

2020-03-15 목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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