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인천)

['대한민국 나들목' 인천공항 이야기·(5)]섬마을, 금싸라기 땅이 되다

1989년 노태우 대통령 "매립 공항 건설"교통부 부인에도 외지인 몰려들어 투기그해 1분기에만 땅값 70% 넘게 올라가개발정보 유출·대기업 소유 등 의혹도1990년 6월 인천국제공항 건설이 확정됐을 때 작은 섬마을이던 영종도·용유도·삼목도·신불도는 순식간에 금싸라기 땅으로 바뀌었다. 물론 그 몇 년 전부터 소문이 돌면서 이미 땅값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인천국제공항 건설사업을 계획한 일정과 예산에 맞춰 원활하게 진행하려는 '정부'와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과 바다를 그냥 내어줄 수 없다는 '주민' 간 보상문제를 둘러싼 팽팽한 줄다리기가 10년 넘게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투기꾼들'까지 가세하면서 영종도에는 욕망이 들끓는 부동산 광풍이 휘몰아쳤다. 그 속에서도 마을 공동체를 지키려는 노력이 있었다.정부가 대형 국책사업을 추진할 때 가장 큰 사회적 관심거리이자 걸림돌은 보상문제이다. 오죽하면 왕이 통치하던 조선시대에도 철거 보상이 있었다. 서울역사편찬원이 '경복궁 영건일기'(19세기 말·일본 와세다대학 소장)를 토대로 지난해 12월 펴낸 '경복궁 중건 천일의 기록'을 보면, 1865년(고종 2년) 4월 한성부가 경복궁 주변 기와집 85칸, 초가집 592칸, 임시가옥 10칸 반에 한 칸당 각각 10냥, 5냥, 2냥씩 철거 보상금을 지급했다.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 무상으로 몰수할지를 두고 토론이 있었으나, 결국 보상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이때부터 이듬해까지 경복궁을 둘러싼 기와집 1천872칸, 초가집 2천553칸, 임시가옥 77칸 등 총 4천502칸에 달하는 민가가 보상금을 받고 철거됐다. 당시 경복궁 중건사업을 위해 전국에서 거둬들인 돈은 83만4천266냥이었는데, 이 가운데 4%인 3만3천833냥을 보상비로 썼다. 1865년 경복궁 공사에 참여한 담모군(일꾼)과 장인(기술자)은 역할에 따라 하루 품삯으로 2.5~4전을 받았다. 당시 화폐 단위로 10전은 1냥이다.인천국제공항 건설과 경복궁 중건은 당시 국가의 새로운 동력을 찾기 위한 최대 건설 프로젝트였다. 둘 다 그만큼 시급하고 절실했다. 이들 프로젝트 모두 사업대상지의 주민 협조가 필수 불가결한 과제였다.인천공항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총 5천619만㎡ 부지가 필요했다. 대부분은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 바다를 매립해 확보했고, 보상이 필요한 사유지는 944만5천㎡로 계획됐다. 영종·용유지역 일부에 삼목도와 신불도 전체를 포함하는 면적이다. 바다를 생계수단으로 삼는 주민들의 어업권 보상도 이뤄졌다.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전신 격인 한국공항공단(현 한국공항공사)은 1991년부터 2001년 2월까지 10년 동안 단계적으로 토지 보상을 진행했다. 이 기간 총 보상금은 2천686억원인데, 워낙 장기간에 걸쳐 집행했기 때문에 물가와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을 고려하면 액면 그대로 보상금 규모를 환산하기는 어렵다.한국공항공단이 공식적인 보상절차에 돌입하기 전부터 영종도·용유도·삼목도·신불도에는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었다. 당시 상황을 들여다보면, 인천시 순시에 나선 노태우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도화선이 됐다. 노태우 대통령은 1989년 3월 8일 새해 연두방문 차원으로 인천시청을 찾아 "수도권 지역의 제2국제공항을 인천의 영종도나 인근 바다 매립지에 건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990년 6월 교통부의 확정 발표가 있기 무려 1년 3개월 전이다.교통부는 노 대통령이 언급한 지 이틀 만에 '영종도 공항설'을 부인했다. 그러나 대통령 발언 직후 하루 수백명의 외지인이 영종도로 몰려들어 땅을 사들였다. 속칭 '떴다방'(불법 임시 중개시설)이 성행하면서 '가짜 개발 구상도'까지 나돌았다고 한다. 1989년 6월 각종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그해 1분기 영종도와 용유도 땅값은 전년도 4분기보다 70.42%나 급등해 전국 최고 수준의 오름세를 보였다. 이때 서울 강남구 땅값이 전년도 4분기보다 30.97% 오른 것에 비하면 가히 폭발적이다. 1990년 8월 평화민주당 토지투기조사위원회는 영종도와 용유도 전체 토지 가운데 73%가 외지인 소유라고 주장하며 개발정보가 사전에 유출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대기업 소유라고 평민당은 주장했다.주민들 대책위 꾸려 공단과 협상 나서공유수면 매립 어업권도 단계적 보상어선사재기 횡행·"금액 적다" 소송도영종도 일대 섬 주민들도 1990년대 들어서 섬별, 마을별로 보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한국공항공단과의 보상협의를 준비했다. 정부는 공시지가보다 다소 높은 보상금을 제시했지만, 주민들은 실거래 가격보다 터무니없이 낮다고 반발했다. 경인일보 1992년 1월 4일자 신문을 보면, 영종도 운서동 주민들은 "공항부지 중 외지인 소유 43필지 12만여평의 평당 보상가 4만~5만원은 주민들 사이에 형성된 임의시가 10만원 선의 절반에 못 미친다"며 "교통부가 현지 주민들은 제쳐 두고 현실감이 덜한 외지인을 대상으로 우선 보상협의에 나선 것은 계략"이라고 반발했다.삼목도 쪽 인천공항 기공식 부지도 주민 반발에 확보하지 못하고, 결국 1992년 9월 개최하려던 인천공항 기공식이 11월로 미뤄지기도 했다. 1996년 5월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기공식에 주민대표로 참석한 강영복(85)씨는 김영삼 대통령 바로 옆에서 함께 발파버튼을 눌렀다. 강영복 씨는 "김영삼 대통령이 '보상 잘 받았습니까'라고 물었는데, 잘 못 받았다고 대답했다"며 "대답을 들은 대통령이 주민들을 더 챙기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보상협의 과정은 어땠는지 1993년부터 2001년까지 삼목주민보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유건호(63) 중구농협 조합장에게 들어봤다. 그의 가족은 6대째 삼목도와 영종도에서 살고 있다. 유건호 조합장은 "주민보상대책위가 13번에 걸쳐 자체적으로 토지 감정평가를 받아서 한국공항공단과 협상을 벌였는데, 처음에는 평당 7만원 부르던 땅을 수십만원까지 올려 보상받았다"며 "땅만 갖고 따지는 게 아니라 농작물, 돼지나 소 같은 가축을 두고도 한바탕 씨름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인천공항 보상이 전국적인 '롤모델'이 됐는지 전국의 국책사업 예정지 주민들이 유건호 조합장에게 '제대로 보상받는 법'을 강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무안국제공항 예정지 주민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는 그 지역 경찰서 정보과 소속 경찰관이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고 압력을 넣을 정도였다고 한다.인천공항 건설로 섬 전체가 수용되기 전까지 삼목도에는 200여 가구가 살았다. 적게 보상받은 사람이 3천만원, 많게는 100억원 넘게 보상금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삼목도 사람들은 마을 농악계도 활발하고, 자체 장학회도 운영할 정도로 끈끈했다고 한다. 유건호 조합장은 "대책위에 브로커가 끼려고도 했지만, 주민들이 워낙 단결이 좋아서 끝까지 스스로 협상했고 내부 분쟁도 적었다"며 "삼목애향회와 삼목장학회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인천공항은 4개의 섬 일대 공유수면을 매립해 건설했기 때문에 어업에도 지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1991년부터 어업 피해 조사용역을 진행하기 시작해 2000년까지 단계적으로 어업권 보상에 나섰다. 보상지역은 영종·용유뿐 아니라 옹진군 북도면 장봉도와 신·시·모도, 강화와 김포 일대까지였다. 바지락, 굴 등을 양식하는 '면허어업' 990억원, 어선과 어구를 이용하는 '허가어업' 197억원, 맨손으로 어패류를 채취하는 '신고어업' 127억원이 보상금으로 집행됐다. 인허가 절차 없이 어업활동을 했던 무면허·무허가·무신고 어업 관련해서도 보상대상으로 선정해 총 242억원을 보상했다. 일부 어민들은 보상금이 낮게 책정됐다며 인천공항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노인 상대 '금전 요구' 협박전화 많아도박으로 돈 날리고 막노동판 전전도초기 공항직원과 주민 '미운정 고운정'어업권 보상을 노린 '어선 사재기'도 적지 않았다. 경인일보 1990년 8월 29일자 신문을 보면, 당시 중구청에 등록된 어선은 영종지역 어촌계 78척, 용유지역 어촌계 141척 등 모두 219척으로 연초보다 30척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들은 빚을 내서라도 강화도나 경기도 화성 등지에서 폐선 직전의 어선을 1척당 500만~1천500만원씩 주고 사들였다. 물론 대부분은 조업활동을 하지 않고 정박시켜 놨다.영종·용유지역 어민들은 보상 대상이 아닌 일반인에게도 보상금이 무더기로 지급됐다고 인천수협 등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인천지검은 1993년 7월 어업 보상 대상자 선정 경위 등을 수사한 결과, 보상금 총 8억5천만원을 중간에서 가로채거나 무자격자에게 지급한 어촌계장 등 5명을 구속했다.보상받은 주민들이 마냥 행복한 삶을 살진 않았다. 노인들이 사는 집을 골라서 "손주가 어느 학교 다니는지 알고 있다"며 돈을 요구하는 정체불명의 협박전화가 많았다고 한다. 보상금으로 영종도 땅을 다시 사는 주민도 상당수였는데, "건축허가가 나면 땅값이 10배 이상 뛸 것"이라는 사기꾼의 말에 속아 쓸모없는 땅을 수십억원씩 주고 샀다가 빈털터리가 된 사람도 많았다. 50대 영종도 토박이 주민은 "2006년 12월에 2차 토지보상을 받고, 이듬해 설 명절에 안 싸운 집이 없을 정도로 가족·친척 간 갈등이 많았다"며 "보상받고 강원랜드에서 하루에 1억원씩 날리면서도 '잘 놀았다'고 떵떵거리던 주민이 지금은 막노동판을 전전하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보상협의 과정에서 정부와 주민 간 오해를 푸는 데는 강동석(82) 전 건설교통부 장관의 역할이 컸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강동석 전 장관은 1994년 출범한 신공항건설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해 인천공항 건설공사를 주도했고,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초대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을 지냈다. 강영복 씨는 "강동석 장관이 현장에서 직접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어가면서 항상 공단 직원들에게 주민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고 주문하곤 했다"며 "인천국제공항공사 초기 직원들은 현장에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서인지 보상이 끝난 이후에도 무척 가깝게 지냈다"고 말했다.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1994년 10월 27일 인천국제공항 건설현장 인근에서 영종·용유·삼목·신불 주민 700여명이 상여를 앞세워 보상 등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정부에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인일보DB인천국제공항 건설사업으로 섬 전체가 수용된 삼목도의 초대 보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강영복 씨(왼쪽에서 다섯 번째)가 1996년 5월에 열린 인천공항 여객터미널 기공식에 주민대표로 참석해 김영삼 대통령(왼쪽에서 네 번째) 바로 옆에 서서 발파버튼을 누르고 있다. 이 자리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강영복 씨에게 보상은 잘 받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국가기록원 제공

2020-03-11 박경호

[줌인 ifez]계획 수정·보완 마친 '중점경관관리구역'

송도, 워터프런트 다양한 水체험시설… 11공구 클러스터 형성 추가청라, 커낼웨이 중심 '친수형'… 사파이어존 연내 사업자 선정 기대영종, 영종타운 상세계획 재정비… 미단시티 산맥형 스카이라인 구축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인천경제자유구역(IFEZ) 경관계획 재정비 용역을 마무리했다. 이번 용역은 2014년 11월 수립한 IFEZ 경관계획을 현 개발계획과 여건에 맞게 수정·보완하는 작업이었다. 공간적 범위는 송도·청라·영종국제도시 총 122.43㎢이며, 시간적 범위는 2020~2024년이다.인천경제청은 이번 용역에서 송도·청라·영종이 공통으로 추구해야 할 경관 개념을 강화했다. 또 3개 지구가 지향해야 할 경관 이미지를 설정하는 등 지구별 특성을 강조했다. 중점경관관리구역(계획)에 대해선 특색 있는 경관 형성 및 관리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인천경제청 도시디자인단 관계자는 "2014년 IFEZ 경관계획 수립 이후 변경된 점들을 반영하고, 경관 형성·관리계획을 구체화했다"며 "기존 경관계획의 큰 틀은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IFEZ 경관계획 재정비 용역 준공을 계기로 송도·청라·영종의 중점경관관리구역을 살펴봤다. → 위치도 참조■ 선도적 경관중심도시 '송도'송도지역 중점경관관리구역은 국제업무단지, 6·8공구, 어민생활대책단지, 상징가로(街路), 11공구, 조류 대체 서식지다.송도국제업무단지에는 포스코타워, G타워, 센트럴파크, 트라이보울, 아트센터 인천(콘서트홀) 등 우수한 건축물이 있다. 송도국제업무단지는 아직 개발이 진행 중이며 송도 주민들은 경관 심의를 강화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특색 있는 건축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관리·감독해달라는 것이다. 인천경제청은 워터프런트 주변에 수(水) 체험 시설과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 다채로운 수변 경관 조성을 유도한다. 우수 건축물을 중심으로 특화거리를 조성하고 야간 경관을 강화한다. 상업지역에 대해선 품격 있는 옥외광고물 설치를 유도해 정연한 가로 경관을 형성한다.6·8공구 경관계획은 6공구 인공호수를 중심으로 수변 경관을 강화하는 게 기본 원칙이다. 이를 위해 인공호수 접근성을 확보하고 시각 통로와 바람길을 조성한다. 랜드마크(고층 건물)를 활용한 경관 형성 계획은 유보 상태다. 애초에는 151층짜리 '인천타워'를 지어 텐트형 스카이라인을 연출할 계획이었는데, 인천타워 건립은 무산된 상태다. 인천경제청은 향후 랜드마크 높이를 고려해 6·8공구 스카이라인을 다시 계획할 방침이다.11공구 경관계획은 변화가 많다. 2014년 계획은 수로 조성에 맞춰 개방적이고 활력 있는 경관을 연출하는 게 중점이었다면, 이번 계획엔 '클러스터 경관 형성'이 추가됐다. 이는 인천경제청이 바이오 클러스터 확대를 위해 11공구 내 산업·연구시설 용지를 늘리고 위치를 재배치한 데 따른 것이다. 인천경제청은 11공구 산업·연구시설 용지에 개방적이면서 친환경적인 경관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계획이다.인천경제청은 이번에 IFEZ 경관계획을 재정비하면서 어민생활대책단지 건축물 형성 개념을 시각적으로 구체화했다.■ 빛나는 친수도시 '청라'청라의 중점경관관리구역은 커낼웨이다. 커낼웨이는 주거·상업지구와 국제업무단지 등 각 구역을 관통하는 척추와 같은 시설이다. 인천경제청은 커낼웨이를 중심으로 친수형 도시 경관을 형성할 계획이다. 커낼웨이 권역은 사파이어존(국제업무단지), 크리스털 랜드마크(시티타워), 루비존, 에메랄드존으로 구분된다.사파이어존은 청라의 대표적인 경관 권역으로 푸른 보석 이미지를 연출한다. 청라국제업무단지는 사업자를 찾지 못해 장기간 방치된 상태였으나, LH와 인천경제청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사업성 확보 및 사업자 공모 방안을 마련해 추진하고 있다. 올해에는 사업자 선정 및 토지 매매계약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크리스털 랜드마크 권역은 청라 호수공원에 건립하는 '시티타워'를 중심으로 조망을 확보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체험과 이야기가 있는 공간을 조성한다. 지난해 11월 공사를 시작한 시티타워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448m의 전망용 건물이다.루비존은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상업가로, 에메랄드존은 휴식·레저를 통한 정적인 수변 경관을 형성한다. 이와 관련, 인천경제청은 최근 '청라 커낼웨이 경관조명 개선사업'을 위한 실시설계 용역에 착수했다.■ 글로벌 휴양도시 '영종'영종의 중점경관관리구역은 영종타운, 미단시티, 용유무의 등 3곳이다. 영종 지역은 명칭이 '영종지구'에서 '영종국제도시'로 바뀌고, 용유무의 일부 지역이 경제자유구역에서 해제됐다. 청라와 영종을 연결하는 제3연륙교 건설사업이 진행 중인 것도 이슈다.영종타운은 영종하늘도시 경관상세계획과 연계해 우수 건축물, 오픈 스페이스, 가로시설 등을 조성한다. 인천경제청은 IFEZ 경관계획을 수정·보완하면서 영종타운 경관상세계획도 재정비했다.미단시티는 다양한 용지가 연결되는 산맥형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게 된다. 용유무의는 관광적 요소와 결합해 조망점을 계획하고, 주변 녹지와 바다를 고려해 건축물의 디자인·색채, 야간 경관을 특화한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20-03-08 목동훈

['대한민국 나들목' 인천공항 이야기·(4)]인천국제공항 입지

#1960년대 '신공항론' 대두일제 '대륙침략' 기항지 여의도공항 건설1939년 김포에 '군용'… 해방후 관문 역할항공수요 급증… 대체지 낙점 20여년 걸려#처음부터 영종은 아니었다1989년 4차 타당성조사까지 이름 안올라소음피해·공사비 적고 서울 접근도 용이환경훼손 논란에도 시화지구 제치고 선정소금 굽던 섬마을 인천 영종도가 왜 공항 입지로 제격이었는지는 과거의 선정 과정을 살펴보지 않더라도 오늘날 인천국제공항의 성공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인천이 아닌 곳에 공항이 들어선다는 게 상상이 안 될 정도다. 김포공항을 대체할 수도권 신공항의 영종도 유치는 한반도의 배꼽 자리에 위치해 수도권 관문도시 기능을 타고났던 인천의 숙명이기도 했다.우리나라 최초의 공항은 영종도와 마찬가지로 섬에 지어졌다. 일제는 1916년 서울 여의도를 군용지로 매수해 비행장을 건설했다. 당시 여의도는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한강의 사구(沙丘)로 도심과 단절돼 소나 키우던 작은 섬이었다. 용산과 노량진 등 당시 경인철도가 설치된 서울의 요충지와 인접해 있으면서 인적이 드문 여의도는 공항 입지로 제격이었다.1916년 6월 13일자 매일신보에는 "용산철교의 하류 한강중의 대사주(大砂洲) 여의도는 71만평의 대사원(大沙原)인데 사구상(沙丘上) 100여호의 농촌은 6월 말로 전부 퇴거케 하야 목하 과반수는 철퇴하얏는데 다수는 영등포 부근의 시흥군 관내에 이주하는 중이며 차지(此地)는 군용지로 심히 고가로 매수한 것이라더라"는 기사가 실렸다.초기 여의도공항은 간이 비행장에 가까웠다. 이후 일본에서 항공 관련 법령이 제정됐고, 1929년 노량진~여의도 사이 도로 개설 사업이 완료되면서 격납고와 대합실 등 제법 공항의 모습을 갖췄다. 1㎞ 길이의 노량진~여의도 간 도로는 지금으로 치면 영종대교와 인천대교처럼 도심과 공항을 연결해주는 기능을 했다.여의도공항은 좋게 말하면 동북아 '허브공항' 역할을 했지만, 이는 일제의 침략 거점을 의미하기도 했다. 중국 대륙을 침략하기 위한 중간 기항지 역할을 했던 거였다.해방 직후인 1945년 8월 18일 이런 굴곡진 역사를 가진 여의도공항에 장준하 등 임시정부 선발대가 C-47 미군 수송기를 타고 해방 조국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어 그해 11월 23일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 선생도 C-47로 여의도 땅을 밟았다. 지금의 여의도공원 자리다.여의도를 시작으로 평양과 대구, 신의주, 함흥, 청진, 울산 등 6개 지역에 간이 비행장이 설치됐고, 1939년 3개의 활주로를 갖춘 김포공항이 역시 군용으로 만들어졌다. 김포공항은 당시 행정구역상 경기도 김포군 양서면 방화리였는데 지금은 서울에 편입됐다. 1963년 영등포구에 편입돼 공항동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1977년 신설된 강서구로 재배치됐다.김포공항 자리는 너른 평야였다. 도심과는 다소 떨어져 있었지만, 올림픽대로, 강변북로 등을 통해 서울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김포공항은 1958년 국제공항으로 지정돼 여의도공항의 기능을 흡수했고, 이때부터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한 2001년까지 대한민국 하늘길의 관문 역할을 해왔다.김포공항을 대체할 수도권 신공항 건설 필요성은 1960년대 후반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김포공항은 해방 후 미군에 의해 확장됐고,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됐다가 1951년 유엔군에 의해 길이 2천468m, 폭 45m의 활주로로 다시 태어났다. 1958년 국제공항으로 지정된 이후부터 우리나라 항공수요를 전담하다시피 한 김포공항은 1960년 후반부터 수요가 급증하고, 대형기가 취항함에 따라 수도권 신공항 건설이 정부 과제로 떠올랐다. 30년 전 인천 영종도가 수도권 신공항으로 결정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4차례에 걸친 타당성 조사와 경기도 남부권 간척지 시화1·2지구와 경쟁 끝에 1990년 6월 영종도가 낙점됐다.1969~1970년 실시된 1차 타당성 조사에서는 미국의 공항전문 업체가 김포공항 확장과 수원 이전 방안을 검토했다. 이때만 해도 해안에 공항을 짓는 것은 수도권 교통망이나 경제·기술 여건상 엄두도 못 낼 사업이었다. 그러나 수원은 도심권 소음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고, 결국 김포공항 확장이 최종안으로 채택됐다. 정부는 1980년까지 청사 건립과 활주로 확장 등 1·2단계 확장 사업을 진행했다.수도권 신공항 후보지 2차 조사는 1979~1980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맡았다. 1990년이면 김포공항이 한계에 다다를 것이란 예측 속에 반월공단 인근 해변인 군자 지역, 시화 간척지 일부와 육지를 포함하는 남양지역, 이천 평야지대, 수원 군(軍) 공항 등이 거론됐다. KIST는 군자 지역을 최적지로 건의했다. 그러나 국방부가 주요 공군 기지인 수원·오산의 군용기 항로와 겹쳐 충돌 위험이 크다며 반대해 결국 무산됐다. 대안이었던 이천도 당시 식량 자급을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논밭 훼손을 우려하는 여론이 일었고, 상수원 오염 문제도 있었다. 결국 1988년 서울올림픽에 맞춰 김포공항 3단계 확장을 하는 것으로 최종 결론지어졌다.정부는 곧바로 3차 타당성 조사에 착수했다. 1982~1983년 국내외 업체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신공항 후보지를 재조사했다. 조사대상은 수원, 이천, 오산, 평택, 아산, 천안, 청주 등으로 충청권까지 범위가 확대됐다. 조사 결과에서는 평택, 이천 지역이 우수하다고 나왔으나 정치권 입김이 작용해 서울과 124㎞나 떨어진 청주 군 공항이 선정됐다. 국토 균형개발과 수도권 인구 분산 논리였다. 청주공항은 대통령에까지 보고돼 추진됐으나 결국에는 김포공항을 대체할 수도권 신공항이 아닌 중부권 공항으로서 역할이 축소됐다.1988년 초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면서 수도권 신공항 문제가 다시 불을 지폈다. 김포공항 주변 소음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추가 확장은 미봉책에 불과했다. 정부는 소음피해가 없고, 24시간 운영이 가능한 해안 또는 해상에 수도권 신공항을 짓기로 하고 후보지를 물색했다. 이때 처음 인천의 외딴 섬 영종도의 이름이 등장했다.1989년 정부는 신공항건설 추진위원회를 꾸리고, 신공항의 조건을 크게 6가지로 정했다. 조건은 ▲단계별 확장이 가능한 부지 ▲공항도시 개념 도입 ▲육해공 복합운송 기지화 ▲소음피해 해소 ▲24시간 운영 ▲아시아 최대 허브 기능 등이었다.4차 타당성 조사는 1989~1990년 국내외 공항 전문 용역사의 합작으로 진행됐다. 입지선정의 정책적 기준이 6가지였다면 기술·경제적 기준은 10가지였다. 공역과 장애물, 기상, 지형, 접근성, 환경, 토지이용, 확장, 지원시설 확보, 건설비 등이었다. 이런 기준에 따라 경기·충청권 22개 후보지에 대한 예비 조사를 했고, 이를 7개로 압축한 뒤 영종도와 시화1·2지구를 후보지로 결정했다. 두 지역은 해안을 끼고 있는 갯벌이라는 점에서 유사했고, 여러 조건이 비슷했으나 결국 영종도가 최종 낙점됐다.영종도는 시화지구에 비해 소음 피해가 적었고, 수심이 2m 더 낮아 공사비가 적게 들었다. 특히, 공역 부문에서 시화는 수원·오산 군 공항의 영향을 받았다. 서울 기준 접근성도 영종도는 50㎞, 시화는 70㎞ 거리였고, 영종도는 미개발지인 서울 북부와 김포를 관통하는 전용도로 개설이 쉬웠으나 시화는 영등포와 안산 신도시 등 기존 도심을 가르는 도로를 건설해야 했다. 영종도는 기존 김포공항과의 연계도 용이했고, 시화는 주변에 농공단지가 개발될 계획이라서 공장 매연이 안개처럼 시정을 악화할 우려가 있었다. 정부는 1990년 6월 14일 신공항건설 추진위원회 3차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영종도를 후보지로 결정했다.반대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환경단체와 입지 탈락지를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있었고, 대책위까지 구성돼 여론전을 펼쳤다. 이들은 "김포공항과 중복되고, 공항 규모가 지나치게 크며 매립공사와 연약지반 보강 등 건설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점에서 입지로서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철새 도래지와 갯벌 훼손 등 환경파괴 논란이 일었고, 경인 축 교통난을 이유로 '서울에서 영종도까지 3시간 이상 걸릴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인천공항 개항 이후 눈 녹듯 사라졌다.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인천공항 입지 선정 당시만 해도 여러 우려가 제기됐지만, 20년째 들어선 지금에 와서는 모두 불식이 됐다"며 "영종도는 섬과 섬을 매립해 만든 넓은 땅을 활용한 활주로 확장 가능성이 풍부하고, 도심과 떨어져 24시간 운영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영종도는 '에어포트'뿐 아니라 레저, 쇼핑, 관광까지 가능한 '에어시티' 개념으로 성장했다"며 "만일 시화지구로 선정이 됐다면 공단 때문에 여러 제약이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영종도는 역사적으로도 한반도의 대외 요충지였다. 조선의 인문지리학자 이중환(1690~1756)이 쓴 '택리지' 경기도 강화부 편에는 "우리 왕조에 들어서는 삼남의 조세를 실은 배들이 모두 손돌목을 지나서 서울로 올라오므로, 바닷길의 요충이라며 유수관을 두어 지키게 했다. 또 (강화도) 동남쪽 건너편에 있는 영종도에 방어영(防禦營)을 설치하고 첨사를 두어 지키게 했다"고 나와 있다.지종학 대한풍수지리학회 이사장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 입장에서 보면 남북통일을 가정했을 때 서해안 섬(영종도)이야말로 글로벌 전초기지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며 "지금은 접경지역이라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강화도 한강하구(조강)를 다니지 못하지만, 통일이 되면 반드시 서해안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글/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인천국제공항 입지선정 일지▲1969~1970 제1차 수도권 신공항 타당성 조사 → 김포공항 1·2단계 확장▲1979~1980 제2차 타당성 조사 → 김포공항 3단계 확장▲1982~1983 제3차 타당성 조사 → 중부권공항(청주) 신설▲1987. 7 교통부 장관, 김포공항 소음피해 해결 근본 대책 수립 지시▲1987. 12 교통부, 해안지역 신공항 건설 건의▲1988. 2 노태우 정권 출범 후 수도권 신공항 건설 재논의▲1989~1990 제4차 타당성 조사 → 영종도, 시화1·2지구 최종 후보지 선정▲1990. 6 신공항 건설 입지로 영종도 확정신구 관문공항·후보지 위치도최초의 공항인 서울 여의도 비행장의 1930년대 전경. /서울역사편찬원 제공1990년 신공항 입지 선정을 위해 영종도에 설치한 기상관측소. /한국교통연구원 제공1992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영종도 신공항 기공식. /국가기록원 제공

2020-03-04 김민재

[줌인 ifez]아파트 숲 중학교, 이대로라면 '콩나물 교실'

시교육청, 부지 1곳 더 확보 판단준비 않으면 2024년 후 문제 직면8공구 '추가 설립지 마련'이 관건인천경제청 "필요성부터 검토 중"인천 송도국제도시 6·8공구에 중학교 설립 부지가 1개 더 필요한 것으로 인천시교육청이 판단했다. 인천시교육청은 지금부터 부지 확보 등 중학교 설립을 준비하지 않으면 2024년 이후 과밀 학급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1일 인천시교육청에 따르면 시교육청은 최근 송도 8공구에 중학교 설립 부지를 마련할 수 있는지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 문의했다. 송도 8공구 인천아암초등학교(올해 3월 개교) 인근에 중학교를 지을 부지가 있는지 검토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시교육청이 인천경제청에 요청한 면적은 1만4천㎡다.송도 6·8공구에는 중학교 부지가 3개 있다. 8공구에 (가칭)'해양1중', 6공구에는 '해양2중'과 '해양3중'이 있다. 해양1중과 해양3중은 각각 2021년, 2022년 문을 열 예정이다. 해양2중은 아파트 입주 시기 등 주변 공동주택 개발 상황을 고려해 개교 시기가 결정된다. → 그래픽 참조시교육청은 이들 3개 중학교 외에 1개가 더 필요한 것으로 판단했다. 2024년 기준 중학교 학급당 평균 인원이 37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기 때문이다. 시교육청은 중학교 학급당 인원이 30~35명이면 과밀 관심 지역, 35명을 넘으면 과밀에 접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과밀을 막기 위해선 중학교를 1개 더 설립해야 한다는 것이다.시교육청이 중학교 설립 추가 부지로 송도 8공구를 지목한 이유는 '아파트 밀집 지역'이기 때문이다. 송도 1~7공구는 개발이 거의 완료된 상태로, 중학교를 지을 곳이 마땅치 않다. 6·8공구 학생들이 다닐 학교이기 때문에 통학 거리도 고려해야 한다. 공유수면 매립이 진행 중인 송도 11공구의 경우, 별도의 학교 설립 계획을 시교육청과 인천경제청이 협의 중이다.문제는 송도 8공구에 추가로 중학교 설립 부지를 마련할 수 있느냐다. 시교육청이 검토를 요청한 인천아암초 인근에는 '해양3고' 설립과 공동주택(A5·A6블록) 조성이 계획돼 있다.시교육청 관계자는 "송도 6·8공구 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데다, 1공구 상업지구 등에 오피스텔이 들어서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점을 감안하면 송도 6·8공구 쪽에 중학교 부지 1개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인천경제청 관계자는 "중학교 신설 부지가 추가로 필요한지부터 검토하고 있다"며 "부지가 있느냐가 문제인데, 필요하다면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20-03-01 목동훈

['대한민국 나들목' 인천공항 이야기·(3)]영종도 염전

소금생산 역사 체계적 조명 필요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서기 전 염전은 영종도 경제의 한 축이었다. 영종도의 염전 역사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소금을 생산하는 염전이 있다. 소금 생산방식도 많이 바뀌었다. 고려시대부터 현대적 방식까지 염전의 역사를 꿰고 있는 곳이 바로 영종도다. 하지만 염전의 흔적은 자꾸 사라지고 있고, 옛일을 기억하는 이들도 하나둘 세상을 뜨고 있다. 한반도 소금 생산의 역사를 한데 보여줄 수 있는 영종도, 좀 더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영종도에 있던 '건대염전'은 건국대학교가 조성했다. '건국대학교 70년사'에도 이러한 내용이 소개된다. 영종도 주민 이정국씨의 할아버지는 염전 축조 기술자였는데 건대염전 공사를 맡아 진행했다. 공사 이후에도 할아버지는 염전을 관리했고, 대를 이어 아들(부친)도 염전에서 일했다. 1980년대 염전 일부를 매입했다가 되팔았다. 이정국씨는 건대염전 축조와 관련해 교도소 수감자들이 공사에 동원됐다고 했다. 그는 "염전 공사 때 재소자들이 동원됐다는 이야기를 아버지로부터 들었다"며 "건국대가 어떻게 수감자를 공사에 동원했는지 알 순 없지만, 혼란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 같다"고 했다. 영종도 주민 김홍일씨도 "당시 죄수들이 염전 공사를 한다는 이야기가 동네에 퍼져 있었다"고 했다.주민들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수감자들이 민간 학교재단 염전 축조 공사에 동원된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영종역사관 김연희 학예사는 "염전 축조와 관련해 수감자들이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관련 기록을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영종도 염전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영종도 염전 대부분이 1950~1960년대 조성됐고 20여 년 전에 폐쇄되면서 염전을 기억하는 주민 수도 줄어들고 있다. 지금이라도 주민들의 기억을 더듬고, 기록을 발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영종도 주민 허재봉씨는 "염전을 기억하는 주민들이 매년 세상을 떠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영종지역을 조명하는 작업이 체계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정운기자 jw33@kyeongin.com

2020-02-26 정운

['대한민국 나들목' 인천공항 이야기·(3)]영종도 염전

고려 이곡 '소금 굽는 연기'… 영종염전 천년 증언現 주안국가산단 자리 1907년 국내 첫 천일염 생산영종 '자염' 쇠퇴… 1950년대부터 천일염전 들어서한국전쟁후 정착 실향민, 염전개척 공동주 되기도대이어 수십년 '염부' 주민들… 소유 대부분 외지인홍대·건대도 운영… 인천공항 건설로 대부분 폐쇄1곳만 남아 옛방식 고수… 씨사이드파크에 체험관영종도는 명실상부한 '공항도시'다. 영종도에서는 인천국제공항을 매개로 물류, 관광, 항공 등 다양한 분야의 경제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인천공항이 들어서기 전 4개의 작은 섬이었던 영종·용유지역(영종도, 삼목도, 신불도, 용유도)은 '염전'이 최대 경제 축이었다. 영종도 주변 갯벌은 수심이 얕아 둑을 쌓고 매립해 염전을 만들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매립방식의 천일염전 이전부터 영종도는 염전의 땅이었다. 고려시대에도 영종도는 소금 생산지였다. 고려 후기 문신 이곡(李穀, 1298~1351)의 시와 산문을 엮은 '가정집(稼亭集)'에 영종도의 염전 얘기가 전한다."가는 도중에 자연도에 들러서 /뱃전을 치며 한가로이 읊조리노라 / 갯벌은 전자(篆字)처럼 꼬불꼬불 무늬 지고 / 돛대는 비녀처럼 배 위에 꽂혀 있네 / 가까이 물가에 비끼는 소금 굽는 연기요 / 멀리 산 위로 떠오르는 바다의 달이로다"자연도(紫燕島)는 영종도의 옛 이름이다. '소금 굽는 연기'라는 대목에서 자염 방식으로 소금을 생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염(煮鹽)은 바닷물을 끓여서 소금을 얻는 방식이다. 영종도에서 자염 방식의 소금 생산은 1천년 가까이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은 1940년대에도 자염 방식으로 소금을 생산하는 염전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1936년생 김홍일씨는 "소학교(초등학교)때 만해도 장작으로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드는 염전이 송산(현 중구 중산동)에 있었고, 화력염전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화력염전'은 장작을 때서 바닷물을 끓이기 때문에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 화력 좋은 장작을 구하기 위해서는 근처에 울창한 산림이 필요했다. 비용이 많이 들었다. 천일염전이 생겨나면서 화력염전은 밀려났다. 김홍일씨는 "화력염전이 있었던 곳은 송산동 한 곳뿐이었으며, 화력염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없어지고 곳곳에 천일염전이 들어섰다"고 했다.바닷물을 끌어들인 뒤 바람과 햇볕으로 수분을 증발시키는 방식으로 소금을 얻는 '천일염'방식이 국내에서 처음 도입된 곳은 인천이다. 1907년 인천에 '주안염전'이 운영됐다. 현재 미추홀구 주안동과 부평구 십정동 일대 지역에 세워진 주안염전은 국내 최초의 천일염 염전이었으며, 1960년대까지 운영되다가 폐쇄됐다. 현재는 주안국가산업단지가 운영되고 있다.자염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소금을 얻을 수 있는 천일염전은 1950년대부터 영종도에 우후죽순 들어섰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서도 염전을 조성해 운영할 정도였다.'건국대학교 70년사'를 보면 "1953년 5월 1일 (중략) 경기도 부천군 영종면 운남리 바닷가에 85정보(1정보는 9천917㎡)에 달하는 염전을 축조하기로 결의했다"며 "영종도가 면적도 넓고 교통상으로나 축조공사를 하는 데 있어서 매우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중략) 1954년 축조공사가 완료돼 가장 우수한 염전이 완공된 것"이라고 돼 있다. 건대 염전이 있던 자리는 현재 '씨사이드파크'가 운영되고 있다. 염전은 대부분 기능을 잃었지만, 염전 체험관이 운영되면서 염전의 모습이 일부 남아 있다.영종도 염전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실향민'이다. 한국전쟁 이후 영종도에 많은 실향민이 정착했고, 이들은 염전을 축조하기도 하고 소금을 생산했다. '영종용유지'는 "영종도에는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공사장이 여러 곳 있어 전쟁 난민들이 모여들었다"며 "운서리 삼목도에는 황해도 출신의 김형찬 씨를 선두로 한 염전 매립 공사 종사 세대 70호, 운서리 삼목도에는 평북 출신의 현기인씨를 선두로 한 염전 매립 공사 세대 40호, (중략) 각각 정착하여 지역 사회 발전에 공헌했다"고 했다.경향신문 1959년 3월 16일 자에는 '永宗島(영종도)서 再生(재생)의 길 얻은 避難民集團(피난민집단)'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피난민들이 일년반 동안에 걸친 천주교 구제회의 원호를 받고 그 여력으로 7천만환에 상당하는 염전의 공동주가 되어 이제는 집을 제외하고 한세대에 32만환의 기적을 갖게 된 한 피난민집단이 서해 앞바다 조그만 섬 위에 파라다이스를 건설하고 있다"고 영종도 피난민의 염전 조성을 보도했다.지난 21일, 영종도에서 50여년간 일한 박병기씨를 그의 집에서 만났다. 1933년생 박병기씨는 20대 중반부터 염전에서 일했다. 그는 영종도에 피난민 '염부'가 많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병석에 누워 있는 그의 말을 정확히 알아듣기 어려워 주민 허재봉씨와 며느리 차경자씨의 도움을 받아 인터뷰했다. 그는 1950년대 말 홍익대학교가 만든 '금단 염전'을 조성할 때부터 2000년대 초 폐쇄될 때까지 50여 년 동안 한 곳에서 일했다. 그는 "삼목도 쪽에 있는 염전을 '정착지 염전'이라고 불렀고, 실향민들이 많았다"며 "영종도에 있는 다른 염전에도 실향민들이 많았다. 실향민들이 주로 거주한 곳은 삼목도와 신불도였다"고 기억했다.박병기씨가 일하는 50여 년간 염전에서 일하는 방식도 많이 바뀌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긴 나무 양쪽에 소금을 담은 통을 한쪽 어깨에 걸쳐 매는 '목도'방식으로 소금을 옮겼다고 한다. 이후 수레를 이용하다가 나중에는 경운기로 바뀌었다. 그는 "5월 송홧가루가 날릴 때 소금이 가장 많이 났고, 이때가 가장 힘든 시기이기도 했다"고 했다.박병기씨 아들과 며느리도 염전에서 일했다. 가족들이 모두 염전에서 일한 것이다. 며느리 차경자 씨는 "결혼할 때 남편이 목도 일 때문에 한쪽 어깨만 솟아 있어서, 결혼식 예복을 맞추는 데 애를 먹었다"고 했다. 이어 "'비설거지'라는 말이 있다. 비가 오면 소금물이 비를 맞지 않도록 한쪽으로 옮기는 일인데, 이 때문에 '외양간에 있는 소는 비를 안 맞게 하고 염부는 비를 맞고 일한다'는 말이 있었다"고 했다. 차경자씨는 "나를 비롯한 마을 대부분 여자는 염전 판에 장독 깨진 조각을 깔아놓는 '깽팔이'라고 부르는 일을 했다"고 했다.영종도 주민 수백 명이 염전에서 소금을 내며 생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염전의 주인은 대부분 외지인이었다고 한다. 영종 주민들은 '임금 근로자'로서 일을 했다. 이정국씨는 "영종도에 염전이 20여 개 있었지만, 영종도 주민이 소유하고 있는 곳은 몇 곳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염부들은 일정 임금을 받으며 일하다가 나중에는 소금이 팔린 대로 받는 일종의 '성과급' 형태로 바뀌었다. 전국 소금 생산량이 크게 늘면서 염전으로 인한 수익이 악화했기 때문이다.'건국대학교 70년사'는 "천일염전은 수익성이 적고 효율적인 재산관리가 곤란하다는 이유로 처분하기로 결의했다"며 "1982년 2월 매도 허가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영종도에서 가장 큰 염전은 '금홍염전'과 '건대염전'이었다고 한다. 금홍염전은 현재 영종하수종말처리장에서 인천대교 방면 일대다. 인천공항이 건설되면서 염전은 폐쇄됐다. 다만 염전이 있던 자리는 아직 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일부 염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외에도 1960년대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염전이 운영됐다고 한다. 허재봉씨는 "작은아버지가 중산동에서 개인 염전을 운영했다. 다른 기업 염전과는 비교하기 힘든 작은 염전이었다"며 "당시만 해도 작은 개인 염전이 많이 있었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없어졌다"고 했다.현재 영종·용유도에서 염전이 운영되는 곳은 '동양염전'이다. 예전에는 마을 이름을 따서 '늙목염전'으로 불렸다. 동양염전이 있는 용유도는 삼목도 쪽 바다를 제외하고는 인천공항 건설로 인한 영향이 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아직 소금창고 등 염전의 모습을 온전히 유지하면서 매년 소금을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동양염전에서 생산한 소금은 700t이다. 전년도 생산량 550t보다 늘었다. 동양염전은 4명의 염부가 일하고 있다. 다음 달부터 소금을 내는 작업을 다시 시작한다. 동양염전은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옛날 방식으로 소금을 생산하는 곳이다. 국내 천일염전이 대부분 결정지 바닥에 PVC장판이 깔려 있는데 동양염전은 타일 모양의 판이다. 과거에는 장독대 깨진 것을 깔았다가 타일 형식으로 바뀐 것이다. 동양염전을 관리하는 천덕기 씨는 "1980년대 초반에 사용했던 시설 등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며 "과거 영종도와 용유도에 염전이 많았는데 지금은 우리만 남았다"고 했다.글/정운기자 jw33@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옛 건대염전을 복원해 운영하는 씨사이드공원염전체험장. 건국대학교가 조성한 건대염전은 이후 매각되면서 금홍염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일러스트/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1960년대 영종도 운서리에 있던 삼덕염전의 모습. 1966년도 인천운서국민학교(현 인천운서초등학교) 졸업앨범 사진 스캔. / 인천운서초등학교 제공자료/영종역사관 제공영종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염전인 동양염전. 동양염전은 지난해 700t의 소금을 생산했다. 1970년대에는 늙목염전이라고 불렸다.인천공항 하수종말처리장 인근에 있는 옛 금홍염전 터. 뒤에 보이는 산 바로 앞까지 염전이 이어졌다고 한다. 타일 조각 등 염전의 흔적이 남아 있다.2000년대 초 금홍염전 모습. 금홍염전은 영종도에서 가장 규모가 컸다. 김홍일씨가 여러 장 찍은 사진을 파노라마 방식으로 이어붙인 것을 재촬영했다. /김홍일씨 제공인천공항 하수종말처리장 인근에 있는 옛 금홍염전 터. 뒤에 보이는 산 바로 앞까지 염전이 이어졌다고 한다. 타일 조각 등 염전의 흔적이 남아 있다.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2020-02-26 정운

[줌인 ifez]'2020년도 인천시 발전시행계획' IFEZ 분야

송도 5·7공구 스마트시티 준공등입주기업·고용·매출액 목표달성기존 산단·학연기관과 협업 보완'워터프런트 가속도'등 세부 과제인천시가 최근 '2020년도 인천시 발전시행계획'을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 제출했다. 인천시 등 각 지자체는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에 따라 5년 단위 발전계획을 만들고, 매년 시행계획을 수립·이행해야 한다. 인천시는 재작년에 '인천시 지역발전 5개년(2018~2022) 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인천시는 2020년도 발전시행계획 성과 목표·지표로 5개를 제시했는데, 그중 하나가 '인천경제자유구역(IFEZ) 전략산업 클러스터 강화 및 지역 상생 전략 추진'이다. IFEZ 분야 지난해 추진 실적과 올해 추진 전략 및 세부 과제를 정리했다.■ IFEZ 양적·질적 성장… 산학연 연계는 부족지난해 IFEZ는 양적·질적 성장을 이뤘다.송도국제도시 5·7공구 스마트시티 구축사업을 준공했고, 스마트시티·바이오·마이스(MICE) 분야 창업기업 육성 클러스터 조성사업을 시작했다. 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GS(Good Software)를 비롯해 중앙부처 인증을 획득하는 등 스마트시티 플랫폼 역량을 강화했다. 인천시 산하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스타트업 파크 1호 조성사업 유치에 성공했으며, 송도 복합시설물 '투모로우시티'(Tomorrow City)에 '스타트업·벤처 폴리스, 품'을 조성 중이다.인천경제청은 송도 11공구에 '바이오융합 산업기술단지'(17만8천282㎡)를 조성하기 위한 협약을 인천테크노파크와 체결하는 등 바이오산업 육성 기반을 마련했다. 또 송도 워터프런트 조성사업을 본격화했으며, 송도국제업무단지 및 송도랜드마크시티 개발사업 정상화 협약을 체결했다.인천경제청은 지난해 설정한 목표인 IFEZ 입주 기업 2천818개, 고용 인원 8만4천305명, 매출액 58조8천607억원을 모두 달성했다. → 그래픽 참조한계 및 미흡한 점으로는 ▲글로벌 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여건 및 공감대 부족 ▲수도권 규제에 따른 성장 제약 ▲산학연 연계 부족 등이 지적됐다.IFEZ는 투자 제도와 인센티브 등 기업 유치에 필요한 여건이 싱가포르와 홍콩 등 경쟁 도시보다 좋지 않다. 또 수도권에 있기 때문에 현행법상 대기업 공장 신·증설과 규제자유특구 지정이 불가능하다. IFEZ가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규제를 받고 정부의 각종 특례에서 제외되는 것이다.IFEZ는 바이오·헬스케어, 지식서비스, 항공·복합물류 등의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 산업단지 및 산학연 기관과의 협업이 부족하며, 업종별 클러스터 형성 효과도 미흡하다.■ 핵심 산업 육성 및 협업 강화 추진올해 IFEZ 추진 전략·방향은 ▲핵심 앵커 기업 및 연관 산업 유치 ▲스마트한 정주·문화 환경 조성 ▲주변 기초단체와의 협력 강화 등이다.인천경제청은 바이오·헬스케어, 부품·소재, 지능정보(AI·IoT), 로봇, IT 분야 기업과 연구소를 유치해 혁신성장 산업 벨트를 조성할 계획이다. 또 각 분야 산학연 전문가 협력 체계를 구축한다. 인천경제청은 스마트시티 및 '아트센터 인천'(콘서트홀) 운영, 마이스 관련 기업·단체 유치 등을 통해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해외 우수 교육·연구기관 유치에 나선다. 또 지속적인 생산성 증대, 일자리 창출, 지역사회 소통 강화 등을 위해 주변 기초단체 및 IFEZ 내 국제기구와의 협업을 강화할 예정이다.인천경제청은 세부 추진 과제들의 목표도 설정했다. 인천경제청은 '아트센터 인천'을 통해 독창적이고 차별화된 공연예술 콘텐츠를 선보이고, 이 문화시설의 브랜드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을 개발하기로 했다. 또 송도 워터프런트 조성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각종 행정 절차를 신속하게 추진하기로 했다. 송도 워터프런트 조성사업은 1-1단계 공사가 진행 중이며, 1-2단계 사업은 재정투자심사위원회 심의를 앞두고 있다. 인천경제청은 외국 교육·연구소 유치와 관련해선 문화·예술, 호텔·관광, 바이오 등 지역산업과 연계성이 높은 기관을 발굴하기로 했다.올해 IFEZ 입주 기업 관련 목표는 3천145개, 고용 9만6천368명, 매출 70조5천805억원이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20-02-23 목동훈

['대한민국 나들목' 인천공항 이야기·(2)]네 개의 섬 영종

본래 영종·삼목·신불·용유도로 나뉘어 이어진 섬과 섬… 구읍뱃터 모여 육지로신불도, 영종도 남서쪽 500m 거리 위치실향민·원주민마을 분리 130여가구 살아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는 원래 영종도, 삼목도, 신불도, 용유도 등 네 개의 섬이었다. 공항 건설을 위해 바다를 매립, 이들 네 개의 섬을 하나로 만들었다. 옛날 네 섬 주민들은 물고기를 잡거나 농사를 지었다. 작은 섬 마을이 하루 1천여 대의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하늘도시'로 변했다. 뽕나무 밭이 변해 푸른 바다가 된다는 의미인 '상전벽해(桑田碧海)'는 영종도와 딱 들어맞는다.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았던 주민들은 그 옛날 섬마을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좇아가 보자.영종도가 신공항 건설 장소로 결정된 것은 1990년이다. 육지를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 했지만 섬과 섬은 모두 이어져 있었다. 영종도와 삼목도는 도로로 연결돼 있었고, 영종도와 신불도는 둑길로 이어져 있었다. 도로라고 해야 좁디좁았지만 사람들이 다니기에는 불편함이 없었다. 거리가 많이 떨어진 용유도와 삼목도도 도로로 연결돼 있었는데 징검다리가 도로 역할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들 섬 주민들이 육지로 가기 위해 배를 타는 곳은 영종도 구읍뱃터 한 곳이었다.1968년생 이정국 씨는 영종 운남리 출신이다. 태어난 곳은 하늘도시로 편입돼 현재는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지난 17일 만난 그는 영종중학교 인근 공원이 자신의 집이 있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건설 관련 일을 하는 그는 인천공항과 하늘도시 건설 과정에도 참여했다. 영종도가 바뀌는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본 셈이다. 삼목도와 연결된 도로의 영종도 지역 초입 마을을 '진등'이라고 불렀다. 바다가 메워지는 바람에 마을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주민들이 살던 초가집은 다 없어졌지만, 그 연륙도로와 연결된 작은 길은 아직 남아있다. 이정국 씨는 옛 섬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라며 스카이72 골프장 인근 신라면세점 물류창고 건물로 안내했다. 이 앞을 지나는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너머 보이는 작은 길이 삼목도와 연결 도로로 이어지던 곳이라고 했다. 이정국 씨는 "신라면세점 물류창고 쪽으로 쭉 다리가 있었고, 삼목도에 다다르면 양쪽으로 염전이 펼쳐져 있었다"고 했다. 다리에서 진등 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마을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이 지역은 모두 하늘도시 3·5공구로 편입됐다.신불도는 영종도에서 남서쪽으로 50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신불도와 연결돼 있는 영종 지역은 '벌미'라고 했다. 벌미와 신불도 사이는 염전이었고, 둑길로 이어져 있었다. 신불도와 연결된 길이 난 곳은 현재 BMW 드라이빙센터 뒤편이다. 도로 표지판에서는 옛 지명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1962년생인 이광만 씨가 태어난 곳은 신불도다. 지난달 30일 만난 이광만 씨는 자신이 태어난 집이 있던 위치를 현재 BMW드라이빙센터 건너라고 설명했다. 신불도는 130여 가구가 살던 작은 섬마을이었다. 90년대 초반 공항 건설로 인해 이주가 시작되기 전 신불도 주민들은 염전 종사자가 10여 가구, 나머지는 대부분 농업과 어업에 종사했다. 주로 벼농사를 지었으며, 고구마와 감자도 심었다. 어민들은 꽃게, 새우, 숭어 등을 잡았다. 절반 정도는 집에서 먹었고, 나머지는 판매했다. 활어를 보관할 설비가 없었기 때문에 주로 말려서 먹거나 팔았다고 한다. 꽃게는 일본으로 수출하기도 했다. 삼목도, 영종·용유 사이 주민왕래 고리1988년 다리 개통전까지 징검다리 건너용유女, 영종男과 결혼땐 "시집 잘갔다"간조때 드러났던 '장군바위' 아직 그대로삼목도 주민들도 신불도와 마찬가지로 주로 농업과 어업에 종사했다. 이들 섬엔 한국전쟁 당시 황해도 등지에서 내려온 실향민이 많이 정착했다.이광만 씨는 "신불도는 작은 섬이지만 실향민이 모여 사는 곳과 원주민 마을이 분리돼 있었다"며 "실향민들이 사는 동네를 '바깥 동네', 원주민 마을을 '안 동네'라고 불렀다"고 했다. 이광만 씨 부친도 황해도에서 넘어온 실향민이고 '바깥 동네'에 살았다.지역 주민들이 주축이 돼 지난 2008년 발간한 '영종용유지'는 "전쟁 직후 영종도에는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공사장이 여러 곳에 있어 전쟁 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기록했다.신불도는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신불IC'라는 이름으로 그 자취를 안내한다. 신불도에 있던 산을 서풀산이라고 했다. 신불도의 옛 이름인 '서풀'을 따서 그렇게 불렀다. 인천공항 건설하면서 골프장이 들어섰는데 서풀산을 깎아낸 흙과 돌을 골프장을 짓는 데 썼다. 지금도 그 산은 있는데 그 높이가 절반 정도로 낮아졌다. 이광만 씨는 "서풀산에는 다른 산보다 바위와 돌이 많았다"고 기억했다. 용유도는 남쪽에 있는 무의도와 가깝지만 삼목도를 고리로 영종도와 이어져 있었다.1935년생인 김홍일 씨는 1960~1970년대 모습이 훤히 떠오른다. 과거 영종도의 유일한 사진관이었던 '영종사진관'을 운영했던 그는 영종 지역 곳곳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김홍일 씨는 "예전에는 용유도와 삼목도는 징검다리로 건너다니느라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는데, 1980년대에 다리가 만들어지면서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고 했다. 징검다리는 물이 빠진 간조 때에만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육지와는 왕래가 적다 보니 영종도 주민끼리 결혼하는 일이 많았다. 용유도 주민과 영종도 주민이 만나 결혼하는 일도 잦았다. 영종도가 용유도보다 컸다. 그래선지 용유도 여성이 영종도 남성과 결혼하면 "시집 잘 갔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영종도(삼목도)와 용유도를 잇는 긴 다리는 1988년 개통됐다. 지금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과 제2여객터미널 사이에 있는 관제탑 부근이다. 다리는 자취를 감췄으나 다리와 연결되는 도로는 일부 흔적이 남아 있다. 관제탑 방향으로 다리가 있었다. 지난 3일 1948년생 허재봉 씨와 함께 현장을 찾았다. 허재봉 씨는 "과거에는 이 일대가 전부 바다였다"며 "이 일대에서 굴 양식이 이뤄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허재봉 씨는 "80년대만 해도 용유도 주민들이 육지에 나가 소를 팔기 위해 십여 마리씩 끌고 영종도에 온 뒤 우리 집에서 자고 가기도 했다"며 "용유도 주민들은 뭍으로 나가기 위해서 영종도를 거칠 수밖에 없었고, 농수산물을 팔기 위해 갖고 나가는 이들이 우리 집에서 많이 묵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용유도와 영종도 사이가 바다였다는 얘기를 상상하기조차 쉽지가 않다. 하지만 그 바다에 있던 장군바위는 남아 있다. '호텔 오라'에서 공항서로를 넘으면 도로보다 지대가 낮은 부지가 나온다. 그 한가운데 7~8m 높이의 장군바위가 서 있다. 바다에 있던 이 바위는 간조 때만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허재봉 씨는 "예전부터 내려오는 이야기가 서려 있어서 저 바위는 없애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 모습이 마치 군사를 지휘하고 있는 듯이 보여 자연도와 삼목도에 침입한 왜구들이 겁에 질려 침입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대표적이다. '영종용유지'는 "공민왕 원년과 29년, 30년에 왜구들이 자연도와 덕적도 등에 출몰해 노략질을 일삼았으나 그때도 용유도만은 왜구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고 장군바위 설화를 전한다.글/정운기자 jw33@kyeongin.com·사진/김용국·조재현기자 yong@kyeongin.com영종도 구읍뱃터 전경. 현재의 영종도는 삼목도, 신불도, 용유도, 영종도 네 개의 섬으로 나뉘어 있었다. 각 섬 주민들은 육지로 드나들기 위해서는 영종의 구읍뱃터를 이용했다. 현재도 사진 뒤편에 보이는 월미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운항한다. 자료사진/김홍일씨 제공구읍뱃터에 정박해 있는 어선 '건진호'. 1980년대 영종도 어민들은 이 배를 타고 고기를 잡았다. 주민들은 이 배를 이용해 섬과 섬 사이를 오가고, 물건을 나르기도 했다. 이 배의 진수식 때에는 마을 주민들이 모여 고사를 지냈다고 한다. 자료사진/김홍일씨 제공영종도가 네 개의 섬으로 나뉘어 있을 때의 모습과 인천공항 건설 완료뒤 매립으로 바뀌게 된 섬의 해안선(주홍색 선).구읍뱃터의 옛 모습. 영종대교와 인천대교가 건설되기 전 구읍뱃터에서 타는 여객선은 영종도 주민들이 육지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과거 구읍뱃터에서 여객선을 타기 위해 기다리는 주민들의 모습. 자료사진/김홍일씨 제공영종도와 삼목도를 잇던 도로가 있던 자리. 이 길을 따라 쭉 가면 삼목도가 나왔다고 한다. 저 멀리 보이는 롯데면세점 물류창고 자리가 삼목도가 있던 곳이다. 영종도 주민 이정국 씨가 길을 설명하고 있다.장군바위는 그 형상이 사람의 얼굴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과거 용유도 앞 바다에 있었으나, 용유도와 영종도 사이 바다가 매립되면서 장군바위가 서 있는 곳도 육지가 됐다.

2020-02-19 정운

[줌인 ifez]용유·무의 개발사업들 올해 실시계획 승인·신청 목표

훼손 최소화해 '하반기 승인' 목표'아이퍼스 힐' 기생충 흥행에 고무경제자유구역 지정 상반기 재도전쏠레어 복합리조트 8월 계획 제출용유·무의 마스터플랜 12월 준공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민간투자방식으로 추진 중인 용유·무의지역 개발사업들이 올해 실시계획 승인 또는 신청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관광·레저·휴양시설 개발사업은 초기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반면 투자비 회수에는 오랜 기간이 걸린다. 특히 용유·무의지역 개발사업은 지역 특성상 개발과 환경보전의 조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실시계획 승인 등 사업 본격화가 애초 계획보다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인천경제청이 민간사업자와 함께 추진하고 있는 용유·무의 개발사업은 ▲용유 오션뷰 ▲무의 LK ▲무의 쏠레어 복합리조트 ▲을왕산 아이퍼스 힐(IFUS HILL) 등이다. 용유 오션뷰와 무의 LK 개발사업은 올 하반기 실시계획 승인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나머지 사업은 실시계획 수립 및 승인 신청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지난해 무의대교(잠진도~무의도)가 개통한 데 이어 올해는 용유도~잠진도 제방도로 확장공사가 준공된다. 오는 12월엔 용유·무의 지역 활성화 발전 전략이 나온다.■ 영종도 서남지역 '용유 오션뷰'와 '을왕산 아이퍼스 힐' 개발사업용유 오션뷰는 인천 중구 을왕동 산70의 1번지 일원 12만4천530㎡ 부지에 호텔, 콘도, 공원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사업시행자는 (주)오션뷰, 사업비는 2천648억원이다. 2017년 10월 소규모환경영향평가 협의가 시작됐는데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한강유역환경청이 '자연환경 훼손 최소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 대상지는 을왕리해수욕장과 가깝고, 경관이 매우 좋다. 인천경제청에 따르면 한강유역환경청은 "자연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사업계획을 보완해야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협의가 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상태다. 이에 (주)오션뷰는 건물 높이 하향 방안을 검토하는 등 사업계획을 수정하고 있다. 인천경제청은 올 상반기에 영향평가 협의를 완료하고 하반기에 실시계획 승인 절차를 완료할 계획이다.을왕산 아이퍼스 힐(Incheon Flim United Studio, Hallyu Imagine Leisure Landmark) 개발사업은 을왕산 일대(인천 중구 을왕동 산77-4번지 일대 80만7천733㎡)에 한류를 주제로 한 글로벌 영상문화테마파크를 조성하는 내용이다. 테마파크, 숙박·주거시설, 영상업무지원시설, 상업시설, 공공시설 등으로 구성된다. 사업시행자는 에스지산업개발(주)이며, 사업비는 2천300억원이다.지난해 인천경제청이 사업 대상지를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산업통상자원부에 신청했는데, 경제자유구역 지정 후보지로 선정되지 못했다. 인천경제청 관계자는 "(산업부 컨설팅에서) 사업시행자 혼자 추진하는 것보다 문화콘텐츠 전문 기업·인력과 함께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제시됐다"고 말했다. 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했다"며 "한국 영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아이퍼스 힐 사업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인천경제청은 올 상반기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다시 신청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에스지산업개발(주)가 사업계획을 보완 중이다. 올해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면, 내년에 실시계획 수립 절차를 거쳐 착공이 가능할 것으로 인천경제청은 내다보고 있다.■ 무의도 일대 'LK'와 '쏠레어 복합리조트' 개발사업무의도는 지난해 4월 무의대교가 개통해 접근성이 크게 향상됐다. 영종도 용유 지역과 잠진도를 연결하는 '용유도~잠진도 제방도로' 확장공사도 올해 준공된다.무의도 남단(인천 중구 무의동 산349-1번지 일원 124만6천106㎡)에 체류형 관광레저단지를 조성하는 무의 LK 개발사업은 그랜드개발(주)가 추진하고 있다. 사업비는 1천900억원이다. 이 사업은 환경영향평가 협의 단계에 있다. 환경영향평가 협의는 현재 중단된 상태다. 사업계획 수정·보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강유역환경청은 '경사도 20도 이상 지역 개발 최소화', '식생 보전 3등급 이상 최대한 원형 보전' 등의 의견을 제시했다. 사업 대상지에는 소사나무 군락지도 있다고 한다. 그랜드개발(주)는 원형 보전지를 추가로 확보하고, 우량 수목을 다른 곳으로 옮겨 보전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개발 면적이 애초 계획보다 감소할 수 있다. 인천경제청은 올 하반기 실시계획 승인을 목표로 행정적 지원에 나설 방침이다.무의 쏠레어 복합리조트는 실미도 인근 지역(무의도 705-1번지 일원 44만5천98㎡)에 호텔, 컨벤션, 테마파크, 문화시설 등을 조성하는 것이다. 사업비는 1조5천억원이다. 인천경제청이 2018년 2월 쏠레어코리아(주)를 사업시행자로 지정했는데, 아직 실시계획 수립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인천경제청에서 실시계획 수립 절차 이행을 계속해서 촉구하자, 쏠레어코리아(주)는 올해 8월11일까지 실시계획안을 제출하겠다고 약속했다. 쏠레어코리아(주)는 실시계획 수립 용역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경제청 관계자는 "무의대교 개통으로 접근성이 좋아졌기 때문에 올해부터는 사업이 속도를 낼 것"이라고 했다. 이어 "올 하반기에 실시계획안이 제출되면, 내년 상반기에는 승인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 용유·무의 마스터플랜 용역, 12월 준공 예정인천경제청은 지난해 9월부터 '용유·무의 지역 경제자유구역 활성화 발전 전략 수립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용유·무의 지역을 인천공항, 카지노 복합리조트 등 주변 지역·시설과 연계해 체계적으로 개발하기 위한 중장기 마스터플랜이다. 국토연구원과 (주)도담이엔씨가 맡고 있으며, 오는 12월 준공될 예정이다. 인천경제청은 이번 용역을 통해 지역 개발 기본구상, 주변 지역 균형발전 및 경제자유구역 경쟁력 강화 방안 등을 마련한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지난해 4월 개통한 무의대교. 잠진도와 무의도를 연결하는 연도교가 생기면서 용유·무의 지역 접근성이 크게 향상됐다. 무의대교가 이 일대 개발사업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기대하고 있다. /인천경제청 제공'을왕산 아이퍼스 힐' 조감도.

2020-02-16 목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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