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인천)

[현장에서]인천바로알기종주 동행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3일까지 6박 7일 일정으로 중·고교 학생 34명이 서해5도 백령도·대청도를 걷는 인천바로알기종주대회에 동행했다.19회째를 맞은 올해 인천바로알기종주는 내륙을 걷던 지난 코스와 달리 모든 일정을 서해5도에서 소화했다. 백령도에서 2박 3일 머물고, 대청도에서 3박 4일을 보냈다. 인천의 청소년들이 북한을 코앞에 둔 서해 최북단 섬을 찾아 남북 분단의 현실을 체감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다.울산에서 태어나 20년을 산 기자에게도 서해5도는 TV 화면으로만 접했던 낯설고 먼 곳이었다. 한반도 남동쪽 끝자락인 동해안 울산에서 서해 최북단 백령도까지 직선거리는 493㎞에 달한다. 울산에서 인천까지 승용차로 4시간 30분이 걸리는데, 인천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백령도까지가 딱 그 시간이 걸렸다. 인천에서조차 울산에서 인천만큼이나 멀고 먼 곳이 백령도라는 것을 섬에 발을 딛고서야 새삼 깨달았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종주단원 대다수도 백령도와 대청도는 처음이라고 했다. 첫날 백령도 사곶해수욕장과 콩돌해안을 둘러본 학생들은 평소 봤던 인천 앞바다와 크게 다른 게 없다는 푸념 속에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다. 기대가 컸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졌다. 손꼽아 기대했던 점박이물범을 보고, 대청도 농여해변에선 직접 물고기를 잡으며 내리쬐는 햇볕에 팔과 다리가 익어가는 것도 모른 채 시간을 보냈다. 학생들은 해안가를 걷는 내내 어렴풋이 무언가가 보일 때마다 "저기가 북한 맞나요?"라고 되물었다.마지막 날 밤에는 대청도 대청고등학교 숙영지 뒷산에 별을 보러 나섰다. 학생들은 "제주도, 강원도 속초 등 여러 곳에서 봤던 별 중에 쏟아지는 듯한 대청도 하늘의 별이 가장 밝았다"며 "접경지역에 있는 섬들은 군사요충지로 위험할 거라는 생각뿐이었는데, 사실 내가 사는 곳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았다"고 했다.종주단원들은 백령도와 대청도 100여㎞ 구간을 완주했다. 백령도에서는 사곶해변, 콩돌해안, 남포리와 두무진을 걸었다. 대청도에서는 동백나무 자생북한지, 서풍받이 등을 거쳤다. 저마다 새긴 의미가 남달랐다고 한다. 학생들은 다시 백령도와 대청도를 찾을 때 남북이 가로막혀 멀기만 한 외진 섬이 아닌 남북을 연결해 가까이 두고 갈 수 있는 섬이 되길 바랐다. /박현주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phj@kyeongin.com박현주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2019-08-05 박현주

[인천바로알기종주 19번째 발걸음]낙오자 한명없이 100㎞ 섬여정 완주… 대원들 값진 성장

잠자리·빨래 등 모든일은 스스로지친 친구들 서로 응원 우정 돈독"내고장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자부심 한껏 느끼며 대장정 매듭제19회 인천바로알기종주대회가 지난 3일 오후 10시께 최종 목적지인 연안여객터미널 도착으로 6박7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사곶해수욕장과 콩돌해안은 물론, 남포리, 두무진 등 백령도 곳곳과 동백나무자생북한지, 모래울해변 등이 있는 대청도를 걸으며 100여㎞를 완주한 종주단원들에게 이번 종주는 저마다 새겼던 의미가 남다른 여정이었다. 이치훈(상정중3·15)군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종주에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이야기를 나눠 좋았다"며 "또 새벽에 일어나 직접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빨래도 내 손으로 했는데, 앞으로는 집안일을 도맡아 했던 부모님을 많이 도와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이번 종주가 3번째인 심우혁(인천기계공고1·16)군은 "섬 종주는 처음이었는데 인천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는지 몰랐다"며 "모르는 친구들 밖에 없어서 낯설었지만 단원들이 지칠 때마다 서로 응원해주며 돈독해졌다"고 했다.종주 마지막날은 기상 상황이 좋지 못해 예정됐던 소청도 일정이 취소됐다. 하지만 삼각산 일대 등 미처 둘러보지 못한 대청도 구석구석을 살필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온 학생들은 체육관에서 공놀이를 즐긴 뒤 다시 만날 날을 정하며 아쉬운 시간을 보냈다. 김지호(부평고1·16)군은 "제주도와 강원도, 속초 등 여러 곳에서 봤던 별들 중에 쏟아지는 듯한 대청도 별이 가장 밝았다"며 "대청도의 별 풍경은 이번 종주 중 가장 기억에 남을 추억"이라고 했다.앞선 6일차엔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농여해변에서 나이테 바위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됐다. 겹겹이 쌓인 지층이 나무를 잘랐을 때 보이는 테와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단원들은 이곳에서 물놀이를 즐긴 뒤 직접 그물을 쳐 물고기를 잡았다. 저녁식사 후엔 조별 장기자랑이 진행됐다. 종주단원들은 종주 틈틈이 갈고 닦았던 실력을 뽐냈다. 귀여운 춤으로 1위를 차지한 3조의 단원 이원진(벤자민인성영재학교·17)군은 "처음에는 율동이 어려워 조원들이 힘들어하고 불만도 있었지만 서로 격려해주며 잘 마무리했다"며 "상금으로 친구들에게 맛있는 밥을 사겠다"고 소감을 말했다.1주일간 종주단원들을 이끈 이동열 인천바로알기종주단장은 "단원들이 인천에 있는 아름다운 섬들을 직접 걸으면서 우리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공동체 생활 속에서 함께 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며 "모두 건강하게 종주를 마쳐서 기쁘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한편 인천바로알기종주단은 오는 31일 해단식을 갖고 올해 종주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종주 단원들이 지난 2일 대청도 농여해변 나이테바위 앞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 단원들은 3일 오후 종주를 마쳤다./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2019-08-04 박현주

[zoom in 송도]송도 6공구 공동주택용지 'A12블록' 개발방향

'A10' 예정가격 두배 5110억 낙찰인공호수·바다조망 입지 더 우수'A12 부지' 매각여부에 관심 쏠려온라인 커뮤니티·인근 입주민들"조망권 침해… 아파트 건립반대"경제청 "주민·의회 논의후 결정"인천 송도국제도시 6공구 공동주택용지 A10블록이 최근 낙찰가율 185.95%를 기록하면서 인근 A12블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A12블록은 송도 워터프런트 1단계 구간인 인공호수와 접해 있는 공동주택용지로, 입지 여건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최근 인천시가 일반경쟁입찰 방식으로 공급한 공동주택용지 A10블록(10만2천444.6㎡)은 185.95%의 낙찰가율을 기록했다. 낙찰가율은 매각 예정가(최저 입찰가) 대비 낙찰가 비율을 말한다.A10블록은 매각 예정가(2천748억3천27만원)에 두 배 가까운 5천110억5천100만원에 낙찰됐다. 3.3㎡당 약 1천646만원이다.인천시 산하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 따르면 송도 공동주택용지와 주상복합용지 낙찰가는 3.3㎡당 1천만원 안팎이다.주상복합용지가 공동주택용지보다 비싸게 팔리는데, 1천600만원을 넘은 적은 없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송도 땅값이 서울 등 인근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저평가 돼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A10블록이 예상보다 높은 가격에 낙찰되면서 A12블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위치도·표 참조A12블록은 인천시와 송도랜드마크시티유한회사(SLC)가 2015년 1월 체결한 사업계획조정 합의서에 포함된 땅이다. 사업계획조정 합의서에는 SLC가 송도 6공구 7개 필지 34만㎡를 개발하게 돼 있다. 그런데 7개 필지 면적을 합하면 40만㎡가 된다. 7개 중 1개 필지에 대한 개발권은 인천경제청에 넘겨야 하는 것이다.인천경제청과 SLC는 A12블록(5만3천904.5㎡) 개발권을 인천경제청에 넘기는 것으로 잠정 합의한 상태다.SLC는 A15블록(5만9천636㎡) 개발권을 주려고 했으나, 인천경제청이 A12블록을 요구했다. A12블록이 북쪽으로 상업용지와 접해 있는 데다, 워터프런트 구간인 인공호수 정면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인천경제청과 SLC는 사업계획조정 합의서 변경을 통해 A12블록 개발권 이양을 확정할 계획이다.인천경제청이 A12블록을 어떤 방향으로 개발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토지 매각을 통한 개발 재원 확보'와 '송도 워터프런트 연계 방안' 등 두 가지를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논의해야 할 부분이 많다.현재 A12블록은 공동주택용지로, 662가구(1천760명)를 수용할 수 있다. 현 계획대로 매각하면, 개발 재원 확보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바다·인공호수·골프장 조망이 가능한 데다, 초등·중학교가 매우 가깝다. 최근 높은 낙찰가율을 기록한 A10블록보다 입지 여건이 좋다는 평가도 있다.문제는 공동주택의 경우 일반 시민들의 접근이 제한적이라는 점이다.송도 워터프런트 구간인 인공호수와 연계해 공간의 개방성·공공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것이다.예를 들면 아파트 층수를 높이는 대신 동(棟) 간 거리를 넓혀 인공호수 조망을 극대화하는 방안, 주상복합용지로 변경해 일부 공간을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있다.송도 온라인 커뮤니티 '올댓송도'는 A12블록에 송도 워터프런트 관련 시설을 조성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민간에 매각해 주거시설로 채우지 말고, 워터프런트 시설 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A12블록 인근 아파트 입주민들도 인공호수 조망권 침해를 우려하며 아파트 건립에 반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인천경제청 한 관계자는 "개발 재원 확보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며 "인천경제청 내부 논의와 인천시의 정책 결정이 필요하겠지만, 땅을 매각하지 말라는 요구는 수용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인천경제청이 A12블록을 매각하기로 결정한다면, 설계 공모 방식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설계 공모 방식은 입찰 금액과 설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높은 점수를 받은 업체에 땅을 매각하는 것이다. 획일적인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것을 막을 수 있어 도시 경관 향상에 도움이 된다.인천경제청은 최근 설명자료를 통해 "송도 경관 향상을 위해 6·8공구 공동주택용지를 설계 공모 방식으로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면서 "매각 방식과 시점은 지역 특성과 여건, 장단점 등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만큼 면밀한 검토와 주민·시의회·전문가 의견 등을 수렴해 최종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19-08-04 목동훈

[인천바로알기종주 19번째 발걸음]동백나무 자생 최북단 대청리돌아… 단원들 모처럼 모래울해변 물놀이

광난두정자각·서풍받이 잇단 절경강행군 발 물집잡혀도 "완주" 결연인천바로알기종주대회 종주단원들은 새 숙소인 대청고등학교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5일차 일정을 시작하기 위해 새벽 6시부터 분주하게 짐을 꾸렸다.첫 목적지는 매바위 전망대였다. 이곳에 서면 수리봉이란 바위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해안가를 향해 날개를 펼치고 누워있는 매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매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단원들은 계속되는 종주에 발에 잡힌 물집과 습진 등으로 힘들어하면서도 구호를 외치며 전망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지성(송도고1·16)군은 "어제부터 다리에 땀띠가 나서 계속 치료를 받으며 걷고 있다"며 "그저께 마지막 코스 3㎞를 남겨두고 아파서 못 걸었는데 너무 아쉬웠다. 남은 일정은 꼭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전군은 이어 "걸으며 길가에 핀 꽃들과 풀숲에 있던 뱀과 염소도 봤는데 내가 사는 곳에선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이라 조금 힘들긴 해도 즐거웠다"고 했다. 단원들은 매바위 전망대를 지나 대청리에 있는 동백나무 자생북한지에 도착했다. 이동열 인천바로알기종주단장은 "우리나라 동백나무 군락지 가운데 가장 북쪽에 있는 곳"이라며 "주로 따뜻한 남쪽 해안인 제주도나 거제도에서 자라는 나무"라고 설명했다.이번에 처음 동백나무를 본다는 학생들이 꽤 많았다. 단원들은 동백나무를 둘러본 뒤 인근 모래울해변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점심을 먹었다. 문상규(만수고1·16)군은 "대청도 바다는 맑고 깨끗한 데다 사람들이 붐비지 않아 친구들과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며 "모래사장도 워낙 부드러워 밟을 때마다 바스락거렸는데 나중에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했다.단원들은 해변을 지나 광난두정자각과 서풍받이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서해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준다는 뜻을 가진 서풍받이는 해안 절벽에 둘러싸여 있어서 볼거리가 많았다. 오후 6시께 일정을 마치고 숙영지에 도착한 학생들은 하루를 정리하며 내일 열릴 장기자랑 준비에 나섰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2일(금) 일정 : 대청고~미아동해변~농여해변~옥죽동~옥죽동해변~대청6리~대청성당~대청고등학교인천바로알기종주 단원들이 대청도 모래울해변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2019-08-01 박현주

[독립운동과 인천·(22)]강화 출신 죽산 조봉암·(上)

박남춘 시장·송영길 의원 등 추모식 참석… "서훈 문제 조속히 해결"독립운동가이자 한국 정치계의 거목, 죽산 조봉암(1899~1959) 선생의 60주기 추모식이 31일 오전 11시 서울 중랑구 망우리 공원묘역에서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와 죽산조봉암선생유족회 주최로 엄수됐다. 이날 추모식에 참석한 주요 정치권 인사들은 하루빨리 죽산 조봉암 선생의 서훈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이날 죽산의 60주기 추모식에는 어김없이 인천사람들이 대거 참석했다. 추모식에는 곽정근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회장과 유족, 박남춘 인천시장, 송영길·박찬대 국회의원,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차준택 부평구청장, 김교흥 전 국회 사무총장, 홍미영 전 부평구청장, 이부영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회장, 조성혜·조선희 인천시의원, 조동암 전 인천시 정무부시장, 이영재 경인일보 인천본사 사장 등이 참석했다.문재인 대통령은 3년째 추모식에 화환을 보내 죽산의 뜻을 기렸다. 문희상 20대 국회 후반기 의장, 정세균 20대 국회 전반기 의장,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위원장, 이정미 국회의원 등 정치권 인사들이 보낸 화환도 묘소 주변을 빼곡하게 둘렀다.인천시는 올해부터 죽산의 추모식 행사비용 후원을 재개했다. 그동안에는 새얼문화재단이 행사비용을 보태왔다. 인천시는 추모식에 앞서 죽산 묘역을 재정비하고 주변 경관을 개선했다. 새얼문화재단을 중심으로 조봉암 선생 석상 건립사업도 본격화할 예정이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이날 추도사에서 "무엇보다 선생의 독립유공훈장 추서가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기관, 단체와 함께 노력하겠다"며 "선생의 명예를 회복하고,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릴 수 있도록 각별히 신경쓰겠다"고 말했다. 송영길 의원도 "주최 측이 매번 추도사를 요청하는 것은 죽산 선생의 서훈 문제를 빨리 해결하라는 요청이라고 이해하고 있다"며 조봉암 선생의 독립유공자 추서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한국 정치의 거목 죽산 조봉암 선생의 60주기 추모식이 열린 31일 오전 서울시 중랑구 망우리 공원묘역에서 박남춘 인천시장과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국회의원이 헌화를 하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9-07-31 박경호

[인천바로알기종주 19번째 발걸음]빗속 뚫고 하나된 강행군 "우리모두 친구"

고된일정 노래부르며 서로 격려하늬해변 물범바위앞 도착 일행인천 마스코트 실물 보는 즐거움옥죽포 사구보며 국내최대 실감종주 4일째를 맞이한 단원들은 새벽 기상에도 피곤한 기색 없이 숙소를 정리하고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1시간을 걸어 사곶해변에 이르자 흩날리던 빗방울이 굵어졌다. 단원들은 각자 가져온 각양각색의 비옷을 입었다. 이번이 두번째 종주라는 백상훈(관교중3·14)군은 "2년전 참여했을 때 첫날 비가 내려서 신발이 다 젖었던 기억이 있다"며 "두번째 종주인만큼 이번에는 신발 방수커버도 챙기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했다.서먹해하던 학생들은 어느덧 힘든 종주를 함께 하는 친구가 됐다. 단원들은 노래를 부르며 서로를 격려했다. 하늬해변 철책선을 따라 걷던 단원들은 손꼽아 기다렸던 물범바위 앞에서 멈췄다. 백령도 북동쪽 해안에서 800m가량 떨어진 이 바위는 점박이물범들이 가장 선호하는 휴식처로 알려져있다. 점박이물범은 천연기념물 331호로 서해권역에서 활동하며 백령도에는 매년 200~400여마리가 찾아온다고 한다. 정유나(벤자민인성영재학교·18)양은 "인천시 마스코트도 점박이물범이라 인형을 살만큼 좋아하는데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정말 기쁘다"며 "점박이물범은 전세계에서 얼마 없는 희귀한 종으로 알고 있는데 백령도 앞바다에 오랫동안 머물다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용기포신항에서 배를 타고 30분 걸려 도착한 대청도는 새하얀 모래사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전체 면적이 축구장 70배 크기인 66만㎡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이곳 옥죽포 해안사구도 해변에서 날아온 모래가 수만년동안 쌓여 형성됐다. "모래 서말은 먹어야 시집을 갈 수 있다"는 대청도 주민들 말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다. 단원들은 바람이 부는 해안사구에 새겨진 다양한 무늬를 찾으며 시간을 보낸 뒤 대진동해변을 지나 대청고등학교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권택함(부평서중1·13)군은 "할아버지 댁이 대청도라 명절과 방학 때 자주 와서 잘 안다고 자부했는데 친구들과 구석구석 걸으며 몰랐던 곳도 많아서 놀랐다"며 "오랫동안 걷는 게 힘들 때도 많았지만 새로 사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 일정을 잘 마무리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크다"고 했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1일(목) 일정 : 대청고~서내동~러브브릿지~동백나무자생북한지~모래울해변~광난두정자~서풍받이~고주동~대청성당~대청고등학교제19회 인천바로알기종주대회 종주단원들이 '서해최북단백령도' 기념비 앞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2019-07-31 박현주

[독립운동과 인천·(22)]강화 출신 죽산 조봉암·(上)

10살부터 잠두교회 다니며 계몽운동 접해… 대서소 보조원으로 일하던 1919년 3월'의병활약' 유봉진등 기독교인들 주도 강화 읍내서 펼쳐진 1만여명 '만세운동' 동참시위 공모·소식지 배포로 체포 6개월뒤 무죄로 풀려나… 옥고때 '민족의식' 강해져자서전격 연재 글 "감옥에서 비로소 많은 것을 배웠고 애국심 불타게 됐다" 밝혀1919년 3월 인천 강화에서도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민중의 목소리가 섬을 가득 메웠다. 강화 읍내에서만 하루 동안 1만여명이 모인 강화 만세운동은 전국적으로 따져도 대규모 시위였다. 강화에서 나고 자란 죽산 조봉암(1899~1959)도 만세시위에 동참했다. 당시 평범한 대서소(代書所) 보조원이었던 21세 청년 조봉암은 강화 만세운동으로 인해 투옥돼 고초를 겪었다. 청년 시절 강화에서의 경험이 죽산을 독립운동가의 길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는 조봉암이 강화에서 태어난 지 120년이 되는 해다. 꼭 60년 전인 1959년 7월 31일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사법 살인'을 당한 조봉암은 2011년 복권될 때까지 50년 넘게 출생지조차 잊혀 있었다. 현재까지도 그의 출생지는 확정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2013년 '조봉암 평전'을 쓴 이원규 작가는 죽산의 출생지로 창녕 조씨 집성촌이었던 강화군 선원면 금월리 남산대 또는 금월리 가지마을 촌락이 가장 신뢰할 만한 추정이라고 했다.조봉암이 9살 되던 해인 1907년 8월 강화에서는 대한제국 군대 해산에 반발한 강화진위대 군인들을 중심으로 일본군에 맞서는 의병이 봉기했다. 죽산이 강화 의병운동을 언급한 기록은 없지만, 잠시나마 강화성까지 점령했던 의병의 인상이 어린 시절 강하게 남았을 수밖에 없다. 4년제 강화공립보통학교와 2년제 농업보습학교를 마친 조봉암은 강화군청에서 허드렛일이나 심부름을 하는 사환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1916년 18세에 강화군청 보조직원인 고원(雇員)이 되어 토지조사사업 통계작업에 투입되기도 했다. 당시 조봉암은 주산(珠算)이 빠르기로 유명했다.10살부터 다닌 신문리 잠두교회(현 강화중앙교회)는 조봉암의 일생에서 첫 전환점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강화진위대장 출신 이동휘(1873~1935)는 1905년 진위대장 사직 후 잠두교회 교인이 되면서 강화도에 보창학교를 설립하는 등 종교를 통한 애국계몽운동을 펼쳤다. 이러한 분위기 속 잠두교회 신도들은 민족의식이 투철했다. 조봉암은 군청 일을 그만두고 잠두교회 엡윗청년회(감리교 청년봉사단체) 일을 열심히 도왔다. 조봉암의 장녀 조호정(91) 여사를 낳은 김이옥(1905~1933)도 잠두교회를 같이 다니며 인연을 맺었다.1918년 봄, 조봉암은 관청리 대서소 보조업자로 취직했다. 1년 후인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발발한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강화 만세운동은 기독교인들이 주도했다. 그 중심에는 길직교회 권사 유봉진(1886~1956)이 있었다. 그는 15세부터 18세까지 강화진위대에서 군인으로 근무했다고 한다. 군대 해산 당시에는 의병운동에 참여해 갑곶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연희전문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강화 출신 황도문(1897~1950)은 3·1운동에 참여한 직후인 3월 5일 귀향해 유봉진에게 서울의 시위소식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전달했다. 유봉진은 황도문, 염성오(1877~1947), 유희철(1893~1942) 등과 시위계획을 논의했다. 독립유공자공훈록을 보면, 3월 9일 길직리 교회당에서 길직교회와 잠두교회 지도자급 인사들이 회합했고, 이 자리에서 조종환(1890~1937)은 서울의 만세시위 상황을 연설하며 "강화도에서만 있을 것이 아니다"라고 주민들에게 시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3월 18일 강화 읍내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독립선언서와 '강화군민에게'라는 문서를 곳곳에 배포했다.3월 18일 오후 2시께 강화 읍내 장터에서 유봉진을 비롯한 만세시위 기획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줬고, 만세시위에 합세한 군중이 순식간에 불어나 장터를 순찰 중이던 순사조차 막지 못했다. 유봉진은 '결사대장'이라고 쓴 태극기를 어깨에 두르고, 길상면 온수리에서 백마를 타고 읍내 장터에 나타났다고 한다. 그는 장터에 있는 종루에 올라 종을 치며 시위대의 용기를 북돋웠다. 강화경찰서는 순사보 8명을 파견했으나, 만세시위를 진압하지 못했다. 오히려 군중은 순사들에게 "같이 독립 만세를 부르자"고 요구했다. 유봉진은 강화군수 이봉종에게 독립 만세를 부르라고 종용했고, 강화군수도 결국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이날 강화 주민들은 밤 11시가 돼서야 해산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삼일운동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이날 강화 만세시위에 참여한 주민은 1만명에서 시작해 최대 2만명에 달했다는 일본 군경 보고자료들이 있다.이후에도 강화 만세운동은 부내면 월곶리, 송해면, 양사면, 선원면, 삼산면 등 강화도 본도뿐 아니라 교동도, 석모도 등지로 들불처럼 번지며 한 달 가까이 이어졌다. 특히 1919년 4월 7일 석모도 만세운동은 러시아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적발돼 석모도로 유배된 이민 2세대 이안득(1900~?)이 주도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유봉진은 만세시위 직후 고려산에 숨어있다가 북도면 장봉도를 거쳐 마니산에 은신했는데, 일본 경찰이 부모를 핍박하자 온수리로 내려와 체포됐다. 그는 1920년 3월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출판법·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강화 만세시위로 체포돼 재판에 넘겨진 사람은 45명이다. 이 가운데 38명이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조봉암은 1957년 월간지 '희망' 2·3·5월호에 연재한 자서전 격인 '내가 걸어온 길'에서 유봉진의 '애기패'를 자처하며 존경심을 드러냈다. 다음은 조봉암이 유봉진에 관해 쓴 '내가 걸어온 길'의 일부 내용이다."우리 강화에서의 만세운동은 유봉진씨의 영도 하에 치밀한 계획으로 방방곡곡 어느 작은 부락 하나도 빼지 않고 일어났었고 그것이 한 달 동안이나 계속됐었다. 그런데 유 선생의 지도방침은 철저한 평화적 시위였기 때문에 수천 명이 태형을 당했을 뿐, 감옥살이를 한 사람은 비교적 많지 않았었다. 유 선생은 마니산 꼭대기에 숨어서 만세운동을 지휘했고, 왜놈에게 체포되어서도 '독립운동자 유봉진'이라고 종이에 크게 써서 가슴에 붙여주지 아니하면 말 한마디 대꾸도 안 했다. 유 선생은 5년 징역살이를 했고 우리 애기패들은 1년 살았다."강화 만세운동 전후로 조봉암은 보통학교 동창인 조구원(1897~1928), 고제몽, 오영섭, 구연준, 김한영, 김영희, 주창일 등 청년층 지도자들과 비밀결사를 조직해 지하활동을 펼치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기독교계에서는 이를 '예수교도 8인조 사건'이라 부른다. 당시 기독교학교 교사이던 조구원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이 사건의 1919년 9월 경성지방법원 판결문을 보면, 조봉암과 동지 7명은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조구원은 1919년 3월 20일 강화경찰서 경부(경감) 이해용 앞으로 "조선독립운동에 찬동하는 운동자를 검거하지 말라. 만약 이에 응하지 않을 때는 목을 베어 죽이거나 방화할 것이다"라고 적은 문서를 보낸 혐의를 받았다. 고제몽은 잡화상 유진식에게 "조선독립운동에 동참하고, 그 기운을 왕성하게 하기 위해 점포를 폐쇄하라"는 문서를 보냈고, 오영섭은 강화경찰서의 일본인 순사부장(紀喜義安)에게 "조선독립운동자를 검거할 때는 각오해야 할 것"이라는 문서를 보내 경고했다. 조구원과 고제몽은 태형 90대, 오영섭은 태형 60대를 선고받았다. 조봉암을 비롯한 나머지 5명은 3월 20일께 조선독립운동을 공모한 후 전국 3·1운동 소식지인 '자유민보' 등 십수 종의 불온문서를 작성해 강화 읍내에 배포한 혐의로 기소됐는데,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강화 청년들이 섬 곳곳으로 퍼뜨린 독립선언서와 자유민보 등은 만세시위의 불씨를 살리는 데에 일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건으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비밀결사 8명 가운데 조구원이 유일하다. 1919년 4월 중순에 구속된 조봉암은 9월 30일까지 6개월 가까이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조봉암은 서대문형무소에서 시시때때로 고문을 당했지만, 민족의식은 더욱 강해졌다. 그는 '내가 걸어온 길'에서 "옥중에서는 가끔 만세소동이 있었다"며 "나도 그 사건에 가끔 걸려들어서 매여달리기도 하고 두들겨 맞기도 했었다. 하루는 또, 고함을 치고 만세를 부르고 문짝을 발길로 차고 날뛰다가 또 붙잡혀 나갔다. 나는 붙잡혀 나가면서도 기를 쓰고 만세를 불렀다"고 회상했다.또 죽산은 "진심으로 말하면, 3·1운동이 터지고 내가 잡혀서 감옥으로 갈 때까지는 국가와 민족이 어떻다는 데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없었고, 단순히 일본 놈이 우리 조선사람을 천대하고 멸시하는 데 대한 불만과 불평이 있었던 청년일 따름이었다"며 "그러나 감옥에 들어가서부터 비로소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것을 알았다. 세상에 대한 눈이 떠졌고 애국심이 불타게 됐다. 나를 붙잡아서 감옥으로 보내준 일본 놈은 나로 하여금 일생을 통해서 일본제국주의와 싸운 애국투사가 되게 한 공로자였다"고 '내가 걸어온 길'에 썼다. 강화 만세운동의 경험이 청년 조봉암을 죽산 조봉암으로 진보하게 만든 셈이다.조봉암은 출옥한 직후인 1920년 1월, 22세의 나이로 경성 YMCA 중학부에 입학했다. 같은 해 5월 의친왕 망명을 추진한 '대동단사건'으로 평양경찰서로 연행돼 2주일 동안 조사를 받았다. 이듬해 7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사회주의와 아나키즘(무정부주의) 이론을 접했다. 이후 조봉암은 해방이 될 때까지 사회주의자로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아이클릭아트청년 시절 죽산 조봉암 모습.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제공유봉진의 생전 모습. 유족은 1950년대에 촬영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경인일보DB조봉암이 보안법, 출판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가 무죄를 선고받은 1919년 9월 30일 경성지방법원 판결문. /국가기록원 제공인천 강화군 강화읍 용흥공원 내에 있는 강화 3·1독립운동 기념비. /강화군 제공

2019-07-31 박경호

[인천바로알기종주 19번째 발걸음]바닷길 번성… 1898년 중화동교회 건립

선교사 접근 쉬워 70~80% 신도자연물 관리의 중요성도 깨우쳐두무진 4㎞ 절경 '백령도 백미'종주 3일차에 접어든 단원들은 오전 8시께 백령다목적실내체육관에서 숙영을 마치고 새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전 행선지는 수령이 100년 가까이 됐지만 최근 고사한 무궁화가 있는 연화리였다. 천연기념물 521호로 지정된 지 8년만에 무궁화 나무 앞에는 '천연기념물 지정 해제 중'이라는 푯말이 세워졌다. 태풍으로 뿌리와 가지가 훼손된 탓이다. 이제 법적보호수로 지정된 무궁화는 강릉 사천면 방동리에 한그루만 남았다. 김경혜(부곡중1·13)양은 "중요한 나무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던 사실이 슬펐고 앞으로는 섬 지역에 있는 자연물이 잘 관리됐으면 한다"며 "처음 종주를 신청했을 땐 무작정 걷는 활동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의미 있는 곳들을 둘러볼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그 앞에는 1898년 국내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중화동교회가 있었다. 바닷길을 이용해 일찍부터 선교사들과 접촉이 많았던 백령도는 지금도 주민 70~80%가 기독교 신자다. 다음 목적지인 연화리공소 역시 신자들이 모여 미사 형식의 기도를 드리는 조그만 성당이다. 서해 최북단, 긴장감이 감도는 이곳에서 주민들이 위안을 받는 곳이다.백령도의 오랜 이야기가 깃든 장소를 방문하고 단원들은 저마다 느낀 바를 이야기했다. 정휘찬(인하부중 1·13)군은 "백령도는 북한 쪽에 있어서 위험한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다"며 "막상 와보니 내가 사는 곳과 별반 다를 것 없었고 종교 활동도 이뤄지는 평화롭고 아늑한 곳"이라고 했다.오후엔 백령도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두무진을 찾았다. 기암절벽이 해안을 따라 4㎞에 걸쳐 있는데, 뾰족한 모양의 기암괴석들이 장군 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두무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광해군 때 이곳으로 유배 온 문신 이대기는 두무진을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종주단은 오후 6시께 출발 장소였던 실내체육관에 다시 도착하는 것으로 일정을 모두 마쳤다.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 제작단 문경숙 단장은 지난 29일부터 종주단과 동행하며 이들의 모습을 담느라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4년 동안 종주에 참여하고 있는 문경숙 단장은 "단원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기록할 땐 카메라를 들고 행렬 앞과 뒤를 오가며 찍는데 무더위에 힘들기도 하지만 참가자들의 발자취를 담아 뿌듯하다"며 "특히 이번 종주는 쉽게 오지 못하는 백령도에 와서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31일(수) 일정 : 백령다목적실내체육관~사곶해변~백령면사무소~물범바위~용기포신항~대청도선착장~대청노송보호지대~옥죽포해안사구~대진동해변~옥죽동~대청7리~대청고등학교제19회 인천바로알기종주대회 종주단원들이 30일 백령면 남포리에서 중화동을 향해 걷고 있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2019-07-30 박현주

[인천바로알기종주 19번째 발걸음]섬마다 얽힌사연… 구석구석 걷고 보고 듣고 느낀다

첫날 北과 10㎞ 백령행 기대감도 교육감 "나도 경험자" 격려 분단 아픔 새기고 소중함 인식제19회 인천바로알기종주대회의 대장정이 시작됐다. 지난 28일 밤 중구 연안초등학교에서 야영을 한 60여명의 단원들은 29일 오전 8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부모님 배웅을 받으며 백령도행 여객선에 탑승했다.섬 종주를 위해 경기도 시흥에서 온 김도헌(능곡중3·13)군은 "평소 관심 있었던 인천지역 섬인 백령도를 가기 위해 같은 학교 친구 3명과 함께 이번 바로알기종주대회에 참여하게 됐다"며 "서해 최북단에 있는 섬들은 저마다 얽힌 사연이 많은 걸로 아는데 이번에 그 이야기들을 알아가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이정훈(계산중3·15)군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매년 종주에 참여해 이번이 5번째인데 올해는 새로운 코스로 가는 거라 더 기대된다"며 "참여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완주했으면 좋겠다"고 했다.도성훈 인천시교육감과 장정민 옹진군수, 김승남 고려고속훼리 대표, 이영재 경인일보 인천본사 사장 등은 출발 전 여객선 터미널을 찾아 종주대회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은 이 자리에서 "나 역시 교사로서 인천바로알기종주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데 당시 인천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며 "섬 지역의 자연환경을 보고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곳에 사는 분들의 생활 모습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장정민 옹진군수는 "백령도와 대청도는 최근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고, 국내 지질공원 중 천연기념물이 가장 많이 지정돼 볼거리가 많다"며 "북한과 불과 10여㎞ 떨어져 있어 남북분단의 아픔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기도 한만큼 학생들이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고 인천 섬의 소중함을 알았으면 한다"고 말했다.첫째 날 종주단원들은 연안초등학교~인천연안여객터미널~백령도~사곶해수욕장~콩돌해안~백령다목적실내체육관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마무리하고 체육관에서 숙영했다.한편 지난 1999년 시작된 인천바로알기종주대회는 인천 전역을 답사하는 행사로 경인일보와 인천바로알기종주단이 주최하고 인천시와 교육청 등이 후원한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30일(화) 일정 : 백령다목적실내체육관~남포리~중화동~소갈동~연화리공소~두무진~사향포~대갈동~백령다목적실내체육관제19회 인천바로알기종주대회 참가자들이 29일 백령도로 출발하기 전 인천항 여객터미널에서 완주를 위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2019-07-29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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