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인천)

[제22회 바다그리기 대회 심사평]중고등부 박인우 가천대 예술대학 교수(서양화) "주제의식·화면처리 상당한 수준"

계절의 여왕 5월 말이면 이곳 인천에선 어김없이 경인일보 주최 바다그리기 대회가 열린다. 벌써 22회째 5월 가정의 달 끝자락 하순에 바닷가 사생지에서 참가학생과 그 가족이 함께하는 축제인 것이다. 학생 미술실기대회는 이른바 풀뿌리 시각예술로서 중요한 파운데이션의 역할을 하고 있다. 유치원생으로부터 중·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대회에 참여함으로써 건전한 시민의식의 기초를 쌓아가는 것이란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고등부 심사는 참여 학생들이 향후의 진로선택에 있어 매우 신중한 지점에 이미 이르렀다는 점에서 항상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그들에게는 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 그렇다. 작품에 있어선 고등부 참여는 대회 성격상 과거와는 달리 미술대학 입시와의 연관성이 미미해진 점과 수상자에 대한 실질적인 혜택이 없기에 참여자가 현저히 줄었으며, 중등부는 역시 다소 줄었는데 아직은 중학생으로서 본인의 미술적 재능을 타진해 보기 위한 성격이 있기에 주효한 점이 살아있어 참여자를 더 늘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심사는 주제의식의 강도, 순수성, 문제의식, 사생능력, Main 구도, 소재의 배치 및 power, 묘사력 등을 중시했으며 도시지역 소재 학교와 도서지역 소재 학교의 차이는 분명하였고 그 근본차이 역시 고려하여 수상자를 결정하였다. 특히 대상의 영예를 차지한 학생들의 작품들은 주제의식과 화면의 처리능력 그리고 예술성에 있어 상당한 수준에 이른 작품들이라고 생각하여 심사위원들의 숙고를 거쳐 선정하였다.

2019-06-24 경인일보

[제22회 바다그리기 대회 심사평]초등부 엄규명 서양화가 "참신하고 창의적인 작품 많아져"

늘 무한한 희망과 꿈을 주는 바다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소중한 바닷속의 생물체를 현실과 상상 속에서 느낀 감성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바다그리기대회'가 수상자 여러분과 함께 제22회를 맞이했다.다채롭게 창작 표현된 그림은 어린이 마음속에 있는 꿈의 세계이며 어린이들이 만들어 갈 창조적인 세계이며 미래다. 스스로 느낀 생각을 표현하고 그릴 때 새로운 상상력이 발휘되고 순수성과 예술성의 발상이 성장될 수 있으며 본 대회가 추구하는 사생대회의 참뜻일 것이다.무더운 날씨와 낯설은 환경 탓으로 어린이들이 집중 못하고 산만해지자 자녀사랑하는 마음에서 도와준 흔적이 많아 선정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으며 전년도의 입상작품을 모방한 작품 또한 있어서 아쉬웠으나 예년에 비해 참신하고 창의적인 새로운 작품들 또한 많아져 향상되고 있음에 희망적이며 고무적이다. 어린이 본인 생각이 잘 표현된 순수한 마음의 그림과 자신의 형태와 색채를 스스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시길 바란다.교육청 별로 전체작품을 학교별, 학년별로 20% 정도를 입선작으로 선정하였으며, 2차 본선 심사에서는 전체 입선작 중에서 약 2.5% 에 해당하는 특선이상 '우수, 최우수, 대상'을 학년별 학교별 구분없이 5차례에 걸쳐 비교평가를 심사위원 전원 합의제 토의를 거쳐 투표로 선정하였다. 유치부는 전체작품의 20%를 입선작으로, 약 5.66%의 작품을 특선으로 선정하였다. 항상 미래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시는 주최 측과 수고하신 심사위원, 행사위원, 자원봉사자께 깊은 감사의 글을 올린다.

2019-06-24 경인일보

[제22회 바다그리기 대회]수상자 명단

<초등부> ■대상 △해양수산부장관상 =인천장도초등학교 6-3 정지안 △인천광역시장상 =인천갈월초등학교 2-1 임새롬 △해군참모총장상 =인천원동초등학교 4-8 최윤지 ■최우수상 △인천광역시장상 =인천논곡초등학교 2-5 진수현/ 인천동춘초등학교 3-1 이서현/ 인천연성초등학교 1-5 문가인 △인천시교육감상 =인천서창초등학교 2-4 김윤진/ 인천신흥초등학교 2-3 박보민/ 인천석암초등학교 5-5 기예람 △인천시의회의장상 =송해초등학교 2-1 최한결/ 인천청라초등학교 1-8 김태이/ 인천동방초등학교 4-6 김주연 △제2함대사령관상 =인천능허대초등학교 6-3 이의정/ 인천신송초등학교 1-4 김태환/ 북포초등학교 6-1 황리원 △가천문화재단이사장상 =인천신대초등학교 2-5 김가연/ 인천먼우금초등학교 1-4 안효명/ 인천용현남초등학교 3-2 이한별 △선광문화재단이사장상 =인천송현초등학교 1-4 탁신율/ 인천미송초등학교 3-3 오세연/ 인천송명초등학교 2-4 김태임 △인천국제공항공사사장상 = 인천신대초등학교 5-5 양태은/ 인천경명초등학교 3-5 강지윤/ 인성초등학교 4-1 박수빈 △경인일보인천본사사장상 =인천용현초등학교 5-2 신희연/ 인천효성서초등학교 1-3 김주하/ 인천영선초등학교 4-6 이선우 △인천문화재단대표이사상 =인천공항초등학교 6-2 이수인<중고등부> ■대상 △국회의장상 =인천예술고등학교 2-4 오다경 △교육부장관상 =연수고등학교 1-6 이건우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인천영종중학교 2-11 주은수 △해군참모총장상 =인천청량중학교 1-8 오근서 △인천광역시장상 =강서중학교 2-1 김단하■최우수상 △인천광역시장상 =인천청람중학교 1-3 김은서/ 인천영흥고등학교 1-2 송상용 △인천시교육감상 =영흥중학교 2-2 이재웅/ 인천영흥고등학교 1-1 김예진 △인천시의회의장상 =인천사리울중학교 2-6 이아현/ 영종고등학교 1-7 손서연 △가천대학교총장상 =인천남중학교 3-6 김진교/ 인천예술고등학교 1-3 김지수 △인천대학교총장상 =인천해원중학교 1-3 박소미/ 옥련여자고등학교 1-2 김지선 △인하대학교총장상 =영종중학교 2-1 손서은/ 인천예일고등학교 2-9 윤채은 △제2함대사령관상 =인천논현중학교 3-10 한지은/ 인천영종고등학교 2-5 이서현 △인천국제공항공사사장상 =용인초당중학교 3-9 진선욱/ 김포제일고등학교 1-12 최성훈 △선광문화재단이사장상 =함박중학교 3-2 정가영/ 경기예술고등학교 3-5 최지슬 △경인일보인천본사사장상 =인천논현중학교 3-11 윤지영/ 석정여자고등학교 2-8 유나영&quot;제 그림 어때요&quot;-25일 열린 제22회 바다그리기 대회 송도국제도시 솔찬공원 행사장에서 참가자들이 완성한 그림들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취재반

2019-06-24 경인일보

제1회 경인일보 선상낚시, 강태공 700여명 참가

'제1회 경인일보 선상낚시대회'가 23일 오전 5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인천 앞바다 일대에서 열렸다.경인일보와 (사)인천낚시유선협회가 공동 주최·주관한 이번 대회에는 700여명의 강태공이 참여해 우럭, 광어, 볼락, 노래미 등 다양한 어종을 낚으며 손맛을 즐겼다. 이들은 송도와 영종을 잇는 인천대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등대가 있는 팔미도, 덕적도 등 8개 섬으로 이뤄진 덕적군도 등 인천 앞바다의 아름다운 풍경도 감상했다.선상낚시대회 대상은 '자이언트'호에서 몸길이 39㎝ 우럭을 낚은 김은성(57·경기도 군포시) 씨에게 돌아갔다. 경인일보는 각 유선에서 가장 큰 물고기를 잡은 참가자를 대상으로 경품 추첨을 진행했으며, 13명 가운데 추첨을 통해 김은성 씨가 대상(LG디오스 4도어 냉장고)의 주인공이 됐다. 행운상은 김씨와 같은 배를 탄 손창환(50·인천시 서구) 씨가 차지했다. 행운상 추첨은 각 유선 1위(13명)를 제외한 나머지 참가자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행운상 상품은 LG디오스 4도어 냉장고다. 참가자들은 이날 추첨을 통해 대형 냉장고를 비롯해 공기청정기, 무선청소기, 전동릴 낚싯대, 강화섬쌀 등 다양한 상품을 받는 행운을 누렸다.인천낚시유선협회 강태원 회장은 "무더운 날씨임에도 많은 낚시 애호가가 참가해 대회를 성황리에 마무리했다"며 "수도권 최고의 바다낚시 명소인 인천 앞바다를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매년 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경인일보와 (사)인천낚시유선협회가 공동 주최한 '제1회 경인일보 선상낚시대회'가 열린 23일 오후 인천시 옹진군 자월도 인근 해상에서 대회 참가자들이 선상낚시를 하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9-06-23 김주엽

[제1회 경인일보 선상낚시대회]황금어장 '입질 퍼레이드'… 손끝에 잭팟 전율

중국인 참가자 코스 개발·생중계 방송 '일거양득'새벽 1시부터 일찌감치 승선 '명당 쟁탈전' 치열"매년 개최" 이구동성… 39㎝ 우럭 '최고의 손맛'제1회 경인일보 선상낚시대회가 23일 오전 5시부터 낚시 애호가들이 참가한 가운데 인천 앞바다 일대에서 열렸다.경인일보와 (사)인천낚시유선협회가 함께 주최한 이번 대회에서 참가자들은 우럭, 노래미, 광어 등을 낚으며 짜릿한 손맛을 즐겼다. 또 덕적군도 등 인천 앞바다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이모저모○…대회 출항 장소인 인천 남항 유어선부두는 이른 시간부터 대회 참가자들로 인산인해. 출항 시간은 오전 5시였지만, 오전 2~3시부터 주차장에 차량이 들어차. 인천 서구 당하동에서 온 한만희(58)씨는 "서울이나 일산에서 온 참가자들은 전날부터 대기했다고 들었다. 아침에 낚시가 잘 되기 때문에 낚시꾼 대부분은 부지런하다"며 웃음.○…대회에 참여한 '반가워'호에는 중국 웨이하이(爲海)시 낚시협회 관계자 5명도 탑승. 이들은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인천 앞바다 낚시 코스를 개발하기 위해 대회에 참가. 웨이하이시 낚시협회 관계자들은 실시간으로 자신들이 낚시하는 모습을 방송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 우권풍(46) 웨이하이시 낚시협회 회장은 "영흥도와 덕적도 앞바다에서 처음 낚시를 했는데, 경치가 좋고 낚시도 잘 돼 중국인들이 좋아할 것 같다"며 "인천시민과 웨이하이 시민이 모두 참여하는 낚시대회를 열고 싶다"고 소망.○…명당으로 알려진 '조타실' 주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이른 새벽부터 치열. 어군탐지기가 설치된 조타실 주변에 물고기가 많다는 것은 선상낚시 경험이 많은 강태공만 아는 노하우. 한 참가자는 "대회 전일 찜질방에서 잠을 청하고, 새벽 1시에 승선해 조타실 옆에 낚싯대를 설치했다"며 "어군탐지기로 포인트를 잡기 때문에 조타실 주변이 잘 잡힌다"고 설명.○…낚시대회 참가자들은 경인일보가 개최한 첫 대회에 큰 관심을 보이며 "매년 개최해달라"고 이구동성. 경기도 남양주에서 온 김삼수(52)씨는 "서울, 경기, 인천 낚시 애호가들이 당일치기로 낚시를 즐기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 인천"이라며 "경인일보 선상낚시대회가 수도권을 대표하는 낚시대회로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희망.○…동틀 무렵 송도국제도시·영종하늘도시 스카이라인, 국내에서 가장 긴 다리인 인천대교 모습,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인 팔미도 등대를 감상하는 것은 선상낚시 애호가만 누리는 특권. 참가자들은 낚싯배가 인천대교와 팔미도등대를 지나가자 휴대전화를 꺼내 카메라 버튼을 누르느라 분주. 한 참가자는 "이른 새벽 출항해 도시의 모습과 바다 풍경을 감상하면 쌓였던 스트레스가 확 날아간다"며 "대어를 낚을 때의 손맛뿐 아니라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보는 것이 바다낚시의 묘미"라고 말해.○…제1회 대회 대상은 '자이언트'호에 탄 김은성(57·경기도 군포시)씨가 수상. 김씨는 각 유선에서 가장 큰 물고기를 잡은 1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경품 추첨 행사에서 대상인 'LG디오스 4도어 냉장고'를 차지. 그는 '자이언트'호 참가자 중 가장 큰 39㎝ 우럭을 잡아 경품 추첨 기회를 획득. 김씨는 "바다낚시는 처음인데 이 같은 행운을 잡아 매우 기쁘다"며 "대회 참가를 권유한 친구에게 꼭 보답하겠다"고 약속. /김성호·김주엽 기자 ksh96@kyeongin.com제1회 경인일보 선상낚시대회가 열린 23일 오전 인천시 옹진군 자월도 인근 해상에서 대회 참가자들이 직접 낚아올린 광어(왼쪽)와 우럭(오른쪽)을 들어 보이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장비 손질-한 참가자가 본격적인 대회 시작에 앞서 낚싯대를 손보고 있다.만선 '부푼 꿈' 안고 출항-참가자들이 탄 낚시 유선이 파도를 가르며 이동하고 있다.신호를 기다리며…-선장의 신호에 맞춰 낚시를 시작한 참가자들.풍광은 덤-옹진군 승봉도를 배경으로 참가자들이 낚시준비를 하고 있다.한손엔 월척, 한손엔 상품 명덕5호를 탄 대회 참가자들 중 1등부터 5등까지 입상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두손 가득'-집으로 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인천 남항유어선부두에 줄지어 도착하고 있다.

2019-06-23 김성호·김주엽

[독립운동과 인천·(17)]백범일지 톺아보기·(上)

부친이 조달 탈옥과정 도구로 써전국 최고 기술 기록부족 아쉬워백범 김구(1876~1949)는 인천에서 두 번의 감옥살이를 했다. 김구는 을미사변 직후인 1896년 국모시해의 원수를 갚는다며 일본인을 처단한 이른바 '치하포 사건'으로 첫 번째 옥살이를 하면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그는 1898년 인천감리서 감옥에서 탈출했다. 김구가 '백범일지'에 생생히 기록한 탈옥과정에서 스치듯 언급한 무기 겸 탈출도구가 있는데, 바로 '삼릉창'(三稜槍)이다. 수많은 사람이 '백범일지'를 읽으면서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삼릉창. 옛 인천의 대장간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라 할 수 있다.인천 감옥에서 탈출하기로 마음먹은 김구는 부친에게 대장장이를 통해 한 자 길이(약 30㎝)의 삼릉창 하나를 만들어 몰래 넣어달라고 했다. 김구의 아버지는 삼릉창을 옷 속에 넣어 전달했다. 인천의 대장간에서 제작했을 게 틀림없다. 김구는 이 쇠창으로 벽돌을 들추고 땅을 파서 감옥 밖으로 빠져 나왔다. 인천에서 서울로 탈출하는 내내 삼릉창을 품에 지니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을 것이다. 이 삼릉창 하나에 목숨을 맡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김구의 아버지는 삼릉창을 인천의 어느 대장간에 맡겼을까. 인천은 근대문물이 한국에 전파되는 최일선이었다.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살던 인천 개항장의 대장간에서는 다국적 물품의 주문 제작도 가능했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인천의 대장간 기술력이 전국 최고 수준이었을 테지만, 현재 그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양준호 인천대 교수가 '1936년 판 인천상공인명록'을 근거로 2009년 펴낸 '식민지 시기 인천의 기업 및 기업가'를 보면, 당시 인천에는 대장간 9곳이 있었다. 일본인 소유가 5곳이고 조선인 소유가 4곳이었는데, 조선인이 운영하던 대장간의 영업세액이 가장 높았다. 그만큼 조선인과 일본인 간 경쟁이 치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태범(1912~2001) 박사가 1983년 쓴 '인천 한 세기'에 따르면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까지 애관극장 아래 있던 최씨대장간은 도끼, 칼, 호미, 낫 등을 만드는 솜씨가 남달랐다고 한다.인천에서 만든 삼릉창이 어떠한 형태인지 알 수 있는 단서는 희박하다. 조선 후기 군사교범인 '융원필비(戎垣必備)'에 그림으로 소개됐지만, 중국 병법서를 그대로 베낀 중국식 창이다. 그 삼릉창을 백범도 알고, 대장장이도 알았다. '백범일지'에서 삼릉창의 쓰임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색다르다. 인천에서 만들어져 백범을 탈출시킨 그 삼릉창의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조명할 필요성도 커진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2019-06-19 박경호

[독립운동과 인천·(17)]백범일지 톺아보기·(上)

1896년 '국모 원수갚기' 목적 일본인 살해 체포돼 인천감리서로 이송·심문조선 관리·일본인 꾸짖으며 '유명세' 미결수 신분으로 '기약없는 감옥생활'강화도 재력가 김주경 구명운동 펼쳤으나 부패한 조정 손못써 '탈옥' 권유1898년 간수 눈 피해 쇠창으로 땅 파 빠져나와 용동·만수동등 거쳐 서울로일지에 첫 번째 옥살이관련 자세히 남겨… 기록 복원·콘텐츠화 작업 지적"인천은 의미심장한 역사지대라 할 수 있다."해방을 맞아 귀국한 그 이듬해 삼남지방 순시에 나선 71세의 백범 김구(1876~1949)는 가장 먼저 찾은 인천에 대해 '백범일지'에 이렇게 썼다. 김구는 인천에서 두 번이나 감옥살이를 하면서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자로 새롭게 탄생했다. 그를 진정한 의미의 '백범 김구'로 만든 인천은 '의미심장한 역사지대'임에 틀림없다. 김구는 '백범일지'에 인천 감옥살이와 탈옥과정, 그를 도운 인천 인물들을 소상히 기록했다. 몇 년 전부터 백범 탈출로 등 '백범일지' 속 인천 기록을 복원하는 노력이 일부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여전히 '디테일'은 부족하다. '백범일지'를 더 꼼꼼히 살피고 역사적 사실관계를 밝혀내는 작업이 더욱 활발하게 진행돼야 비로소 김구가 인천의 '콘텐츠'로 탄탄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다.김구는 1896년 3월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에서 국모의 원수를 갚는다며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土田讓亮)를 살해한 이른바 '치하포 사건'으로 인천에서 첫 번째 옥살이를 했다. 당시 그는 '김창수'라는 이름을 쓰는 21세 청년이었다. 김구는 '백범일지'에 쓰치다를 일본군 중위라고 썼다. 대한매일신보사가 1999년 발행한 '백범김구전집' 3권에 실린 치하포 사건 관련 당시 일본 측 보고서를 보면, 쓰치다의 신분을 '평민(상인)'이라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 '백범김구전집' 3권 해제를 쓴 도진순 창원대 사학과 교수는 "일본 측이 상인(양민)이 강도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는 의도에서 쓰치다의 신분을 소상히 공표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구는 사건 현장에서 "국모보수(國母報讐)의 목적으로 왜인을 죽이노라"는 글을 쓰고, 마지막 줄에 '해주 백운방 텃골 김창수'라고 적었다.김구는 사건이 벌어진 지 세 달이 지난 6월 말 체포돼 해주부에서 심문을 받은 뒤 인천감리서로 이송됐다. 인천감리서는 1883년 개항 이후 설치돼 개항장과 외국인 관련 행정·사법·국제관계 업무를 맡았다. 애초 해주부에서 사건을 처리할 계획이었으나, 일본영사관이 외국인의 생명과 관계된 중대사건이라는 이유로 인천감리서에서 김구를 심문하도록 조선 정부에 강력하게 요구해 인천으로 옮기게 됐다. 김구는 '백범일지'에 현재 인천 중구 내동에 표지판 하나만 달랑 세워진 채 그 터만 남은 인천감리서의 모습을 남겼다. 다음은 '백범일지' 속 인천감리서와 감옥이다.'감옥은 내리(內里)에 있었는데, 내리 마루에 감리서가 있고, 왼편에는 경무청이 있고, 오른편에 순검청이 있었다. 감옥은 순검청 앞에 있고, 그 앞에는 노상을 통제하는 2층 문루가 있었다. 감옥 주위에는 담장을 높이 쌓아올렸고 담 안에는 평옥(平屋) 몇 칸이 있는데, 그 방들을 반으로 나누어서 한편에는 미결수와 강도·절도·살인 등 죄인을 수용하고, 나머지 반쪽에는 민사소송범과 경범위반 등 이른바 잡범을 수용하고 있었다.'김구는 불결한 감옥 안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얼마나 아팠는지 자살을 시도할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 1896년 8월 31일 인천항재판소에서 첫 심문이 열렸다.일본정부 관계자도 배석해 심문을 지켜봤는데, 이 자리에서 김구가 조선인 관리와 일본인을 크게 꾸짖었다는 소식이 인천항에 퍼졌다. 2차, 3차 심문이 이어지면서 김구는 '전국구 스타'가 됐다.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1859~1939) 여사는 객주 박영문의 집에서 식모살이하며 아들 옥바라지를 하고 있었는데, 김구를 도와주겠다는 인천사람들이 점차 늘었다. 일본이 줄기차게 요구한 김구의 사형 판결이 연기됐다. 민심이 그를 단순한 살인범으로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정도 섣불리 판결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특히 강화도의 재력가 김주경(김경득)이 가산을 탕진하면서까지 김구에 대한 구명운동을 펼쳤다. '백범일지'를 보면, 김주경은 "김창수를 살려내야 할 터인데, 지금 정부대관들은 모두 눈에 구리녹이 슬어서 돈밖에 보이는 것이 없으니, 불가불 금력을 사용치 아니하면 쉽게 방면치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주경은 고위 관료들을 만나 김구를 방면해 달라고 요청하거나 소송을 제기하는 등 7~8개월 동안 가진 돈을 몽땅 썼지만, 결국 김구를 빼내지는 못했다. 조선 말기 부패한 조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당시 조정이 얼마나 썩었는지는 황현(1855∼1910)이 쓴 '매천야록(梅泉野錄)'에서도 드러난다. '매천야록'에는 영동현에 사는 이용직이 100만냥을 상납하고 경상감사로 임명됐는데, 부임하자마자 포졸을 풀어 지역 부호들을 잡아들이고 뇌물을 받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매관매직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대였다는 게 '매천야록' 곳곳에서 확인된다.김구는 미결수 신분으로 감옥생활을 하면서 1년 넘게 독서에 열중했다. 이 기간 감리서 직원의 권유로 '세계역사·지지(世界歷史·地誌)', '태서신사(泰西新史)'등 중국에서 발간된 서적을 읽으며 새로운 문물을 접했다. "의리는 유학자들에게 배우고, 문화와 제도 일체는 세계 각국에서 채택해 적용하는 것이 국가의 복리가 되겠다"는 사상을 다듬어 갔다. 또 동료 수감자들을 가르치거나 소송을 위한 소장을 써주기도 했는데, 독립신문은 1898년 2월 15일자에 인천항 감옥 죄수 중 20세 김창수가 죄인들을 공부시키니 "옥이 아니요 인천 감리서 학교라고들 한다"고 보도했다.하지만 기약 없는 옥살이가 이어졌고, 자신을 도와주던 김주경마저 전 재산을 써도 방법이 없자 탈옥을 권유하는 시를 보냈다. 김구는 아버지가 소송 문서를 전부 강화도로 갖고 가서 명망 높은 양명학자인 이건창(1852~1898)에게 방책을 묻기도 했지만, 이건창은 탄식만 했다고 '백범일지'에 적었다.김구는 탈옥을 결심하고 계획을 세운다. 1898년 3월 김구는 아버지에게 대장장이를 통해 한 자(30㎝) 길이의 '삼릉창'(三稜槍) 하나를 만들어 새 옷 속에 싸 들여 달라고 부탁했다. 아버지는 그가 무슨 일을 꾸미는 줄 짐작하고 즉시 삼릉형(三稜形)으로 만든 쇠창 하나를 넣어줬다. 이 삼릉창은 무기이면서 벽돌을 들추고 땅속을 파는 중요한 도구였다. 김구가 삼릉창을 제작해 달라고 특정한 것으로 미루어 당시에도 생소한 무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삼릉창의 형태는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1813년 훈련도감이 편찬한 군사교범인 '융원필비(戎垣必備)'에 삼릉창의 모습이 실려있긴 한데, 중국의 병법서 '무비지(武備志)'에 소개된 중국식 창을 그대로 옮긴 것일 뿐 실제 제작된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김구의 탈옥 도구로 쓰인 삼릉창을 고증하는 작업은 곧 한국 무기의 역사를 보완하는 셈이므로 꼭 필요하다.김구는 탈옥 당일 밤 당번인 간수를 불러 돈 150냥을 주고 죄수한테 한 턱을 낼 것이니 쌀, 고기, 술을 사 오라고 부탁했다. 또 간수에게 50전어치 아편을 사서 실컷 먹으라고 뇌물을 찔러 주기도 했다.그 간수는 아편쟁이였다고 한다. 죄수들은 술과 음식을 먹으며 노래를 불렀고, 간수는 자기 방에서 아편을 피우고 정신이 흐릿해 까무러져 있었다. 교역통로였던 인천항에서는 중국에서 건너온 아편 또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소설가 김탁환과 영화감독 이원태는 인천 개항장이 아편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거라는 상상에서 출발한 소설 '아편전쟁'(2016)을 썼다. 당시 시대적 상황과 인천항의 국제적인 입지를 고려하면 충분히 해봄직 한 문학적 상상이다. '백범일지' 속 아편쟁이 간수를 통해 당시 인천항에 아편이 만연했다는 것이 입증된다. 소설 '아편전쟁'에서는 인천 청국조계에 아편굴인 '천락원(天樂園)'이 등장하는데, 아편을 단속해야 하는 감리서 순검까지 들락날락한다. 손님이 나날이 늘자 '지락원(地樂園)'이라는 아편굴이 하나 더 생긴다.김구는 혼란한 틈을 타 마루 속에 깔아놓은 벽돌을 창끝으로 들추고 땅속을 파서 감옥 밖으로 나왔다. 조덕근, 양봉근, 김백석 등 장기수 4명과 함께 탈옥했다. 감옥 담장을 넘어 "누구든지 내 갈 길을 방해하는 자가 있으면 결단을 내버릴 마음으로 쇠창을 손에 들고 정문인 삼문(三門)으로 바로 나갔다"고 김구는 당시를 회상했다. 옥에서 빠져나온 김구는 '용동 마루터기', '천주교당의 뾰죽집이 보이는 언덕', '화개동 마루터기' 등을 거쳐 서울로 탈출했다. 김구의 탈출 경로를 연구한 몇몇 학자는 김구가 감리서에서 나와 용동 마루터기, 화개동(현 신흥동) 마루터기를 지나 문학동, 만수동, 부평 등지를 거쳐 서울 양화진 나루에 도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구는 인천에서 시흥 가는 대로변에 서 있는 방석솔(가지가 옆으로 넓게 퍼져 자라는 소나무) 밑에 몸을 숨겨 한나절을 보냈다. 김구가 몸을 숨기다가 지나갔을 것으로 생각되는 길목에는 인천대공원이 있고, 인천대공원 백범광장에는 김구와 곽낙원 동상이 서 있다. '백범일지' 속 김구의 첫 번째 옥살이만으로도 재조명해야 할 인천 이야기가 아직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1946년 11월 강화도 김주경의 집을 찾은 김구. 김주경은 김구가 인천감리서에서 옥살이할 때 구명운동을 펼친 인물이다. 김구는 해방 후 귀국하자마자 김주경, 윤봉길, 이봉창의 유가족부터 수소문했다. 출처/'백범김구전집' 11권김구가 1896년 7월부터 1898년 3월 탈옥할 때까지 투옥됐던 인천감리서 전경. 현 인천 중구 자유공원 쪽에서 내려다 본 사진으로 추정된다. /인천시 역사자료관 제공조선 후기 훈련도감이 편찬한 군사교범 '융원필비'에 나온 삼릉창. 인천의 대장간에서 제작했을 가능성이 큰 김구의 중요한 탈옥도구였으나, 아직 그 실체가 드러나진 않았다. 출처/'조선의 무기와 갑옷'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이 작년 입수한 김구의 '백범일지' 친필 서명본.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9-06-19 박경호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대회 대상'-인터뷰]이지산양(인천 길상초 5년)

'따스한 햇볕 받고 있는 저 대나무숲/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중략)…파란 대문 우리 할머니댁/안에 누구 있으려나?/살구꽃 닮은 우리 할머니/포근한 미소 지으며/손주 기다리고 있겠지'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에서 대상(인천시교육감상)을 받은 이지산(인천 길상초 5년·사진)양은 김포시 통진에 사는 할머니를 생각하며 '봄꽃 닮은 할머니'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이양의 시를 읽으면 마당에 백구 가족이 있고, 진달래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할머니 댁 풍경이 마치 그림처럼 펼쳐진다.강화에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고 있는 이 양은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한다.이양은 "마당에 앉아 있으면 잘 안 써지던 일기가 술술 잘 써진다"며 "야외에서 글을 써 상을 받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는 매년 인천대공원에서 치러진다.이양은 커서 동물을 돌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직업을 갖고 싶단다. 이양은 "평소 글쓰기를 좋아했는데, 기대하지 않은 상을 받아 너무 좋다"며 "앞으로 글쓰기가 더 재미있어질 것 같다"고 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9-06-13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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