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인천)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12]인천의 해원양성 교육기관

일제에 의해 1919년 교육기관 설립1947년엔 국립해양대학 잠깐 둥지1981년 34년만에 선원학교 문열어1993년 국립인천해사고로 개편바로 취업시장에 투입되는 학생들인프라 부족 탓 타지서 승선 실습졸업후엔 업체 몰린 부산으로 떠나지역 전문가 배출, 국가 관심 필요"선장이 돼 맘껏 세계를 누비며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싶어요."지난 3월23일 오전 10시께 인천 중구 북성동 국립인천해사고등학교. 실제 화물선 기관실처럼 꾸며진 선박 조종 시뮬레이션 교실에서 해사고 3학년 학생 4명이 배를 운항하는 실습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눈·비가 내리거나 다른 선박이 가까이 다가오고, 파도가 크게 몰아치는 등 다양한 가상 상황이 모니터에 연출됐다. 학생들은 선장, 항해사, 조타수가 된 것처럼 바다를 항해했다. "충돌 위험, 스타보드(Starboard) 10도(오른쪽으로 10도 타격)."'Hanjin Korea'라는 가상 화물선이 배에 급격히 다가오자 조타수가 급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선장은 키(배의 방향을 조종하는 장치)를 오른쪽으로 급하게 틀었다. 항해사 역시 선박이 제 각도로 피했는지 끝까지 확인했다. 선박 충돌 사고는 가까스로 막을 수 있었다. 이날 선장을 맡은 이대영(3학년)군은 "실제 선박을 운항하는 것처럼 임하면 나중에 배를 안정적으로 잘 조종하는 선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학생들은 졸업 후 해기사 4급을 취득해 화물선, 무역선 등 선박 인력에 즉각 투입된다. 일부 학생은 이미 해운사 장학생으로 뽑혀 마지막 학기 실습을 마치면 바로 취업해 배를 몰기도 한다. 흥아해운 장학생으로 뽑힌 김민성(3학년)군은 "전 세계를 누비며 세계 여행을 많이 하는 선장이 되는 게 꿈"이라며 웃어 보였다.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데 필요한 자질 중 하나는 협동심이다. 인천해사고 교훈도 '협동'이다. 이 때문인지 인천해사고의 전신인 인천선원학교 출신은 선장, 기관사, 선원, 회사원 등 각자 다른 위치에서도 지금까지 동문회를 이끌어오는 등 남다른 우애를 자랑한다.인천선원학교는 턱없이 부족했던 선원 수급을 위해 정부가 1979년 설립해 준비 기간을 거친 뒤 1981년 개교했다. 1기부터 3기까지는 1년제로 운영됐으며 4기부터 3년제로 변경됐다. 12기부터 현재 인천해사고등학교 모습을 갖췄다. 100여 명이던 선원학교 학생 정원은 현재 360여 명까지 늘었다.선원은 선내에서 생활하면서 해상에 도사리는 각종 위험 속에 인명과 재화를 관리해야 해 군대처럼 엄격한 조직체계를 갖춘 게 특징이다. 인천선원학교 역시 군 조직과 비슷했다. 주말에 자유롭게 학교 밖을 나가기도 어려웠던 데다 취침 점호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날 밤을 꼴딱 새울 정도로 군기가 셌다는 게 졸업생들 이야기다. 인천선원학교를 2기로 졸업하고 10여 년 선원 생활을 한 임용선(53)씨는 "분위기가 거의 군대와 같았다. 주말에도 자유로운 출입이 통제돼 2m 높이의 담장을 통해 월미유원지에 놀러 온 외부 여성과 대화나 교제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학교 특성상 강한 체력과 인내심을 기르는 훈련이나 강도가 센 해난 훈련을 해 심신이 여린 학생들은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기억했다. 학생들은 학교 일에 동원되기도 했다. 현재 학생들이 쓰고 있는 운동장과 조경수는 선원학교 1~3기 학생들이 조성한 것이다. 선원 수급 부족으로 학생들은 바로 취업 시장에 투입됐다. 이 때문에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정규 고등학교에 가지 못했던 학생들이 주로 입학했다고 한다.인천선원학교 이전 인천에는 일제가 설립한 '해원양성소(조선총독부 체신국 해원양성소 인천지사)'가 있었다.1845년 영국이 항해사와 기관사의 자격 조건으로 승선 경력 이외에 국가시험을 거쳐 해기사면장(海技士免狀)을 발급하기 시작하자 다른 나라에서도 차례로 해기사 제도를 시행했고 우리나라에도 1913년 해기사 면허제도가 도입됐다. 근대적인 선원 양성기관이 설립된 것은 인천의 해원양성소가 최초였다. 이는 현재 부산에 있는 한국해양대학교의 전신이다.1919년 7월 해원양성소를 세운 일제는 선원이 부족하자 신입생에게 징집 유예 등 혜택을 주며 선원을 뽑았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해운 업계 일손이 부족하자 월급을 많이 주기도 했다. 그러나 까다로운 시험·체격 기준과 일제에 대한 반발 등의 이유로 정작 선원 시험에 응시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해원양성소는 인천항을 모항으로 한 '광제호(光濟號)'를 실습선으로 썼다. 고종 황제는 1903년 열강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 군함인 양무호(揚武號)를 일본에서 도입했는데 유지비가 많이 들고 효율성이 떨어져 군함으로 쓰지 못했다. 이에 골머리를 앓던 대한제국 정부가 새로운 군함 발주를 계획해 일본으로부터 1904년 도입한 것이 광제호였다. 광제호는 무선 전신시설을 처음 장치한 군함이었다. 그러나 1905년 을사조약 체결로 통감부 정치가 시작되면서 광제호는 군함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채 해원양성소 실습선으로 쓰였다.당시 해원양성소를 나온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렵고 비참한 상황에서 근무했다. 1926년 12월22일자 동아일보 '취직난 중에도 해원은 유부족'이라는 기사를 보면 '취직난은 누구나 동감하지만 해원계는 반대로 구인난을 겪고 있다. 조선 유일 해원양성소가 인천이며 당시 졸업생은 거의 조선 청년으로 근실하고도 박봉을 감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해원양성소는 1927년 부산 진해로 옮겨져 진해고등해원양성소로 개편됐으며, 1946년 진해해양대학이 됐다. 같은 해 인천에도 인천해양대학이 설립됐다. 이후 진해해양대학이 1947년 1월 인천으로 이전하면서 인천해양대학과 병합해 '국립해양대학'이 됐지만, 고작 4개월만인 5월 다시 군산으로 옮겨졌다. 이후 '해양도시' 인천에는 인천선원학교가 설립되는 30년 동안이나 선원 양성 전문기관이 없었다.해양도시이자 수도권의 관문인 인천은 최초의 철도대학이 설립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1905년 5월 인천 제물포에 개교한 철도이원양성소(鐵道吏員養成所)마저 1907년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인천은 철도 전문인 양성의 맥도 끊기게 됐다.선원의 업무는 선박을 안전하게 운항해 여객과 화물을 보호·관리하는 것이다. 선박의 대형화·다양화와 기술 발달로 오늘날 선박 운항은 전문적인 지식과 기능을 필요로 한다. 유능한 선원을 갖추는 것이 해양도시의 기본이며 곧 해양 경쟁력인 이유다. 그러나 인천은 해양 교육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 부산은 국립한국해양대, 국립부경대 등이 있으나 인천에는 인천해사고와 인천해양과학고 등 중등교육기관이 전부다. 교육 환경도 열악하다. 학생들은 한국해양수산연수원에 있는 실습선을 이용해 6개월간 승선 실습을 마친 뒤, 민간 해운회사에서 상선을 이용해 남은 6개월을 채우는 상황이다. 굵직한 해운 회사도 부산에 몰려 있다 보니 해사고 졸업생의 80%는 부산 소재 해운 회사에 취직한다.여기에 인천은 월미도 인근 지역을 개발할 경우 민간투자 등을 위해 해사고 이전이 필요하다는 주민·정치계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해기사에 대한 대체복무 특혜까지 없어질 위기에 처해 해원 양성 교육의 위축이 우려된다. 인천이 해양도시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해운 교육계에 관심을 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명식 해사고 교장은 "해운 산업이 지금은 위축됐지만 지금까지 대한민국 발전을 견인한 공이 크다. 앞으로도 우리나라 발전을 이끌어갈 수 있는 중요한 산업"이라며 "해양 분야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도록 국가와 국민들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글/윤설아기자 say@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국립인천해사고등학교 학생들이 선박조종시뮬레이션실에서 가상 화물선을 인천항으로 인항하는 선박 운항 실습을 하고 있다. /국립인천해사고 제공인천해사고등학교 전경.인천해사고 학생들이 학교 내 수영장에서 해상훈련을 받고 있다. /국립인천해사고 제공국립인천선원학교 학생들이 해변에서 해상 훈련을 받고 있는 모습. /국립인천해사고 제공국립인천선원학교 학생들이 실제 선박 기관으로 실습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 /국립인천해사고 제공

2018-04-04 윤설아

[zoom in 송도]송도컨벤시아 2단계 '국비 확보' 나섰다

국회가 BTL로 바꿔 승인 지원 약속 민간 건립 후 경제청 임차 사용 탓국가 부담 임차료의 50% 요청하자포괄보조금 까먹는 생활계정 제시"경제구역 기반시설이라는 점 부각"경제청 특별보조금 요구 설득 계획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송도컨벤시아 2단계 건립사업과 관련해 국비(임차료) 확보에 나섰다. 송도컨벤시아 2단계 건립사업은 1단계 시설 옆에 연면적 6만4천207㎡ 규모의 시설을 증축하는 것으로 올해 7월 완료될 예정이다. 2015년 12월 공사를 시작했으며 올 2월 말 기준 공정률은 80.54%다. ┃표 참조2단계 사업은 BTL(임대형 민자사업) 방식이다. 민간 사업시행자 '더송도컨벤시아(주)'가 건립하면 인천경제청이 일정 기간 임차해 사용하게 된다. 인천경제청은 재정사업으로 2단계 사업이 추진되기를 희망했는데, 국회에서 BTL 방식으로 변경·확정됐다. 국회는 송도컨벤시아 2단계 사업을 BTL 방식으로 승인하면서 국비 지원을 약속했었다. 임차료의 50%를 국가에서 부담하기로 했다.지난해 인천경제청은 송도컨벤시아 2단계 시설 임차료를 '지역발전특별회계 경제발전계정'에 편성해달라고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 등에 요구했다. 하지만 이들은 '지역발전특별회계 생활기반계정'에서 2단계 임차료를 확보하라고 했다. 생활기반계정은 정부가 지역 발전을 위해 각 지자체에 주는 '포괄보조금' 개념이다. 반면 경제발전계정은 특정 사업을 위한 '특별보조금' 성격을 띤다. 생활기반계정에서 2단계 임차료를 확보하면, 그만큼 포괄보조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다른 사업들을 추진하는 데 차질이 생기게 된다.송도컨벤시아 2단계 시설 임차 기간은 20년이다. 인천시와 정부는 매년 72억2천800만 원씩 더송도컨벤시아(주)에 줘야 한다.인천경제청은 산업부, 기재부 등 중앙부처와 국회를 설득해 경제발전계정으로 2단계 시설 임차료(50%)를 확보할 계획이다. 송도컨벤시아는 경제자유구역 활성화를 위한 기반시설이다. 마이스(MICE) 산업의 핵심 시설로, '외국인 투자유치' '무역 증대' '일자리 창출' 등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한다. 인천경제청 관계자는 "다른 도시에 있는 전시시설과 달리 송도컨벤시아는 경제자유구역에 위치한 시설"이라며 "국가 성장 동력인 경제자유구역의 시설인 점을 고려해 경제발전계정으로 지원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송도컨벤시아 2단계 시설 국비(임차료) 확보에 나섰다. 인천경제청은 송도컨벤시아가 경제자유구역 활성화를 위한 기반시설인 점 등을 들어 포괄보조금 개념의 생활기반계정이 아닌 특별보조금 성격의 경제발전계정에 2단계 임차료를 편성해달라고 산업통상자원부에 요구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촬영한 2단계 시설 공사 현장 모습이다. 2단계 시설은 올해 7월 준공 예정이며, 올 2월 말 기준 공정률은 80.54%다. /경인일보 DB

2018-04-01 목동훈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11]해양 안보와 인천(下)

소규모 한국군으로만 수행한제2차 인천상륙작전재탈환한 시청에 남겨져 있던 김일성 초상화 아직도 생생'모른 척 돌아서 가면/가시밭길 걷지 않아도 되었으련만/당신은 어찌하여 푸른 목숨 잘라내는/그 길을 택하셨습니까 (중략) 당신의 넋은 언제나/망망대해에서 뱃길을 열어주는/등대로 우뚝 서 계십니다 (후략)' -유연숙의 시(詩) '넋은 별이 되고' 일부연평해전·천안함 피격 일어난 인천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 정부와 별도로 진행전우의 죽음 직접 목격한 영웅들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모두 불행하게 만들어""그 누구도 다시 고통 받는일 있어선 안돼" 평화 유지할 '강한 군사력·안보' 강조지난 23일 오전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이 열린 인천 월미공원 해군2함대사령부 기념비 앞. 인천지역 학생을 대표해 국립인천해사고등학교에 다니는 유태영(3학년)군이 헌시 '넋은 별이 되고'를 낭송하자 500여 참석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인천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55명 해군 장병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이 일어난 곳은 모두 인천이었다. '서해수호의 날'이 제정된 이후, 인천이 정부 행사와 별도로 3년째 자체 기념식을 치르고 있는 이유다. 지난해 인천시는 '호국·보훈의 도시'를 선언하기도 했다.인천에서 전쟁을 치러낸 이들에게 인천의 바다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1950년 2월 해군사관학교 3기생으로 졸업·임관해 한국전쟁을 겪은 최영섭(90·예비역 해군대령) 해양소년단 고문에게 인천의 바다는 전쟁터였다.최 고문은 인천상륙작전과 대청도·소청도 탈환 작전 그리고 제2차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한 산증인이다. 그는 대한민국 해군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함(PC-701) 갑판사관 겸 항해사, 포술사로 해군 장교의 첫 함정 경험을 시작해 백두산함 함장, 충무함(DD-91) 함장, 51전대 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1968년 해군대령으로 전역했다.특히 그가 겪은 제2차 인천상륙작전은 많은 이가 알고 있는 인천상륙작전과 달리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었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서울과 인천은 다시 북한군과 중공군에 넘어갔다. 2차 인천상륙작전은 바로 이러한 상황이던 1951년 2월10일 한국 해군·해병대가 소규모의 병력으로 벌인 작전이다."백두산함 등 6척의 함정과 각 함정에서 차출한 승조원 73명, 그리고 덕적도 주둔 해병대 1개 중대가 인천 동구 만석동(조선기계제작소 해안)에서 상륙작전을 감행했죠. 1·4후퇴 후 한 달여 만에 인천을 재탈환한 것인데, 인천시청에 걸려있던 스탈린과 김일성의 초상화가 아직도 생생합니다."이 작전으로 적군 82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했다. 전차 1대와 야포 8문을 노획하는 전과도 올렸다. 작전 성공 이후 인천항을 통한 대규모 군수 지원이 가능하게 됐으며, 국군과 유엔군이 수도 서울을 재수복하고 영토를 다시 찾는 데 큰 기반이 됐다.한일 월드컵 경기가 열리던 2002년 6월29일 제2연평해전에 참전한 권기형(39) 예비역 하사에게도 인천 바다는 잊을 수 없는 곳이다.당시 '참수리 357호'에서 M60 사수 임무를 맡았던 그는 "부사수인 후배 부사관 서후원 하사(당시 계급)가 가슴에 총탄을 맞고 갑판에 무릎을 꿇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그는 당시 고속정 좌현에서 북한 경비정과 마주하고 있었다. 워낙 가까운 거리여서 북한 경비정 승조원들의 표정까지 관찰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 굉음과 함께 팔과 어깨에 총탄을 맞고 갑판으로 튕겨 나갔다. 부사수로 그 대신 자리를 지킨 건 서후원 하사였다. 그는 서 하사가 힘없이 주저앉는 모습을 지켜보며 죽음을 직감했다고 했다.그는 그때의 부상으로 8개월간 병상에 있다 전역했고, 현재는 해군 무기를 만드는 방산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전우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그에겐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의미가 남다르다.그는 "제2연평해전은 분명히 '승리한 전쟁'이다. 하지만 전쟁에서 이긴 사람도 진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은 불행이다. 승자도 패자도 모두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무엇보다 전쟁이 벌어지지 않도록,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강한 군사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그의 바람은 단 한 가지. 그는 "1년 내내 기억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며 "딱 하루만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군인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달라"고 했다.곽진성(37) 예비역 해군 병장도 제2연평해전이 벌어진 그날 K-2 소총수로 같은 장소에 있었다. 참수리 357호 함교가 그의 자리였다.전투가 끝나고 며칠간은 거의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오직 분노의 감정만 가슴에 남아있었다.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안정을 조금씩 찾아가자 차츰 기억이 되살아났다."정장과 부정장이 쓰러져 있고, 갑판 위로 핏물이 흐르고, 손에서는 피가 흐르고…."시간이 퍽 오래 지났음에도 그는 그날을 이야기할 때마다 매번 힘들고 분하다고 했다. 최근 남북 관계가 급변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의 마음도 복잡해진다. 통일을 위해 모두가 노력하고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복잡하고 허탈한 기분이 드는 것은 그에게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그는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그날을 겪은 우리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또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런 비극으로 다시 고통받는 일이 있어선 안 됩니다."#바다를 지킨 인천 인물인천에는 해양 안보와 관련이 깊은 인물이 많다.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군함 '양무호'의 함장으로 알려진 신순성(1878~1944) 함장이다. 그는 동경고등상선학교에서 4년간 근대식 항해교육을 받고 갑종 항해사 자격을 땄다. 구한말 대한제국 고종 황제는 일본으로부터 군함을 도입해 나라의 무력을 키운다는 뜻의 양무호로 명명하고 신순성을 함장으로 임명했다. 신순성 함장은 일본에서 이 배를 이끌고 1903년 인천항에 닻을 내렸다. 그는 두 번째 군함인 '광제호' 인수 작업도 맡았다.안병구(69) 제독은 한국 해군 제1번 잠수함 '장보고함'의 초대 함장을 지낸 인물이다. 1949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그는 인천중(16회), 제물포고(13회), 해군사관학교(28기)를 나왔다. 1988년 해군 잠수함사업단 요원으로 근무하던 중 1990년 장보고함 초대 함장으로 선발됐다. 승조원들과 함께 독일에서 2년 동안 잠수함과 관련한 교육 훈련을 받고 1992년 현지에서 장보고함을 인수했다. 2005년 전역할 때까지 잠수함 부대의 전대장, 전단장 등 잠수함 부대장을 역임했다.윤영하(1973~2002) 소령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측 경비정과 벌인 제2연평해전에서 목숨을 잃었다. 윤 소령(당시 대위)은 참수리 357호 정장으로 참전했으며, 그가 졸업한 인천 송도고등학교에는 흉상이 있다. 정부는 그의 희생에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지난 23일 오전 인천시 중구 월미공원 해군2함대사령부 기념비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인천지역 학생 대표들이 헌화·분향을 하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제2차인천상륙작전 전승비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3-28 김성호

[zoom in 송도]송도국제도시 브리핑

스마트 마이스 조성 3차연도 사업 착수인천경제청, 컨벤시아 중심 시스템 구축#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마이스(MICE) 플랫폼 운영 및 서비스 확대 등을 뼈대로 한 '스마트(SMART) 마이스 조성 3차연도 사업'에 본격 착수했다.스마트 마이스 조성사업은 송도컨벤시아를 중심으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구축하고 지역 마이스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것으로, 2019년까지 4차례로 나눠 진행되고 있다.3차연도 주요 사업은 ▲송도컨벤시아 자율주행 로봇 및 실외 디스플레이 도입 ▲송도컨벤시아 무선 WiFi 시스템 구축 ▲상권 활성화를 위한 마이스패스 개방형 마켓 플레이스 및 위치기반 모바일 스탬프 투어 시스템 개발 ▲웹·앱 동시사용 가능 이동형 화상회의 시스템 구축 ▲외부 참관객에 회의 등 컨벤션 행사 실시간 중계를 위한 시스템 도입 등이다. 인천경제청 성용원 기획조정본부장은 "스마트 마이스 조성사업이 인천의 지속가능한 마이스산업 성장 기반을 마련하고 고도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스마트시티 플랫폼 기반 버스정보시스템올 7월 개발 완료… IFEZ내 단계별 시행#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스마트시티 플랫폼 기반의 'IFEZ형 WEB 버스정보시스템' 개발이 올 7월 완료돼 IFEZ 전역에 단계별로 서비스될 예정이라고 밝혔다.현재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버스정보시스템은 폐쇄적인 구조로 데이터 연계가 어렵고, 장애 시 즉각적인 유지 보수가 어려운 문제가 있다. 인천경제청이 개발한 시스템을 도입하면, 정확성과 관리 효율성이 크게 향상되고 구축비도 약 20~30% 절감될 예정이다. 인천경제청은 IFEZ 버스정류장에 우선 적용할 예정이며, 2단계로 인터넷 등을 통해 버스 도착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송도 유수지 배수갑문 통합원격제어 체제수문 개폐 즉각적 대응… 장마철부터 가동# 송도국제도시 유수지 배수갑문 통합원격제어시스템이 올해 장마철부터 본격 가동된다.송도에는 집중호우 시 침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총 4개의 수문이 설치돼 있다. 만조 시에는 바닷물의 역류를 막고 간조 때는 유수지에 일시적으로 모아둔 빗물을 바다로 배수하는 역할을 한다.현재는 근무자가 현장에서 수문을 직접 개폐하는 방식으로, 유사시 즉각적인 대응이 어렵다. 폭우나 낙뢰 속에서 수문을 가동해야 하기 때문에 근무자의 안전 문제도 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18-03-25 목동훈

[zoom in 송도]IFEZ홍보관 개관 3주년

송도·청라·영종 등 대상투자 외국인 '필수 코스'국빈·세계 장·차관급 등 하루 643명, 67만명 방문전망시설·VR존·멀티룸개발 현황·잠재력 한눈에정보 제공 시설 보강 계획인천 송도국제도시 G타워 33층에 '인천경제자유구역(IFEZ) 홍보관'이 문을 열고 외국인투자자와 관광객을 맞이한 지 3년이 됐다.IFEZ 홍보관은 홍보와 투자유치 기능을 한다. 송도·청라·영종 등 IFEZ를 벤치마킹하거나 이곳에 투자할 의향이 있는 외국인의 필수 코스다. 인천 도시 개발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IFEZ이기 때문에 인천의 발전상을 소개할 때도 홍보관을 활용한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청장·김진용)은 최근 개관 3주년을 맞아 IFEZ 홍보관 운영 실적과 시설 보강 계획을 발표했다.# IFEZ 홍보관, 하루 평균 643명 방문G타워 IFEZ 홍보관은 2015년 3월24일 개관했다. 이전에는 갯벌타워 21층, 컴팩스마트시티(현 인천도시역사관)에 홍보관이 있었다. 송도국제도시 개발 초기에는 송도홍보관(현 송도국제어린이도서관)이 운영됐었다.G타워 IFEZ 홍보관 방문객 수는 총 67만3천343명으로, 하루 평균 643명이 찾았다. 특히 지난해에는 29만1천151명이 찾아 하루 평균 방문객이 811명에 달했다.홍보관을 찾은 주요 인사로는 압델 파타흐 엘시시(Abdel Fattah El Sisi) 이집트 대통령, 유틴쩌(U Htin Kyaw) 미얀마 대통령, 루이스 기예르모 솔리스(H.E Luis Guillermo Solis) 코스타리카 대통령, 페루 메르세데스 로살바 아라오스(H.E. Mercedes Rosalba ARAOZ)부통령 등이 있다. 국빈과 세계 각국 장·차관급 주요 인사들의 방문이 이어진 것이다.인천경제청 관계자는 "홍보관이 IFEZ 개발 현장을 알리고 투자유치를 이끄는 견인차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며 "아시아 지역 경제자유구역 관계자들도 방문하는 등 필수 벤치마킹 코스로 급부상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IFEZ 홍보관은 365일 운영된다. 평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 주말·공휴일에는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 오후 6시에 닫는다. G타워 1층 안내데스크 옆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된다. 영어·중국어·일본어 회화가 가능한 자원봉사자들이 있으며, 단체 관람객(10명 이상)은 예약해야 한다.# 개관 3주년 맞아 시설 보강IFEZ 홍보관은 송도센트럴파크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시설, IFEZ의 과거·현재·미래를 소개하는 코너, VR(가상현실)존, 에코존, 홍보 동영상을 볼 수 있는 멀티룸 등으로 구성돼 있다. VR존은 자원봉사자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평일 오전 10시~낮 12시, 오후 3~5시에만 이용할 수 있다. 멀티룸은 관람 예약이 필요하다. 멀티룸에는 '다면(3면) 영상관'과 '원형룸'이 있다. 여기에서는 IFEZ 홍보 영상을 볼 수 있으며, 디지털 영상 지도를 통해 송도·청라·영종 개발 현황과 발전 잠재력을 살펴볼 수 있다.인천경제청은 멀티룸에 뉴욕, 런던, 파리, 로마 등 세계 주요 도시의 라이브 영상을 볼 수 있는 대형 LED 전광판을 설치할 계획이다. 또 대형 화면을 통해 IFEZ의 과거와 현재, 일조권, 가시권, 건물 높이, 매각 예정 필지 등의 정보를 관람객들에게 제공하는 '3차원 공간 정보 영상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IFEZ 3차원 모델링 자료를 기본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2D, 3D, 항공-VR 모습을 조회·열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인천경제청 관계자는 "IFEZ 홍보관은 지난 3년 동안 개발 현장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IFEZ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며 "앞으로도 국내외 주요 방문객을 대상으로 방문 목적별 맞춤형 브리핑을 제공하는 등 IFEZ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지난 24일 개관 3주년을 맞은 인천경제자유구역(IFEZ) 홍보관. 송도국제도시 G타워 33층에 있는 홍보관은 IFEZ 현황과 발전 잠재력을 널리 알리는 공간이다. 송도국제업무지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외국인투자자는 물론 인천시민 등 내국인도 많이 찾는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그린스마트시티 홍보 코너.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비전센터(멀티존) 입구.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원형룸.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

2018-03-25 목동훈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10]해양 안보와 인천(上)

나당연합군·서구열강 침략·천안함 피격등끊임없는 무력 충돌 '평화 유지' 중요 장소1945년 창설한 해군, 이듬해 인천에 첫기지한국전쟁 전 몽금포작전으로 北 기지 타격인천 바다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남과 북이 맞닿아 있는 바다의 경계선인 서해 북방한계선(NLL, Northern Limit Line)에서는 남북의 무력 충돌이 빚어졌고,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제국주의 세력의 전쟁터가 되기도 했다.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인천 바다가 해양안보와 국가안보의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얘기다.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라고 말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인천 바다는 우리나라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장소였다는 것이다. 인천 바다를 이야기할 때 전쟁이라는 단어뿐 아니라 평화를 함께 언급하게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매년 3월 네 번째 금요일은 '서해수호의 날'이다. 정부는 서해에서 끊이지 않았던 무력 충돌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자 '서해수호의 날'을 정해 기념하고 있다.■ 전쟁의 아픔이 서린 인천 바다인천 바다는 전쟁의 역사를 품고 있다.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나당연합군의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대군을 이끌고 인천 바다를 통해 백제를 침공했다. 덕적군도의 하나인 소야도(蘇爺島)의 이름은 소정방이 대군을 이끌고 정박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소야도 북악산 기슭에는 소정방이 진을 쳤다는 '담안'이라는 유적이 남아 있다.1866년에는 프랑스 함대가 바다를 통해 조선을 침략해 강화도를 점령·약탈한 병인양요가 있었다. 서세동점(西勢東漸) 시기 조선이 서구 열강과 한반도에서 대결한 첫 전쟁이다. 1871년에는 조선과 미군이 강화도 앞바다에서 역사상 첫 교전을 벌인 강화도 손돌목 전투로 시작된 신미양요가 있었다.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 또한 인천이 핵심 지역이었다. 특히 러일전쟁 당시에는 러시아 함대와 일본 함대가 인천 앞바다에서 전투를 벌였다.1950년 9월15일 한국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은 인천의 바다로부터 팔미도 등대와 주변 섬을 장악하며 시작됐다.1999년 6월15일에는 정전협정 이후 발생한 남북의 첫 해상 교전인 제1연평해전, 3년이 지난 2002년 6월29일에는 6명의 해군이 전사한 제2연평해전이 벌어졌다. 2010년에는 46명의 해군 장병이 바다에 잠들게 된 천안함 피격 사건, 2011년에는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한 도발이 있었다.■ 인천의 해군주권을 가진 나라가 반드시 갖춰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바다에서의 전쟁을 막아 평화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해군력이다. 특히 인천은 우리나라 해군의 역사(史)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도시다.우리나라 해군은 1945년 11월11일 손원일 제독이 창설한 해방병단(海防兵團)으로 시작해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해군은 첫 기지를 인천에 창설했다. 해방병단이 창설된 이듬해 4월15일 가장 먼저 인천기지를 설치한 것이다.현재 인천을 지키고 있는 해군 부대는 해군 제2함대사령부 예하에 있는 인천해역방어사령부(이하 인방사)다. 인방사가 속한 해군 제2함대사령부는 앞서 말한 인천기지가 모체다.인천기지는 해군이 성장하며 함께 이름과 규모를 바꾼다. 인천기지는 1949년 6월1일 인천경비부로 승격해 인천특정해역사령부를 거쳐 1973년 7월1일 제5해역사령부, 1986년 제2함대사령부로 재창설된다. 1999년 11월13일 인천을 벗어나 경기도 평택으로 기지를 옮겼다. 인방사는 항만방어대, 항만방어전대, 201방어전대 등으로 부대 이름을 바꿔오다 2함대가 평택으로 자리를 옮긴 1999년 7월1일 인천에 남은 부대가 지금의 인방사가 됐다.1946년 4월15일 설치된 인천기지는 미군 선발대에 의해 꾸려졌다. 초대 군사영어학교 교장이었던 리스(Rease) 미 육군 소령이 월미도의 용궁각을 기지 청사로 정하고 임시로 기지사령관을 맡았다. 이후 진해에서 선발된 60명의 해방병단 대원들이 인천으로 파견돼, 미군으로부터 수리·운전·통신기술 등을 배운 후 4월23일 인천기지를 정식으로 인수했다. 초대 인천기지사령관은 백진환 정위(현재의 대위)가 맡았다.인천기지는 해군의 첫 기지라는 타이틀뿐 아니라 남한 단독정부 수립 후 최초의 해군 관함식이 열린 장소이기도 하다. 정부 수립 1주년을 기념하고 발전한 해군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행사였다.1946년 인천 앞바다에서는 일본으로부터 인수한 9척의 함정이 편대 기동훈련을 선보였는데, 손원일 총참모장의 안내로 이승만 대통령이 기함에 탑승해 이를 지켜봤다. 정부각료와 국회의원, 시민들도 편대 기동훈련을 참관했다.인천기지는 우리나라 군 처음으로 한국전쟁 이전 진행된 대북 작전인 '몽금포 작전'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몽금포 작전은 한국전쟁의 전운이 감돌던 1949년 8월17일 해군이 북한군 기지로 특공대를 보내 다수의 병력을 사살하고 함정을 파괴한 작전이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승인 아래 진행된 이 작전에서 특공대원 20명이 함정 6척을 타고 북한 몽금포항에 침투해 북한 경비정 4척을 격침하고 1척을 나포했다. 또 북한군 12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앞서 언급한 관함식을 일주일가량 앞두고 인천에 있던 주한미군사고문단장 로버츠 장군의 전용선을 북에 도둑맞은 것을 응징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해군 창설 초기 좌익 승조원들에 의해 함정 4척이 납북되고 9척이 납북미수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북에 대한 응징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어 감행된 작전이었다. 인천 월미공원에는 몽금포 작전 전승비가 세워져 있다.1·2대, 미군서 인수해 1978년·1994년 퇴역해군 차기 호위함 3대, 유도탄·어뢰등 무장■서북도서 수호자 '3대의 인천함'우리나라 해군 함정 중에는 인천의 이름을 딴 전투함이 여럿 있었다. 역대 3척의 '인천함'이 인천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우리 바다를 누볐다.1대 인천함(AKL-902)은 1944년 건조된 미국 해군의 경수송함을 한국 해군이 1951년 9월10일 인수한 것으로, 1978년 4월1일까지 운용됐다.2대 인천함(DD-918)은 전투함이다. 이 함정 역시 미국 해군으로부터 도입한 것으로, 승조원 280여 명이 탑승하고 33.2kts까지 속도를 낼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1944년 3월 건조된 함정이며, 1974년 1월25일 취역해 1994년 12월30일 퇴역했다.3대 인천함은 현재 활동 중인 해군의 첫 차기 호위함인 인천함(FFG-818)이다. 해군은 서북 도서의 행정을 관할하는 인천광역시에서 이름을 따 '인천함'으로 명명하며 서해 NLL과 서북 도서 방어 의지를 피력했다. 대함유도탄 방어 무기와 함대함 유도탄, 어뢰 발사대 등 국내에서 개발한 향상된 무기 체계를 탑재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건조해 2011년 4월29일 진수식을 갖고 2013년 1월부터 6월까지 전력화 기간을 거쳐 7월 배치됐다. 3대 인천함은 2013년 8월 인천시와 자매결연을 했다. 글·사진/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아이클릭아트몽금포작전 기념비3대 인천함(FFG-818) /해군본부 제공1대 인천함(AKL-902·사진 위)과2대 인천함(DD-918)

2018-03-21 김성호

[zoom in 송도]송도국제도시 브리핑

IFEZ 스마트시티 인프라 구축 확대송도 5·7공구 내년 7월 준공 등 순항# 스마트시티 인프라를 송도 등 인천경제자유구역 전역으로 확대하는 사업이 순항하고 있다.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 따르면 송도 5·7공구 스마트시티 기반시설 구축사업이 내년 7월 준공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6월부터 광통신 기반망 설치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송도 6공구는 통신 관로 구축공사가 이뤄지고 있으며, 송도 8공구는 도로 및 공동구 내 통신 관로 구축공사가 지난해 7월 완료돼 스마트시티 기반시설 구축을 위한 실시설계가 시작될 예정이다.청라국제도시 투자2블록('스타필드 청라' 조성 대상지) 스마트시티 기반시설 구축사업은 2019년 11월 준공을 목표로 올 상반기 착공한다. 영종하늘도시 1단계 사업(시행자·LH)과 미단시티 사업(시행자·인천도시공사)의 스마트시티 기반시설은 오는 6월 인천경제청에서 인수할 예정이다.인천경제자유구역의 스마트시티 기술력은 국내를 뛰어넘어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천경제청은 '스마트시티 산업특화형 모델 발굴 연구용역'을 진행 중으로, 국토교통부 '스마트시티 국가전략 R&D 실증단지' 공모에 참여할 계획이다.인천경제청 외국어 홍보물 감수위 구성홈페이지서 오류 표기 신고센터도 운영#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외국어 홍보물 등을 감수하는 위원회와 외국어 오류 표기 신고센터를 운영한다.인천경제청은 외국어 홍보물과 각종 도로 안내표지판에 적힌 외국어의 정확한 표현을 위해 '외국어 홍보물 감수위원회'를 구성하고 원어민 교수 3명을 위원으로 위촉했다. 외국어 홍보물 감수위원회는 인천대, 한국조지메이슨대, 채드윅국제학교 원어민 교수 3명과 인천경제청 외국어 전문요원 등 총 7명으로 구성됐다.인천경제자유구역 외국어 오류 표기 신고는 인천경제청 홈페이지(www.ifez.go.kr)에 개설한 신고센터 또는 투자유치기획과(032-453-7304)로 하면 된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18-03-18 목동훈

[zoom in 송도]송도3동 행정복지센터 문 열어

인구 3만7천명으로 연수구 두번째 불구그간 송도 IT센터 일부 임시청사 사용공동육아나눔터·도담도담장난감월드내달 개관 예정 작은도서관까지 갖춰3층 연결 송도노인복지관도 27일 오픈인천 연수구 송도3동 행정복지센터가 최근 문을 열었다.송도국제도시 5공구에 위치한 송도3동 행정복지센터(연수구 송도교육로 63번길)는 지난 9일 개청식을 했다. 이전에는 송도 IT센터 공간 일부를 빌려 임시청사로 썼다.송도3동 행정복지센터는 지하 1층, 지상 4층, 연면적 4천725㎡ 규모로 지난해 12월30일 준공했다. 층별 주요 시설은 ▲1층=민원실, 송도공동육아나눔터, 도담도담장난감월드 송도점 ▲2층=작은도서관, 요리실, 강의실, 주민자치실, 나눔의 공간(휴게소) ▲3층=소회의실, 강의실, 나눔의 공간 ▲4층=대회의실, 옥상정원, 동대본부 등이다.공동육아나눔터는 영유아, 미취학 자녀와 부모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다. 평일(월~금)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30분(점심시간 오후 1~2시)까지 운영되며, 이용 요금은 없다.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안전하게 놀 수 있게 돼 있다. 아이들은 또래를 만나 놀 수 있고, 부모들은 육아에 관한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수유실도 갖추고 있다.도담도담장난감월드는 장난감을 빌려주는 곳으로, 인천에 총 16개소가 있다. 행정복지센터(주민자치센터)에 도담도담장난감월드가 입점한 것은 처음이다. 대부분 지하철역사 또는 구청에 있다.송도점은 화~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30분(점심시간 오후 1~2시)까지 문을 연다. 인천시민이거나 인천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회원 가입 후 연회비 1만 원을 내야 하는데, 국민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등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한부모·다문화·다자녀·국가유공자 가정은 면제 대상이 된다. 송도점 회원 수는 벌써 300명을 넘었다. 송도3동은 젊은 부부가 많은 편으로, 올 1~2월 출생신고는 89건에 달했다. 연수구 내에선 송도동의 출생신고 건수가 많다고 한다.3층 작은도서관은 4월 중 개관할 예정이다. 아이들이 바닥에 앉아 편안하게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다. 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연수청학도서관에서 내부 배치 등 작은도서관 운영 준비에 큰 도움을 줬다"며 "작은도서관에서 일할 자원봉사자 모집이 최근 끝났다. 늦어도 4월에는 개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송도3동 행정복지센터는 강의실이 많다. 고가의 시설·장비를 갖춘 요리실, 에어로빅과 국선도 등을 배울 수 있도록 마룻바닥·탈의실·방음시설을 갖춘 강의실 등 규모와 용도가 다양하다.주민들을 위한 교양·취미·건강·문화강좌가 이들 강의실에서 진행될 예정이다.송도3동은 2014년 5월 송도1동 인구가 5만 명을 넘으면서 그해 9월 신설됐다. 연수구에서 송도2동 다음으로 주민 수가 많은데, 송도 IT센터 공간 일부를 임차하다 보니 주민들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지 못했었다. 지난달 말 기준 송도3동 인구수는 3만7천867명(1만3천579세대)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연수구 관계자는 "송도3동 센터가 이번 청사 신축으로 육아 관련 시설은 물론 강의실과 도서관까지 갖추게 됐다"며 "주민들의 다양한 문화적·행정적 욕구 충족이 가능한 곳으로 새로 태어났다"고 했다.송도3동 행정복지센터 옆에는 오는 27일 개관 예정인 송도노인복지관이 있다. 두 건물은 지하주차장을 함께 사용하고 지상 3층이 연결된 특이한 구조다. 연수구는 이런 구조로 두 건물을 지어 토목과 기계설비 등에 드는 비용 13억6천여만원을 절감했다. 절감한 예산으로는 커뮤니티광장을 조성했다. 주민 입장에선 두 건물을 편안하게 오가며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송도노인복지관=지하 1층, 지상 4층, 연면적 3천3㎡ 규모다. 사무실과 상담실, 음악교습실, 요가댄스실, 자원봉사자·강사 대기실, 바둑실, 컴퓨터실, 서예실, 물리치료실, 당구장 등을 갖추고 있다. 연수구시설안전관리공단이 운영하며, 건강 강좌와 정보화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연수구에 거주하는 만 60세 이상 어르신이나 배우자 등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지난 9일 개청한 인천 연수구 송도3동 행정복지센터 모습. 센터는 공동육아나눔터, 도담도담장난감월드, 작은도서관, 요리실, 다양한 규모·용도의 강의실 등 주민을 위한 시설·공간을 갖추고 있다. 센터와 송도노인복지관(3월27일 개관 예정) 건물은 3층에서 연결된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공동육아나눔터▲도담도담장난감월드▲송도3동 행정복지센터 민원실

2018-03-18 목동훈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9]선박건조 기술자 (下)

조수간만 차 크고 수심 얕아 큰 배 건조 어려워…100여년 전에도 지원 목소리러일전쟁 직후 지역 최초 업체 등장… 중일전쟁 영향 선박 부품 제작 본격화1970년대 국제실업·한라중공업 같은 대규모 업체 영종도 둥지 '전성기' 맞아영종하늘도시등 개발사업 탓 자리 잃은 기술자, 조선소 따라 타 도시로 떠나인천 앞바다를 떠다니는 수많은 선박은 어디서 만들어지고 수리할까? (주)디에이치조선 전성선(58) 대표는 "어선 정기검사 과정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수리는 이곳에서 하지만 대부분 전남 목포 등 다른 지역에서 하고 있다"며 "중형 이상의 선박은 중국이나 부산에서 수리한다"고 했다.인천에 규모가 큰 조선소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지역으로 배를 옮기는 것이다.인천은 조수 간만의 차가 큰 데다 수심도 깊지 않아 대규모 조선소가 있기 어려웠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1990년 11월 인천 영종도 인천조선소(한라중공업, 현 현대삼호중공업)에서 열린 컨테이너선 명명식에서 정인영 한라그룹 회장은 "현재 인천조선소의 여건이 간만의 차이가 10m 이상 나고 조선소 부지가 협소해 일정 규모 이상의 선박 건조는 물론 수리를 원만히 할 수 없다"며 "불리한 여건을 타파하고 대(對) 해외 전수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조선소를 남해안으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라중공업은 이듬해 전남 영암 조선소 부지를 사들여 1996년 이전했다.이 같은 상황은 10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1932년 인천상공회의소는 조선총독부에 '인천에서도 대형 선박이 건조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원을 냈다. 인천상의는 청원서에서 '인천지역 조선소는 소형선 수리도 어렵다 보니 인천의 배들이 부산이나 중국 다롄(大連), 일본에 가서 수리하거나 건조하고 있다. 이는 인천뿐만 아니라 조선에도 막심한 손해이니 인천에서도 배를 건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이 같은 인천지역 조선업 관계자들의 목소리는 1900년대 초반 인천에 조선소가 처음 설립된 이후 꾸준히 제기됐다.1933년 발간된 '인천부사'를 보면, 인천지역 최초의 조선소는 러일전쟁 직후 건립된 '마쓰다 조선소(光田造船所)'다. 이곳에서 소형기선을 만들었다고 인천부사에 기록돼 있다. 1910년대에는 조선 자본으로 만들어진 인천 최초의 조선소 '인천철공소(仁川鐵工所)'가 문을 열었다. 인천철공소는 인천 내항 1부두와 갑문 사이에 있던 '사도'라는 섬 주변을 매립해 운영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200t 미만의 배를 만들고, 500t 미만의 배를 수리했다. 당시에도 대형 선박 건조가 어려워 인천상공회의소는 조선총독부에 이러한 부분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인천에서 선박 부품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중일전쟁 때문이다. 대륙 진출에 중점을 뒀던 일본은 인천에 선박 부품 제작과 조선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회사를 설립하는데, 이것이 1937년 6월 설립된 '조선기계제작소'다. 배석만 부산대학교 한국민족연구원 전임연구원이 쓴 논문(일제시기 조선기계제작소의 설립과 경영)에 따르면 조선기계제작소에서는 소형선 엔진으로 사용하던 200마력과 380마력 '야끼다마'(燒球·hot bulb) 엔진을 주로 생산했다. 이곳에서 생산한 엔진은 해방 이후에도 어선 등에 부착돼 사용됐다.해방 이후 침체기를 맡았던 인천지역 조선업은 1970년대를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인천상의 120년사에 따르면 1970년대 초 인천에는 국제실업과 인천조선공업 등 대규모 조선업체가 있었다. 국제실업은 4천500t급, 인천조선공업은 2천400t급 선박을 건조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1977년에는 한라중공업이 인천 영종도에 인천조선소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일했던 김광국(51)씨는 "인천조선소에서 일하는 직원만 200명이 넘었고, 배를 만드는 장소는 초등학교 운동장 4~5개를 합친 것만큼 컸다"며 "이곳에서 4만t급 선박까지 만들었다"고 기억했다.선박을 건조하는 조선소뿐만 아니라 배를 수리하는 철공소도 많았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만석부두와 화수부두를 중심으로 철공소가 많았다.1982년부터 인천 동구 화수동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이관국(67)씨는 "80년대에는 만석부두와 화수부두가 인천의 중심이었다"며 "지나가는 강아지도 1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이곳(화수부두)에 배를 대는 어선이 수백 척에 달했다"며 "큰 조선소에서는 어선을 수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네에 있는 철공소가 모든 수리를 담당했다"고 했다. 만석동 조선기계제작소 사택에서 3살 때부터 사는 정연관(70)씨는 당시 이곳 주변의 모습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정씨는 "대우중공업(조선기계제작소 후신)에서 나오는 엔진은 매우 비쌌기 때문에 어선이나 목선에서 사용하기 어려웠다. 고장이 나면 수리비가 너무 비쌌다"며 "철공소에서 엔진과 비슷한 모형으로 부품을 만들어 어민들에게 팔았다"고 했다.세월이 지나 철공소가 있던 자리는 횟집 등 식당들이 차지하고 있다. 울퉁불퉁하고 흙먼지가 날리던 도로는 포장도로가 됐다. 연안부두가 생기면서 어선들이 옮겨가고, 어획량이 줄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어선들도 운항하지 않게 됐다. 배가 떠다니지 않으니 자연스레 철공소도 사라졌다. 정씨는 "만석부두 입구 주변 지역이 지금은 다 매립됐지만, 당시에는 (거기까지) 배가 들어왔다"며 "옛날에는 화수부두와 만석부두에 20여 개의 철공소가 있었지만, 차츰차츰 없어지더니 모두 사라진 지 오래됐다"고 했다.인천조선소가 1996년 전남 영암으로 이전하고 2007년 영종하늘도시 개발이 시작되면서 영종도에 있던 대형 조선소들도 문을 닫게 됐다. 이들이 있던 자리는 호텔이 들어서거나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해 버렸다. 현재 인천에는 만석부두와 화수부두 주변에 6개 조선소만 남아 있다. 영종도 조선소에서 일하던 기술자 일부는 만석부두·화수부두로 옮겨왔지만, 대부분은 조선소를 따라 전남 목포나 부산 등 다른 도시로 떠났다. 인천에서 선박 건조 일을 하는 사람은 100명 남짓일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인천에 남아 있던 중소형 업체들은 2006년 서구 청라국제도시 인근 거첨도 앞 해상을 매립한 부지(17만5천㎡)에 선박 수리·조선 시설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소음과 분진 등 환경 피해를 우려하는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추진이 어려운 상황이다.글/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아이클릭아트인천은 조수 간만의 차가 큰 데다 수심도 깊지 않아 대규모 조선소가 있기 어려웠다. 인천 앞바다를 떠다니는 수많은 선박 중 어선 정기검사 과정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수리는 인천에서 하지만 대부분 전남 목포 등 다른 지역에서 하고 중형 이상의 선박은 중국이나 부산에서 수리한다. 14일 오후 인천시 동구 만석동 태항 조선소에서 선박 수리작업을 하고 있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1910년대 '인천철공소(仁川鐵工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 사진 하단에 보이는 사도 부근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용하 전 인천발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제공/아이클릭아트큰 조선소에서는 어선을 수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수부두에 있는 철공소가 수리를 담당했다. 어선 수리를 하던 철공소들이 자리 잡았던 화수부두.

2018-03-14 김주엽

[zoom in 송도]송도 6·8공구 장기간 '표류' 왜?

인천타워 무산 공동주택개발로 방향 선회개발이익 정산·분배 경제청·시행자 이견수개월 지나도 "곧 타협 이뤄질 것" 말뿐중심부 개발은 우선협상대상자 지정 취소이후 해당 컨소시엄 소송 걸어 시간 지연인천 송도국제도시 6·8공구 개발사업이 장기간 표류하고 있다. 개발이익 환수 시기와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놓고 벌어진 갈등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송도 6·8공구 개발사업은 151층 인천타워 건립이 무산되면서, 총 3개 사업으로 구분돼 추진되고 있다. ▲체육시설(골프장) 부지 주변에 공동주택을 짓는 송도랜드마크시티(SLC) 사업 ▲체육시설과 그 주변 상업시설 등을 개발하는 (가칭)국제공모 사업 ▲인천대교 북단 8공구 개발사업이다. 인천시의 인천타워 건립 프로젝트가 무산되면서 이같이 됐다. 그런데 SLC 사업은 사업시행자와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개발이익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정산·분배하느냐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국제공모 부지는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놓고 법정 다툼이 시작됐다. 8공구 개발사업과 관련해선, R2블록 개발 방향이 확정되지 않았다.■ SLC 개발이익 정산·분배 합의 '지연'SLC 사업은 당초 민간사업자가 송도 6·8공구 전체를 개발하는 내용이었다. 2007년 8월 인천시는 151층짜리 인천타워를 짓는 조건으로 송도 6·8공구 228만㎡ 독점개발권을 SLC 사업시행자에 줬다. 하지만 인천타워 건립이 무산되면서 SLC 사업은 공동주택용지 7개만 개발하는 것으로 2015년 1월 조정됐다. 사업계획 조정 당시 인천시와 사업시행자는 초과개발이익(내부수익률의 12% 초과분)을 절반씩 나누기로 했다. 지난해 SLC 개발이익 정산·분배 시기를 놓고 인천경제청과 사업시행자 간 갈등이 시작됐다. 인천경제청이 필지별로 개발이익을 정산·분배할 것을 요구했는데, 사업시행자는 모든 사업이 완료된 후 개발이익을 나누자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와 관련, 인천경제청 2급 고위공직자가 페이스북에 언론·기업·사정기관·시민단체 간 유착 의혹을 제기하면서 인천시의회 조사특별위원회까지 운영됐다. 인천경제청은 지난해 10월 기자설명회에서 11월 말까지 개발이익 환수 시기와 방법을 사업시행자와 합의한 후 세부사항을 구체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몇 개월이 지났지만, 인천경제청은 "곧 타협이 이뤄질 것"이라고 할 뿐 협상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법정 공방' 시작된 국제공모 부지송도 6·8공구 중심부 128만㎡를 개발하는 사업은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 지난 9일 오후 2시 10분 인천지법에서 첫 재판이 열렸다. 다음 변론기일은 5월18일 오후 2시다.인천경제청은 지난해 5월 송도 6·8공구 중심부 128만㎡ 개발사업 국제공모를 통해 '블루코어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인천경제청과 이 컨소시엄은 4개월의 협상 기간을 가졌으나, 인천경제청은 9월 초 협상 결렬을 선언하며 우선협상대상자 지정을 취소했다. 이에 블루코어 컨소시엄은 우선협상자 취소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10월 소송을 제기했다. 블루코어 컨소시엄은 실질적인 협상 시간이 부족했다고 주장한다. 자본금 500억 원을 출자해 특수목적법인(SPC)까지 설립했으나, 제대로 된 협상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천경제청이 협상 종료가 임박한 시점에서 무리한 사항을 요구했다고도 한다. 반면 인천경제청은 블루코어 컨소시엄이 68층 빌딩을 오피스텔(주거시설)로 계획하는 등 경제자유구역 지정 취지에 맞지 않게 그림을 그려왔다고 주장한다.법정 공방을 끝내고 사업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확정판결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으며, 그 이후에도 재협상 또는 우선협상대상자 재공모 등의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 6·8공구 중심부 128만㎡의 그림을 현재 상황에 맞게 다시 그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인천경제청 관계자는 "소송 중이기 때문에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8공구 R2블록 개발 방향은인천대교 북단 송도 8공구 개발사업은 어느 정도 진행됐다. 문제는 경제자유구역 지정 취지에 맞지 않게 주거시설 위주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인천경제청이 인천타워 건립 무산 이후 송도 6·8공구 개발을 부분적으로 추진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 수용인구가 많다는 점에서 '고밀도 개발'의 문제점을 해소하는 게 인천경제청의 숙제가 됐다.그 중심에 'R2블록'이 있다. 말발굽 모양의 R2블록(15만 8천900㎡)은 인천도시공사 땅이다. 2016년 12월 인천경제청은 인천도시공사 요청을 받아들여 용적률을 '500% 이하'에서 '800% 이하'로 변경하고, 건축물 최고 높이 제한을 완화했다. 인근 아파트 입주예정자들은 R2블록의 용적률 등을 애초대로 환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하지만 R2블록의 개발 방향이 결정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인천도시공사 관계자는 "R2블록만 놓고 볼 수 없다. 송도 6·8공구 전체 개발 방향·그림을 놓고 R2블록의 용적률 등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송도 6·8공구 중심부 128만㎡ 개발사업으로 인해 R2블록 개발도 늦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인천타워 건립 무산,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법정 공방 등 각종 현안 때문에 장기간 표류하고 있는 송도국제도시 6·8공구 모습. 인천대교(사진 중앙부 도로)를 기준으로 오른쪽이 8공구, 왼쪽이 6공구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2018-03-11 목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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