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인천)

[실향민이야기 꿈엔들 잊힐리야·44]함경남도 단천시 출신 전진성 할아버지(下)

선교회활동 덕에 2003년 조평통 초청 '방북' 생존 알고도 밝히지 못해 어렵게 만남 성사신평휴게소서 재회 어릴적 얼굴 없어 '어색'동생이 할아버지 목 뒤 큰 점 알아보고 "확신""당시 단천은 온통 모래밭이라 사막 같았다"전씨 집성촌서 가장 큰집 농사도 짓고 '유복''지하의 박물관' 광산과 수력발전소로 유명'고향의 맛' 가자미식해는 지금도 즐겨먹어함경남도 단천 출신 전진성 할아버지는 2003년 겨울을 잊을 수가 없다. 할아버지는 이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의 정식 초청을 받아 평양 등지를 방문했고, 꿈에 그리던 이산가족 상봉을 했다. 폭설로 도로가 막혀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고향 땅은 밟지 못했지만, 함경남도 함흥과 원산 사이에 있는 일종의 여관인 '신평휴게소'라는 곳에 가서 사촌동생을 만났다. 피란 나올 때는 생존해 있었던 부모님뿐만 아니라 일가친척 대부분이 이제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는 얘기를 동생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가족의 생사라도 알게 된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전진성 할아버지는 집에 돌아온 뒤 가장 먼저 부모를 기리는 추도 예배부터 드렸다. 그동안에는 생사를 직접 확인할 수 없는 부모님을 추모(追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할아버지가 북한 땅을 밟을 수 있었던 것은 평소 활발한 사회활동 덕분이었다. 할아버지는 인천세광병원에서 나온 뒤에도 교회 일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한민족통일선교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이 단체가 북한 양로원, 고아원 등에 다년간 지원한 고마움의 표시로 조평통이 할아버지 등 4명을 공식 초청했다. 할아버지는 "기도했던 일이 현실로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제8차 남북적십자회담에 따른 결과로 1985년부터 남과 북의 이산가족 상봉이 시작됐지만, 상봉의 기회를 얻게 된 실향민은 전체로 따져봤을 때 극소수다. 대한적십자사에서 지난해 발간한 '이산가족 70년(1945~2015)'을 보면 상봉을 요청한 이산가족 13만 명 가운데 전진성 할아버지와 같이 실제 상봉의 기회를 가진 사람은 5천 명 내외로 전체의 4% 미만에 불과하다. 특히나 전진성 할아버지와 같이 조평통의 공식 초청을 통해 북한을 방문해 가족을 만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조평통의 공식 초청을 받은 할아버지는 2003년 12월 2일부터 13일까지 평양과 함경남도 원산, 함흥, 영흥 등지를 방문했다. 할아버지 집에는 김일성 생가, 김일성·김정일 선물관, 묘향산, 평양개선문 등에서 찍은 사진이 가득했다. 할아버지는 방북 때 가족을 만나보지 못할 뻔 했는데, 북한 당국에 애원해서 뒤늦게 기적적으로 사촌동생을 만나 볼 수 있었다. 북한 당국에서는 처음에 "가족을 수소문했으나 찾지 못했다"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수십 대에 걸쳐 함경남도 단천군 복귀면 장내리에 살았다. 꼭 살아있을 테니 찾아달라"며 애원하자 막판에 가족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던 거다. 할아버지는 여러 경로를 통해 삼촌과 사촌동생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를 북한 당국에 이야기할 수는 없었던 터였다.할아버지보다 10살 밑인 사촌동생을 신평휴게소에서 만났다. "잠깐만 몸을 피했다 돌아오겠다"며 고향 집을 떠난 지 53년 만이었다. 할아버지가 피란을 갈 때 코흘리개 어린이였던 동생의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다. 처음 만났을 때 어릴 적 얼굴이 없어 서로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어색한 표정을 짓던 동생은 느닷없이 할아버지의 목을 보더니 "맞다"는 말과 함께 큰절을 올렸다고 한다. 할아버지 목덜미에는 큰 점이 있는데, 이를 알아본 것이다. 친척들은 언젠가 남한에 간 전진성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면 목에 난 점을 보면 된다는 말을 해왔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외아들인 데다 장손이라 친척들이 피란 간 할아버지의 생사를 늘 궁금해했다고 한다.할아버지는 어렵게 만난 동생에게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줬다. 할아버지는 동생을 만나기 전 묵고 있던 고려호텔 지하 기념품점에서 여러 물건을 사고, 차고 있던 시계와 반지까지 동생에게 끼워줬다. 할아버지는 반가운 마음에 입고 있던 코트와 모자까지 벗어줬다.이산가족 상봉의 기회를 한 번도 갖지 못하고 세상을 뜨는 실향민들이 많다. 북한을 직접 방문해 가족을 만난 전진성 할아버지는 매우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서 올해 9월 발표한 '이산가족 상봉 현황과 시사점'에 따르면 2017년 8월 31일 기준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3만1천221명 가운데 사망자가 54.2%(7만1천145명)에 달해 생존자(6만76명, 45.8%)를 크게 넘어섰다.지척에 가족을 두고도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는 이산가족의 절절한 사연은 가슴을 울린다. 분단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이호철(1932~2016·함경남도 원산 출신)이 1973년 낸 단편소설 '이단자(4)'의 주인공 현우가 북에 있는 동생에게 쓴 편지(신문 지상편지)에는 가족을 향한 절절한 심정이 담겨 있다. "……. 그때 네 나이 열다섯, 내 나이 열아홉이었다. 지금은 내 나이 갓 마흔이요, 네 나이 서른여섯이로구나. 아, 서른여섯 살 먹은 너, 네가 서른여섯 살이나 먹다니. 아무리 애를 써도 열다섯 살 먹은 네 얼굴만 떠오르지, 서른여섯 살 먹은 네 얼굴은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구나. 몹쓸 꿈치고는 너무도 긴 꿈이어서 참으로 허망하구나. 서른여섯 살 먹은 너와 만날 일이, 갓마흔 된 내 얼굴을 너한테 보일 일이 기쁘기 이전에 어쩐지 끔찍스럽고 처연해지기부터 하는구나.(…중략…) 내가 나오던 그때, 할아버지는 일흔셋인가였으니까 이미 저 세상으로 가셨겠지. 살아 계신다면 아마 아흔너댓이 될 것이다. 쉰이 못 되시던 아버지 어머니도(가만, 한참 따져봐야겠다) 일흔 살 안팎이겠구나. 누나들, 그리고 우리의 귀염둥이 누이동생, 아, 그애도 이제 서른 살이로구나! 모두 안녕들 하시냐. 청탁에 못 이겨 쓰다보니까 정말로 새삼스럽게 목구멍이 막혀오고 가슴이 막힌다. 이만 줄이겠다……."할아버지는 북한을 방문했을 때 고향집인 '함경남도 단천군 복귀면 장내리 392번지'에는 찾아가지 못했지만, 고향의 현재 모습은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사촌 동생은 고향 마을에는 사람이 더는 살지 않는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고향 마을 '토성촌'에 있던 가옥은 모두 사라지고 인근에 있는 '화장'이라는 지역에 일자로 지어 놓은 집으로 옮겨갔다고 했다. 동생은 "화장의 양지바른 곳에 일자로 집을 지어줬다"고 했다.할아버지는 고향 장내리는 '마당 장(場)'이라는 이름대로 넓게 퍼진 지형이었다고 기억했다. 고향 땅 주위가 온통 모래밭이라 '사막' 같았다고 했다. '백마산'이라는 이름의 모래산이 있었고, 산을 넘으면 넓은 동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남쪽의 평화문제연구소와 북쪽의 과학백과사전출판사가 1999~2005년 공동으로 편찬한 '조선향토대백과'는 장내리를 "북부와 서부가 그리 높지 않은 야산들로 되어 있으며 남동부의 동해 가까이에는 사취와 모래언덕이 분포되어 있다"고 할아버지와 비슷하게 설명한다. 장내리의 토질은 쌀농사를 짓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동네 사람들은 밭에서 조, 수수, 감자, 피 등을 키웠다고 할아버지는 말했다. 장내리 토성촌은 전씨 집안(본가 강원도 정선)이 수십 대에 걸쳐 살아온 집성촌이었다. 마을에서 가장 큰 집이 할아버지네였다. 할아버지의 조부(祖父)는 한의사였고, 아버지는 크게 농사를 지어 집안은 유복했다. 당시 학비가 비싸 다니기 힘든 전문학교(북청전문학교 잠업과)를 다니기도 했다.당시 단천은 광산과 수력발전소가 유명했다. 할아버지는 "마그네사이트, 은, 유화철 등을 생산하는 광산과 허천강을 따라 큰 수력 발전소가 있었다"고 기억했다. 함경남도지편찬위원회에서 1968년 펴낸 함경남도지의 단천군 편을 보면 단천은 '지하의 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자원 매장량이 많았다. 함경도지에는 단천군의 광업에 대해 "세계 제1의 36만톤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마그네사이트, 북두일면 용장광산을 위시하여 검덕의 구리, 납, 아연, 동양 최고의 코발트, 금, 운모, 철광, 신풍광산의 인탄석과 유화철, 석면, 카드미움, 사금, 은, 옥석, 흑연 등 유수한 지하 보고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원을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2008년 발행한 통일학 연구총서 '남북한 환경정책 비교연구'는 단천 마그네사이트광에 대해 "노출된 것만도 길이가 7천600m, 깊이가 2~100m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마그네사이트 광산"이라고 했다. 함경남도지는 허천강수력발전전력을 '일명 단천수력발전소'라고 칭하며 "일제 재벌의 투자로 당시 조선 최대의 발전량을 과시한 발전소"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고향 단천에서 먹었던 음식으로는 콩과 쌀을 갈아서 만든 '콩떡'과 가자미, 좁쌀, 고춧가루, 무채 등을 버무린 뒤 숙성시켜서 만드는 '가자미 식해'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속을 다 꺼낸 동태에다가 두부와 생선 내장 등으로 만든 순대를 넣은 '통시미'도 생각만 해도 입맛을 다시게 되는 고향의 음식이다. 할아버지는 "1년에 2번은 강원도 속초 아바이마을에 있는 '단천식당'을 찾아 고향음식을 먹는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인터뷰 중 아바이마을에서 사온 가자미식해를 냉장고에서 꺼내 보여주면서 "항상 먹을 수 있게 떨어질 때쯤 되면 다시 주문한다"고 말했다.단천식당 사장 윤복자(78·여) 할머니의 딸 김채현(50)씨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고향이 단천이라 단천식당으로 이름 짓고 고향음식을 만든 것이 50년이 넘었다"며 "아버지는 생전에 단천에서 추울 때 먹을 게 없어서 겨울을 대비한 감자로 만든 냉면이나 가자미식해 등을 많이 먹었다고 하셨다. 북에서 만드는 방식 그대로 음식을 하고 있는데, 고향 음식을 맛보러 실향민분들뿐만 아니라 '새터민'들도 많이들 온다"고 말했다.글/홍현기기자 hhk@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2003년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의 초청을 받아 북한을 찾은 전진성 할아버지가 신평휴게소에서 사촌동생을 만나 큰절을 받고 있는 모습. /전진성 할아버지 제공전진성 할아버지가 지난 2003년 신평휴게소에서 사촌동생을 만났을 당시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할아버지가 가리키는 사진은 사촌동생이 할아버지 목에 있는 점을 확인한 뒤 "형이 맞다"며 좋아하는 모습이다. /전진성 할아버지 제공전진성 할아버지가 사촌동생과 함께 신평휴게소에 온 북한 단천시 대표자와 악수를 하고 있다. 할아버지 옆에 서있는 동생은 할아버지의 외투와 모자를 쓰고 있다. 할아버지는 동생에게 겉옷을 벗어주는 바람에 12월 추운 날씨 속에서도 옷을 얇게 입고 있다. /전진성 할아버지 제공전진성 할아버지가 위원으로 있었던 '한민족통일선교회'가 조평통으로부터 받은 초청장. /전진성 할아버지 제공

2017-11-15 홍현기

[zoom in 송도]송도랜드마크시티 사태 쟁점과 전망

경제청 '책임조항' 누락 사업지연 손 못써재협의때 초과 개발이익 사항 논의 '발목'시행자 기투입비용등도 제대로 검증 안해토지는 3.3㎡당 300만원 '특혜 논란' 여전개발이익 정산·분배 시기 "이달 중 합의"블록별로 정산하되 공급가 인상 힘들 듯국감 못밝힌 뒷거래 의혹은 검찰 숙제로인천 송도국제도시 6·8공구 내 공동주택용지 34만㎡를 개발하는 송도랜드마크시티(SLC) 사업이 송도는 물론 인천의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다. 올 8월 정대유 전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차장이 페이스북에 언론·기업·사정기관·시민단체 간 유착 의혹을 제기하면서다. 정 전 차장이 개발이익 환수를 추진하고 있던 SLC 사업에 이목이 쏠렸고, 인천시의회는 '송도6·8공구 개발이익 환수 관련 조사특별위원회'(이하 조사특위)를 구성해 9월25일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인천시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 인천시의회 시정질문에서도 SLC 사업이 최대 이슈였다. 정 전 차장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8월 중순부터 조사특위 활동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든 11월6일까지 약 3개월간 인천을 뜨겁게 달군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안상수·송영길·유정복 등 전·현직 시장의 책임 문제가 정치적 쟁점화되기도 했다.'줌인송도'에서는 조사특위·국정감사·시정질문에서 나온 내용을 정리하고, 앞으로 사업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전망해봤다.■ 특혜 논란의 발단이 된 '허술한 계약'SLC 사업은 민간이 송도 6·8공구 34만㎡에 아파트를 짓는 사업이다. 원래는 사업시행자가 송도 6·8공구에 151층짜리 인천타워와 골프장을 만들고 그 주변 228만㎡를 모두 개발하는 것(2007년 8월 협약 내용)이었다. 신도시를 조성하는 사업이 아파트 건립사업으로 축소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이 그 이유였다. 인천타워 건립 등 사업이 계속 지연되자, 인천경제청은 SLC 사업시행자와 사업계획 조정 협상에 나섰다. 하지만 인천경제청은 불리한 위치에서 협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인천타워 건립 강제 시한'과 이 건물을 짓지 않을 경우에 대한 '사업시행자 책임'이 협약서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인천경제청이 사업시행자 지위를 취소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SLC 사업시행자가 협약 내용을 근거로 소송을 걸 경우, 이길 가능성이 높지 않은 데다 사업이 장기간 표류할 수 있는 문제가 있었다.'허술한 계약'은 2015년 1월 사업계획 조정합의에서도 나타난다. 인천경제청은 조정합의를 통해 공급 부지를 228만㎡에서 34만㎡로 줄이고, 땅값을 3.3㎡당 24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인상했다. 또 초과개발이익(내부수익률의 12% 초과분)을 절반씩 나누기로 했다. 그런데 개발이익 배분 시기는 조정합의서에서 빠졌다. 불리한 위치에서 협상을 벌이다 보니 이 부분까지 챙기지 못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인천경제청은 '블록별 개발이익 정산·배분'을 요구하는 반면, SLC 사업시행자는 '모든 블록 개발 후 정산·배분'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업계획 조정합의 '특혜 논란'인천경제청은 2015년 1월 사업계획 조정합의가 인천시 재정 건전화에 큰 도움이 됐다고 주장한다. 조정합의를 통해 많은 땅을 회수했고, '토지 공급가 인상'과 '개발이익 환수 기준 마련'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동주택용지를 3.3㎡당 300만원에 공급하기로 한 것은 특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경제청은 SLC 사업시행자가 기투입한 비용(890억 원), 땅의 상태와 주변 시세 등을 고려해 책정한 금액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특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SLC 사업시행자가 그동안 어디에 얼마의 돈을 썼는지를 철저히 검증하지 못한 상태에서 조정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인천경제청이 SLC 사업시행자의 기투입비를 조사한 적은 있지만, 외부 전문기관을 통해 제대로 검증한 적은 없다. 인천경제청은 올 8월에야 'SLC 재무·회계 조사용역'을 발주한 상태다.■ 개발이익 분배 시기 합의될까특혜 논란이 일었던 SLC 사업 문제는 인천경제청과 사업시행자가 '개발이익 정산·배분 시기'에 합의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인천경제청은 사업시행자와 협상을 벌여 11월 말까지 개발이익 배분 시기에 합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인천경제청 요구대로 블록별로 개발이익을 정산·배분하거나, 블록별로 정산하되 전체 사업 완료 후 배분하는 방식이 유력해 보인다.'토지 공급가 인상'은 불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사업시행자가 땅값 인상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고, 인천경제청도 땅값 재조정을 요구할 계획이 없다.SLC 사업과 관련해 외압 또는 뒷거래가 있었는지, 전·현직 시장의 행정 행위(계약체결과 조정합의)가 배임 등의 혐의에 해당하는지는 검찰 수사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SLC 사업 문제는 검찰에 고소·고발된 상태다. 조사특위·국감에서는 외압과 뒷거래가 있었는지를 밝혀내지 못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송도는 물론 인천의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으며 특혜 논란이 일고 있는 인천 송도국제도시 6·8공구 내 송도랜드마크시티(SLC) 사업부지 전경. /경인일보DB인천의 상징 건물로 추진되다 무산된 '151층 인천타워'의 조감도./경인일보DB

2017-11-12 목동훈

[송도국제도시 브리핑]IFEZ 내·외국인 소통 체육대회

■IFEZ 내·외국인 소통 체육대회인천경제자유구역청(청장·김진용)은 지난 11일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인천글로벌캠퍼스 실내체육관에서 '인천경제자유구역(IFEZ) 가족 체육대회'를 개최했다.이날 행사는 IFEZ에 사는 외국인과 내국인 가족이 함께 어우러져 소통하기 위한 것으로 약 200명이 참여했다. 행사 1부(운동회)는 7인 8각, OX 퀴즈, 미션 달리기 등 모든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체육행사로 구성됐다. 2부는 외국인 주민 동아리가 준비한 라틴댄스(브라질팀)와 패션쇼(인도 커뮤니티) 등으로 진행됐다.김진용 청장은 개회식에서 "IFEZ는 외국인과 내국인이 어우러져 함께 사는 국제도시인 만큼, 체육대회를 통해 뛰고 즐기면서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5·7공구 공원 2개·녹지 6개 조성송도국제도시 5·7공구에 오는 2019년까지 공원 2개와 녹지 6개가 조성된다.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최근 인천시의회에 제출한 '주요업무보고' 자료를 보면 2019년까지 송도 5·7공구에 314억 원을 들여 20만7천㎡ 규모의 공원과 녹지를 조성할 계획이다.송도 문화공원 3·4지구(10만6천㎡)는 2019년 8월 준공될 예정이다. 연세대 송도국제화복합단지 주변 1호 근린공원(6천㎡), 6호 완충녹지(2만5천㎡), 7·8호 완충녹지(3만6천㎡)는 2019년 3월 준공을 목표로 조성공사가 진행된다. 첨단산업클러스터 주변에도 2019년 3월까지 3만2천㎡ 규모의 연결녹지(1·2호)와 경관녹지(1호)가 조성된다. 인천경제청 관계자는 "송도4교 연결 도로 주변에 공원과 녹지를 조성해 주민들에게 휴식 공간으로 제공할 계획"이라고 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17-11-12 목동훈

[실향민이야기 꿈엔들 잊힐리야·43]함경남도 단천시 출신 전진성 할아버지(中)

1960년대 동부동장 맡아 공직생활 '첫 발'노점상 계도·장마철 굴포천 범람 애먹어10년뒤 인천기독병원 사무장으로 새출발지역 첫 CT 도입 등 '대표 의료기관' 성장병원비 비싸 진료 못받던 환자들 안타까워1982년 세광병원 창설멤버로 참여하기도함경남도 단천 출신 전진성(88) 할아버지는 30여 년간 인천의 동사무소 행정과 의료 현장 최일선에서 일한 흔치 않은 경력을 갖고 있다. 특히 인천 최초의 민간 종합병원으로 볼 수 있는 인천기독병원(중구 율목동)에서 사무장(총무과장)으로 일하다가 인천세광병원(남구 주안동) 창설 과정에 참여한 할아버지는 1970~80년대 인천 지역의 의료환경을 더듬어 볼 수 있게 하는 '기억의 창'이기도 하다. 인천지역의 의료사가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지 않은 현실에서 할아버지의 오랜 기간 의료행정 경험은 소중한 사료가 된다.할아버지는 처음에는 동 사무소 동장으로 행정 일을 시작했다. 1961년 부평1동 동부동(현 부평4동)에서 별정직 공무원으로 일했다. 동부동은 부평시장 등 상권이 발달해 1960년대 부평에서 가장 인구가 많았다. 할아버지는 "다른 동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동부동이 컸다"며 "직원 수도 훨씬 많았다"고 말했다. 부평사편찬위원회가 지난 2007년 발행한 '부평사'를 보면 1962년 12월 경기도 인천시 부평출장소 관할인 부평1동 동부동은 면적이 2.253㎢이었고, 3천121가구, 인구수가 1만6천857명이었다. 부평 지역 다른 동에 비해 압도적으로 인구가 많았다. 부평시장은 1962년 공설상설시장으로 설치됐고, 계속해 번창해 1971년 5월에는 사설시장인 부평자유시장으로 바뀌었다. 1970년대 부평자유시장의 대지 면적은 1천201㎡, 건평이 1천756㎡, 점포 수가 47개였다. 부평시장의 경우 미군부대와 연결돼 있었고, 1973년 미군이 대대적인 철수를 한 뒤에도 부평수출공단의 근로자들이 주로 이용하면서 성황을 이뤘다. 휴일이나 명절 때면 '궤짝에 돈을 담기 바빴을 정도'로 197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당시 동 사무소 동장은 새마을운동이나 예비군, 민방위 등을 관리하는 것이 주요 업무였는데, 동네에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도 챙겨야 했다. 할아버지는 1960년대 초중반 동부동장을 지냈다. 이때 시장 길가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노점상 문제가 심각해 골머리를 앓았다. 당시 노점상으로 인해 자동차는 물론이고 사람의 통행도 어려울 정도였는데, 상인들의 반발이 거세 단속도 어려워 이들을 '계도'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떠난 뒤에도 부평시장 노점상 문제는 심각했던 모양이다. 경향신문 1971년 8월 27일자에는 부평시장 노점상인 500여 명이 철거하러 나온 인천시 북구청 직원 80여 명과 경찰관 50여 명에게 돌을 던져, 1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할아버지는 1960년대 중후반에는 부평1동 서부동장으로 활동했는데, 이때는 장마철이면 굴포천이 범람해 직접 모래포대를 쌓는 일까지 해야 했다.할아버지는 10년간 동장 일을 하다가 다른 분야를 경험하고 싶어서 1970년 인천기독병원 사무장에 지원했다. 당시 사무장 채용 요건이 교회에 다닐 것, 공직 경험이 있을 것, 병원근무 경험이 있을 것 등 3가지였는데, 할아버지는 모든 요건을 충족했다. 할아버지는 부인이 다니던 부평 연합병원에서도 잠깐 근무했었다. "기독병원에 면접을 보러 갔는데 바로 다음날부터 출근하라고 해서 그날로 일을 시작했어."1952년 인천시 중구 율목동 237에 설립한 인천기독병원은 설립 초기 피란민 진료소 역할도 담당했다. 병원에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인천기독병원'이라는 간판뿐만 아니라 '북한피난민연합회 진료소'라는 간판이 걸렸다. 1959년에 나온 '경기사전(京畿事典)'은 기독병원을 설명하면서, '약 40년 전(1919년께) 감리교 선교부 경영 인천부인병원으로 개설 후 왜정 말기에 폐쇄되었다가 8년 전에 인천기독병원으로 재출발하여 금일에 이르렀다'고 했다.기독병원은 이후 미국 감리교 선교부의 도움을 받아 당시 인천의 대표 의료기관으로 급성장했다. 1956년부터는 수련의가 들어왔고, 1958년에는 정부로부터 전공의 과정 신설 허가를 받으면서 종합병원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기독병원 설립 당시 인천에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의료기관으로는 인천도립병원, 인천적십자병원, 동양방직 부속병원 정도가 있었고, 성모자애병원(현 인천성모병원)은 1955년에야 문을 열었다. 인천길병원은 전신인 이길여산부인과의원이 1958년 개원했고, 의료법인 인천길병원 법인설립허가는 1979년 이뤄졌다. 인하대병원의 경우 1996년에야 문을 열었다. 인천기독병원은 인근에 있는 도립병원(인천시 중구 신흥동 2가)과 경쟁할 수밖에 없었는데, 기독병원이 환자 선호도 면에서 앞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1년 나온 '인천의료원 70년사'에 따르면 이 병원의 전신인 인천도립병원의 1959년 병상 가동률은 44.5%, 기독병원이 60%였고, 1961년에는 각각 34.2%, 57.4%였다.이후 인천기독병원은 1969년 180병상, 1975년 250병상, 1981년 409병상으로 지속 확장한다. 이 병원이 지난 2003년 발간한 '인천기독병원 50년사'를 보면 기독병원은 경기도 일원 의료기관 가운데 가장 먼저 최신 의료기기를 들여놔 충청도, 전라도 등 지방뿐만 아니라 서울 환자들도 많이 찾았다. 1953년에는 X-Ray 기계가 도입됐고, 1980년부터는 컴퓨터 단층촬영기(CT)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당시 CT는 웬만한 병원은 설치할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고가여서 보건복지부는 인천, 경기 지역의 여러 병원에 인천기독병원의 장비를 공동 이용해달라고 권장하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인천에서 CT를 도입한 것은 기독병원이 최초였다. 당시 최신식 의료기술을 자랑했다"며 "병원에서 대한방직, 대우전자 등 인천지역 주요기업들의 건강진단을 다 맡는 등 인천을 대표하는 의료기관이었다"고 말했다. 인천기독병원 이종철 총무팀장은 "인천기독병원의 CT 도입은 서울 세브란스 병원보다도 빨라서 세브란스 환자들이 CT를 찍으러 기독병원에 오기도 했다"고 말했다.1979년부터 인천기독병원 부근에서 의료기기 상점을 운영해 온 박차영(67)씨는 "당시 인천기독병원 인근에는 은행이 2곳이나 있었고 극장에 예식장 등이 있었다"며 "지금의 모습을 보면 상상이 안 가겠지만, 당시 기독병원 주변이 인천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하지만 전진성 할아버지가 근무했던 1970년대에는 의료보험 적용이 제대로 안 돼 병원비가 비싸다 보니 기독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015년 12월 발행한 '보건복지 70년사'를 보면 의료보험제도는 1963년 의료보험법 제정으로 도입됐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다가 1977년부터 5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당연 적용 방식으로 시행됐다. 그 후 점차 대상이 확대되면서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이 시행된다. 할아버지는 기독병원 총무과장으로 있으면서 병원비가 없어 진료를 못 받는 사람을 도와줄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고 했다. "의료보험제도가 없을 때는 병원비가 너무 비싸서 안 죽을 사람도 죽었다고, 병원비를 못 내서 진료받다가 환자가 도망가는 일도 비일비재했어. 미수 병원비도 엄청나게 쌓이고 그랬지."의료보험 제도가 확대 시행된 뒤에는 기독병원의 환자 수가 크게 늘기도 했다. '보건복지 70년사'에 따르면, 의료보험 제도가 5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확대 시행되기 시작한 1978년 기독병원의 외래 환자 수는 12만5천839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41% 가까이 증가했다.할아버지는 10년간 기독병원에 있다가 전의철 부원장과 함께 1982년 5월 인천세광병원(현 인천사랑병원) 창설 멤버로 참여해 세광병원에서 10년간 일했다. '인천기독병원 50년사'를 보면 전의철 부원장은 1965년 9월 귀국해 진료를 맡았다. 그는 감리교 십자군 장학생으로 미국 대학에서 유학을 마쳤는데, 현지 병원이 유리한 조건으로 머무를 것을 요청했는데도 인천기독병원에 복직했다고 돼 있다. 174개 병상으로 개원한 세광병원은 1990년 진로그룹이 인수했다. 이때 노조가 심하게 데모하는 등 사측과 갈등이 심해졌고, 이 때문에 할아버지는 병원에서 나오게 됐다. 인천사랑병원 관계자는 "의료운동을 벌여오던 '신문청년의사'그룹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세광병원을 고용 승계 조건으로 인수해 1998년 11월 28일 인천사랑병원으로 문을 열었다"고 소개했다.할아버지의 부인 박미자 할머니(83·황해도 옹진 출신)는 최근 몸이 많이 안 좋아져서 인천의 한 대형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다. 할아버지는 8일에도 할머니 곁을 지켰다. 할머니는 수년째 중증근육무력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고, 최근 급성패혈증으로 인해 병세가 위중해져 중환자실 신세까지 지게 됐다. 그동안 4차례 진행한 인터뷰 약속을 한 번도 어긴 적 없던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중환자실에 간 뒤로는 취재에 동행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난달 30일 잡아놨던 인천기독병원, 인천사랑병원 등의 현장 취재에도 함께하지 못했다. 그런 할아버지는 지난주 경인일보 연중기획 상편 기사가 나간 뒤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지인 여러 명에게서 연락이 왔다며 상기된 목소리로 전화를 해왔다. 할머니 간병에 여념이 없는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힘들 것 같다.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글/홍현기기자 hhk@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전진성 할아버지가 이북5도민회 인천지구 함경남도민회 회장으로 받은 대통령 포장증을 가리키고 있다.인천세광병원 개원식 모습. 왼쪽 4번째가 전진성 할아버지다. /전진성 할아버지 제공1983년 인천세광병원 직원수련회 모습. 왼쪽에 사회를 보는 사람이 전진성 할아버지다. /전진성 할아버지 제공전진성 할아버지가 부평1동 동부동 사무소 안에서 근무하는 모습. /전진성 할아버지 제공전진성 할아버지가 인천기독병원 총무과장 재직 시절 병원 앞에서 찍은 기념 사진. /전진성 할아버지 제공지금의 인천기독병원 모습.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전진성 할아버지(왼쪽에서 5번째)가 부평1동 동부동 사무소 앞에서 직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전진성 할아버지 제공

2017-11-08 홍현기

[zoom in 송도]국내 최초 해외 명문대 종합캠퍼스 '인천글로벌캠퍼스'

겐트·유타대 아시아캠 등 속속 개교네덜란드 명문음대 설립 MOU 교환1·2단계로 나눠 10개 외국대학 목표 김진용 청장 "2단계 사업 조속 착공"국내 최초 해외 명문대학 종합(공동) 캠퍼스인 인천글로벌캠퍼스 사업이 순항하고 있다.인천경제자유구역청(청장·김진용)에 따르면 송도국제도시 7공구(연수구 송도동 187)에 위치한 인천글로벌캠퍼스는 지난 2012년 3월 한국뉴욕주립대 개교를 시작으로 한국조지메이슨대, 겐트대 글로벌캠퍼스, 유타대 아시아캠퍼스가 개교했다.올 8월에는 세계적인 패션 명문대학 '뉴욕패션기술대'(FIT) 신입생이 입학했다.인천경제청은 지난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 콘서바토리(명문 음대)와 송도캠퍼스 설립·운영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하는 등 더욱 많은 해외 명문대학을 유치하고자 노력하고 있다.인천경제청 관계자는 "인천글로벌캠퍼스를 벤치마킹하기 위한 문의도 끊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인천글로벌캠퍼스 입주 대학은 본교의 엄격한 입학사정과 커리큘럼을 가지고 학생을 선발·교육하고 있다.학생들은 재학 기간 중 3년은 한국에서, 1년은 본교에서 수학 후 본교의 졸업장을 받게 된다.2017년 가을학기 현재 1천730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며, 정원 대비 44% 이상의 충원율을 보이고 있다.대학들은 입학 심사 시 본교의 절대평가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입학이 쉽지 않다 보니 충원율이 낮아지는 문제가 있지만, 입학생들의 만족도와 실력은 더욱 높아지는 결과로 이어진다.예컨대 한국뉴욕주립대 기술경영학과(2017 봄학기)의 경우, 96명이 지원했으나 입학 허가를 받은 학생은 24명뿐이었다.인천글로벌캠퍼스는 협업 모델도 갖추고 있다. 겐트대 글로벌캠퍼스는 인천대와 공동학위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유타대 아시아캠퍼스는 중앙대와 함께 '디지털복지연구센터'를 운영 중이다. 인천글로벌캠퍼스 사업은 1단계와 2단계로 진행되고 있다. 총 10개 대학을 유치하는 것이 목표다.인천경제청 김진용 청장은 지난 9월29일 취임사에서 "인천글로벌캠퍼스는 (인천이) 세계의 글로벌 교육도시가 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사업"이라며 "2단계 사업을 원래 계획대로 조속한 시일 내에 착공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인천경제청은 인천글로벌캠퍼스 2단계 사업을 위해 산업통상자원부와 협의를 벌이고 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인천글로벌캠퍼스 전경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

2017-11-05 목동훈

[zoom in 송도]인터뷰|김기형 인천글로벌캠퍼스 운영재단 대표이사

인천글로벌캠퍼스운영재단 김기형 대표이사는 "10개 대학 중 4개 대학 5개 학부를 성공적으로 유치해 캠퍼스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하는 데 역점을 두고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올 9월 취임한 김기형 대표는 "대한민국 최초의 해외 명문대학 공동캠퍼스를 지원하는 재단의 대표로 취임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이같이 말했다.김 대표는 "설립 초기 학생 수 부족 등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정착 단계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며 "국내외에서 우리 캠퍼스를 벤치마킹하기 위한 방문과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어 "올 가을학기 현재 1천700여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이들이 향후 친한(親韓) 인천그룹을 형성해 인천이 글로벌도시로 발전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학생 충원율은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입주 대학들이 커리큘럼 신설과 정원 조정을 추진하는 등 학생 교육과 유치를 위한 전략을 세우고 있다"며 "해외 유학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외국대학 본교와 동일한 학위를 취득할 수 있기 때문에 입학 희망자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김 대표는 '교수·학생 편의시설 등 인프라 구축'과 '지역사회 소통·협력' 업무에도 중점을 둘 계획이다. 그는 "우리 캠퍼스는 진행형에 있는 학교다. 이제 걸음마 단계"라며 "테니스장과 잔디운동장 등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캠퍼스와 입주대학들을 널리 알리는 데 중점을 두고자 한다"고 했다. 또 "캠퍼스 활성화를 위해 대강당, 공연장, 수영장 등을 지역사회에 개방하고 있다"며 "글로벌 인재 양성은 물론 산학 협력 촉진을 통해 인천경제자유구역의 지속적인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인천글로벌캠퍼스 내에는 기업의 연구개발과 해외 진출 등을 돕는 '글로벌스타트업 캠퍼스'도 있다.김 대표는 "글로벌 종합대학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해외 명문대학을 유치해야 한다"며 "2단계 사업을 위해 인천경제청과 산업부, 교육부 등 관련 기관 간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 "2020년을 목표로 교수하우징 및 편의시설 확충, 학생 충원율 90% 달성, 해외 명문대학 추가 유치 등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시민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격려를 부탁한다"고 했다.김 대표는 공직 생활 동안 인천경제청에서 개발국장, 도시개발본부장, 차장 등을 역임해 관련 업무에 밝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인천글로벌캠퍼스운영재단 김기형 대표이사. 그는 편의시설 확충, 학생 충원율 향상, 해외 명문대학 추가 유치 등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인천글로벌캠퍼스운영재단 제공

2017-11-05 목동훈

[실향민이야기 꿈엔들 잊힐리야·42]함경남도 단천시 출신 전진성 할아버지(上)

마지막 배 '매러디스 빅토리호' 타고 거제로문재인 대통령 부모님도 같은 배 타고 피란몇십리 걸어 도착 "하룻밤 묵었다면 잡혔어""기중기 달린 어망에 담겨 승선" 증언 눈길장승포 초교·어망창고에 머물다 자원 입대대구 육군본부 행정병때 송해와 함께 근무부대행사 때마다 남다른 입담 자랑해 기억제대 후 부평서 결혼 60년 세월 떠나지 않아함경남도 단천 출신인 전진성(88) 할아버지는 1950년 12월 흥남철수 당시 흥남부두를 마지막으로 빠져나온 '매러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호를 타고 거제도로 피란을 나왔다. 빅토리호는 한 척의 배로 가장 많은 인명(1만4천여명)을 구한 기록으로 2004년 기네스북에 올랐다. 한국전쟁 종군기자였던 미국인 빌 길버트가 쓴 '기적의 배'를 보면 매러디스 빅토리호는 한국전쟁 중 부산, 일본 등을 오가며 군수물자를 실어나르는 역할을 했다.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 날에는 인천항에 들어와 탄약, 탱크 등을 해군 상륙함정(LST)에 실어줬다. 흥남철수 당시에는 부산에 제트기 연료를 운반한 뒤 작전에 투입됐다.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도 흥남철수 때 이 배를 탔고, 경남 거제에 온 지 2년 만인 1953년 1월 문 대통령을 낳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아 "장진호 용사와 흥남철수 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군사전문가들은 흥남철수작전을 현대 전쟁사 최대 규모의 철수 작전인 덩케르크 철수 작전(Operation Dynamo)과 비교한다. 덩케르크 작전으로 33만8천명의 영국, 프랑스 병사를 잉글랜드로 철수시켰는데, 흥남철수작전으로는 유엔군 10만 명뿐만 아니라 전진성 할아버지와 같은 민간인 10만 명도 구출됐다. 두 작전은 모두 흥행 영화의 소재로 다뤄졌다는 공통점도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덩케르크'는 국내에서만 27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흥행에 성공했고, 흥남철수작전은 역대 2위 누적 관객(1천420만명)을 기록한 영화 국제시장에 나온다.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 황덕호 명예회장은 '흥남철수작전 역사서 아! 흥남철수' 축사에서 "덩케르크에서는 피란민 철수는 단 한 명도 없었고, 완전무장을 하고 상당한 기동성을 갖춘 정예대군이 오히려 민간인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철수하기에 바빴던 철수작전이다. 반면 흥남철수작전은 군 병력뿐만 아니라 노인과 아녀자들을 포함한 10만여 민간인이 군과 거의 동수로 함께 철수한 인도주의적 작전이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전진성 할아버지는 고향인 단천에서부터 무릎 높이까지 오는 눈길을 뚫고 쉼 없이 걸어 흥남철수작전의 행렬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함경도 피란민들은 흥남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흥남부두로 몰렸다. 할아버지는 "중간에 하룻밤을 묵기라도 했으면 중공군에 잡혀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할아버지는 1950년 12월 5일 새벽 동네에 주둔하던 국군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친척 3명과 함께 보따리를 싸 들고 단천항구로 갔다. 할아버지는 단천항에 출발하는 배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치고 함경철도를 따라 남쪽으로 무작정 걸었다. 그러다 화물열차를 탈 수 있었고, 북위 40도선에 있는 '퇴조'라는 지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흥남항까지 밤새 20리 길을 걸었다.당시 흥남부두에는 이미 10만 명이 넘는 많은 피란민이 몰려있었다. 당초 미군은 흥남항을 통해 군 병력만 철수시킬 계획이었는데, 나중에 민간인까지 함께 상륙함정과 화물선 등에 실어 피란을 시키기로 했다. 할아버지는 이런 흥남철수 작전이 '현봉학 박사'라는 사람 덕분에 가능했다고 했다. 현봉학 박사는 당시 미군을 설득해 민간인들을 구출한 흥남철수의 숨은 주역으로 꼽힌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정리한 '한국의 쉰들러 현봉학과 흥남 대탈출'에서 미 10군단 알몬드 소장 등을 설득해 민간인을 배에 태울 수 있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당시 흥남항구에 있으면서 미군 병력 철수를 위해 직접 군수물자를 실었다가 민간인을 태우기 위해 다시 각종 물자를 내리는 일을 했다.당시 가공식품 깡통 등 각종 군수물자를 항구에 내려놓은 뒤 중공군이나 인민군이 가져가지 못하도록 모두 불살랐다고 했다. 접안시설도 이용할 수 없도록 모두 부숴버렸다.김훈의 장편소설 '공터에서'에도 이 같은 흥남철수 과정이 묘사돼 있다. "미군은 흥남항에서 해상으로 철수할 작정이었다. 미군의 철수 계획은 중공군의 졸병도 알았고 피난민들도 알았다. 미군은 피난민들의 승선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거듭 말했지만 피난민들은 흥남항으로 몰렸다. 북청에서 흥남에 이르는 해안 도로에 피난민들이 가득 차서 흘러갔다. …(중략)… 미군이 수송선에 피난민을 태우기로 했다는 소문은 발표도 없이 퍼져 나갔다. 수송선들이 모래 위로 선수를 들이밀고 철문을 열었다. … 손을 잡아라. 허리띠를 붙들어 …(중략)… 마지막 폭격기들이 항모로 돌아왔다. 항구 안에 남아 있던 구축함이 16인치 포로 흥남부두를 부수고 접안 시설을 부수었다. 함포가 부두를 부술 때 민간인들도 부두에 모여 있었다. 불길과 연기에 휩싸여서 부두도 산맥도 보이지 않았는데, 연기 속으로 포탄은 계속 날아갔다."당시 매러디스 빅토리호에 오르는 피란민의 모습을 형상화한 '흥남철수작전기념비'가 경남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있다.피란민들이 배의 외벽을 따라 내려온 줄을 타고 경쟁하듯 올라가는 모습이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자신은 기중기에 달린 어망에 담겨 배에 끌어올려졌다고 했다. 피란민들이 어망에 실려 올려졌다는 얘기는 흥남철수 작전에 대한 각종 기록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증언이다."나는 기중기에 달린 어망에 탄 것 같아. 25~30명 정도가 어망에 타서 어떤 사람은 거꾸로, 어떤 사람은 가로로 처박혀서 어망에 실렸던 것 같아. 아니 그렇게 했던 것이 틀림없는 것 같아."1950년 12월 23일 흥남부두를 떠난 매러디스 빅토리호는 다음 날 부산항에 도착했지만, 정박할 곳이 없다는 이유로 당국의 하선 허가를 받지 못했고, 성탄절인 12월 25일 거제도의 작은 포구 장승포에 도착했다. 할아버지는 거제도에 도착한 뒤 장승포항 주변의 국민학교에서 잠시 추위를 피했다. 이때 머문 학교의 이름은 '장승포초등학교'로 1921년 개교한 뒤 지금도 같은 자리에서 교사(校史)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학생 수는 약 650명이다. 이 학교 정원욱 교무부장은 지난 10월 31일 전화통화에서 "거제도로 피란을 왔을 당시 장승포항 주변에 국민학교는 장승포초등학교가 유일했다"며 "피란민들이 우리 학교에서 머물렀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중학교 교사를 지낸 김찬수 씨가 쓴 '내가 겪은 6.25'를 보면 당시 거제도에는 수만 명이 몰리면서 대규모 피란민 촌이 만들어졌다. "밤에 보니 주변 언덕과 높은 곳에 불빛이 휘황찬란하여, 개발하기 얼마 전의 서울 돈암동 산꼭대기의 판자촌 야경같이 높은 빌딩이 가득 들어서서 불을 켜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할아버지는 이후 어망창고에서 열흘 정도 있다가 연초면에 있는 학교에서 방위군 신청을 받아 자원입대를 했다. 전문학교(북청농업전문학교 잠업과)까지 나온 할아버지가 글씨를 잘 쓰자 감찰부에서 조서를 받는 일을 시켰다. 할아버지는 방위군이 해산된 뒤에는 '창설 멤버'로 제주도 육군훈련소에 입소하게 된다. "제주도 모술포에 훈련소가 있었는데, 우리가 직접 돌을 메다 날라서 훈련소 벽을 쌓고 사실상 우리가 만들었지. 당시 훈련소장이 백인엽 장군이었어. 변변한 총도 없을 정도로 열악했지. 총 대신에 대나무 죽창을 들고 훈련을 받았으니까. 한 달 정도를 그렇게 훈련을 받았던 것 같아."할아버지의 증언은 '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에 나와 있는 '제주 구 육군 제1훈련소 지휘소'에 대한 설명과 일치했다. 서귀포문화대전은 육군 제1훈련소에 대해 "당시 백인엽 준장을 소장으로 1951년 3월 21일 창설되어 1956년 1월 해체되기까지 5년간 50만여명의 신병을 배출해 냈다. 신병들은 대체로 1개월 정도 훈련받고 전장에 투입됐다"고 설명했다.할아버지는 훈련소를 거쳐 부산에 있는 보충대대에서 통신학교로 배치를 받았고, 훈련을 거쳐 대구 육군본부에 있는 통신감실로 발령을 받았다. 할아버지는 인사행정과 소속으로 일종의 행정병 역할을 했다. 할아버지는 이때 전국노래자랑의 국민MC가 된 송해를 만났다. 송해는 무선통신사였는데, 이때도 남다른 입담을 자랑했다. 부대 안에서 열린 웅변대회나 연극대회 무대에 송해가 올라 농담을 시작하면 폭소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송해가 했던 대표적 농담으로 "옆구리를 찔러 창자를 꺼내서 빨랫줄을 만든다"고 했던 것을 기억했다. 지금 듣기에는 농담치고는 다소 '살벌'한데, 이때는 배꼽을 잡을 정도로 뜨거운 반응이 있었다고 한다.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단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오민석 교수가 쓴 '송해 평전'에도 송해가 통신학교 무선부를 거쳐 대구 육군본부 통신병으로 배치됐다고 돼 있다. 송해는 군 생활 중 3군 종합 콩쿠르 대회에 나가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했다.군예대(軍藝隊)가 자신의 부대에 위문공연을 올 때마다 송해가 무대에 올랐을 뿐 아니라, 임시 휴가증을 끊어 군예대의 위문 공연장에도 자주 불려 나갔다고 한다. 전진성 할아버지의 기억과 거의 일치한다. 다만 오민석 교수는 송해가 제대 후 함께 군 생활을 한 장세균이라는 사람을 따라 '부천 싸전거리'에 와서 두부장사를 했다고 했는데, 전진성 할아버지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줬다. 장세균이라는 사람이 현재 인천 부평구 부개동에 있는 우체국 송신소에 있었고, 송해도 이곳에서 함께 일하다가 유랑극단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누구의 말이 맞든 간에 송해는 군 생활을 할 때부터 '남다른' 입담을 자랑했던 것만은 분명하다.할아버지는 대구 육군본부에서 강원도 원주에 있던 1통신단으로 전입됐다가 1954년 5월 제대를 한 뒤 부평으로 왔다. 군 생활을 할 때부터 만나던 아내가 부평에 있는 연합병원(현재 세림병원)에서 일하고 있어 부평에서 1955년 7월 결혼을 하고 이곳에 정착하게 됐다. 세림병원은 1940년 부평역 앞에서 부평의원으로 문을 열었고, 1963년 5월에 병원이 증축되면서 부평연합병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1983년 현재 세림병원 부지(청천동 302)에 새로 건물을 지어 병원을 이전했다. 할아버지도 연합병원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60년이 넘도록 부평에서 살고 있다.글/홍현기기자 hhk@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전진성 할아버지가 인천 부평구에 있는 자택에서 피란 당시의 기억을 이야기하고 있다.사진은 폭파되고 있는 흥남시가지.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 제공사진은 매러디스 빅토리호에 승선하고 있는 피란민들.지난 2005년 경남 거제도에 있는 흥남철수작전기념비를 찾은 전진성 할아버지. /전진성 할아버지 제공

2017-11-01 홍현기

[zoom in 송도]위기가정 어린이돕기·이웃사랑 나눔 '소중한 한걸음'

전망대까지 기록측정·완주 구분기업인·단체·시민 500명 '레이스'LH인천본부 행사후원·봉사활동참가자들 선물상자만들기 체험도위기가정 어린이를 돕기 위한 '2017 G타워 희망 계단오르기 대회'가 지난 28일 오전 인천 송도국제도시 G타워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대한적십자사 인천시지사와 경인일보가 주최한 이번 대회는 기업인, 개인, 단체 일반 신청자 등 약 500명이 참가했다. LH 인천지역본부, 우리은행 연수동지점, 국민은행 인천지역영업그룹, 한국자산관리공사 인천지역본부, 삼성바이오로직스, 남구 시설관리공단, 한국전력공사 인천지역본부 등이 도움을 줬다.G타워 1층 로비에 마련된 행사장에는 메인 무대와 함께 ▲심폐소생술 교육장 ▲미혼모 지원을 위한 자립형 이동식 카페 '토리양카페' ▲위기 어린이 돕기 선물상자 만들기 등의 부스가 설치됐다.LH 인천지역본부는 이번 행사에 후원금을 내고 봉사활동도 벌였다. 나눔봉사단원 등 25명의 직원이 행사에 참여해 '토리양카페' 운영 지원과 선물상자 만들기에 참여했다.전 레슬링 국가대표 심권호 LH 인천지역본부 경영지원부 부장도 참석했다. 심 부장은 "LH 인천본부는 자라나는 어린이에 관심을 갖고 여러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다"며 "오늘 행사도 위기 상황에 있는 어린이를 돕는 취지라서 후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LH 인천지역본부는 인천남동경찰서와 협력해 초등학교 통학로를 순찰하고 교통안전캠페인을 벌이는 'LH 안전마을지킴이' 활동도 하고 있다. LH 신입사원도 많이 참여했다. 같은 부서 김효영 차장은 "올해 입사한 젊은 직원들이 봉사활동에 많이 왔다"며 "이웃사랑과 사회공헌을 몸소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국민은행 인천지역영업그룹에서도 약 60명(가족 포함)이 참여했다. 국민은행 주안역지점 주안북출장소에 근무하는 김동수 차장은 피에로 복장을 하고 풍선아트를 선보였다. 김 차장은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이 좋아 14년째 풍선아트로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인천지역영업그룹 정기영 대표는 "지역사회의 좋은 행사에 기여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며 "가정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를 돕고, 계단 오르기로 건강도 챙길 수 있는 매우 유익한 행사 같다"고 했다. G타워 희망 계단오르기 대회는 위기가정 어린이를 돕기 위한 행사로, 참가비(일시기부 1만 원 또는 정기후원 5천 원)는 위기가정 어린이의 의료·교육·생계비 등으로 쓰인다.공식 행사는 오전 10시에 시작됐다. 개회식에는 대한적십자사 인천시지사 황규철 회장과 배준영 부회장, 인천경제자유구역청 김진용 청장 등이 참석했다. 황규철 회장은 개회사에서 "위기에 놓인 어린이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행사"라며 "뜻깊고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가길 바란다"고 했다. 김진용 청장은 "저도 G타워 31층 사무실까지 매일 계단으로 걸어 다닌다"며 "계단오르기 대회가 건강 체크와 증진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대회는 1층에서 계단으로 33층 전망대까지 걸어 올라가는 방식으로, 크게 '기록 측정 경기'와 '완주 경기'로 구분돼 진행됐다. 완주 경기에 참가한 배현지(신송중1)양은 "가끔 아파트 계단을 걸어 다니는데, 오랜만에 걸어서 힘들다"면서도 "완주를 해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기록 측정 경기 1등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안주업(41)씨가 차지했다.참가자들은 경기가 끝난 뒤 1층 행사장에서 '위기 어린이 돕기 선물상자 만들기'(학용품 선물세트 포장)를 체험했다.G타워 계단오르기 대회에는 많은 자원봉사자가 참여해 행사 운영 등에 큰 도움을 줬다. 김규분(71·여)씨는 "자원봉사활동을 한 지 10년이 넘었다"며 "위기 어린이 등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조금만 참아"-지난 28일 오전 인천 송도국제도시 G 타워에서 열린 위기가정 어린이를 돕기 위한 '2017 G타워 희망 계단오르기 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32층의 계단을 오르고 있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몸풀기 체조-희망 계단오르기 대회 참가자들이 사전 몸풀기 체조를 하고 있다.나눔봉사단'파이팅'-LH 인천지역본부 나눔봉사단원 25명이 행사에 참여해 '토리양카페' 운영 지원과 선물상자 만들기에 참여했다.

2017-10-29 목동훈

[송도국제도시 브리핑]송도 지식기반서비스용지 입주기업 공모방식 매각

■송도 지식기반서비스용지 입주기업 공모방식 매각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송도 바이오단지 내 지식기반서비스용지(송도동 13의 27 2만2천546.3㎡)를 입주기업 공모 방식으로 매각한다. 인천대와 셀트리온 사이에 위치한 땅이다. 인천경제청은 바이오 업종을 영위하는 연구개발 역량 및 개발 재원 조달 능력을 갖춘 우량 기업·기관·학교법인을 유치해 첨단바이오클러스터의 성공적 조성을 유도할 계획이다. 유치 대상 업종을 영위하는 기업(연구소 포함), 기관, 대학 등이 단독으로 신청하거나 컨소시엄을 구성해 응모할 수 있다. 인천경제청은 내달 22~24일 사업계획서를 접수한 뒤, 12월 중 입주 대상 기업을 선정해 토지매매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자세한 내용은 인천경제청 홈페이지 공고란을 참고하면 된다.■한국조지메이슨大, 내달3일 '미국세금 특별콘퍼런스'한국조지메이슨대학교는 내달 3일 인천글로벌캠퍼스 지원센터 소극장에서 한미택스연구포럼과 함께 '제3회 미국 세금에 관한 특별 콘퍼런스'를 연다.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미국 세금에 관한 특별 콘퍼런스'는 한국 기업의 미국 진출을 돕고, 국제세금제도에 관심 있는 각계 전문가와 대학생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자 마련됐다. 한미 양국의 세금 전문가들로 구성된 발표자와 패널들이 참석해 미국해외금융자산 및 금융계좌신고제도, 미국 진출 기업에 적용되는 기업 설립 절차와 세금제도 등을 설명할 예정이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17-10-29 목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