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인천)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24]선박 안전 길잡이 도선사·(하)

조수간만차 크고 수로 복잡한 인천, 1915년 근대식 도선 도입운항중 배 옮겨타야하는 작업 해상추락 등 사고·순직 잇따라김혁식 도선사회 이사 "많은 선배들의 노력으로 발전 이뤄내"올해 5월 부산 영도구 태종대공원에 있는 해기사 명예의 전당에서 '올해의 해기사'로 선정된 배순태(1925~2017) 전 (주)흥해 회장의 명예의 전당 헌정식이 열렸다. 그는 우리나라 1호 국가 공인 도선사다. 배순태 회장보다 앞서 도선사로 임명된 사람들은 있었지만, 국가고시로 도선사 면허를 딴 사람은 그가 처음이다. 우리나라에서 도선사 국가시험이 처음 시행된 것은 1958년이다. 법에는 도선사 선발을 위한 시험 제도가 있었지만, 시험을 보지 않고 당국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도선사로 임명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해당 도선구에 이미 도선사가 있는 경우에는 정부에서 도선사 증원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배순태 회장은 자서전 '난 지금도 북극항해를 꿈꾼다'에서 "나는 법에 나와 있는 대로 정상적으로 시험을 보게 해달라고 당국에 탄원을 했고, 이런 나의 사정을 전해 들은 한국해양대학 학장을 지낸 신성모(전 국방부 장관, 1891~1960)씨가 정부에 도선사 시험을 시행해 줄 것을 주문해 나에게도 시험을 볼 길이 열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우리나라 첫 국가 공인 도선사인 그는 유난히 '최초'라는 기록이 많다. 선장으로 근무할 당시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 일주에 성공했으며, 1974년 완공된 인천항 갑문에 처음 배를 통과시킨 선장으로도 기록돼 있다. 평택항 액화천연가스(LNG) 부두에 9만t급 LNG 선박을 처음 접안시킨 것도 배순태 회장이다. 도선사 출신인 이귀복 인천항발전협의회 회장은 '선구자 같은 사람'이라고 배 회장을 설명했다. 그는 "모두가 주저하는 상황이 되면 자신이 책임을 지고 앞장섰던 사람"이라며 "그래서 우리나라 최초로 도선을 성공한 기록도 많이 갖고 있다"고 평했다.배순태 회장의 성격은 인천항 갑문에 최초로 선박을 입항할 때 일화로도 잘 드러난다.당시 인천항 갑문에 선박을 통과시킬 도선사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처음으로 갑문에 배를 입항시킨 도선사라는 타이틀은 매우 영광스럽지만, 사고가 발생하면 그 책임을 도선사가 져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박정희 당시 대통령도 행사에 참석하겠다고 밝히면서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서 도선사를 수입해 도선을 시키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그때 도선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바로 배순태 회장이다. 당시 그는 "우리나라 사람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 왜 다른 나라 사람을 데려오려 하느냐. 국가적으로 창피한 일"이라고 말하며 본인이 직접 도선에 나섰다고 한다. 배순태 회장과 10년 동안 한 회사에서 근무한 (주)흥해 박관복(63) 전무는 "다른 사람들은 여러 핑계를 대며 부담스러운 일을 맡지 않으려고 했는데, 본인이 직접 책임을 지겠다고 한 것"이라며 "인천항과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컸던 분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우리나라에서 근대식 도선이 시작된 것은 1915년이다. 1883년 개항한 인천항은 조수 간만의 차와 복잡한 수로 등으로 인해 도선의 필요성이 컸다. 이에 일본은 1915년 도선사의 역할 등을 정의한 '조선수선령'을 공포한다. 이는 일본에서 시행되고 있던 '수선법(水先法)'을 따른 것으로, 조선총독부 해사국이 도선사 시험을 주관하고 면허도 발행했다. 이 때문에 초기에는 일본인들이 도선업을 독점했다. 해운 행정이 일본인들에 의해 이뤄졌기 때문이다.1937년이 돼서야 일제로부터 정식 도선 면허를 받은 한국인 최초 도선사가 탄생했다. 인천항에서 활동한 유항렬(1900~1971) 도선사다.우리나라 최초의 도선사이자, 일제시대 유일한 한국인 도선사였던 그는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 남아있던 단 한 명뿐인 도선사였다. 이러한 이유로 해방 이후 주요 구호물자를 실은 선박의 도선은 그의 몫이었다. 그는 30년이 넘는 도선사 생활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일로 1947년 미 화물선 리퍼블릭호(2만5천t) 등 구호물자 등을 실은 군함과 화물선 50여 척을 인천항에 입항시킨 일을 꼽았다. 당시 구호물자를 실은 선단은 심한 풍랑 때문에 상륙을 못했다고 한다. 1970년 12월 '주간한국'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리퍼블릭호에 올라 모든 선단을 이끌고 내항으로 들어올 때는 동포를 생각하면서 어깨가 으쓱했다"고 당시 심경을 밝힌 바 있다.1·4 후퇴 당시에는 도선사라는 책임 때문에 인천항에 있는 모든 선박을 출항시킨 다음 최후로 부산 피란길에 올랐다고 전해진다. 그와 함께 활동했던 한국명예도선사회 김수금(92) 회장은 "오래전에 은퇴해서 자주 마주쳤던 분은 아니지만 고령임에도 당당한 모습으로 배를 이끌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며 "도선 기술은 해외 어느 도선사와 견주어봐도 매우 뛰어났던 사람"이라고 했다.인천 중구 내동에는 이른바 '유항렬 저택'이 있다. 유항렬 도선사가 생전 살던 곳으로 2층에 있는 베란다는 남쪽이 아니라 서쪽인 팔미도를 바라보고 있다. 이는 유항렬 도선사가 집에서 망원경을 통해 인천항에 입항할 선박이 오는지를 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유항렬 도선사의 일곱 번째 아들 유재공(72)씨는 인천시립박물관 조사보고서(인천항 사람들)에서 "아버지는 인천항에서 여러 나라 배들의 입출항을 도와주는 일을 했기에 빨간 벽돌 이층집 내동 집에는 외국 손님도 가끔 왔다. 그 집에선 인천항이 훤히 내다보인다"고 회상했다.도선사들은 자신들이 매우 위험한 작업 환경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운항 중인 선박에 올라타야 하기 때문에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는 게 도선사들의 설명이다. 워낙 위험한 작업이다 보니 9m 이상 올라가야 할 경우 줄사다리 대신 조금 안전한 철제사다리를 사용하도록 국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조심을 하더라도 자칫 선박과 선박 사이에 끼여 다치거나 바다에 떨어져 실종되기도 한다.인천항 갑문에는 높이 3m, 너비 80~100㎝가량의 기념비가 하나 서 있다. 1984년 12월 21일 한국도선사협회가 세운 도선사 기념비다. 기념비에는 '이 기념비는 유항렬 도선사가 우리나라 최초로 인천항에서 도선 업무를 개시한 것을 기념하고 또 1957년 11월 22일 도선 업무 수행 중 순직한 김선덕 도선사를 추모하기 위해 이를 건립하다'(비문)라고 기록돼 있다.김선덕 도선사는 1957년 11월 팔미도 근해에서 도선선 난파로 조난당했다고 한다. 1985년에는 김동균 도선사가 심장마비로 숨졌고, 같은 해 차재간 도선사가 도선 수행 중 바다로 떨어져 순직하는 사고도 났다. 가장 최근에는 2004년 4월 박만현 도선사가 해상으로 추락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인천항도선사회 김혁식 이사는 "많은 선배 도선사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인천항과 인천항 도선사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항만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인천항을 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글/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인천시 중구 내동에 위치한 유항렬 주택. 이 집의 2층 베란다는 남향이 아닌 서쪽 팔미도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지난 2012년 해기사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유항렬(왼쪽 흉상) 도선사. /한국해기사 협회 제공인천항 갑문에 세워져있는 도선사 기념비.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7-04 김주엽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23]선박 안전 길잡이 도선사 (상)

500t이상 외항선 입출항할 때 탑승 의무화… 고대시대부터 관련 기록 존재무전기·레이더 활용 선원·예인선에 '방향·속도 지시' 갑문 통과·접안 도와인천항 긴 항로·빠른 조류·잦은 안개 까다롭기로 유명23년 경력 베테랑 옥덕용씨 "작업 끝내면 안도·홀가분"수십만t 규모의 선박이 그들의 손끝에서 움직인다. 승객 수천 명과 화물 수십만t의 안전이 그들 손에 달렸다. 배가 입출항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존재인 그들은 '도선사(導船士·pilot)'다.지난 15일 오후 인천 중구 역무선 부두에서 옥덕용(67) 도선사를 만났다. 1993년 도선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경력 23년의 베테랑 도선사다. 도선사는 항구에서 선박 입출항을 도와주는 '선박의 안전 길잡이'다. 우리나라 항구에 입항하는 500t 이상 외항선은 반드시 도선사가 탑승해야 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 주요 항구도 도선법에 따라 외항선에는 반드시 도선사가 탑승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도선사의 역사는 기원전 1천 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고대 페니키아(현재 레바논 부근)의 '다니아'라는 항구에서 도선 서비스가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 최초 도선 기록은 일본 교토의 승려가 쓴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라는 책에 기록돼 있다. 이 책에는 신라의 '유당사선'이 한반도 남해안을 통과할 때, 도선사가 승선했다고 기록돼 있다.조선 시대 편찬된 '경국대전'에는 조운(漕運, 현물로 거둔 조세를 선박으로 운반하는 일)의 경우 선박마다 도선에 능한 사람 2~3명을 승선시켜 지휘하게 하라는 규정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도선 서비스가 시작됐는데, 1937년 인천항에서다.여러 사람과 화물의 안전을 책임지는 직업이다 보니 도선사가 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도선사가 되려면 6천t 이상 선박에서 5년 이상의 선장 경력이 있어야 하며, 해양수산부가 주관하는 도선사 시험에 합격하고도 6개월간 실무수습을 받아야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20여 년 동안 외항선에서 근무한 옥덕용 도선사도 이 같은 절차를 거쳐 도선사가 됐다.이날 옥 도선사가 인천항에 입항시킬 선박은 중국 롄윈강(連雲港)에서 출발해 인천항 제2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하는 카페리선 '하모니 원강(和諧雲港)'호다. 이 배는 길이 196m, 너비 28.6m인 대형 카페리선이다. 인천 내항에 위치한 제2국제여객터미널은 갑문을 통해서만 입항할 수 있기 때문에 도선 난도가 높다.옥 도선사를 실은 도선선(Pilot boat)이 역무선 부두에서 30분 정도 달려 팔미도 인근 해상에 도착하자 하모니 원강호가 보였다. 인천 내항이나 북항, 남항에 입항하는 선박은 팔미도에서 도선사가 탑승해야 한다. 도선선이 도착하자 하모니 원강호 승무원들이 도선사 출입구를 열어줬다. 도선사는 운항 중인 배에 탑승해야 하므로 승객들이 배에 오르는 시설을 이용하지 못한다. 하모니 원강호처럼 별도 출입문을 이용하거나 줄사다리를 타고 10여m를 올라가야 한다. 옥 도선사는 "선박에 오르는 순간은 늘 긴장된다"며 "별도의 안전장치가 없어 갑자기 파도가 치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면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나마 카페리선은 승선 입구가 낮아 다행이지만, 초대형 유조선(VLCC, Very Large Crude oil Carrier)이나 컨테이너선은 줄사다리 하나에 의지해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고 덧붙였다.배에 탑승하자마자 그는 승무원들과 함께 카페리선 맨 위 선교(브리지)에 위치한 조종실(휠하우스)로 향했다.이곳에서 만난 류치앙강(55) 선장은 "옥 도선사는 경력이 많아서 아주 능숙하다. 이미 여러 번 우리 배를 도선해 믿음이 간다"고 말하며 웃었다."인천항 VTS(해상교통관제센터) 여기는 하모니 원강호입니다. 15시 5분 도선사 승선했습니다."옥 도선사는 조종실에 들어서자마자 인천항 VTS에 승선을 보고한 뒤, 본격적인 도선을 시작했다. 선박 정보를 확인한 옥 도선사는 배의 방향과 속도를 선원들에게 지시한다. 옥 도선사는 "예전에는 해도(海圖)를 보고 방향을 정했기 때문에 월미산 등 특정 장소가 보이면 방향을 수정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레이더 등 선박 주행 설비가 잘 갖춰져 있어 쉽게 방향을 잡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인천항은 도선이 매우 까다로운 항만으로 유명하다. 항로가 길고, 조류가 빠른 데다 안개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라며 "오늘은 날씨가 맑아 가시거리가 길고, 파도가 거의 없어 다행"이라고 설명했다.20분 정도 운항하자 갑문이 눈에 들어왔다. 베테랑인 옥 도선사도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조수 간만의 차와 상관없이 하역 작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만든 36m 너비의 갑문은 최대 난코스에 해당한다.갑문이 가까워지자 카페리선을 도와줄 예선 '뉴캐슬'호가 선미(배 뒷부분)에 붙었다. 방향 전환이 쉽지 않은 카페리선은 예인선의 도움을 받아야 갑문을 통과할 수 있다. 옥 도선사가 조종실 오른쪽 끝 창문으로 이동했다."뉴캐슬 밀 준비. 밀어. 뉴캐슬 슬로우. 좋아요. 일자로 계속 가고 있어요."배가 일자로 갑문에 진입하지 않으면 갑문 콘크리트 벽에 부딪힐 수 있다는 게 옥 도선사 설명이다. 이 때문에 도선사 지시에 맞춰 선장과 승무원, 예선이 모두 힘을 합쳐야 갑문을 통과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갑문 폭이 워낙 좁아 멀리서는 좌우 폭을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다"며 "1m만 차이가 나도 갑문에 충돌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최대 고비인 갑문을 무사히 통과했다. 하지만 배를 접안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관문이 남아 있다. 인천 내항은 다른 항만보다 부두가 좁고, 계류 중인 선박도 많아 갑문 통과 후에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한다. 옥 도선사는 선박 좌우를 부지런히 오가며 양옆에 있는 자동차 운반선과 화물선과의 거리를 확인했다.승선한 지 2시간여 만에 하모니 원강호는 내항 4부두에 안착했다. 옥 도선사는 "그동안 셀 수 없이 많은 배를 도선했지만 작업을 마무리하고 나면 안도감과 홀가분함이 온몸을 감싼다"고 말했다.40여 년 동안 배를 탄 옥 도선사는 올해 말 정년 퇴임을 맡는다. 그는 인천항 도선사 43명 가운데 최고참이다. 그는 "항해사부터 선장까지 단계적으로 배를 타면서 현재 위치(도선사)에 이르렀다는 것, 항만시설 안전과 선박 운항 효율에 이바지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퇴임하는 날까지 안전한 인천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글/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일러스트/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옥덕용 도선사가 인천 내항에 들어온 카페리선 하모니 원강호를 부두에 안착하기 위해 무선으로 예선에 지시를 하고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길이 196m, 너비 28.6m인 대형 카페리선 하모니 원강호가 36m 너비의 갑문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고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옥덕용 도선사가 팔미도 인근 해상에서 하모니 원강호로 옮겨타고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옥덕용 도선사 (사진 오른쪽)와 류치앙강 선장이 인천항 갑문까지의 항로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옥덕용 도선사가 "항해사부터 선장까지 단계적으로 배를 타면서 현재 위치(도선사)에 이르렀다는 것, 항만시설 안전과 선박 운항 효율에 이바지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라고 밝히고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6-27 김주엽

[제21회 바다그리기 대회 심사평]초등부엄규명 서양화가 "생동감·창의력 지난해보다 향상 고무적"

바다의 소중함을 꿈과 희망의 감성으로 그리는 경인일보사 주최 '바다그리기대회'가 성황리에 제21회를 맞이하였습니다.무더운 날씨에도 월미도 문화의 거리, 인천항 갑문, 연안부두 해양광장, 영종진 공원(구읍뱃터), 강화 갑곶돈대, 만석부두 등 기타 지역에서 약 2만6천명의 꿈나무 어린이들이 사생대회에 접수하여 그간 다듬어온 실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본 행사의 취지인 소중한 바다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많았으며 지역 미술문화의 획기적인 호응과 계기가 수많은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어린이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자신의 역량과 생각한 꿈의 세계를 마음껏 발휘해야 하는 이번 사생대회에서도 전년도의 수상작품을 모방하거나, 도움받은 그림이 많아 아쉬웠으나 작년에 이어 조금씩 응모숫자의 변화와 생동감 있는 작품과 창의성이 많이 향상되고 있어 희망적이며 고무적입니다.어린이다운 그림, 생각이 잘 표현된 그림, 자신만이 생각할 수 있는 형태와 색채 등이 중시되는 것이며, 이런 그림이 먼저 선출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초등부 심사위원 19명의 위원이 각 교육청별, 학교별, 학년별로 20% 정도 입선작을 선정하였으며 2차 본선심사에서는 전체 입선작 중에서 약 2%정도 (특선, 우수상, 최우수상, 대상)를 학교, 학년 구분 없이 전원 합의제 토의를 거쳐 투표로 선정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학교별 격차가 나타났음은 이해 바랍니다. 아울러 구청장상과 교육장상은 해당 지역의 작품으로 선별하였습니다. 유치부는 전체 작품 중 약 10%의 입선작과 약 5%의 특선작으로만 선출하였습니다.맑고 화창한 날씨 속에서 치러진 전국최대규모인 이번 사생대회가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으로 가족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희망의 시간이 되었길 기원합니다.

2018-06-25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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