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인천)

[푸른인천글쓰기대회]이모저모

■'기자 되어보고…' 시청자미디어센터 '뉴스제작체험' 인기○…"푸른 인천 글쓰기대회 현장에서 앵커 박지원이 전해드립니다."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가 마련한 '뉴스제작체험'을 통해 너도나도 아나운서, 기자, 기상캐스터가 되어보며 즐거운 한때.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는 이동식 스튜디오를 이날 글쓰기대회 현장에 설치, 참여 아이들이 각자 역할을 맡아 실시간으로 뉴스를 제작. 또박또박 원고를 읽는 미래의 아나운서, 기자, 기상캐스터들을 보는 학부모 표정도 흐뭇. 영종초 2학년 박지원 군은 "원래 기관사가 꿈이었는데 아나운서도 멋있는 직업 같다. 아나운서로 꿈이 바뀔 것 같다"며 함박웃음.■문학경기장 행사무대 '추억만들기' 인증샷 찍기 행렬○…문학경기장 북문광장에 설치된 무대는 공식행사가 끝난 뒤 참가자들의 기념촬영 장소로 인기. 대회가 시작된 지 1시간이 지나면서부터 작품을 다 쓴 참가자들은 하나 둘 자신이 쓴 원고지를 들고 이날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무대에 올라 기념사진을 촬영. 한 어린이는 비어 있는 무대에 올라서서 흘러나오는 동요에 맞춰 춤을 추는 등 장기자랑 공간으로도 활용. 학부모 김지현(여·38)씨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어서 너무 좋다"며 "오늘을 추억하기 위해 무대를 배경으로 아이들 사진을 찍어줬다"고 설명.■세 딸과 참여 '열혈 아빠' "내년엔 넷째 아들도 데려올 것"○…초등학교 3학년, 1학년과 유치원생인 세 딸을 홀로 이끌고 계양산 대회장을 찾은 다자녀 아버지 황수연(40)씨. 초등학생 참가자인 두 딸의 글을 봐주며 셋째 딸도 돌보는 등 만능 아버지 모습을 보여. 내년 대회에는 현재 8개월 된 넷째 아들과 대회장을 찾겠다고 약속. 황수연씨는 "아이들이 글을 쓰는 걸 제대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인데, 아이들이 생각보다 글을 잘 써서 많이 놀랐다"며 "아내가 현재 다섯째를 임신하고 있다. 내년에는 가족 모두가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웃음. /정운·박경호·윤설아기자 jw33@kyeongin.com'오늘은 내가 아나운서!'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의 이동식 스튜디오를 찾은 어린이들이 뉴스제작 체험을 하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4-29 정운·박경호·윤설아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15]인천과 포구(上)

황무지였던 소래포구, 한국전쟁 이후 '실향민들' 정착항로 표지 시설·전봇대 직접 설치하며 터전으로 일궈새우젓 등 1970년대부터 전국 입소문… 문학에도 등장최근 어획량 감소 위기 '국가어항' 지정되며 희망 살려인천 남동구 논현동 포구로. 소래포구와 어시장, 소래어촌계 등이 이 일대에 있다.작은 어선이 있고, 배들이 정박하는 물양장 앞에는 갓 잡아온 수산물이 판매된다. 강원도나 충청도 어촌에 있을 법한 모습이 펼쳐지는 곳이다. 포구와 접한 곳에 있는 어시장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소래포구와 어시장을 찾는 사람이 한 해에 2천만명이다. 새우젓과 꽃게를 사러, 회를 먹으러.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어시장은 상인과 손님의 흥정하는 목소리, 어시장이기 때문에 들을 수 있는 젖은 바닥에서 나는 발소리, 인천 어느 바다에서 잡혀 왔을 물고기들이 살아 푸덕거리는 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생동감을 자아낸다. 도심에서 어시장을 거쳐 바다 쪽으로 향하다 보면 작은 바다와 어선, 각종 어구가 나타난다. 많은 이가 도시에서는 흔치 않은 어촌의 고즈넉함을 만끽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소래포구에서 5분 정도 걸으면 고층 아파트가 줄지어 있다. 인근엔 아파트를 짓기 위한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멀지 않은 곳에는 수원과 인천을 연결하는 '수인선'이 운행하고 있다. 이러한 풍경은 소래포구가 '도심 속 포구'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유이기도 하다.이토록 활기차고 평화로운 소래포구의 시작엔 '수탈과 전쟁'이 있었다. 한국 현대사의 아픔이 켜켜이 배어 있는 곳이 바로 소래포구다.소래포구의 시작은 일제강점기로 전해진다. 과거 이 일대에서 생산된 소금을 수탈하기 위해 일제가 수원에서 소래를 거쳐 인천항까지 연결하는 수인선 철도를 건설했고, 건설 현장과 염전에서 일하는 일꾼을 실어 나르기 위해 나룻배를 정박한 게 소래포구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이때만 해도 어업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어업이 시작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실향민들이 소래에 정착하면서부터다. 실향민 전규식(93), 박지화(90)씨 등 황해도에서 어업을 하던 이들이 이 지역에 터를 잡고 나무로 만든 작은 범선으로 고기를 잡기 시작한 것이 1960년대 초. 실향민은 지금의 소래포구를 있게 한 뿌리라는 것이 소래 어민들의 이야기다.1996년부터 2000년까지 소래어촌계장을 맡았던 전익수(65)씨는 '소래포구 1세대 어민'들과 자주 어울렸다고 한다. 그는 "당시 이곳은 허허벌판에 작은 집 몇 채밖에 없는 작은 바닷가였다"고 말했다.실향민 등으로 구성된 어민들은 1963년 소래어촌계를 설립했다. 당시 등록된 어선은 28척으로 인근 마을까지 소래어촌계에 포함됐다고 한다. 그때는 어민들이 잡아온 고기를 팔 수 있는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았다. 일부는 포구 앞에서 판매했지만, 대부분은 바다에서 잡아온 물고기를 수인선이나 경인전철을 이용해 서울과 인천항 등지로 가져가 팔았다.소래어촌계원 조인권(62)씨는 "60년대 초반 처음 이곳에 왔는데, 말 그대로 황무지였다"며 "움막 같은 몇 채의 집과 갯벌, 작은 목선이 있었을 뿐"이었다고 회상했다.점차 마을이 커졌지만 1970년대까지 전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어민들은 꼬불꼬불한 물길 때문에 항해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제대로 된 항로표지시설도 없었다. 이 때문에 어민들이 직접 전봇대를 세우고, 뱃길을 표시하기 위해 대나무를 갯벌에 박아 넣기도 했다. 전익수씨는 "당시 한국전력에서 전기선은 연결할 수 있지만 전봇대를 세우지는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어민들과 주민들이 함께 전봇대를 세웠다"고 말했다.소래포구는 1970년대 이후 어민이 점점 늘었다. 어민들이 직접 잡은 수산물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지금도 어업 활동을 하는 김남석(66)씨는 1978년 소래포구에서 어업을 시작했다. 그는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제대로 된 선착장이 없어 배의 동력으로 갯벌 위에 배를 올려 놓고, 장화를 신고 걸어서 뭍으로 와야 했다"며 "70년대 후반부터 방송과 신문에 소래가 소개되면서 찾는 이들이 급격히 많아졌다"고 했다.경향신문은 1981년 6월8일 "서해 경기해안의 미항인 소래항. 이곳은 올해 들어 관광객이 부쩍 늘어 비좁은 포구는 원색의 인파로 흥청거린다"며 "소래항은 싱싱한 해물이 많이 나 각종 공해에 찌든 도시민들이 마음 놓고 하루를 즐길 수 있는 수도권어항으로 새로운 각광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소래포구의 주 어종은 '새우젓'이다. 아직도 소래 새우젓은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다. 지금은 냉장시설이 잘 돼 있지만 1970~1980년대 소래 새우젓의 주 보관 창고는 부평동굴이었다. 지금은 전국적인 관광지가 된 '광명동굴'도 소래포구 새우젓의 보관 장소였다. 김남석씨는 "당시 냉장시설이 미비했기 때문에 새우젓 대부분을 부평과 광명에 있는 동굴에 보관했다. 지금도 부평동굴을 냉장 창고로 활용하고 있다"며 "1980년대엔 250㎏짜리 새우젓 수천 통을 동굴에 저장했다"고 말했다.소래포구 새우젓은 문학작품에도 종종 등장한다. 시인 정세훈(인천민예총 이사장)은 '소래포구'라는 제목의 시에서 '휘몰아치던 서해 바닷 바람은 / 어머니 품안에 찾아들 듯 고요히 안겨오고 / 새우젓배들 너울너울 바람 타고와 / 끝없는 그리움처럼 줄 이어 새벽을 열었겠지'라고 했다.현재 소래어촌계에 등록된 어선은 256척이다. 2008년에 347척까지 늘어났다가 줄어들고 있다. 소래포구 어민 절반 이하는 다른 지역에서 어업을 하다가 소래로 옮겨온 이들이다. 시흥, 안산, 인천 만석·화수부두 등지에서 소래로 왔다. 소래 어민이 늘어난 것은 개발사업 영향이 컸다. 시화방조제가 건설되면서 시흥의 어민들이 소래로 삶의 터전을 옮겼고, 1974년 인천항 갑문이 준공되면서 만석·화수부두의 소형 어선들이 소래로 왔다. 전라도와 충청도 등지에서 온 이들도 있다.소래 어시장은 지속적으로 확장됐지만 소래 어민은 줄어드는 추세다.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바다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시화방조제 건설, 공유수면 매립을 통한 송도국제도시 및 인천 신항 건설 등이 소래 어민들의 조업에 영향을 미쳤다.고철남(54) 소래어촌계장은 "지속적인 매립사업으로 조업할 수 있는 바다가 축소됐다. 단순히 면적이 줄어든 것뿐 아니라 어획량도 많이 감소했다"며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갯벌 매립과 바닷모래 채취로 인한 생태계 변화가 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소래포구는 지난해 국가어항으로 지정되면서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고철남 계장은 "소래포구가 활성화될 수 있었던 건 어민들의 어업 활동이 바탕이 됐다. 하지만 어시장이 활성화된 것과 다르게 어업 시설은 굉장히 낙후됐다"며 "국가어항으로 지정된 만큼 소래의 낙후한 시설을 현대화하고, 어민들의 어업 활동이 보장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글/정운기자 jw33@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활기차고 평화로운 소래포구의 지금을 있게 한 데에는 '수탈'과 '전쟁'이라는 아픔이 있었다. 실향민의 어업 활동을 시작으로 발전을 거듭한 소래포구는 주변에 아파트숲과 지하철이 연결돼 있어 '도심 속 포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사진은 드론을 활용해 찍었으며 소래포구 너머 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1980년대까지 소래포구는 전기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고 물길을 표시하는 시설이 없어 어업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어민들은 직접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고, 이는 소래포구 발전의 바탕이 됐다. 사진은 어민들이 전신주를 세우고, 물길을 표시하기 위해 대나무를 갯벌에 박고 있는 모습. /전익수씨 제공1983년 소래포구 모습. 1980년대 초 소래포구에는 제대로 된 선착장이 없어 배를 갯벌 위에 세워 놓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소래역사관 제공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2018-04-25 정운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14]인천항 연안여객선(下)

석모대교 개통 후 이용객 급감한 외포리 선착장유일한 정기선 삼보 12호, 섬주민들 마지막 보루서해5도 등 임산부 출산·응급 환자 이송·피난…수십년 실어나른 일상, 선원들 책임·사명감 느껴지난 6일 찾은 인천 석모도 석포 선착장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식목일이 지난 4월 초순이라는 시점과는 어울리지 않는 추운 날씨와 강한 바람, 미세먼지는 선착장 분위기를 더욱 스산하게 했다. 지난해 석모대교가 개통하면서 외포리 선착장과 석모도를 연결하는 배편이 끊긴 이후 이런 모습이 일상이 됐다.이곳에서 30년간 밴댕이젓과 순무김치 등을 팔아온 문유자(60·여)씨는 "그전엔 수시로 배가 다녀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 물건도 잘 팔렸는데, 지난해 석모대교가 생기면서 이곳(석포)을 다니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며 "'나룻부리항시장'으로 새롭게 가꾸고 장사를 하고 있지만, 일부러 찾아야 하는 곳이 돼 오늘도 개시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강화 외포리 선착장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문도와 아차도, 볼음도로 향하는 '삼보12호'를 기다리는 차량 몇 대와 10여 명의 사람이 작은 대합실을 지키고 있었다. 삼보12호는 석모대교 개통 이후 외포리 선착장의 유일한 정기 여객선이 됐다.현대문학상과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한 시인 이수익의 시에 나오는 '새우깡을 좋아하는 갈매기들'은 여전히 선착장 주변을 맴돌며 '비루한 생의 곡예'를 하는 듯했다. 새우깡을 던져줄 사람들을 찾지 못한 그들에겐 왠지 모를 허기가 느껴졌다. 1987년부터 외포리 선착장을 지켜온 삼보해운의 최경락 상무는 "석모대교 개통의 직격탄을 맞았다. 직원 수를 기존의 절반 수준인 20여 명으로 줄였고 임금도 대폭 낮췄지만, 회사를 운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여객선 준공영제를 하게 되면 주문, 아차, 볼음도를 연결하는 노선을 포함해달라는 건의를 군에 해 놓은 상황"이라며 "여객선에 대한 정부 지원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외포리 선착장에서 만난 차춘자(77) 할머니는 "한평생을 볼음도에서 살았다"며 "이 배(삼보12호)는 여전히 섬사람들에게 중요한 교통수단"이라고 했다. 그는 "풍선(돛단배)을 타고, 연락선도 타던 시절보다 배 타는 환경이 많이 좋아졌지만, 볼음도를 오가는 배가 더 자주 다녔으면 하는 바람은 늘 있다"고 했다.섬과 육지가 다리로 연결되고 육상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운항을 멈추는 항로가 생기고 있지만, 차춘자 할머니의 말처럼 인천의 연안여객선은 여전히 중요한 교통수단일 수밖에 없다. 그 속엔 섬과 육지를 잇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도 하다.1980년대 후반만 해도 인천과 백령도를 오가는 배편이 일주일에 2~3회 정도에 불과했다. 시간도 지금보다 두 배 이상 긴 10시간이나 걸렸는데, 백령도를 출발해 인천으로 향하던 배 안에서 임산부가 아이를 낳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휴가철 덕적도를 찾은 50대 남성이 인천으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심장마비 증세로 쓰러졌는데, 자동심장충격기를 활용한 선장 이하 선원들의 신속한 응급조치로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있었던 2010년엔 놀란 주민들을 육지로 실어나르는 피난선 역할을 연안여객선이 했다.백령도와 연평도, 덕적도 등 섬을 연결하는 케이에스해운(주) 황성만 대표는 "섬 주민들이 자동차 부품을 구해달라고 하면 어떻게든 구해서 전해주고, 생필품 좀 사달라고 하면 그렇게 하면서 정이 쌓였다"며 "섬 주민들의 소소한 일상까지 많이 알게 됐다"고 했다. 연안여객선이 승객뿐만 아니라 정도 함께 실어 나르는 역할을 한 것이다. 해운업에 종사한 지 34년째라는 그는 배가 끊기면 섬을 오가는 주민과 관광객들의 발이 멈출 수밖에 없는 만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노선을 운항하는 게 필수라고 강조했다. 섬 주민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지금껏 해운업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그는 설명했다.인천 연안여객선에게 인명 사고의 아픔은 예외일 수 없었다. 1949년 10월 추석 전날 인천에서 강화도로 향하던 '평해호'(平海號)가 작약도 부근에서 전복돼 70여 명이 숨졌다. 당시 이 배에는 정원(50명)보다 4배 많은 200여 명이 타고 있었다고 한다. 1963년 2월엔 인천을 떠나 강화 교동도로 가던 '갑제호'가 유빙에 부딪혀 침몰하고 승객 6명이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1986년 11월에는 외포리를 출발해 석모도로 향하던 '카페리2호'가 전복돼 12명이 물에 빠져 숨지고 16명이 실종됐다. 인천항을 출발해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 침몰 사고는 지난 16일 4주기를 맞았고, 추모 분위기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연안여객선 선원들의 고령화는 요사이 업계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다. 토요일과 일요일, 명절 따로 없이 매일 운항해야 하고 바람 같은 기상 문제로 마음을 졸여야 하는 게 현실인 상황에서 젊은 직원들이 버텨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50명 가까운 선원이 근무하는 한 연안해운사의 경우, 근속 기간이 30년 이상 된 직원이 절반을 넘는다. 60세 정도가 그나마도 젊은 축에 든다고 한다.업계 한 관계자는 "주말도 없이 일해야 하는 힘든 환경 탓에 젊은이들이 선원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며 "들어와도 몇 개월을 못 버티다 나간다"고 했다. 이어 "선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은 것도 선원 수급이 어려운 하나의 원인"이라고 했다. 그는 "선원으로 일하는 사람에게 병역 면제 혜택을 주는 등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인책이 필요하다"며 "아니면 외국인 근로자라도 쓸 수 있도록 정부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글/이현준기자 uplhj@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이미지/아이클릭아트강화도와 석모도를 잇는 석모대교가 개통하면서 강화 외포리 선착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삼보12호가 외포항에서 주문도와 아차도, 볼음도에 들어가는 승객들을 기다리며 대기하는 모습.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석모대교 개통 직전 외포항에서 출발한 정기선이 석모도로 향하고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 정박중인 정기여객선 모습.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석모대교 개통전 강화와 석모도를 오가는 정기선에서 차량들이 나오는 모습.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인천과 백령을 잇는 여객선 모습.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4-18 이현준

[zoom in 송도]1공구 10만㎡ '역세권 알짜 땅' 나온다

인천도시공사, 송도내 상업업무용지C3-1·I3등 7개 필지 공급 '관심집중'6·8공구 국제업무지구역 인접 '장점'8공구 R2블록 연내 매각 어려울 듯인천도시공사가 올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상업업무용지 7개 필지를 공급한다.NSIC(송도국제도시개발유한회사)가 시행하는 송도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주주사 간 갈등으로 2년 넘게 중단된 데다, 송도 6·8공구 중심부 128만㎡를 개발하는 사업도 지난해 국제공모가 무산된 터라 이번 공급 물량에 관심이 쏠린다. 역세권에 위치한 땅으로 송도 6·8공구와 가깝다는 장점이 있다. → 위치도 참조올해 공급 대상 토지는 ▲중심상업지역=C3-1(9천476㎡), C3-2(1만2천32㎡), C4-3(1만2천223㎡) ▲일반상업지역=I2-1(1만1천150㎡), I2-2(1만5천219㎡), I3(2만3천874㎡), I4(1만7천537㎡) 등 7개다. 송도 1공구에 위치한 땅으로, 인천도시철도 1호선 국제업무지구역에서 가깝다. 건축 연면적의 70% 이상을 오피스텔이 아닌 업무시설로 건축해야 하는 토지다. 중심상업지역은 건폐율 80%에 용적률 600%, 일반상업지역은 건폐율 70% 용적률 500% 또는 650%를 적용한다. 앞서 인천도시공사가 내놓은 C6-1(9천32㎡)블록은 지난달 317억원에 팔렸다.인천도시공사가 당초 올해 공급 물량에 포함했던 송도 8공구 말발굽 모양의 상업업무용지 R2(15만 8천906㎡)블록은 연내 매각이 어렵게 됐다. 인천도시공사 관계자는 "R2블록은 송도 6·8공구 전체적인 부분을 고려해 개발 방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에 연내 공급이 불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R2블록은 주거시설 배치 최소화로 인구 과밀 우려를 해소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이를 위해 인천도시공사와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R2블록 개발 방안 마련을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을 운영 중이다.한편, 인천도시공사가 올해 공급하는 영종도 토지는 ▲영종하늘도시 공동주택 A48 ▲미단시티 중심상업1~8, 문화1, 숙박1~3, 위락1, 공동주택4·5·9, 교육연구1~3 등 총 22개다. 영종하늘도시 A48(5만 7천345㎡)은 면적이 넓어 고급빌라를 짓기에 적합하고, 미단시티 위락1(9만 1천38㎡)은 복합개발이 가능하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18-04-15 목동훈

[zoom in 송도]'인재 잡아라' 발품파는 인천글로벌캠퍼스·입주대학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인천글로벌캠퍼스 운영재단과 입주대학들이 학생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인천글로벌캠퍼스운영재단은 지난 9일 베트남 하노이 교육부 및 교육계 인사 10명을 초청해 입학설명회를 했다. 이는 베트남의 인재들을 유치하기 위한 행사로 현재 인천글로벌캠퍼스엔 베트남 학생 5명이 재학 중이다. 이번 행사에서 한국뉴욕주립대, 한국조지메이슨대, 겐트대 글로벌캠퍼스, 유타대 아시아캠퍼스 입학 담당자들은 각 대학의 입학 정보를 설명했다. 베트남 교육 관계자들은 프로그램, 학비, 장학금 등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하는 등 인천글로벌캠퍼스 입주대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겐트대 글로벌캠퍼스는 오는 28일 오후 2시 대강당에서 '2018학년 9월 학기 입학설명회'를 개최한다.이번 설명회에서는 겐트대 글로벌캠퍼스 학과 및 장학금 제도 등 전반적인 입학전형이 안내될 예정이며 개별상담을 통한 맞춤형 입학 컨설팅도 이뤄진다. 재학생들을 통해 궁금한 학교생활과 앞으로 진로 등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캠퍼스 투어도 제공된다.한국조지메이슨대도 가을학기 입학설명회를 준비 중이다. 인천과 서울에서 각각 입학설명회를 열어 학과와 입학전형을 소개하고 지원 방법을 알려줄 계획이다. 한국조지메이슨대 학생·교수·직원은 지역사회와 소통하고자 오는 26일 인천문학경기장에서 SK 와이번스를 응원할 예정이다.유타대 아시아캠퍼스는 가을학기 입학설명회를 지난달 삼성 코엑스에서 편입학생 및 해외 고교생, 재수생 등을 대상으로 개최한 데 이어 몇 차례 더 계획하고 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18-04-15 목동훈

[zoom in 송도]송도국제도시 브리핑

■송도서 내달 24~27일 'KPGA 제네시스 챔피언십'오는 5월24~27일 나흘간 송도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에서 'KPGA 제네시스 챔피언십'이 열린다. 인천시, 현대자동차,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코리아는 최근 'KPGA 제네시스 챔피언십' 대회의 성공을 위한 업무협약을 했다. → 사진협약에 따라 올해부터 3년 동안 인천에서 대회가 열린다. 인천시 관계자는 "총 상금은 15억원(우승 상금 3억원), 4만명 이상의 갤러리가 관람할 것으로 예상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105개 노선·공사 현장 주변 손상 도로 정비·점검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겨울철 혹한과 염화칼슘 살포에 따른 도로 손상을 정비하고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16~27일 송도국제도시 공사장 주변 도로를 점검한다.점검 대상은 송도 내 105개 노선(74.8㎞)과 공사 현장 주변이다. 인천경제청은 위험 요소를 발견할 경우 재포장 등 긴급 정비하고, 건축자나 사업시행자 등 파손 원인자를 상대로 필요한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인천경제청 관계자는 "송도는 각종 개발사업이 활발히 진행돼 건설 장비 이동이 빈번하다"며 "안전사고 예방과 쾌적한 도로 환경 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9월 5일부터 송도컨벤시아서 '인천국제기계전'인천관광공사와 인천국제기계전 사무국은 오는 9월5일부터 사흘간 송도컨벤시아에서 '제2회 인천국제기계전'을 개최한다. 인천관광공사, 경기인천기계공업협동조합, 전시전문기획사 (주)이상네트웍스가 공동 주최하고 인천시가 후원하는 행사다. ▲냉동 공조 및 냉난방 ▲수질관리 및 수처리 ▲폐기물 처리 ▲스마트공장 솔루션 ▲로봇산업 ▲3D프린터 및 관련 기기 ▲자동화 기기 등 기계와 관련된 분야의 제품들이 전시될 예정이다. 참가·참관 문의는 전시회 사무국 전화(02-3397-0966) 또는 홈페이지(inmacexpo.kr)로 하면 된다.■한국뉴욕주립대, 20여개국 한인언론인 초청 행사송도국제도시에 있는 한국뉴욕주립대학교는 최근 세계한인언론인 초청 행사를 성황리에 마쳤다고 15일 밝혔다. → 사진이번 행사는 제17회 세계한인언론인대회 일환으로 진행됐으며 미주·아시아·유럽·아프리카 등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온 한인언론사 대표, 발행인 및 기자 등 6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한국뉴욕주립대 김춘호 총장의 환영 인사, 대학에서 운영 중인 스토니브룩과 FIT 프로그램 홍보, 재학생 캠퍼스 생활 소개 등의 순서로 1시간가량 진행됐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18-04-15 목동훈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13]인천항 연안여객선(上)

19세기 말부터 조곡·물품 이송 목적으로 활성화… 함경도·황해도까지 정기운항한국전쟁 이후 당진선·목포선 등 12개 지역 노선 운영 '주요 교통수단' 자리매김 자동차 보급·도로망 확충되면서 승객수 급감… 매일 오가던 항로 점차 사라져육지~섬 '주민·관광객 수송' 중요성 여전 최근 10년간 이용 규모 꾸준한 증가세인천과 인천의 섬을 잇는 관문인 인천연안여객터미널은 '설렘'과 '일상'이 혼재된 공간이다. 이곳을 매일 같이 드나드는 연안여객선은 터미널을 찾은 사람들의 설렘과 일상을 실어 나르며 그들의 수많은 이야기를 품는다.최근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만난 한지원(49·인천 남동구)씨는 "사진 모임과 함께 백령도를 가는데, 인천에 살면서도 백령도를 처음 가게 돼 설렌다"고 했다. 그는 "백령도의 기암괴석 같은 자연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려 한다"면서 "주변에선 아무래도 북한과 가까운 지역이니 조심하라며 걱정을 많이 한다"고 했다.박경란(85) 할머니는 대합실에서 자월도행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 진료차 나왔는데, 인천에 있는 자식 집에도 들러 며칠 만에 돌아간다고 했다. 할머니는 "평생 자월도에서만 살았다"며 "겨울엔 배가 자주 끊겨 불편하지만, 아무래도 배도 커지고 훨씬 편리해져 다니기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출항 10분 전까지 개찰을 완료하오니 탑승을 서둘러 달라"는 내용의 안내방송에 따라 대합실 승객들은 저마다 자신의 목적지로 향하는 여객선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뛰, 뛰, 뛰'. 승객을 태운 여객선들은 큰 고동 소리를 울리며 부지런히도 선착장을 벗어나 목적지를 향해 뱃머리를 돌렸다.지금도 여전히 인천 섬 주민들의 중요한 교통수단인 연안여객선의 출발점엔 연안해운업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의 목적은 사람보다는 물건을 실어나르기 위한 경우가 훨씬 잦았다. 정부가 운영한 연안해운은 1886년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으로부터 해운 업무를 인수한 전운국(轉運局)이 해룡호, 광제호, 조양호 등 3척의 기선으로 지방의 조곡을 인천으로 운반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관영기업인 이운사(利運社, 1893년)가 창설돼 인천~마포 간 강운(江運)과 인천~ 군산 조곡 해운을 주요 업무로 삼았고 갑오개혁 이후 일본우선회사가 인천을 기점으로 전라도의 군산, 목포, 여수, 경상도의 삼천포, 마산, 부산, 염포, 함경도의 원산, 서포, 신포 등 지역까지 배를 정기적으로 운항했다. 이 시기 쌀과 하포(夏布), 면반물(綿反物), 동물 가죽, 대두 등의 인천항 반입이 활발했다고 한다. 군산과 목포에선 쌀이, 부산에선 생선, 해초, 솜, 직물 등이 반입됐다. 원산에선 명태 등이 인천항으로 들어왔다.당시 인천항에서 연안해운 업무를 진행한 주요 민간선사는 대한협동우선회사, 통운하, 호리조운사 등이 있었다. 정부 관료였던 이윤용(대한협동우선회사), 인천의 유지(통운사), 일본인 호리부자(掘久太郞, 호리조운사) 등이 각각 설립했다. 황해도와 충청도, 전라도는 물론 인천~평양 간 정기 항로를 개설해 운영하기도 했다. 이 시기 연안무역선들의 규모는 파악할 수 있지만, 여객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파악할 수 있는 구체적 자료는 부족하다.인천의 연안여객선 운항은 해방과 한국전쟁 등을 겪은 뒤 본격적으로 활성화된다. 인천에서 백령도와 덕적도, 연평도, 용유도, 대부도 등을 연결하는 지금도 익숙한 항로는 1950~60년대에도 있었다. 눈에 띄는 건 당시 인천에서 강화 교동도를 연결하는 뱃길은 물론, 인천과 충청권을 연결하는 정기적인 여객선이 운항했다는 점이다. 1956년 발간한 '경기도지'는 인천항을 기점으로 하는 항로가 당진선, 목포선을 비롯해 총 12개 노선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의 여객선은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건 물론,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수단이었던 것이다.30대 시절 충남 당진에서 뱃길로 인천을 종종 오갔다는 박영수(76·인천 남구)씨는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했다. 그는 서산의 구도포구와 명천포구, 당진의 한진포구와 외성포구 등에서 지금의 올림포스호텔 인근의 인천항을 잇는 4개 항로가 있었다고 했다. 1974년 인천항 제2선거 완공으로 지금의 연안여객터미널 자리로 여객선 부두가 이전하기 전 일이다.박씨는 "그때는 100명 정도 탈 수 있는 목선이 항로별로 하루 한 차례 정도 다녔고 당진에서 인천까지 8~9시간이 걸렸다"며 "당시에는 폭풍, 안개주의보 같은 게 없어 배를 타고 다니기가 여간 고생스러운 게 아니었다"고 했다. 이어 "70년대 들어서면서 200명 정도 타는 강선으로 바뀌어 속도가 많이 빨라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팔미도 앞을 지나면 인천 쪽으로 눈에 띄는 건물이 올림포스 호텔 하나밖에 없었다"며 "당시엔 인천항 도크가 없어 올림포스 호텔 앞에 배가 닿았는데, 아직도 그때 모습이 생생하다"고 했다.1964년엔 인천에서 만리포를 거쳐 제주를 연결할 정기여객선 은하호가 취항했다. 은하호는 203t의 현대식 철선으로 길이가 40m, 너비 6.4m, 16노트의 빠른 속력을 가진 배였다. 정원은 210명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최대의 여객선으로 소개됐다. 요즘 큰 축에 드는 하모니플라워호(인천~백령)의 t수가 2천100t 정도니 10분의 1 크기라고 할 수 있다. 인천과 제주 간 항로는 2014년 4월 300여 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운항이 전면 중단된 상황이다.육상교통의 발달과 차량 보급은 충남과 인천 간 뱃길을 없어지게 한 주된 요인이었다. 경부고속도로가 생긴 이래, 각종 도로망이 확충됐고 자동차 보급 대수도 빠르게 증가했다. 꼬박 하루가 걸리던 게 차로 2~3시간 정도면 돼 인천~충남 간 여객선을 이용하려는 승객이 급격히 줄면서 결국 항로가 없어지게 됐다.인천의 여객선들은 지역과 지역이 아닌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역할로 축소됐지만, 그 중요성은 변함없다. 인천과 각 섬을 잇는 14개 항로가 지난 30여 년간 비교적 큰 변화 없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백령도와 연평도, 이작도와 장봉도 등을 연결하는 항로는 낙도보조항로로 분류됐다. 특히 운항에 11시간 걸리는 백령도와 6시간이 걸리는 연평도는 한 달 다섯 차례 정도 운항할 뿐이었다. 승객이 적어 정부가 여객선 운항에 필요한 비용을 대는 구조였던 것이다. 덕적도와 용유도, 대부도, 영흥도 등은 30년 전에도 선사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일반항로였다.시간이 갈수록 낙도보조항로 비중은 줄어들고 일반항로 비중이 커졌다. 그만큼 항로 수익성이 개선됐다고 볼 수 있다는 게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의 설명이다. 80년대 14개 항로 중 8개 항로가 낙도보조항로였지만, 현재는 3개뿐이다. 백령도, 연평도, 이작도 등 낙도보조항로 노선이 모두 일반항로로 전환됐다. 항로 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백령도에서 오전에 출발하는 배는 선사의 적자 문제 등으로 2014년부터 2년 6개월 여 동안 운항하지 못하는 등 운영상 어려움을 호소했었다.지난해 인천 연안여객선을 이용한 사람은 147만1천여명이다. 인천해수청은 연도별로 증감은 있지만, 최근 10년간 꾸준히 이용 규모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섬 지역 군 병력은 물론 정부와 자치단체의 요금 할인 정책 등으로 섬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는 점이 요인으로 평가되고 있다.인천해수청 관계자는 "섬으로 가는 연안여객선은 여전히 중요한 교통수단"이라며 "연안여객선을 타고 섬으로 가는 승객들을 대상으로 한 운임 지원, 섬 관광 활성화 등의 영향으로 연안여객선 이용객 수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글/이현준기자 uplhj@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인천과 각 섬을 잇는 14개 항로를 오가는 연안여객선은 지난 30여년간 비교적 큰 변화 없이 꾸준히 유지되며 현재까지 섬을 드나드는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사진은 백령발 여객선을 통해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 도착한 승객들이 하선하는 모습.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4-11 이현준

[zoom in 송도]송도국제도시 브리핑

11일 송도컨벤시아서 계획 설명·제언 수렴 ■11공구 '글로벌 바이오허브 조성 심포지엄'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오는 11일 오후 2시 송도컨벤시아 프리미어볼룸에서 '글로벌 바이오허브 조성 심포지엄'을 연다.인천경제청은 올 2월 '개청 15주년 IFEZ(인천경제자유구역) 목표와 과제' 발표회에서 송도 11공구에 세계 최대·최고의 바이오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인천경제청은 이번 심포지엄에서 송도 11공구 바이오 클러스터 조성계획을 설명하고 바이오 업계 오피니언 리더 등 전문가들의 제언을 수렴한다. 바이오 업계와 지원기관이 협약을 통해 바이오 클러스터 조성 협력을 다짐하는 시간도 있을 예정이다.인천경제청은 바이오산업 육성과 투자 유치 확대를 위해 2013년부터 매년 바이오 관련 심포지엄을 열고 있다.수험생·학부모등 대상 14일 인천대 송도캠서 ■수능·대입 정보 제공 'EBS 입시설명회' 개최오는 14일 오후 2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인천대학교 대강당에서 'EBS 입시설명회'가 열린다.자유한국당 민경욱 의원(인천 연수구을)은 EBS 강사진으로 구성된 국내 최고의 입시전문가들이 수험생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수능 및 대입 정보 등을 설명하는 'EBS 입시설명회'가 2년 연속 송도에서 열린다고 밝혔다.이번 입시설명회는 민 의원 요청에 따라 열리는 것으로, 2019학년도 수능과 대입에 관심이 있는 고교생, 학부모, 교사 등 누구나 별도의 신청 없이 입장할 수 있다.1부는 인천하늘고 출신 김창재 강사가 '2019 수능 대비 EBS 활용 전략 및 학습법', 2부는 윤윤구 강사가 '2019 대입의 이해 및 성공 전략'에 대해 강연한다. 질의응답 시간도 마련될 예정이다.교육·주거·합창등 11개부문 400여명 활동 ■포스코건설 '재능기부 봉사단' 확대 운영송도국제도시에 입주해 있는 포스코건설(사장·이영훈)이 재능기부 봉사단을 확대 운영한다.포스코건설은 회사 업무를 통해 축적한 지식과 경험, 임직원 개개인의 재능으로 사회 배려 계층에게 도움을 주고자 2015년 4월 재능기부 봉사단을 창단했다. 지난 3년간 934명의 임직원이 9천600여 시간 동안 인천·광양지역의 청소년, 어르신, 장애우 등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했다.재능기부 봉사단은 ▲중학교 자유학년제를 이용해 학생들에게 건설 관련 직업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건설교육 봉사단 ▲집수리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주거환경 봉사단 ▲문화·예술 취약 계층을 위한 합창 봉사단 등 11개 봉사단으로 구성돼 있다. 포스코건설은 재능기부 봉사단원을 300여 명에서 400여 명으로 늘려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강화할 계획이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18-04-08 목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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