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에 들어서기도 전 고소한 기름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정겨운 노랫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여느 전통시장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이곳은 지난해 10월 정부가 스마트 기술 도입 시범상가(이하 스마트 시범 상가)로 선정한 시흥 삼미시장이다. 지난 24일 찾은 시장은 육안으로는 어떤 스마트 기술이 도입됐는지 알 수 없었다. 시흥 삼미시장에 공급된 '스마트 기술'은 30만원 상당의 태블릿PC가 전부였다. 무인 계산과 스마트 주문 등을 확인하는 용도였다. 이마저도 전체 110여개 점포 중 47곳에만 지급됐는데, 배치한 상가를 찾기가 힘들었다. 정작 이 태블릿PC로 어떻게 주문을 받아야 하는지, 결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상인들이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해서였다. '빛 좋은 개살구'가 된 셈이다.김은문 삼미시장상인회장은 "스마트상점이라고 하는데 예전과 비교해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며 "전통시장을 이용하는 분들도, 물건을 파는 상인들도 고령인 분들이 많다. 교육을 제대로 해준다면 어떻게 활용이라도 해보겠는데 기기만 달랑 던져놓고 아무런 연락도 없다. 그냥 한쪽에 방치해놨다"고 하소연했다.시흥 삼미시장 점포 절반 보급주문 등 이용 상가 찾기 힘들어"교육 해준다면 써보기라도…" 평택 국제중앙시장 역시 같은 시기 스마트 시범상가로 지정된 곳이다. 이곳에서 6년째 옷 수선 가게를 운영 중인 A씨는 시장이 스마트 상가로 선정돼 가게에 키오스크를 도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곧 포기했다. 도입 비용 30%인 200만원 가량을 자부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올해 들어 하루 매출이 3천원에 그친 날이 부지기수. 이런 상황에서 200만원은 벅찬 금액이었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수선을 맡긴 옷들로 꽉 찼던 A씨의 가게엔 이날 A씨의 옷 한벌만 걸려있을 뿐이었다.A씨는 "처음에야 이런 게 들어오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돈을 내야 해서 포기했다. 우리 같은 영세상인에겐 10만원도 큰 돈"이라고 푸념했다.시장 상인회에 따르면 120개의 점포 중 키오스크를 설치한 점포는 많아야 30개 정도다. A씨처럼 설치비 부담이 주된 요인 중 하나다. 키오스크 설치비의 70%는 정부가, 나머지 30%는 지자체나 상인들이 부담해야 한다. 당초 20%를 평택시가 지원하기로 했지만 시 예산 부족으로 결국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상인들부터 도입하게 됐다. 키오스크 설치, 평택 중앙시장'30% 자부담'에 영세상인 포기정부 기술지원 '반쪽' 현장외면 정창무 국제중앙시장 상인회장은 "원래는 시비 20%, 상인 자부담 10%로 도입하기로 했는데 시 예산이 없어 필요한 분들에 한해 설치하게 됐다"고 말했다.다만 키오스크를 설치한 국제중앙시장 내 다른 점포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키오스크를 설치한 한 음식점은 "한달에 250만원 가량의 인건비를 절감하고 있다"고 호평했다.코로나19 사태로 경제난에 처한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정부가 전통시장·골목상가에 스마트 기술 도입을 지원하고 있지만 '반쪽 사업'에 그쳤다는 평이 나온다. 비용·교육 문제 등으로 스마트 기술이 제대로 현장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 시범상가로 지정됐지만 정부가 지원하는 스마트폰 배달 애플리케이션이 불편해 네이버 장보기 등 민간 플랫폼 업체의 다른 서비스를 더 활발히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다.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스마트 시범상가 사업은 스마트 기술을 도입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정부가 일부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도입 여부와 적용 기술은 소상공인들의 선택 문제"라고 설명했다. → 관련기사 3면([경인 WIDE] 기술 도입했지만 소비자 인지도 낮고 사용 불편 '어려움 호소') /서승택·윤혜경기자 taxi226@kyeongin.com정부가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전통시장 등 상점가에 스마트 기술 도입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용이 저조해 오히려 네이버 등 민간 플랫폼 서비스가 활성화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스마트 기술 도입 시범 전통시장이지만 , '네이버 장보기' 서비스가 활성화 된 평택 통복시장의 모습. 2022.2.27 /김금보기자 arotomate@kyeongin.com
정부가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급변하는 상황 속 어려움에 처한 소상공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전통시장·상점가에 스마트 기술 도입을 지원하고 있지만, 비용·교육 문제로 기술이 아예 뿌리내리지 못한 곳이 있는가 하면 어렵사리 도입한 곳 역시 활성화에 애를 먹는 실정이다. 제대로 활용하는 곳에선 만족도가 높지만, 그렇지 못한 점포도 적지 않아 '혈세 낭비' 비판마저 제기되고 있다. 사후관리가 부족하다는 지적 속에 정부는 그동안의 실적을 분석해 올해 미비점을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도입했어도 어려움은 여전= 스마트 기술 도입 시범상가(이하 스마트 시범상가)로 지정된 안양 평촌1번가와 평택 통복시장은 스마트 기술 중 '스마트 오더 시스템'을 도입했다. 소비자가 스마트폰 앱 등으로 점포의 물건을 주문하면 배달되는 시스템으로, 정부가 개발했다. 2020년에 스마트 시범상가로 지정된 평택 통복시장은 정부 지원만으로 도입했지만, 지난해엔 국비 지원 비율이 70%가 되면서 평촌1번가 상인들은 20%에 해당하는 80만원을 자부담해야했다. 10%는 안양시가 부담했다.그러나 통복시장도, 평촌1번가도 썩 만족스럽지는 않은 모습이다. 코로나19 사태 속 배달의 민족, 쿠팡이츠 등 배달 앱에 더해 네이버 장보기 등 전통시장 배달 서비스가 활성화된 게 주된 요인이었다. 정부에서 자체 배달 플랫폼을 개발한 이후 이렇다할 홍보가 뒤따르지 않아 소비자들의 인지도가 낮고 사용하기가 다소 불편해 민간 앱에 비해 소비자들의 이용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평택 통복시장 배달 '오더시스템'개발한 앱 '네이버 장보기'에 밀려 통복시장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소비자가 제품을 주문하면 상인들이 상품을 픽업 장소에 가져다놓는 '통복시장 어플' 개발을 지원받았다. 민간 배달앱의 '포장하기'와 비슷하다. 집 앞까지 배송해주는 게 일상이 된 만큼, 활용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오히려 '네이버 장보기'가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시장 측 설명이다. 시장 관계자는 "앱 개발 지원을 받았는데 아쉬운 점이 많았다. 민간 배달앱과의 연계도 잘 되지 않았다. '네이버 장보기'를 도입한 이후 오히려 점포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평촌1번가 상인들 역시 정부 앱의 활용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스마트 오더를 위한 전자 기기도 제공받는데 상인들이 80만원을 자부담했어도 기기는 정부 소유라는 이유로 폐업할 때 가져갈 수 없다는 점도 불만이다. 조현과 평촌1번가 상가연합회장은 "우선 소프트웨어가 민간 앱에 비해 주먹구구식으로 구성돼있다. 이렇다할 홍보도 없는 데다, 이용도가 높은 민간 플랫폼과 연동도 되지 않아 이것만으로는 매출 상승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80만원씩 냈는데 기기조차 가져가지 못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필요성 커지지만 곳곳 시행착오…정부 "성과 분석해 미비점 개선"=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소비가 활성화하고 소상공인들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감안해 지난 2020년부터 해당 사업을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지난해 정부 예산은 220억원, 올해는 245억원이다. 올해만 5천500개 점포에 스마트 기술 도입 지원을 예정하고 있다. 지원 기술은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주문·예약을 쉽게 할 수 있는 스마트 오더와 가상으로 스타일링·피팅을 체험할 수 있는 스마트 미러, 키오스크, 메뉴를 스마트 기기로 안내·홍보하는 스마트 메뉴보드 등이다. 서빙 로봇 지원도 계획하고 있다. 경기도엔 전통시장·상점가 27곳이 스마트 시범 상가로 지정됐다.상인 20% 자부담 '기기는 국가소유'정부, 245억 들여 5500개 점포 지원사업 3년차 실적 분석·미비점 개선 사업 3년차인 올해 정부는 그간의 상황을 분석해 개선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 해당 사업과 관련 "2022년도 사업 추진 시에는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사업 운영상 미비점을 개선하고 경영 혁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 중심으로 보급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중기부 관계자는 "기기를 설치하는 업체에 사용법을 안내하라는 교육을 수시로 하고 있다. 올해는 스마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연령층을 위해 온라인 동영상 교육 과정을 만들어 사용법을 숙지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승택·윤혜경기자 hyegyung@kyeongin.com정부가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전통시장 등 상점가에 스마트 기술 도입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용이 저조해 오히려 네이버 등 민간 플랫폼 서비스가 활성화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스마트 기술 도입 시범 전통시장이지만 , '네이버 장보기' 서비스가 활성화 된 평택 통복시장 내 배송센터 모습. 2022.2.27 /김금보기자 arotomate@kyeongin.com
정문화(84)씨는 10년 전 아내가 치매 진단받던 날을 아직 잊지 못한다. 그에게 갑자기 주어진 치매환자 보호자 역할, 막막함이란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기분이었다.정씨는 당시 아내의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40년 넘는 세월동안 평탄하게 이어오던 가정생활도 그래서 어렵게만 느껴졌다. 그는 부부의 남은 삶을 위해 치매라는 병을 제대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이런 그에게 도움을 준 곳이 고양시 일산동구치매안심센터다. 그는 센터의 교육프로그램을 수강하며 치매의 원인과 증상, 돌봄방법 등을 배웠다. 교육을 통해 아내에게 나타나는 증상을 이해하기 시작하니 자신이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보다 선명해졌다고 한다. 정씨는 "지금 아내는 자주 보는 사람이 아니면 기억을 잘 못 한다. 어떤 때는 자식들 얼굴도 못 알아볼 때가 있다"며 "지난 10년 동안 치매에 대해 공부하고, 아내를 있는 힘을 다해 돌봐서 그런지 다행히 병의 진행 속도는 느린 편"이라고 말했다.10년간 아내 돌봐온 80대 정씨'치매안심센터' 도움 간병공부지역사회 환자관리 거점 역할 급속한 고령화의 그늘인 치매라는 병을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공언한지도 어느덧 5년이 지났다. 문재인 정부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치매환자에 대비해 국가 돌봄 기틀을 사전에 마련하자는 취지로 그간 '치매국가책임제'라는 이름 아래 여러 예방·관리사업 등을 추진했다.각각의 사업은 결국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바로 '지역사회'다. 제4차(2021~2025년) 치매관리종합계획은 '치매환자와 가족,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치매안심사회 실현'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각 지자체에 설치된 치매안심센터는 기본적으로 지역사회 치매관리체계의 거점 역할을 한다. 치매환자를 등록해 관리하고, 조기에 치매를 발견할 수 있도록 검진서비스를 제공한다. 센터는 또 정씨의 사례처럼 치매전문 교육프로그램을 여는 등 환자 가족들을 지원하는 사업도 병행한다.'책임제' 사업 제대로 정착 안돼실적 위주 불필요 경쟁 지적도 물론 국가 주도로 단기간에 이뤄진 '치매국가책임제'의 여러 사업이 지역사회에 제대로 자리 잡았다고 말할 순 없는 단계다.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가 주최한 치매환자의 지역사회 거주 지원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선 지역의 여건에 따라 서비스의 질이 달라지고, 정량 지표 등 실적 위주 평가로 지역 간 불필요한 경쟁이 발생한다는 지적 등이 나오기도 했다. 경기도광역치매센터 관계자는 "진단 검사 수를 늘려 치매 검진을 받아보라고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편견 없이 자발적으로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치매 친화적인 지역사회 환경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 그래프 참조·관련기사 3면([경인 WIDE] 경기도에 17만7천여명 치매파트너… '따뜻한 시선' 필요)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질병인 '치매'는 환자와 가족을 넘어 지역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국가가 치매 관리 책임을 자처하고 나섰지만, 관리주체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지역사회에 인식개선과 더욱 촘촘한 지원이 요구된다. 사진은 수원시 제1호 치매안심마을인 팔달구 지동에 그려진 벽화. 2022.2.20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경기남부지역에선 매일 치매환자 7명이 집을 찾지 못하고, 길거리를 배회한다. 경찰에 실종 신고 접수된 이들 대부분은 다행히 가족을 찾지만, 일부는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지난해 2월에는 파주시 제2자유로를 걷던 80대 치매환자가 자동차에 치여 숨졌다. 적지 않은 수의 치매환자가 매일 길을 잃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는 사고를 당한다. 지역사회와 더불어 살아간다는 '치매국가책임제'의 비전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지역사회의 따뜻한 관심은 필수적이다. 관심은 이해를 수반한다. 치매라는 병을 잘 알지 못하면 관심 자체가 생길 수 없다. 만약 길거리를 떠도는 치매노인을 마주치더라도, 그 노인이 치매환자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 그래서 '치매파트너'들이 존재한다. 치매파트너는 자살예방으로 치면 일종의 생명지킴이(게이트키퍼)다. 치매라는 병을 이해하고, 일상에서 치매환자와 가족을 배려하겠다고 다짐한 이들이다. 초등생 이상 30분 교육 '누구나'치매가족 지역사회 열린마음 원해코로나로 사업 대부분 중단 '아쉬움' 20일 오전 1시 기준 경기도에서 활동하고 있는 치매파트너는 모두 17만7천801명이다. 되는 방법도 어렵지 않다. 초등학생 이상이라면 누구나 30분짜리 온라인 교육 영상을 시청하면 치매환자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치매환자에게 먼저 말을 걸고, 교육에서 배운 정보를 주변에 알리는 치매파트너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결국 치매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치매파트너 뿐만 아니라, 치매안심마을, 치매공공후견 제도 등 다양한 사업들은 애초에 치매환자와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밀접한 관계를 맺도록 설계됐다.치매환자와 가족들이 바라는 점도 결국 지역사회의 열린 마음이다. 이들은 이미 비슷한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과는 적극적으로 연대하며 살아가고 있다. 3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집에서 돌보고 있는 문성숙(58)씨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자조모임을 하고 있다. 그는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대화하며 치매에 대한 다양한 정보뿐만 아니라, 심리적 위안도 얻었다. 그는 처음 어머니의 증상을 겪을 땐 "우리 엄마 왜 이러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다른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비로소 어머니의 변화가 특별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문씨는 그러나 외부의 부정적인 시선 탓에 상처를 받는 일도 왕왕 있다고 했다. 그는 "아직까지 치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많은 건 사실이다. 치매환자나 가족을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며 "엄마가 치매라는 걸 알리는 게 불리한 상황도 있어서 어떤 모임에서는 언급 자체를 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박미자 고양시 일산동구치매안심센터 간호사는 "치매환자와 가족이 지역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는 방향으로 치매파트너, 치매안심마을, 선도교육 등이 이뤄졌지만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사업 대부분이 중단된 상황이라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치매에 대한 인식 역시 아직 낮은 편이지만 과거와 비교해 나아지고 있는 만큼 지역사회 모두가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치매로 인해 거리를 배회하는 어르신을 위한 보호 쉼터인 수원 권선구 치매안심마을 어르신보호쉼터 2022.2.20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2019년 심석희(쇼트트랙), 신유용(유도) 선수 등의 체육계 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체육계 미투'를 계기로 마련된 정부의 '스포츠 혁신안'이 다시금 화두에 올랐다. '학습권 보장'으로 되레 학생 선수들의 운동 여건이 위축된다는 체육계의 반발 목소리에 대선주자들이 화답하면서다.당시 성과만능주의에 가려진 체육계 구조적 폭력 고리가 수면 위에 오르자 정부도 책임의 화살을 피하기 어려웠다. 지난 2019년 2월 문화체육관광부는 부랴부랴 스포츠혁신위원회를 꾸려 7차례에 걸쳐 스포츠 선수들의 인권 강화·학습권 보장·상시 합숙소 폐지 등의 권고안을 내놓았다.스포츠혁신위의 권고안이 형식적 움직임에 그쳤다는 지적이 일찌감치 나오고 3년이 흐른 지금, 대선주자들이 하나같이 혁신안을 언급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혁신안 이후'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지만, 체육계에서는 "체육 현장의 현실을 모르는 처사"라며 여전히 반발하는 기류가 거세다. 성적 치중 지양·인권보호 강화생활체육 진흥은 '긍정적 평가'주중대회 금지·최저학력 제한 혁신위 권고 이후 대표적인 변화는 선수 인권보호와 학습권 보장 취지에 따라 '국민체육진흥법'이 개정된 것이다. 성적과 메달에 치중한 정책과 분위기를 정당화한 '국위선양'이란 단어가 빠졌다. 그 자리를 '공정한 스포츠 정신으로 체육인 인권보호' 등의 문구가 대체했다. 선수 인권 침해와 체육계 비리를 조사하는 '스포츠윤리센터'도 설립됐다. 학교 중심의 '엘리트 체육인' 육성 시스템이 낳는 폐해를 예방하고자 생활체육 동호회를 통해 누구나, 어느 지역에서나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스포츠클럽 진흥법'도 국회를 통과했다. 이런 변화들에 대해 체육계도 대체로 긍정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체육계는 '학습권 보장'을 넓히려는 정부 당국의 정책 방향엔 크게 우려를 표한다. 정부가 학교 선수들의 학습권 보장 방안으로 주중 대회를 막고, 최저학력제를 도입해 일정 수준의 학력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 대회 출전을 제한할 수 있게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운동 여건 위축돼" 반발 여전윤석열 "주중 참가 제한 폐지"이재명 "출석인정 재검토" 공약 정부와 체육계가 맞서는 가운데, 최근 유력 대선 후보들이 혁신안을 두고 한 마디씩 거들면서 사안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학생 선수의 인권을 최대한 보호하고, 유능한 미래의 전문체육인을 양성하며 학생 선수 주중 대회 참가제한을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스포츠 혁신위 권고안을 이어가되, 현장과 온도차가 큰 정책에 대해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후보는 "학생 선수들의 출석 인정, 결석허용 일수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 현실에 부합하는 정책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 관련기사 3면([경인 WIDE] 인생이 걸린 경기는 주말에만 몰려… 선수도 지도자도 '부담 백배') /조수현기자 joeloach@kyeongin.com정부의 '스포츠 혁신안'의 주요 내용 중 하나인 '학습권 강화'가 되레 현장에서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체육교육계 현장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경기체육고등학교에서 한 학생 선수가 투포환을 하는 모습. 2021.10.3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정구(soft tennis)는 비인기종목으로 분류되는 만큼 운동부를 가진 학교를 찾기란 쉽지 않다. 양평에 살던 A(16)군에게 정구부가 있는 가장 가까운 학교는 차로 1시간 남짓 떨어진 이천의 중학교. A군의 엄마 박모씨는 긴 통학 시간에 운동기회가 줄어든다는 생각에 학교 주위에 집을 구했다. 하지만 양평 집도 오고 가야 하는 처지라 A군만을 온전히 살필 수 없다. 박씨는 "끼니를 매일 챙기지 못해 아들이 냉동음식과 배달음식으로 때우곤 하는데, 성장기라 걱정이 크다"며 "학습시간이 늘면서 팀 훈련 시간이 줄어들었는데, 실력 유지를 위해 자비를 들여 개인 훈련까지 하고 있다"고 했다.전국구 탁구 명문으로 꼽히는 파주의 한 중·고교의 감독 신모씨도 최근 3년 간 변화에 당혹스럽긴 마찬가지. 경기를 주말로 몰면서 선수와 지도자들의 부담이 쌓였다. 신 감독은 "대회 수상 성적이 대학 입시에 결정적으로 작용하는데, 코로나로 대회가 줄어든 마당에 남은 대회들이 다 주말에 몰려 '눈치'를 봐가며 대회를 고르고 있다"며 "선수들의 부상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인기 정구 운동부 학교 드물고코로나로 대회 줄어 출전도 '눈치'선수간 격차 심화·부상 위험까지 정부가 혁신안에서 가장 큰 비중을 둔 사안인 '학습권 강화'가 되레 현장에서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학교에서의 팀훈련 기회가 줄어들면서 선수 간 격차가 심화하고 부상 위험까지 커진다는 것이다. 학교 체육의 '빈자리'를 공공이 메울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교육부는 2022학년도부터 '학생 선수의 대회, 훈련 참가를 위한 출석 인정 결석 허용일수'를 지난해 초중고별로 각각 10일, 15일, 30일에서 올해 5일, 12일, 25일로 줄였다. 이를 위해 대회 경기를 주말·공휴일에 하고, 가급적 방학 중 대회를 열도록 체육 단체에 요청했다.경기도는 학교 체육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지난 2018년부터 G스포츠클럽(경기도형운동부)을 운영하고 있다. 엘리트 중심의 학교 체육 시스템에서 탈피, 생활체육과 연계한 개방형 공공 스포츠 클럽을 확장하는 모델이다.결석허용 초 5·중 12·고 25일로 ↓지자체 공공스포츠클럽 지원 필요 하지만 비인기 종목의 클럽이 개설된 경우는 매우 드물고, 또 운동시설을 찾아야 하는 점도 문제로 남아 취지대로 학교 체육을 대신하기엔 부족하다는 게 학교 선수들과 지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전문가들은 스포츠 혁신안이 나온 배경을 되새기는 동시에 학생 선수의 피해를 줄이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허정훈 중앙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기존 엘리트 중심의 학교 체육이 낳은 구조적인 폭력 문제 때문에 인권과 선수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취지는 바람직하다"면서도 "지자체가 나서 공공스포츠클럽의 지원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경기도 교육청 관계자는 "G스포츠클럽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종목마다 편차가 있고 시설 부족 문제가 있다"며 "종목별 체육 단체·각 시군들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 측은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허용 결석일수를 제한하는 건 불가피하다"면서도 "문화체육관광부의 종목별 특성을 고려한 정책 연구 결과가 나오면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 보완점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조수현기자 joeloach@kyeongin.com정부의 '스포츠 혁신안' 주요 내용 중 하나인 '학습권 강화'가 되레 현장에서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체육교육계 현장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경기체육고등학교에서 한 학생 선수가 높이뛰기를 하는 모습. 2022.2.13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3월 9일)와 지방선거(6월 1일) 등을 계기로 수원 군 공항 이전 사업이 탄력을 받을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선거를 앞둔 출마 예정자들이 '군 공항 이전'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는 건 물론 군공항 인근 3기 신도시 조성계획과 최근 전투기 추락 사고 등에 정부도 사업을 미룰 수만은 없는 처지에 놓였다.국방부 군공항이전사업단은 지난 2017년 2월 공군 작전성 검토결과 등을 반영해 수원 군 공항 예비이전후보지로 화성 화옹지구를 선정했으나 화성지역 일부 반대 여론 등에 후속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이후 지난해까지 국방부 주관의 갈등관리협의체 회의가 50여 차례 열렸으나 수원시와 화성시 양측 관계자가 모두 참여한 논의는 한 번도 열리지 못하는 등 좀처럼 이견이 좁혀지지 못하는 상태다. 수원·화성시 수년간 이견 못 좁혀이재명 등 '남부공항 건설과 연계'대선·지선 도전자들 앞다퉈 약속 하지만 올해 잇따라 치러질 선거 이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거란 기대감이 나온다. 대통령과 수원특례시장, 화성시장 등 선거 출마 예정자들이 앞다퉈 수원 군 공항 이전과 이를 토대로 한 경기남부 국제공항 건설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놓으면서다.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지난달 24일 경기도 지역 공약을 발표하며 "수원 군 공항 이전과 연계해 경기남부 공항 건설을 검토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민주당 내 수원특례시장 출마 예정자들은 같은 달 27일 한 자리에 모여 김진표 의원을 중심으로 "오랜 숙원인 수원화성 군 공항 이전과 경기남부 통합국제공항을 건설하는 방향을 확정하려면 이재명 후보를 위해 함께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뜻이 모였다"고 전했다. 전투기 추락·3기 신도시 계획 여파'이전 여론' 급증… 화성도 공감대 화성에서도 군 공항 이전에 대한 공감대가 나타나고 있다. 화성지역 한 정치권 관계자는 "화성시에서도 군 공항 인근 지역 소음이나 고도제한으로 인한 재산권 침해 문제는 꼭 해결돼야 하는 부분"이라며 "이를 위해 화성시와 수원시가 협력해 이전 대상지와 방안 등을 논의해 국방부와 사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수원 군 공항 인근에 추가 3기 신도시(화성 진안·2만9천호 규모) 조성계획이 발표되고 최근 전투기 추락으로 공군 조종사 순직 사고가 발생하면서 군 공항 이전을 요구하는 여론도 급증하고 있다. 이에 올해 지방선거 이후 군 공항 이전 논의가 재개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군 공항 이전사업 절차상 이전부지 지자체장의 이전유치 신청 등을 거쳐야 해 지자체와 지역 주민의 협력이 필수"라면서도 "화성시가 이전 사업을 위한 대화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면 국방부는 적극적으로 논의에 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관련기사 3면([경인 WIDE] 이전 후보지 '화옹지구'인데… 화성시장 후보군들 "노코멘트") /김준석기자 joonsk@kyeongin.com다가오는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수원화성 군 공항 이전 추진이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사진은 6일 수원시 도심과 화성시 경계에 위치한 공군 제10전투비행단 군 공항. 2022.2.6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다가오는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수원화성 군 공항 이전 추진이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사진은 6일 수원시 도심과 화성시 경계에 위치한 공군 제10전투비행단 군 공항. 2022.2.6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경기도 최대 도시인 수원과 화성 한복판에서 70년 가까이 운영되는 수원 군 공항을 두고 양 지자체는 '옮겨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지만 '어디로' 옮길지는 완전한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국가사무로 군 공항 이전을 추진하며 화성 화옹지구를 예비이전후보지로 정했으나 선거 국면 가운데에도 정작 화성지역에선 누구 하나 화옹지구라는 지역명을 입 밖에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이전사업은 국방부의 '국가사무'자치권한 침해 청구 헌재도 각하 수원 군 공항 이전 사업은 국방부가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국가사무다. 지난 2017년 2월 화성 화옹지구의 예비이전후보지 선정 직후 화성시가 자치권한을 침해당했다며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으나 헌법재판소는 이를 각하했다. 지역적 자치사무가 아닌 국가적 이익에 관한 국가사무인 군 공항 이전 사업 추진과 관련해 심판 청구인 의사가 고려되지 않았다고 해서 자치권한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이에 군 공항 이전 사업의 종전부지 지자체인 수원특례시는 예비이전후보지인 화성 화옹지구를 대상으로 이달부터 경기남부 통합국제공항 건설을 통한 지역발전 방안 모색 등을 위한 연구용역에 나선다. 용역 결과가 나올 오는 8월 이후 진행될 수 있는 군 공항 이전 사업 후속 절차(이전후보지 선정)에 대비하기 위해서다.하지만 이전부지 지자체인 화성시는 군 공항 이전엔 찬성하면서도 화성 이외 제3 지역에서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원시, 후속 절차 대비 연구용역화성시는 제3지역 사업진행 입장"또 다른 피해를 낳게 되는 상황" 서철모 화성시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수원 군 공항 이전을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화옹지구 등 화성지역으로의 이전은 불가하다는 전제와 함께 이전 수용 수요가 있는 지자체 대상으로 공모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올해 지방선거 화성시장 예비후보 출마 예정자 대다수도 군 공항 이전을 어느 곳으로 옮겨야 할 지는 말을 아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 한 출마 예정자는 "(수원 군 공항)이전은 반드시 해야 한다. 이전부지에 대해선 언급하기 어렵지만 이전을 원하는 여론이 있는 곳으로 옮겨져야 할 것"이라고 했고, 국민의힘 소속 한 출마 예정자도 "화성에서도 봉담·진안·병점동 등 군 공항 인접지에선 군 공항 이전에 찬성하나 화옹지구 쪽은 여론이 달라 어디로 옮겨야 할지는 '노코멘트'"라고 말했다.화성시 관계자는 "화성에도 피해 지역이 있어 이전해야 한다는 입장은 같지만 화옹지구가 대상이면 화성시 입장에선 결국 또 다른 피해를 낳게 되는 상황"이라며 "당초 군 공항 이전 건의 절차부터 화성시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업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김준석기자 joonsk@kyeongin.com다가오는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수원화성 군 공항 이전 추진이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사진은 6일 수원시 도심과 화성시 경계에 위치한 공군 제10전투비행단 군 공항. 2022.2.6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다가오는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수원화성 군 공항 이전 추진이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사진은 6일 수원시 도심과 화성시 경계에 위치한 공군 제10전투비행단 군 공항. 2022.2.6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다가오는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수원화성 군 공항 이전 추진이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사진은 6일 수원시 도심과 화성시 경계에 위치한 공군 제10전투비행단 군 공항. 2022.2.6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수원화성의 성곽을 따라 카페와 식당, 공방 등이 모여 있는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일대. 이른바 '행리단길'로 불리는 이곳은 저마다의 특색을 가진 가게들이 늘어서며 100개가 훌쩍 넘는 점포들이 자리하고 있다. 과거 오후 8시만 돼도 컴컴해졌던 수원의 대표적인 구도심이 어느새 방문객으로 발길이 끊이지 않는 '핫플레이스'가 된 것이다.자연스레 이 일대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주택의 두 집 걸러 한 집은 가게로 변했다. 여전히 골목 곳곳에는 주택 내부를 뜯어내고 리모델링이 한창인 공사현장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 두어 달이면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가게가 들어선다.이로 인해 동네가 활기차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명소가 된 만큼 수년 전에 비해 집값과 임대료, 월세가 적어도 몇 배 이상은 뛰었다. 보는 사람들의 시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7~8배 비싸졌다는 말도 나온다. 이곳에 터를 잡고 살다 집을 팔고 떠난 주민들의 수도 상당하다.동네 한 주민은 "주택을 내놓았다 하면 가게 한다고 사간다"며 "이곳에 사는 게 불편해서 집을 판다기보다는 대부분 주택이 낡았고 나이 든 어르신들이 많아 이참에 집을 팔고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두 집 걸러 한 집은 가게로 변해붐비는 방문객… 주민 일상불편집값 뛰어… "이참에 팔고 떠나" 하지만 주민들의 불만과 우려도 적잖다. 평일과 주말 가릴 것 없이 골목 사이사이까지 즐비하게 들어선 차들로 시비가 생기는 일이 잦아졌다. 집 앞에서 너무 떠들지 말아 달라는 호소문이 붙기도 했다. 루프탑이 있는 카페에서는 건너에 있는 집 빨래도 보인다. 행궁동에서 40년 넘게 거주했다는 한 70대 주민은 "가게를 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여기서 돈만 벌어간다. 주차·쓰레기·소음 등 주민이 직면한 문제는 한두 개가 아니다"라며 "주택에 사는 사람은 편치않다. 결국 주민이 떠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기존에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살며 가게를 운영했던 이들도 밀려나기 시작했다.최근 레트로 문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전국적으로 행궁동과 같은 곳이 늘고 있다. 인천 강화군 교동 대룡시장과 같이 지역의 특색이 보존된 곳이라면 어디든 반복되는 현상이다. 낡은 주택가가 풍기는 분위기를 따라 청년층들이 모이고 있지만 지역이 품어온 문화적 에너지가 서서히 잠식되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 → 관련기사 3면([경인 WIDE] 주차난·채광 환기 포기 '방문객 공해'… 지역 정체성 갉아먹는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수원의 행궁동 일대가 젊은 층이 많이 찾는 특색있는 상권으로 유명세를 이어가자, 유동인구를 따라 흔하고 특색 없는 가게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상권 고유의 특색을 잃어버리는 '정서적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23일 오후 행궁동의 한 골목의 모습. 2022.1.23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수원의 행궁동 일대가 젊은 층이 많이 찾는 특색있는 상권으로 유명세를 이어가자, 유동인구를 따라 흔하고 특색 없는 가게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상권 고유의 특색을 잃어버리는 '정서적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3일 오후 행궁동의 한 카페 건물이 수원화성의 풍광을 즐기려는 손님들로 가득 들어차 있다. 2022.1.23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에 앞서 젠트리피케이션 논란을 겪은 서울 경리단길과 가로수길 등이 있지만 대부분 부동산 가격 상승에 초점이 맞춰졌다. 해당 지역을 살린 상인들을 지키자는 데 초점이 맞춰져 상가임대차보호법 등이 시행됐다.하지만 지역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가치 등 무형의 자산을 보호하는 데에는 아직 이렇다 할 해법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정서적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의 정체성, 주민 간의 화합 등이 거론되는 일은 여전히 드물고 되레 일부가 겪는 불편함 정도로 치부되는 게 현실이다.정서적 젠트리피케이션이 문제가 되는 것은 주민 간의 갈등뿐 아니라 지역 상권의 활성화가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부동산 가격 상승 상인 지키기 급급문화적 가치 등 무형자산 보호 외면카페 옆 주택 합판으로 창문 막기도 먼저 외형적인 면에서 주민들의 불편과 상인들과의 갈등을 확인할 수 있다. 행리단길로 불리는 행궁동 일대를 보면 최근 마구 들어선 카페와 방문객 등을 막기 위한 장치가 눈에 띈다. 주민들은 대형 화분으로 주차를 막고, 일부 몰지각한 방문객은 이 대형 화분조차 밀어내는 주차전쟁을 벌인다.또 주택가를 개조한 카페 옆 주택은 합판으로 창문을 막기도 하는데, 주민들에게는 채광이나 환기마저 포기해야 할만큼의 '공해'가 된 셈이다.행궁동에 거주하는 A씨는 "주택 옆에 여러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식당이 들어와도 불법이 아닌 것이냐"며 "아무런 대책 없이 마구 허가를 내줘도 되는지 알고 싶다"고 불쾌함을 직접 드러내기도 했다.앞서 벽화로 유명세를 탔던 서울 혜화동 벽화마을 등은 주민들이 공들여 가꿨던 벽화를 지우는 등으로 스스로 지역 문화를 지우기까지 했다. 이 같은 문제는 해당 지역이 쌓아온 정체성을 갉아먹는다는 지적이다.지역 상권 활성화 일시적 현상 우려"대형상권 업장 창업에 특색 희석" 여전히 행궁동 주택들이 가격 갱신을 기록하며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창업 붐을 일으키고 있지만 주민들은 위기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동네가 언제까지 이렇게 잘 될까?'라는 것. 한때 번화했다가 쇠퇴의 길을 걸은 지역의 여러 사례처럼, 이곳도 언젠가 침체돼 하나둘 떠나면 그때는 주민조차 살기 어려운 곳이 될 거라는 근심 섞인 이야기가 이들 사이에 오고 갔다.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B씨는 "이렇게 카페가 많이 생기는데 계속 유지될까 걱정"이라며 "처음 이곳에서 주민들과 어울리며 여러 작업을 했던 사람들은 이미 떠났는데 상권이 흔들리면 지금과 같이 지역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우려스럽다"고 했다.최근에는 독특한 분위기를 내는 상점도 있지만 무인 사진관과 같이 기존 대형 상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업장 창업이 이어지고 있어 일부에서는 이미 지역 특색이 희석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김성주·구민주기자 ksj@kyeongin.com수원의 행궁동 일대가 젊은 층이 많이 찾는 특색있는 상권으로 유명세를 이어가자, 유동인구를 따라 흔하고 특색 없는 가게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상권 고유의 특색을 잃어버리는 '정서적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3일 오후 행궁동의 한 카페 건물이 수원화성의 풍광을 즐기려는 손님들로 가득 들어차 있다. 2022.1.23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수원의 행궁동 일대가 젊은 층이 많이 찾는 특색있는 상권으로 유명세를 이어가자, 유동인구를 따라 흔하고 특색 없는 가게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상권 고유의 특색을 잃어버리는 '정서적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3일 오후 행궁동의 한 골목의 모습. 2022.1.23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수원의 행궁동 일대가 젊은 층이 많이 찾는 특색있는 상권으로 유명세를 이어가자, 유동인구를 따라 흔하고 특색 없는 가게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상권 고유의 특색을 잃어버리는 '정서적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3일 오후 행궁동의 한 골목이 수원화성을 즐기려는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2022.1.23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