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평화의 길'을 여는 스포츠의 위대함

유승민

발행일 2018-06-13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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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스웨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27년만에 '남북단일팀 결성' 감동
정치적 논리나 상부의 지시 아닌
탁구인 스스로 현장서 실행 큰 의미
지속적 체육교류의 장 열리길 소망


수요광장 유승민10
유승민 IOC 선수위원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이 판문점을 넘어 서로를 반기며 평화의 악수를 나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4·27 '판문점 선언' 직후 남과 북의 하나된 모습에 전 세계가 감동과 지지의 박수를 보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5월 3일 스웨덴의 작은 도시 할름스타드에 다시 한 번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2018년 국제탁구연맹(ITTF) 세계탁구선수권 여자단체전 8강전, 치열한 남북 대결이 예고됐다. 서로를 상대로 피말리는 승부를 다퉈야 할 상황이 불과 12시간 만에 악수와 포옹, 평화의 미소로 바뀌었다. 남북단일팀이 어깨를 겯고 나란히 4강에 진출하는 사상 유례없는 사건이 펼쳐졌다.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에서 남북 스포츠 사상 최초의 단일팀으로 세계 정상에 오른 지 무려 27년 만의 단일팀 결성이었다. ITTF 이사회가 한창이던 그 시각, 전 세계 탁구 리더들은 이사회를 잠시 중단한 채 현장 TV 생중계를 예의주시했다. 카메라가 어깨동무를 한 남북 선수들을 비췄다. '오늘, 남북은 싸우지 않는다'는 장내 아나운서의 코멘트에 이사들과 집행위원은 전원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남북 단일팀은 도대체 어떤 의미이기에 세계 탁구인들에게 이렇게 뜨거운 환영을 받는 것일까.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은 스포츠 활동을 통한 올바른 교육과 스포츠를 통한 평화 증진이라는 모토 아래 올림픽을 창시했다. 올림픽을 주관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전 세계에 올림픽 정신, 평화의 정신을 전파해왔다.

지난 겨울 평창동계올림픽에서의 남북 공동입장,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의 전격 결성은 바로 스포츠를 통한 평화 증진이라는 IOC의 가치 아래 추진되고 이뤄진 것이었다. 전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평창동계올림픽의 바통을 남북 정상이, 그리고 남북 탁구선수들이 이어받았다.

지구촌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과 북한이 탁구를 통해 하나가 된 모습은 세계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스포츠라는 매개 아래 선수들은 하나가 되어 서로를 응원하고 다독이며 승부에 몰두했다. 남북 관계자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며 다시 한 번 감동의 역사를 이끌어냈다. 27년 전 남북 스포츠 교류의 선봉에 섰던 탁구가 다시 한 번 남북 관계 증진과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마중물 역할을 해냈다는 점, 그 역사의 현장에서 진심을 다해 발로 뛰었다는 점, 남북의 선수, 지도자, 협회 관계자들이 한마음으로 소통하며 불과 12시간 만에 기적 같은 단일팀을 이뤄낸 점은 다시 생각해도 뿌듯하고 가슴 벅차다.

이번 세계선수권을 계기로 1회성 이벤트가 아닌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을 통해 서로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을 찾는다면 남북 스포츠 모두 분명히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한다. 물론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온 우리 선수들의 피해는 없어야 한다는 것은 선수 보호를 최우선하는 IOC선수위원이자 대한체육회 선수위원장으로서 나의 신념이자 평창부터 스웨덴까지 일관되게 관철시켜온, 단일팀의 기본 전제다.

스웨덴에서의 남북 단일팀 경험은 다시 한번 스포츠의 위대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정치 논리나 상부의 지시가 아닌 현장의 탁구인 스스로 평화의 길을 열었다는 점은 의미 있다. 대한민국 모든 스포츠인들이 스포츠인의 자부심을 가슴에 품고, 스포츠를 통한 평화의 가치를 실현해 나간다면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 지속적인 남북 체육교류의 장이 열리길 소망한다. 철의 장막을 걷어냈던 핑퐁 외교처럼, 스포츠가 평화의 첫 길을 여는 길라잡이가 되길, 스포츠인들이 남북을 자유롭게 왕래하며 함께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유승민 IOC 선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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