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성공한 회담과 실패한 회담

이영재

발행일 2018-06-13 제22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2018061201000896500043741

20세기 초 '협상'은 겁쟁이들이 '선택'하는 조롱의 대상이었다. 협상하자고 손을 내밀면 그것은 곧 '굴복'을 의미했다. 희생이 담보되는 전쟁을 치러 상대방 무릎을 꿇리는 것이 '갈등의 끝'이라고 믿었다. 협상하고 타협했다면 무고했을 많은 사람들이 권력자의 정치 놀음에 목숨을 잃었다. 21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갈등을 피하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협상'만 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세계 외교사에 협상의 중요성을 알려준 건 '13일의 교훈'이었다. 1962년 10월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 하면서 미·소간은 핵전쟁 직전까지 갔다. 13일 동안 전 세계를 긴장시킨 이 세계사적 사건은 위기 극복에 있어 지도자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소련과의 협상을 슬기롭게 끝낸 존 F 케네디의 나이는 불과 47세였다. "무능한 지도자는 위기를 만들고, 유능한 지도자는 위기를 해결한다"는 말이 그때 나왔다.

1978년 9월 열린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베긴 이스라엘 총리의 '캠프 데이비드 중동평화 회담'은 겉만 화려할 뿐 사실상 실패한 것이나 다름 없는 협상이었다. 회담 중재자는 집권 내내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았던 지미 카터 미 대통령. 그는 이 회담을 반드시 성공시켜 무능하다는 오명을 벗고 싶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실제 회담 내내 두 사람은 상대를 인정하지도, 자국의 이익을 양보하지도 않았다. 카터는 회담을 빨리 끝내려고 서둘렀다. 결과적으로 두 나라는 평화조약에 서명했고 사다트와 베긴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날부터 지금까지 중동에는 평화가 오지 않았다. 천천히 시간을 갖고 요르단 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거주지역과 가자지구 문제를 해결했다면 중동 역사는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카터 대통령의 이름도 중동사에 길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로켓맨' '불망나니, 늙다리 미치광이' 라며 저열한 말 폭탄을 주고 받으며 일촉즉발 위기까지 갔던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어제 각각 6개의 성조기와 인공기 앞에서 정상회담 합의문에 서명했다. 합의문에는 '(북한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는 문구 말고 우리가 간절히 원했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 내용은 없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은 게 없다'는 속담대로 세계 최대 리얼리티 쇼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영재 논설실장

이영재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