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지사 당선 눈앞' 이재명 그는 누구인가… '흙수저' 출신을 딛고 쓴 신화

강기정 기자

입력 2018-06-13 21: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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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포토]이재명-김혜경 부부, 손 맞잡고 '환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13일 오후 수원시 팔달구 선거 사무소에서 지지자들과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확인한 후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이재명은 '가난'을 몸으로 겪으며 성장했다.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이른바 '흙수저'로 자라난 배경은 그가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억강부약'(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도와줌)이란 정치 철학의 바탕이 됐다.

1963년(호적상 1964년생)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난 그는 5남2녀 중 다섯째로 자랐다. 국민학교를 마친 그는 성남 상대원동으로 상경한다.

그의 유년 시절은 '소년공'이란 단어로 축약된다. 이때 아버지는 상대원 시장 청소부, 어머니와 여동생은 시장 화장실에서 이용료를 받고, 본인은 공장에 취직하는 어려운 생활이 시작된다.

어린 나이로 정상적인 취직이 불가능했던 이재명은 다른 이의 신분을 빌려 여러 공장을 전전했다. 공장 생활에서 발생한 사고로 그의 손가락에는 고무조각이 박혀 있고, 프레스기에 팔이 눌려 '차렷자세'를 취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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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후보와 부인 김혜경 여사, 큰 아들 /이재명 후보 캠프 제공

그는 이때 얻은 장애로 병역이 면제됐다. 치료받지 못해 멋대로 비틀어진 팔을 숨기려 사계절 내내 긴 소매만을 고집했던 소년 이재명은, 오히려 통증으로 공장일을 할 수 없게 된 그 기간 동안 검정고시 공부에 매진한다.

1년 3개월 만에 중고등 검정고시와 대입 검정고시를 통과한 그에게, 전두환 정권이 단행한 교육개혁조치가 기회로 다가왔다. 입시를 불과 몇 달 앞두고 본고사가 폐지되면서 학력고사만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고, 과외가 금지되면서 장학금 제도가 대폭 늘어난 것이다. 학력고사에서 고득점을 얻은 이재명은 전액 장학금을 제공하는 중앙대 법학과에 진학한다. 법대 4년을 장학생으로 졸업한 그는 1986년 28회 사법시험을 통과한다.

변호사 이재명은 성남에서 노동 운동에 얽힌 시국사건이나 인권 사건의 변호를 맡으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활동을 했다. 지역 토착 비리 등을 파헤치며 왕성히 활동하던 변호사 이재명은 성남시의료원 설립 문제를 다루며 정치인으로 변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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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변호사 시절 /이재명 후보 캠프 제공

2004년 성남 구시가지의 대형병원이 문을 닫으며 공공의료원 설립 요구가 높아지자, 이재명은 시민 2만 명의 동의를 얻어 공공의료원 설립 주민발의 조례를 만들었다. 그러나 해당 조례가 시의회로부터 날치기를 당하자 그는 시장이 돼 직접 시립의료원을 만들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이재명의 첫 도전은 실패였다. 2006년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성남시장 선거에 나섰지만 낙선했고, 이어 펼쳐진 18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전했으나 연이은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두 차례의 실패에도 낙담하지 않았던 그는, 2010년 성남시장 선거에서 드디어 승리한다.

2010년 7월 성남시장에 취임한 이재명은 '호화' 논란을 빚던 전직 시장의 집무실을 북카페로 내놓은 후, 한층 좁은 공간으로 시장실을 옮겼다. 이어 첫 기자회견에서 그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성남시의 재정난으로 LH·국토부 등에 내야 할 판교신도시 조성사업비 5천200억원을 단기간에 갚을 수 없다고 주장했고 이는 국토부와의 진실공방으로 이어지면서 취임 직후부터 전국적 화제를 모았다. 

이후에도 그는 여느 단체장과는 차별되는 행보로 눈길을 끌었다. SNS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거리낌 없이 현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고, 시장실에는 "돈 봉투를 들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로 CCTV마저 설치했다. 그는 특히 복지정책에 중점을 뒀다. 취임 직후부터 성남시립의료원 강화에 나섰고, 올해 경기도에 도입된 무상교복을 2011년부터 추진했었다. 시행이 가로막히면 시의회·정부와 각을 세우거나 소송도 불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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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성남시장실에서 /이재명 후보 캠프 제공

2014년 성남시장 재선에 성공한 이재명은 차츰 전국적 정치인으로 발돋움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에 날을 세우며 '사이다' 별명을 얻기도 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발언 등으로 국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촛불혁명 당시엔 맨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규탄하며 퇴진을 요구했다.

이듬해인 2017년 초 민주당 대선 경선에 참여해 문재인 현 대통령,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이어 3위를 기록하면서 차기 국가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굳혔다. SBS 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에 부인 김혜경 여사와 출연한 점도 그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한몫을 했다. '독설가'의 이미지를 누그러뜨리고 '친근한 이웃' 이미지를 부각해 대중들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설 수 있었다. 

/강기정·신지영기자 kangg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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