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선언 특별기획-남북의 마디 인천, 새로운 평화와 번영을 말하다·(24)]'해양 진지' 남북 공동연구

총부리 거둔 남북 '서해안 방어체계' 복원 필요

김민재 기자

발행일 2019-02-11 제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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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때 후금침략 대비 위상 격상
군사요충지 황해도와 강화 '밀접'
분단이후 北 문화유적 파악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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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서해안 지역은 해상을 통해 침입하는 외세를 최일선에서 방어하는 군사 요충지다.

역사적으로 인천 강화와 황해도는 서울과 개성·평양을 지키는 관문으로 서해안 벨트를 따라 진(鎭)과 보(堡)와 같은 방어진지가 구축됐다.

강화와 황해도는 군사적으로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지역이다. 이 중 강화 지역 해안 방어 시설 연구는 깊이 있게 연구돼 왔지만 북한의 서해안 방어 체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이뤄지지 못했다.

분단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서해안의 남북 해양방어 역사와 관련 문화유산에 대한 공동 연구가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북한의 해양방어 체계는 그 실체가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아 과거 문헌을 통해 위치와 규모를 짐작할 뿐이다.

조선 후기 황해도 연안 방위체계 연구를 한 강석화 경인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는 "지금까지 황해도 지역(해안방어체계)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진 바가 없고, 민속학적 관점에서 접근한 성과만 있을 뿐 군사적 관점에서 접근한 연구는 없다"고 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삼남지방의 해양 방어 체계 복구에 주력해 황해도는 상대적으로 방비 체계 구축에 소홀했다.

하지만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가 친명배금(親明排金) 정책을 펼치면서 후금의 침략에 대비한 서북부 방어가 국가적 과제로 떠올랐다. 과거 왜구와 중국 해적을 주로 상대했던 황해도 지역의 해양방어 체계의 위상이 확 달라진 거다.

격상된 황해도의 방어체계는 인천 강화와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인조실록을 보면 조선은 후금이 침공할 경우 황해도의 육군과 수군을 왕의 피난처인 강화도 방어에 동원하도록 했다. 또 정묘호란을 겪은 뒤로는 강화도 방어를 더욱 강화하고, 가까운 황해도 연안과 배천에 수군을 배치했다.

조선 후기 황해도 연안과 섬 지역 가운데 가장 중시된 곳은 지금의 인천 옹진군 백령도다. 북한의 장산곶을 기준으로 북쪽에 있는 초도·풍천·은율, 남쪽의 장연·옹진·강령·연안으로 가는 길목이 바로 백령도다.

하지만 한국전쟁으로 남북이 분단되면서 백령도와 장산곶은 서로 총부리를 겨눈 분단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돼 버렸다. 다행스럽게도 지난해 11월 1일부로 남북이 서해북방한계선(NLL) 해안포 포문을 폐쇄해 긴장과 갈등의 불씨는 수그러들고 있다.

이처럼 황해도와 인천·강화 지역의 과거 해안 방어 진지는 현대에도 실제 군사 전략적 요충지로서 활용되어 왔다. 인천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강화군의 해양방어시설도 실제 군사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조선 숙종 때 축조된 강화 최북단 인화리·철산리 지역 돈대는 지금도 우리 군이 요새로 활용하고 있다.

인천과 황해도의 서해안 방어 체계는 한 몸과도 같았지만, 북한의 방어 유적에 대한 실체 파악은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북한의 지정 문화재도 개성과 평양 유적 위주로 구성된 터라 보존 상태와 훼손 여부를 가늠하기 어렵다. 북한 황해도 지역의 해양방어 유적을 남북 공동 연구를 통해 발굴하고 복원해야 할 때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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