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숨만 붙어있던 협치관행마저 사라진 대한민국 국회

여당의 엄포가 현실이 됐다. 국회는 29일 본회의를 열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만의 투표로 11개 상임위원회 위원장 모두를 더불어민주당 소속의원으로 선출했다. 지난 15일 민주당이 법사위 등 6개 상임위원장을 독자 선출한데 이어 국회 전체 상임위 위원장을 모두 독식한 것이다. 야당 몫 국회부의장 선출 이후 위원장 선출이 가능한 정보위원회는 제외됐지만, 이 또한 민주당이 가져갈 것이 확실한 상황이다. 이로써 1987년 민주화 체제 이후 88년 13대 국회부터 관행으로 자리잡은 상임위원장 여야 배분 관행이 32년 만에 종식됐다.

상임위원장 여야 배분은 대중적 혐오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국회가 여야 협치와 상생의 증거로 내세울 만한 유일한 관행이었다. 12대까지 유지됐던 상임위원장 1당 독식 구조가 깨진 건 13대 국회에서였다. 여소야대 총선결과에 소수 1당인 민주정의당이 야당의 국회운영 협조를 위해 평화민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에 상임위원장을 대폭 양보하면서다. 이후 관행으로 추가된 야당 몫 법사위원장은 국회의 대정부 견제 기능을 담보했던 보루였다. 하지만 지난 총선에서 거대여당이 된 민주당은 법사위원장 야당 몫 관행을 깬데 이어 이번에 상임위원장 배분 관행마저 끝장냈다.

여당은 일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자, 위원장 배분 협상을 걷어찬 야당의 자업자득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기어코 법사위원장을 차지하면서 촉발된 정쟁의 결과로 숨만 붙어 있던 국회의 협치관행을 무너뜨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의문이다. 민주당은 이제 국회에서 야당의 절차적 견제 마저 없는 상태에서 마음대로 법안을 통과시키고, 결의안을 비준하고, 예산을 통과시킬 수 있게 됐다. 3차 추경안, 공수처 출범, 새해 예산이 정부 마음대로 국회를 통과할 것이다. 기뻐할 일인가 자문할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이제 국회 과반 1당의 상임위원장 독식이 새로운 관행으로 자리잡은 점이다. 앞으로 국회 1당은 자력으로든 연합을 통해서든 야당에 1석의 위원장도 배분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 자체가 어마어마한 정쟁의 불씨가 될 것이다. 야당에 최소한의 견제권을 보장한 상생과 협치의 관행마저 사라진 대한민국 국회가 삼권의 한 축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대한민국 국회는 이제 민주당의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확신과 선의에 의존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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