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신영 작가 |
우크라이나 대기근은 ‘홀로도모르(Holodomor)’라고 불린다. ‘굶주림, 배고픔’을 의미하는 ‘홀로도’와 ‘박멸이나 제거’를 의미하는 ‘모르’의 합성어다. 1929~1931년, 구 소련연방의 스탈린은 강제적인 농업집단화 정책을 추진한다. 당시 소련연방에 속했던 우크라이나의 농산물을 수출하여 그 돈으로 경제개발을 꾀한다. 토지를 내놓고 집단농장 건설에 동참할 것을 강요당한 우크라이나 농민들은 반발, 저항에 나선다. 이에 스탈린은 수확물을 강제 수탈한다. 가족의 식량은 물론 파종할 종자까지 가져갔기에 우크라이나 농민들은 대기근에 처한다. 소련은 우크라이나 경계에 특별 경비대를 배치하여 식량을 찾아 이동하는 굶주린 사람들을 즉각 총살, 체포한다. 수출할 정도로 충분한 곡물 비축량이 있었는데도 구호하지 않는다. 외국 기자의 우크라이나 여행을 금지시켜 대기근 참사가 세계에 보도되는 것을 막고 외부 식량 지원도 막는다. 기록에 따르면 1932년에서 1933년까지 최저 300만명에서 최대 1천만명에 달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굶어 죽었다고 한다. 이때 우크라이나 전체 인구는 3천만명이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는 매년 11월 넷째 토요일을 기근 희생자 추모일로 정하고 국제사회가 홀로도모르를 대기근 참사가 아닌 집단학살로 선포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원래 흑해 북쪽에 위치한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빵바구니’로 불렸다. 현재에도 밀과 옥수수 수출이 각각 세계 3위일 정도로 비옥한 흑토 곡창지대에서 가뭄이나 홍수 등 기후와 아무 상관없이 이렇게 끔찍한 대규모 기근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연방 제2민족인 우크라이나인의 민족주의 움직임을 경계한 스탈린이 자연스런 민족 숙청을 의도한 결과다. 즉, 우크라이나 대기근은 참사가 아니라 특정 민족을 대량 학살하는 ‘제노사이드(genocide)’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소련정부의 지속적 개입과 묵인 아래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참사 이후 1991년 소련해체 때까지 기근과 관련된 모든 문서가 비밀서류로 분류되고 공론화가 금지되고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을 반체제인사로 몰아갈 이유가 뭐란 말인가?
영화는 기대 이하였지만, 그래도 덕분에 확실히 알겠다. 애초에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인데 발생하게 두었고, 구할 수 있었는데 구하지 않았고, 언론은 통제하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책임지지 않았고, 실상 조사를 요구하거나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은 반체제 인사로 몰려 처벌받는다. 그렇다면 그 사건은 ‘참사’가 아니고 ‘학살’인 것이라는 것을.
/박신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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