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귀환, 사할린의 한인들·3] 이산가족 부르는 영주귀국 여전히 논란

경인일보 창간 70 특별기획
“자식 떼놓곤 못떠나”… 그리움도 남겨졌다

강기정·정운 기자

발행일 2015-10-13 제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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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한인들의 영주귀국은 올해로 25년 차를 맞았지만 이산가족 문제 등은 아직 풀지 못한 숙제다. 사진은 1990년 첫 영주 귀국이 이뤄졌던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 국제 공항의 모습. /새고려신문 제공

제한적 귀국탓 또다른 이산가족 양산 ‘아픔 그대로’
광복후 출생자도 허용 목소리 “고국이 품에 안아야”


“만나는 사람마다 ‘할머니 왜 한국 안 갔어요?’ 그래. 나는 내 자식 떼놓고는 못 가. 내 식구 못 보는 아픔을 또 어떻게 견디나…”

러시아 사할린에서 만난 장차분(81) 할머니는 사할린 한인 1세. 한·일 양국이 지원하는 영주 귀국 대상이지만 고국행 비행기에 오르지 않았다. 사할린에 온 후로 소식이 끊긴 오빠를 평생 그리워하며 살았는데, 늘그막에 자식과 떨어지는 고통까지 겪고 싶지는 않아서다.

일본의 강제 징용 등으로 낯선 섬에 간 한인들은 수십년 간 헤어진 가족들을 그렸다. 50년 만에 고국에 왔지만 ‘이산가족’의 아픔은 그대로였다. 1994년 한·일 양국이 사할린 한인들의 영주 귀국을 지원키로 하며 대상을 광복 전인 1945년 8월 15일 이전 출생으로 한정해, 1945년 이후에 태어난 형제·자식을 등지고 고국에 와야 했기 때문이다.

고국에 돌아온 이들도, 사할린에 남겨진 이들도 이별한 가족 생각에 한숨을 내쉬었다. 장 할머니처럼 아예 귀국을 포기하는 경우마저 있었다. 25년 차를 맞은 영주 귀국이 여전히 논란인 이유다.

■ ‘1945년 8월 15일’

= 한·일 양국이 영주 귀국 문제를 협의할 당시 사할린 한인 단체의 일원으로 논의 과정을 지켜봤던 김홍지(68) 사할린주 한인노인회장은 “그때는 강제 징용된 어르신들의 한을 푸는 게 급선무였다”고 말했다.

소극적이었던 일본 정부에 한인 단체는 “광복 이전에 끌려와 고통을 겪은 이들만이라도 돌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고, 협상 끝에 1945년 8월 15일 이전 출생자(1세대)만을 대상으로 하는 ‘제한적 귀국’이 성사됐다.

이에 1944년생인 언니는 귀국 대상에 포함된 반면 1946년에 태어난 동생은 귀향을 포기해야 했다. 1999년 1세대들의 영주 귀국이 본격화되며 이에 따른 이산가족 문제가 심화되자, 1945년 8월 15일 이후 출생한 한인들에게도 영주 귀국을 허용해야한다는 목소리가 한국과 사할린 모두에서 제기됐다.

한국 국회에선 2005년부터 1세대 이후 한인들의 영주 귀국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이 추진됐지만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고려인 등 다른 재외동포와의 형평성 문제와 한인들이 대규모 영주귀국 할 경우 생길 수 있는 사회·경제적 부담, 러시아와의 외교적 문제 등을 이유로 번번이 무산됐다.

■ “우리도 한국 핏줄입니다”

= 올해 초 사할린주 이산가족회는 2세대(부모가 1945년 이전에 이주했지만 1945년 8월 15일 이후에 출생했거나, 1세대의 자녀)를 대상으로 한국 영주 귀국 희망 여부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산가족회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2세대 3천여명 중 80% 이상은 영주귀국이 허용되면 한국에 가겠다고 응답했다.

임종환(68) 사할린주 유즈노사할린스크시 한인회장은 “우리는 한국 핏줄이니 고국에 가야 한다는 의지와, 한국은 경제가 발전해 의료·복지 혜택을 아무래도 더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주된 요인이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러시아인들에게 받았던 극심한 차별도 2세대의 ‘귀향’ 의지를 부추기는데 한몫을 했다. 2세대 한인 이옥분(60·여)씨는 “부모의 나라가 있는데 왜 이곳에서 고생을 해야 하는가 하는 회의감이 컸다”고 회상했다.

임엘비라(41·여) 사할린 국립대학 한국학과 교수는 “1세대와 동일한 지원이 아니더라도, 남아 있는 사할린 한인들에게는 고국이 그들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고 강조했다.

유즈노사할린스크·인천 남동구/정운·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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