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중국 명예 시민증을 받고

박국양

발행일 2015-10-14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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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 심장병 수술받은 청년
중국서 감사인사차 온다는 전화…
16년전 ‘여연’이 위험한 수술 성공
모성애에 보답한 것같아 ‘뿌듯’
선진국 한국이 조상의 나라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옌볜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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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양 가천대 의학전문대학 원장
2015년 9월 10일 자로 중국 훈춘시 인민정부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이 시민증을 받으면 무슨 특혜가 있거나 비자 면제라도 되는 줄 알았는데 그야말로 그냥 명예일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명예라는 것이 곁에서 보기에 실속 없이 체면만 세워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로서는 그동안 중국 옌볜지역에서 겪었던 지난 족적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훈춘 시청 4층에서 시민증을 받으면서 사진을 찍고 악수를 하는 순간 옌볜에 와서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 그리고 그 동포의 조상들 그들을 생각하며 방문했던 나의 지난날들이 생각났다.

얼마 전 중국에서 전화가 왔다. 옌볜 말투였다. ‘선생님 저 기억하시겠습니까? 선생님이 20년 전 수술해준 누구입니다’ 하면서 시작하는 전화였는데 듣고 보니 20년 전 한국에 속초 늘사랑회 김상기 회장이 소개하고 이길여 회장님의 후원으로 길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당시 3살짜리 아이가 이제 22살이 되어 건강하게 지낸다고 인사차 오겠다는 전화였다. 외과의사는 수술해준 환자가 몇 년이 지나 잊힐만할 때 건강하게 잘살고 있다고 인사하겠다고 온다는 것처럼 큰 선물이 없다. 나는 실제로 환자들이 명절 때마다 ‘선생님 그냥 와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살려주셨는데 선물도 못 드리고… ’ 할 때마다 ‘무슨 소리예요. 내가 수술해준 분이 이렇게 건강하게 잘살고 있는 것처럼 큰 선물이 어디 있어요?’ 하곤 한다. 수술 당시 3살이었던 훈춘 아이가 청년이 되어 병원 외래 맨바닥에 큰절 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보람은 심수가행(심장수술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옌볜에 복지 병원이라는 작지만 아름다운 병원이 있다. 지금은 옌볜대학부속병원이 되었지만 흉부외과 노중기 선생이란 분이 15년 이상 헌신적으로 조선족 심장병 아이들을 위해 수술도 해주고 그들의 가정을 방문하면서 사랑을 실천해온 병원이었다. 그 병원에서 매년 시간을 내어 심장병 수술을 해주었던 수많은 심장병 환자들도 잘살고 있는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옌볜에 사는 여연이 엄마가 내 사무실 문을 두드린 것은 1999년도 봄이었다. 길병원 심장센터 앞에 늘어서 있던 주공아파트 거리에 벚꽃이 한창 피었다가 아쉽게 질 때쯤이었으니까 4월 초순이 조금 지난 때였을 것이다. 중국에서 촬영한 심장 사진과 검진 결과를 내려놓고 딸을 다짜고짜 살려달라고 하였다. 선천성 심장병 중에서 매우 심한 심내막상 결손증이었는데 한국에 있는 다른 이름있는 병원을 다 돌아다녔으나 거절당하고 마지막으로 나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어려운 환자를 수술하다가 잘못되면 병원은 물론이고 집도의의 망신도 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안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그 딸을 가진 모성애는 달랐다. 여연이 엄마는 매일 내 사무실을 찾았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무릎을 꿇고 앉아 내 딸을 살려달라고 빌었다. 수술결과는 좋았다. 여연이는 지금 결혼도 하고 아들도 낳아서 지난해에는 감사하다고 엄마와 같이 찾아와 사진도 찍었다. 그 모성애를 보여주었던 분도 옌볜 아줌마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에 시진핑 주석 곁에서 러시아 푸틴과 같이 서 있었던 장면을 옌볜 조선족 동포들은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국적은 중국이지만 그들은 아직도 한국이 조상의 나라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고 그들의 조국 한국이 자랑스럽게 세계에서 당당한 선진국 대열에 서 있음을 이야기한다. 중국에 있는 56개 소수민족 중 가장 교육열이 높고 처음 자치주로 선포된 지린성 옌볜지역은 언젠가 우리 조국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통일을 위한 초석이 될 것이고 그 밑거름이 될 것을 의심치 않는다. 언젠가 38선이 무너지고 대한민국의 KTX가 그리고 우리의 고속버스가 평양을 지나 옌볜으로 달릴 때 나도 조금은 통일을 위해 노력했었노라고 그 시민증을 보여주고 싶다.

/박국양 가천대 의학전문대학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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