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귀환, 사할린의 한인들

[끝나지 않은 귀환, 사할린의 한인들·4] 3·4세대 위한 교류 확대돼야

경인일보 창간 70 특별기획

고국어·문화 배울 기회조차 박탈… 국가·지자체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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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러시아 정부가 한인학교를 폐쇄한 이후 20여년간 한인들이 한국말과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이렇다 할 공간이 없었다. 1990년대 들어 남·북한은 한인 아동들을 위한 한글 교재와 동화책 등을 지원했다. 사진은 한글 동화책을 읽고 있는 사할린 한인 아이들의 모습. /새고려신문 제공

러시아, 1963년 한인학교 폐쇄 정착유도 ‘정체성’ 잃어가
1세대도 ‘현지 일원’ 성장 방해될까 안가르쳐 더욱 심화


사할린 거주 한인 2만4천여 명 중 사할린에서 태어나고 자란 3·4세대 한인들에게서 ‘한인’이라는 정체성은 점점 옅어지고 있다. 70대 이상이 대부분인 사할린 1·2세대가 세상을 떠나면, 그마저도 끊어질 것으로 우려돼 한국과의 교류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러시아인’으로 살았던 사할린 한인들의 50년



= 대일항쟁기 당시 일본령이던 사할린 남부지역으로 주로 이주했던 한인들의 자녀는 1949년까지 일본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다녔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사할린은 러시아 땅이 되고, 이들이 다니던 일본학교 대신 한인학교가 생겼다.

현재 사할린 한인 2세대(광복 전 사할린으로 이주한 한인의 자녀 중 1945년 8월 15일 이후 태어난 세대)가 어느 정도 한국말을 구사할 수 있는 것도 한인학교 영향이 컸다. 한인학교가 사할린 섬에 터를 일군 동포들의 말과 문화를 지키는 거점 역할을 했던 것은 1963년까지였다.

러시아 정부는 1963년 사할린 내 한인학교를 폐쇄했고, 뒤이어 사할린 주요 도시의 한인단체도 운영하지 못하게 했다.

사할린주역사고문서보관서 율리야 진(36·여) 박사는 “당시 한인들의 정착을 유도했던 러시아 정부는 사할린 한인들이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갖는 게 (정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판단해, 한인들이 한국말과 문화를 습득할 수 있는 곳을 폐쇄했다”고 설명했다.

진 박사에 따르면 러시아어를 하지 못해 공장에서 잡일을 하거나 농산물을 시장에 내다 파는 일 정도밖에 할 수 없었던 1세대 한인 대부분은 아들과 딸이 자신처럼 힘들게 살아가길 원치 않았다. 러시아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어에 능통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한국어를 배우는 게 오히려 러시아어를 습득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여겼다.

또한 1990년 한·러 수교가 체결되기 전까지 사할린 한인들이 ‘고국’의 언어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곳은 찾기 어려웠다. 이러한 과정에서 2세대는 러시아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했다. 한국어나 한국문화를 몰라도 생활에 불편함이 없었고, 이 같은 모습은 이후 세대인 3·4세대에서 더 심화된 형태로 나타났다.

사할린국립대학 한국학과 임엘비라(41·여) 교수는 “한·러 수교 이후 이제는 사할린 내 일부 학교에서도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이전에는 한인들이 한국어나 한국 문화를 배울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 교류 확대 위해 정부·지자체 나서야

= 인천시 남동구에서 사는 유순옥(74·여) 씨는 사할린에서 태어난 1세대다. 그는 유창하게 한국어로 말할 수 있지만, 그의 자녀와 손주들 모두 한국어를 모른다. 유씨는 “그때 생각으로는 아이들은 러시아에서 학교에 다니고 직장을 얻어야 했기 때문에 일부러 한국어를 가르치지 않았는데, 지금은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할린 한인 3·4세대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지만, 정부는 영주 귀국 대상자 이외의 사할린 한인 3·4세대에 대해서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각 지자체에서 3·4세대를 대상으로 행사를 열고 있지만, 그 규모는 미미하다.

인천시 남동구는 매년 ‘사할린 동포 후손 3·4세를 위한 모국 바로 알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2년부터 진행됐으며, 여름 방학기간 모국인 한국을 방문한 사할린 한인의 후손을 대상으로 한국어·태권도 교육, 한국문화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고국에 방문한 사할린 한인이 대상이기 때문에 참여한 인원은 10여 명에 불과하다. 남동구 관계자는 “방문하는 후손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사할린에 거주하는 한인과의 직접적인 교류는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다문화교육연구센터 박봉수 연구원은 “국가나 지자체가 나서서 사할린 한인과의 교류를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사할린에서 발행되는 유일한 한글신문인 새고려신문도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등 그나마 남아 있던 사할린의 ‘한인 문화’가 줄어들고 있다. 사할린 한인과의 교류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유즈노사할린스크·인천 남동구 /정운·강기정기자 jw33@kyeongin.com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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