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영웅 명성황후의 몰락

윤진현

발행일 2015-10-26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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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낭인에 죽지않고 살았다해도
국권은 지킬 수 없었을 듯
내우 해결위해 외세 끌어들이는
조선왕조 몰락은 피할수 없었다
국가이익보다 자신이 우선되고
백성 탐학하며 민심 호도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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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장안의 찬사란 찬사는 오롯이 독차지하는 듯한 창작뮤지컬 ‘명성황후’가 20주년을 맞았다고 한다. 작품성에 대한 과장된 평가나 역사인물 명성황후에 대한 쇼비니즘적 미화라는 비판 등 작품을 둘러싼 설왕설래야 어떻든 한때의 설레는 경험이 되기에는 충분하다. 상투적으로 지적하는 공연계의 척박한 현실을 염두에 두면 어떤 작품이든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을 모으고 있다는 것이 다행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작품으로 보면 ‘명성황후’ 캐릭터는 실물에 한참 미달하다. 이 희귀한 여성영웅을 시종 애국적인 조선의 국모로 포장하여 밋밋하기 짝이 없는 평면적인 인물이 되고 말았다.

명성황후는 15세 어린 나이에 왕비로 간택되어 무소불위 철혈정치인이던 흥선대원군 밑에서 힘을 키웠고 안팎의 적대세력이 창대한 중에도 지지세력을 모았으며 불과 22세에 대원군의 섭정을 끝장낸 대단한 여성정치가이다. 60여년 계속된 안동김씨의 세상, 10여년 계속된 대원군의 세상에서 이렇다 할 친정도, 정치세력도 없는 어린 소녀가 명실상부 조선의 여왕이 되기까지 순탄했을 리 없다. 명성황후의 일생은 셰익스피어 비극의 문제성, 왕족으로 태어나지 않은 맥베드가 못생긴 곱추로 왕위 계승에서 제외되었던 리처드 3세가 왕위를 욕망하면서 발생하는 문제적인 사건과 선택이 보여주는 비극성을 능가한다.

물론 대단하다는 것이 반드시 옳다거나 바르다는 뜻은 아니다. 임오군란, 그 배후를 대원군으로 지목하고 수구파와 민씨 일파의 정쟁으로 보기도 하지만 원인은 확실히 군병의 급료 때문이었다. 밀린 군료를 지급했으나 겨와 모래가 섞이고 양도 절반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국가에서 이런 일이 생겨서는 안된다. 당시 이를 책임지던 자는 민겸호였고 그는 중전 민씨의 일족으로 그런 만행을 저질렀다. 이 사태의 근본적 책임자로 중전 민씨로 지목된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고 결국 중전 민씨는 궁을 버리고 도망하기까지 하였다.

이때의 경험은 중전 민씨에게는 엄청나게 치욕스러운 일이었던 듯하다. 후일 동학혁명이 발발했을 때, 고종은 청나라에 구원을 청하려 하였다. 이때 민영준이 청군을 움직이면 각국의 군사가 모두 움직이게 되는 점을 지적하며 반대하자 중전 민씨는 “내가 차라리 왜놈의 포로가 될지언정 차마 다시 임오년의 일은 당하지 않겠다”고 일갈하여 청군을 움직이게 되니 곧 청일전쟁의 시초였다. 청국이 섬나라 왜국에 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지만 일본은 승리하였고 이로부터 조선 내에서 우위를 다져갔다.

‘왜놈의 포로’조차 불사하겠다던 중전 민씨는 끝내 1895년 10월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가 지휘하는 일본 낭인들에게 살해되고 말았으니 여우를 피하려다 늑대를 만나 격이랄까. 이렇게 보면 조선의 국모라는 명성황후의 빛도 바래고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뛰어난 정치력도 의심스러우니 결국 대원군쪽에서 표현했듯 조선을 망하게 한 한낱 암탉에 불과한 것일까? 그러나 일본인의 음모가 명성황후를 향했다는 것은 당시 국정의 중심이 중궁에 있었다는 뜻이다. 비하해서 될 일이 아닌 것이다. 더구나 중전 아니라 일개 필부라고 해도 낭인의 칼부림에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일본 낭인의 손에 죽었다고 명성황후가 모두 옳고 잘했다고 미화하는 것도 안될 일이다. 만약 명성황후가 이때 죽지 않고 살았더라면 조선은 국권을 지킬 수 있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듯하다. 내우를 해결하려 외세를 끌어들이는 정권이니 조선왕조의 몰락은 피할 수 없었다. 전통적인 왕권의 중심에는 국가와 왕이 곧 하나라는 일체성이 있었다. 국가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이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 일치가 와해되고 백성이 적대세력이 되니 국가의 이익보다 일신의 이익이 우선이 되고 그러므로 백성을 탐학하고 민심을 호도하는 일이 반성 없이 자행되었다. 큰 나무는 비바람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썩어 무너지는 법이다. 무엇을 두려워해야 할지 다시 생각할 시점이다.

/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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