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없는 아이들, 두번째 이야기·상] 떠나지 못하는 2세들

“발버둥쳐도 바뀌는 것 없지만… 새로운 시작 더 두려워”

최재훈·황성규 기자

발행일 2015-11-03 제3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국적없는아이들
대잇는 고통 파키스탄 출신 불법체류자 카탈루(가명 30·여)씨가 딸 다니아(가명 6)와 함께 자신의 집으로 향하고 있다. 이 동네는 폐공장 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열악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최재훈기자cjh@kyeongin.com

“고국도 부모님의 나라일뿐”
한국서 가정까지 꾸려 정착
“아이들은 나아지길” 기도만


경기도 내 한 외국인복지센터에서 다니아(가명·6)양을 만났다. 파키스탄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생김새는 사뭇 달랐지만, 태어나서 자란 곳이 한국이다 보니 뽀로로를 좋아하는 여느 6세 소녀들과 다를 바 없었다. 가족을 소개시켜 주겠다는 다니아를 따라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인적이 드문 황량한 곳을 지나 마치 폐공장 터를 방불케 하는 장소에 이르렀다. 거기서도 좁은 골목과 계단을 몇 차례 오르내리기를 반복한 끝에 몇 채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 앞에 도착했다. 이곳 중 한 곳이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이웃집 모두 다니아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녀의 집에는 엄마(30)와 9개월 된 동생이 있었다. 동생이 태어나고 엄마가 일손을 놓게 된 탓에 다니아가 아빠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어졌다.

유치원에 갈 수 없어 대신 외국인복지센터에 다니고 있는 다니아는 그녀에게 주어진 앞으로의 험난한 삶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듯 시종일관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반면 이를 바라보는 다니아의 어머니 카탈루(가명)씨의 눈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10대의 나이에 부모를 따라 한국에 건너와 ‘국적 없는 아이들’ 신분으로 숨죽이며 살아 온 그녀였기에, 누구보다 그 고통을 잘 알기 때문. 그녀는 “한국에서 10년 넘게 살며 겪었던 온갖 핍박과 고통을, 내 아이들이 그대로 이어받게 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진다”며 “우리 아이들 세대에는 좀 더 나아지길 바란다”고 하소연했다.

학생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아이클락아트

지난 2002년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하와(가명·23)씨는 커피숍에서 3년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무역을 전공하는 것이 꿈이었지만, 국적이 없다는 이유로 그녀는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던 그녀는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아봤지만 결국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하와는 고등학교 때까지 성실하게 학업에 몰두한 소위 모범생 스타일의 학생이었다. 하지만 캠퍼스 생활을 하며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고 취업에 대비하는 또래의 대학생들과 달리,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르바이트가 전부다.

하와는 “정식으로 취업을 해서 일을 할 수가 없다 보니, 아르바이트 같은 시급제 일 밖에 할 수가 없다”며 “더 비참한 건 아무리 열심히 살아보려 발버둥쳐봐도 나아지는 게 없고 바뀌는 게 없다는 것이다”고 토로했다.

그녀는 한국이 싫다고 말한다. 하지만 돌아갈 곳이 없다. 그녀는 “꿈을 펼치기는 커녕, 불법체류자로 신고하겠다며 쥐꼬리 만한 급여조차 못 받는 게 현실이라”며 “그럴 때마다 부모님의 나라인 방글라데시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모님의 나라일 뿐 한국 문화에 익숙한 내가 새로운 환경에서 시작한다는 건 그 자체로 두려운 일이다”이라고 털어놨다.

성인이 된 국적 없는 아이들 1세대는 ‘떠나느냐 남느냐’의 문제로 갈등하면서도, 결국 자신이 뿌리를 내린 대한민국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간절함과 달리 현실은 이들에게 ‘불법체류자’라는 낙인만 더욱 짙게 새기고 있다.

/최재훈·황성규기자 cjh@kyeongin.com

최재훈·황성규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