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광복 70년을 말하다·7] 정기철 경기도체육인회 회장

경쟁보다 ‘존중·이해’… 각박한 세상 ‘희망 체육’ 외치다

신창윤 기자

발행일 2015-11-03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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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정기철 초대 도체육회 사무처장55
경기 체육의 초석을 다지며 체육 발전을 이끌어 온 정기철 경기도체육인회 회장이 ‘전국체육대회 종합우승배’를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이 종합우승배는 1980년대 종합우승을 차지한 시·도에 주어졌다. 그러나 2007년 제88회 대회부터는 새로운 도자기 모양의 종합우승배가 만들어져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81년 경기도 분리때 체육회 초대 사무국장
3개월만에 전종목 팀 꾸려 ‘체전 7위’ 성과
비인기·기초종목 시·군 실업팀 이끌어내
경기체고 설립등 道체육발전 디딤돌 역할

선수·지도자 은퇴후 ‘막막’ 미래 관심 필요
언론 ‘엘리트·생활체육 통합’ 대안 제시를


붓을 제대로 굴려라. 언론이 정곡을 제대로 짚어주길 바란다.
의기소침하지 않고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그런 기사가 요즘 체육인들에게 필요하다

“언론의 힘은 정직한 붓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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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체육의 기반을 다져온 장본인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 경기체육이 전국체전에서 통산 28번째 우승컵과 세계 글로벌스타를 배출해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경기체육의 초석을 다져준 원로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 가운데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젊은이들 못지 않게 경기체육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하는 원로가 있다. 주인공은 경기도체육인회 정기철(81) 회장이다.

지난달 29일 수원 경기도체육회관 임원실에서 정 회장을 만났다. 그에게 지나온 경기체육에 대해 묻자 대뜸 이런 얘기부터 꺼냈다. “언론의 힘은 정직한 붓에 있는 거야. 똑바로 써야 체육이 바로 서는 거야. 지금 (엘리트-생활체육)통합체육회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언론은 뭐하는 거야”라고 말이다.

정 회장은 1981년 경기도와 인천시가 분리된 후 경기도체육회 초대 사무국장을 맡아 16년 동안 도체육회를 이끌었고, 도체육회 부회장으로 5년간 봉사하는 등 20여년을 경기체육의 발전에 기여해왔다. 또 2008년부터 경기도체육인회 회장을 맡아 경기체육의 자문역할을 해주고 있다.

우선 경기체육에 대해 그는 “1981년 인천시가 광역시로 승격돼 경기도가 분리되자 무척 난감했다. 그해 7월13일 도체육회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걱정이 앞섰다”면서 “당시 도체육회가 인천으로부터 받은 것은 달랑 체육회기 한 개가 전부였고 가맹단체라고는 조정협회만 있었다. 직원이나 서류도 없이 체육회를 만들어야 했고, 3개월 뒤 열리는 전국체전 출전 선수는 30%도 안돼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목표로 착실히 기초를 쌓아 올렸다. 우선 사무실을 마련하기 위해 수원운동장(수원종합운동장) 토담(흙으로 쌓아올려 만든 담) 밑에 방 하나를 꾸렸고, 체육에 관여했던 사람들을 모아 조언을 들어가면서 가맹경기단체를 만들었다.

특히 정 회장은 전국체전에서 꼴찌를 면하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참가점수를 얻고자 각 학교 체육 동아리 회원들을 찾아 나섰다. 정 회장은 “당시 동아리 학생들을 체전에 출전시키기 위해 출전비와 숙박비 등을 무료로 제공하는 당근책을 썼다. 학생들도 경기도 대표로 출전한다는 말에 무척 좋아했다”고 전했다.

정 회장은 1개월 뒤 예산도 없이 수원상공회의소에 도체육회 사무실을 꾸몄다. 그는 전세금 2천만 원이 없어 전전긍긍하며 상공회의소 총무과장을 피해 출장만 다녔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27개 전 종목의 팀을 꾸린 정 회장은 1981년 제62회 전국체전에 ‘경기도’라는 이름으로 첫 출전했다. 물론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13개 시·도 가운데 7위를 기록한 것. 그러나 그의 생각은 멈출 시간이 없었다. 도지사를 통해 가맹경기단체의 회장들을 선임했고, 1년 내 33개 종목을 만들었다.

하지만 경기도는 83년부터 3년 연속 종합 5위에 머물며 더 이상 성적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원인은 비인기종목의 선수 부재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시·군에 실업팀을 창단하는데 앞장섰다.

도지사로 하여금 시장·군수에게 실업팀 창단을 맡겼고, 가맹경기단체 회장 및 전무이사들과 협의를 통해 종목 활성화에 앞장섰다. 물론 체육인 지도자 양성 및 취업 계획도 포함시켰다.

정 회장은 “당시 지사님이 36개 시장·군수들을 모아놓고 1~2개 팀씩 창단을 지시했다. 이것이 전국 최초의 시·군 직장운동경기부였다. 당시 이 계획은 획기적이었고, 그 결과 인천 분리 후 5년만인 1986년에 첫 종합우승컵을 차지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평택시청의 요트, 화성시청 사격·펜싱 등은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전통의 팀이 됐다.

물론 정 회장은 검도, 유도 종목 활성화에 이어 국군체육부대까지 경기도 소속팀으로 끌어들여 종목 다변화에 힘을 쏟았고, 이후 서울과 1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

정 회장의 체육 열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꿈나무 육성에 다시 박차를 가했다.

정 회장은 ‘경기체고가 있어야 겠다’는 생각에 경기도와 교육청을 설득했지만, 도 의회에서 부결되는 아픔도 겪었다. 그러나 그는 시·군체육회 사무국장들을 소집해 경기체육고 설립의 당위성에 대해 설명했고, 결국 지금의 경기체고를 탄생시켰다.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에 위치한 경기도체육회관도 정 회장의 손길이 없었으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는 “체육회관을 짓기 위해 도에 요청했고, 도지사의 지시로 체육인들에게 배지를 팔아 13억원의 기금도 조성했다”면서 “관선지사 때니까 가능했던 일이다. 약 73억원을 들여 1992년 5월 마침내 회관이 건립됐다”고 피력했다.

도체육회 사무처장과 지역 언론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했다. 정 회장은 “사무처장은 적어도 4~5년 정도는 해야 한다. 도체육회 가맹경기단체가 50여 개가 넘는다. 그럼에도 1~2년 안에 그만두면 체육회 운영이 잘 되겠는가. 사무처장이라면 중앙단체도 알아야 하는 만큼 오랜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경기도는 전국에서 경제면이나 인구수에서 가장 많다. 그런 이유로 체육도 1등을 당연시하고 있다”면서 “체육인들이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여론을 조성하는 것은 언론의 임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 회장은 “초창기 때 지역 언론은 경인일보 밖에 없었다. 특히 지금처럼 언론매체가 다양하지 않았던 시절, 경인일보는 미래를 밝혀주는 빛과도 같았다”면서 “대부분의 도민들은 경인일보 신문을 외울 정도로 열독률이 높았다”고 전했다.

또 “경인일보 스포츠는 경기체육이 초석을 다지고 발전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내가 어려울 때 담당 기자에게 부탁도 했다(웃음)”고 덧붙였다.

앞으로 경기체육의 방향에 대해서도 정 회장은 “이제 체육인들도 머리를 맞대고 미래 먹거리를 생각해야 한다. 정부도 체육인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가져줘야 한다”면서 “현재까지도 선수나 지도자들이 은퇴 후 갈 곳이 없다. 일부는 불법 도박에 범죄까지 이르고 있다. 대안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 통합에 대해서도 그는 “과연 지금 이 시점에서 통합이 얼마나 제대로 이뤄지겠는가”라며 “엘리트 선수들은 설 자리를 잃을 수도 있고, 생활체육은 양적으로 늘려갈 수도 있다. 양 단체가 밥그릇 싸움만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면서 “언론에서도 통합에 관한 장·단점을 분석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엘리트 스포츠나 생활체육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 아닌가. 이 점을 인식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붓을 제대로 굴려라. 언론사마다 사정이 있겠지만, 정곡을 제대로 짚어주길 바란다. 모든 체육인들이 의기소침하지 않고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그런 기사가 요즘 체육인들에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끝으로 체육인들에 대해 “체육계도 경쟁력보다는 서로 존중하고 상대를 이해해 주는 관계가 필요하다. 각박한 요즘 세상이지만, 체육이야말로 국민들에게 용기와 자부심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희망을 갖고 각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원로-정기철 초대 도체육회 사무처장9

■ 정기철 회장 약력

▲1934년 경기 화성 출생
▲1953년 수원고 졸업
▲1957년 건국대 정치대 법과 졸업
▲1972~1980년 화성군 정남면장·오산읍장
▲1981~1996년 경기도체육회 이사 겸 사무처장
▲1985~1997년 대한체육회 이사
▲1990년 베이징아시아경기대회 한국선수단 임원
▲1991~1993년 민주평화통일정책자문위원
▲1994~2007년 새오산신용협동조합 이사장
▲1997~2001년 경기도체육회 부회장
▲2001~ 경기도체육회 고문
▲2008~ 경기도체육인회 회장

<수상경력>
▲1973년 내무부장관 표창
▲1987년 경기도문화상
▲1990년 대통령 표창(제70회 전국체전 유공)

/글 = 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 · 사진 =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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