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대] 흙수저론과 헬조선

김방희

발행일 2015-11-05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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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과 연소득이 각각
5천만·2천만원 이하면 ‘흙수저’
많은 청년들이 이계급에 속하면
노력해도 못 벗어난다고 느껴…
당장의 고통보다 더욱 힘든건
쉽게 탈출 못한다는 좌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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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지난 몇 달 간 수저 계급론이 급속도로 정교해졌다. 수저로 신분을 구분하는 이 속설은 ‘입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영어 관용구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젊은 세대로부터 열렬한 공감을 샀다. 그들은 각 계급의 특성과 양상을 구체적으로 덧붙였다. 그 결과 지금은 우리나라의 카스트 제도(인도에서 출생시 결정되는 사회적 계층 제도)로까지 발전하는 양상이다.

사람들은 네 가지 계급으로 나뉜다. 금·은·동 수저 그리고 흙수저. 경제적으로 따진다면, 금수저는 20억원 이상의 자산에 2억원 이상의 연소득을 구가하는 계급이다. 자산과 연소득이 각각 5천만원과 2천만원 이하라면 흙수저다. 금수저보다 더 누리고 사는 계급으로 플래티늄이나 다이아몬드 수저도 등장했다.

단순히 재산과 수입이 구분의 전부는 아니다. SNS 상에서 회자된 흙수저 빙고게임은 자신의 소속 계급이 흙수저인지를 판별해보는 항목들이다. 여기에는 ‘화장실에 물 받는 대야가 있음’이라거나 ‘집에 곰팡이 핀 곳이 있음’ 등이 있다. 심지어 ‘부모님 취미생활 없음’ 같은 지표마저 있다. 흙수저의 겨울나기라는 글에는 이 계층에 속한 청년들의 고단한 삶이 지독하리만치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다. 보온과 가습을 동시에 해결하는 이들의 월동 현실과 묘안은 방 안에서 버너로 물을 끓이는 방법이다. 하룻밤 부탄가스 사용량은 400원 가량. 한 달 1만2천원이면 추위와 건조를 견딜 수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에서 사회적 이동성(social mobility)이 심각하게 축소되고 있다는 논란이 일었다. 한 계층에서 더 나은 계층으로 올라서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한 세대에 걸친 경제적 이동성이나 탈빈곤율로 입증되곤 했다. 그보다 더욱 우려되는 현실은 부모 세대와 자녀 간의 세대 간 이동성 문제였다. 부모의 재산 혹은 소득과 자녀들의 그것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논거들이 많이 제시됐다. 한 때 기회의 땅이라고 여겨졌던 미국에서 이 사실은 더욱 큰 충격을 주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상위 계층을 제외한 계층에 대한 기회의 제한이 주로 이 무렵 심화된 소득 불평등에 기인한다고 믿고 있다.

선진국의 사회적 이동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우리 사회에는 있었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 한 세대 내에서건 세대 간이건 우리는 사회적 이동성이 높은 편인 나라였다. 우리의 경우 사회적 이동성 문제에서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온 것은 교육이었다. 누구든 좋은 교육을 통해 경제적으로 한 단계 더 나은 계층으로 올라설 수 있다. 부모뿐만 아니라 자녀 세대 역시 그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좋은 교육의 기회조차 상위 계층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더욱이 상위 계층이 아닌 이상 좋은 교육조차 예전처럼 계층 이동의 확실한 수단은 아니라는 증거가 분명해지고 있다. 부모 세대인 산업화 세대가 쌓아놓은 계층의 벽이 계급이라는 성(城)처럼 확고해져서, 개인으로서는 이를 넘어서거나 부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수저 계급론을 청년들의 풍자나 객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꼭 이들의 인식이나 자조를 부정할 수 없는 현실 때문만은 아니다. 이 속설이 풍기는 뉘앙스를 한 번 생각해보라. 많은 젊은이들이 태어나면서 이 계급 구조에 속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나기 수월하지 않다고 느낀다. 당장의 고통보다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은 그것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는 좌절감이다.

그야말로 ‘헬조선’이다. 이를 두고 그들의 패배주의적 인식이나 잘못된 역사 교육 탓이라고만 한다면 견강부회(牽强附會)다.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최근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사회의 건강도를 따지는 기준으로 젊은이들의 마음을 거론했다. “어떤 젊은이가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면서 잠에서 깼을 때 어제와 같거나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이보다 더한 재앙은 없다.”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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