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국면 전환의 정치학

최창렬

발행일 2015-11-18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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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화 이슈’ 예산심의·민생법안 논의자체 차단
여 ‘발빠른 전환’-야 ‘만성 무기력’ 기대 부응못해
여권 ‘의제설정’ 야당 압도… 與, 다음카드가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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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가치판단이 배제되는 정치는 패권정치로 흐르기 십상이다. 가치의 지향이라는 정치의 본령이 낯설어진지는 오래됐다. 다이내믹스와 불가측의 정치가 일반화되고 있는 정치현실이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로 마냥 합리화될 수는 없다. 여야 정당 내부의 역학관계와 권력지형의 변화 등 정치적 현상들은 정치 그 자체의 동력으로 추동된다. 이는 권력정치적 관점에서의 정치현상이다. 그러나 정치가 권력을 추구하는 본질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또 한편의 간과할 수 없는 영역이 계층간의 사회경제적 간극을 메꾸고 분출되는 갈등을 관리하는 정치 본연의 임무다.

여권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를 제기한 이후 정부의 국정화 확정 고시가 있었고, 새누리당은 새정치연합의 반발을 민생발목잡기로 야당을 몰아붙였다. 정기국회 기간의 상당 부분을 뜬금없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소진하게 된 원인 제공자는 여권이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찬반 여부와 무관하게 국면을 재빨리 전환하여 야당에게 역공을 취하는 형국이다. 야당은 이슈에 끌려다니면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교과서 정국은 야당의 지지율 상승과 연결되지 않고 오히려 새누리당 지지율 상승으로 나타나는 한국정치의 역설을 목도한다.

정국을 주도하려면 의제 설정에 능해야 한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당위 여부와는 별도로 국정화 이슈는 정기국회의 예산심의와 새누리당이 그토록 강조하는 민생법안의 논의 자체를 차단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야당은 전선을 형성하고 공세적으로 나왔으나 교과서 정국에서 이슈를 주도한 측은 여당이었다. 이후 유승민 의원 부친 상가에서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의 TK 물갈이 관련 발언이 있은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언급한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 달라’는 이른바 총선심판론은 정치권에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국회에 대한 압박과 새누리당 비박에 대한 경고로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야당이 선거개입 가능성을 거론하고 나왔으나 이슈화시키지 못했다.

12일에는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이 이원집정부제를 의미하는 반기문 대통령과 친박 총리의 조합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면서 정치권은 또 한바탕 소동을 겪었다. 청와대는 부인했으나 발언자가 친박계 핵심이라는 점에서 여러 정치적 상상력이 동원되었다. 청와대와 친박사이에 교감이 있었는지, 아니면 청와대의 암묵적 묵인하에 친박 내부의 총선 이후 개헌에 대비한 공론화 과정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여권은 언제든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개헌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을 만들어 갈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여권의 국면 전환에 정치권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다. 야당이 개헌을 제기했다면 민생을 팽개친 정략적 발상이라고 집중포화를 맞고 지지율은 곤두박질할 것이다.

지난 대선 때도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선점한 측은 새누리당이었다. 야당 정체성의 핵심을 자신들의 의제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고 결과는 새누리당의 대선 승리로 이어졌다. 민주주의의 대표적 이론가의 한 사람인 아담 쉐보르스키는 민주주의란 ‘결과의 불확실성을 제도화’한 체제라는 함축적 정의를 내린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정치는 단기적 국면에서는 불가측성이 지배적이나, 중장기적으로는 쉐보르스키의 말과는 정반대로 ‘결과의 확실성의 제도화’로 가고 있다. 여권의 발 빠른 국면전환과 야당의 만성화되고 고질화된 무기력증이 만들어낸 합작품이 정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하고 있다. 대안정당으로의 가능성이 전무하다시피 한 야당에게서 정권교체의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2030과 전통적 야당 지지자들이 한국사회의 변화 가능성을 찾을 공간은 전무해진다.

정치가 현실 속에서 승부를 내야 하는 게임의 성격이라는 권력정치에 무게를 둔다면 국면전환의 정치기술은 필요악이다. 규범적 정치학의 관점에서 이를 비판하는 것은 부질없는 약자의 푸념이다. 세대효과와 60대 이후 세대의 인구 구성비의 상대적 증가, 그리고 장년 이상 세대의 높은 표의 결집도를 감안한다면 정치지형 자체가 야당이 불리하다. 게다가 의제 설정과 국면 전환의 정치공학은 여권이 야당을 압도한다. 다음 장면에서의 여권의 국면 전환용 카드가 궁금해진다.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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