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YS에 대한 인천 기억과 인물 재조명

박현수

발행일 2015-11-25 제13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강화·옹진 편입과 송도 갯벌매립 신도시조성 결정
하나회 해체 ‘軍정치개입 차단’ 군부통치 종식시켜
산업·민주화… 지금의 대한민국 만들어 낸 디딤돌


2015112501001787300095501
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로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수 놓았던 민주화 세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김 전 대통령은 6년 전 세상을 떠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양김으로 불리며 부국강병이 최우선이라는 산업화 세대의 국가우선론에 끈질기게 저항하고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온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의 법칙은 거스를 수 없다지만 한 시대를 이끌었던 두 사람을 모두 보내니 새삼 허망하고 안타깝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인천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인천이 지금처럼 넓은 면적을 가진 국제도시로 자리매김 한데는 그의 공이 크다. 강화와 옹진을 경기도에서 떼어내 편입시켰고 김포의 검단면이 인천의 시계로 들어온 것도 김 전 대통령 재직시절이다. 갯벌로 남아있던 송도 앞바다를 매립해 신도시를 만들도록 결정한 것도 그였고 인천공항을 세계적인 공항으로 키우도록 한 것도 그였다. 지금 인천의 모습은 기실 김 전 대통령에 의해서 자리매김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어쩌면 김 전 대통령은 투옥과 연금이 반복되고 국회의원직에서 조차 제명당하던 1970~80년대의 엄혹한 시기를 민주화의 소명의식으로 버텼고 그 과정에서 노동운동과 인권운동의 성지로 자리매김하며 수도권의 민주화 전진기지 역할을 해온 인천에 대해 동지의식이나 부채의식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대한 갑론을박은 현대사에 굵은 족적을 남긴 이승만과 김구 박정희와 김대중에 대해서처럼 현재 진행형이지만 꼭 첨언 하고 싶은 게 있다. 미시적으로 보지 말고 거시적으로 보고 부분으로 판단하지 말고 전체를 보고 평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며 90년 노태우 대통령의 민정당과 전격 합당해 여당정치인으로 변신한 김 전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시비가 분분하지만 92년에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 보여준 행보는 왜 합당을 결심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93년 취임하자마자 그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전격적인 방식으로 하나회를 해체하고 군의 정치개입을 원천 차단해 40여년을 이어온 군부 통치를 종식 시켰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부정부패를 뿌리 뽑겠다며 전광석화처럼 금융실명제를 도입했고 95년 민선 단체장을 선출하면서 반쪽짜리 지방자치를 진정한 지방자치로 전환했다. 감(感)의 정치인으로 불린 정치인답게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난제들을 더운 여름날 찬물에 식은 밥 말아먹듯 후루룩 해치웠다. 3당 합당만으로 비난하기엔 공이 더 크지 않을까.

되돌아보면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갈등은 숙명적이기도 하다. 하루에 밥 한끼 먹기도 힘들고 미국의 원조에 국가 재정의 거의 대부분을 기대야 했던 시절에 부국강병이 최우선이며 생계문제 해결이 민주주의보다 앞선다는 산업화의 논리는 절박하기조차 하다. 그럼에도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존중해야 하고 진정한 부국강병을 위해서라도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민주화 세대의 주장도 강한 호소력이 있다. 누구의 논리가 옳고 그른지를 여기서 따지고 싶지는 않다. 분명한 것은 산업화와 민주화로 지향하는 가치는 서로 달랐지만 둘 다 우리 역사의 소중한 유산이라는 사실이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낸 디딤돌이라는 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우리 사회도 이제는 인물에 대해 좀 관대해지고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 곪은 상처에 현미경 들이대듯 미시적인 부분까지 후벼 파지는 말자는 얘기다.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 역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들에 대해 공은 좀 높이고 과는 좀 낮추면 어떨까. 신이 아닌 인간에게 공과(功過)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평가는 각자의 시각에 따라 다르다. 그렇다면 시선을 여유롭게 하면 어떨까. 가뜩이나 인물이 없는 시대에 그래도 존경할만한 사람이 한 두 사람 있는 것도 나쁘진 않으니까. 현대사의 거목들에 대한 우리의 평가가 이제는 좀 후해졌으면 싶다. 그게 갈등과 분열을 줄이고 소통과 화합하는 길이기도 하다.

/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박현수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