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모든 것을 기억하고 품을 뿐이다. 그것이 산의 존재방식이며 땅의 이치이다. 그러므로 ‘대호’는 호랑이와 포수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산에 관한 이야기인지 모른다. ‘신세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박훈정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 ‘대호’가 개봉됐다.
‘신세계’가 경찰과 폭력조직(혹은 기업)이라는 두 거대 조직 간의 대결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살아남는가를 보여줬다면, ‘대호’는 근대와 전근대라는 두 시간 사이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소멸해 가는가를 그리고 있다.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 포수와 맹수라는 대립구조, 그리고 호랑이라는 민족적 상징에 매몰되지 않고 영리하게 조금씩 비껴나가면서 시간의 단층을 드러낸다.
영화속 일본군과 포수대가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대호를 쫓는 이유는 가죽을 얻기 위함이다. 가죽이란 형체는 있으나 생명이 사라진 껍질일 뿐이다. 산주, 혹은 산군이라 불리는 대호는 좁게는 민족혼의 상징이며 넓게는 산으로 표상되는 땅의 생명과 순리이거나 전통적 삶일 것이다.
제국주의 또는 근대의 폭력 앞에서 저항해 보지만 점차 힘을 잃어가는 대호와 포수 만덕은 가죽이 되어 남기를 거부한다. 그들의 마지막 선택은 ‘델마와 루이스’(1991)의 비약을 떠올리게도 하며 ‘취화선’(2002)의 초월과 닮아있기도 하다.
그리고 모든 일은 산에서 이루어진다. 순응할 수도, 더 이상 저항할 수도 없는 이들의 탈주는 흰 눈과 시간 속에 삼투된다.
번번이 대호 사냥을 실패하자 일본군이 동원한 방식은 폭약이다. 엄청난 양의 폭약이 터지는 스펙터클은 산이 파괴되는 현장이다. 흙이 튀고 아름드리나무가 꺾인다. 산짐승들은 영문도 모른채 무차별적으로 학살된다.
땅의 질서와 생명의 가치가 훼손되는 참혹함 앞에서 드는 한 가지 질문은, ‘우리 인간의 스펙터클은 왜 항상 폭력적인가?’ 하는 것이다. ‘대호’의 애잔함이 통렬한 이유이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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