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새해만 되면 소망하는 것들…

박현수

발행일 2016-01-06 제13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지난해 풍자로 회자됐던 ‘헬조선인·수저계급론…’
청·장년세대들 어둡고 답답한 현실 애처롭게 견뎌
올해엔 절망 없는 희망의 사다리 놓여졌으면…


2016010501000282600012941
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잿빛 구름이 낮게 드리워지고 미세먼지가 공간을 가득 메운 회색빛 세상은 답답하고 암울하다. 희망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꿈은 현실과 유리된 환상이 되어 허공을 맴돈다. 한여름날 뜨거운 햇살을 견디며 사막을 건너는 상인들에게 죽음을 넘어서는 용기가 필요하듯 그런 세상 그런 세월을 견디며 살아 내려면 비상한 각오로는 부족하다. 해학과 풍자로 시름을 달래며 고통을 견뎌내는 것도 절망의 사막을 건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지난 한해 우리 현실이 그랬던 듯싶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단어가 ‘한국이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를 뜻한다는 헬조선(Hell朝鮮)이었으니 말이다. 뜻이 너무 끔찍하고 무서워 이건 아니다 싶기도 했지만 취업에 절절매고 현실에 절망하는 아이들을 돌아보니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수저로 구분하는 신계급론도 그렇다. 부모의 재산에 따라 금수저·은수저·동수저·흙수저로 계급이 나뉘고 부모 자산 20억원 이상, 또는 가구 연수입 2억원 이상이 되어야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이 따라 붙는다. 흙수저는 부모 자산 5천만원 이하, 가구 연수입 2천만원 이하를 의미한단다. 이걸 보면서 내 자식들은 어느 계급인지 약삭빠르게 계산하다가 아주 빠른 동작으로 생각을 지웠다. 아무리 살펴도 금수저나 은수저는 절대 아니니 아이들에게 딱히 할 말이 없어서다. 팍팍하고 답답한 현실에 절망한 이 땅의 청춘들이 지난 한해 이런 풍자와 해학을 통해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견뎌내며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오려고 아주 질긴 생명력으로 죽을힘을 다했다. 애처롭고 애틋하다. 그나마 청춘들이야 이렇게라도 울분을 토하지만 어중간한 처지의 장년 세대도 힘들긴 똑같았다. 60세 정년을 보장한다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40대 늦춰 잡아도 50대 퇴직이 당연시되는 게 현실이다. 그것도 모자라 ‘사람이 미래다’라고 외치던 어느 대기업은 ‘사람이 귀찮다’며 20대 신입사원들까지 희망퇴직이라는 참으로 고운 언어로 포장해 퇴출해 버렸다. 물론 나중에야 여론의 눈치가 무서워 담쟁이덩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철회하긴 했지만 말이다.

한국이 놀라운 60가지 이야기라는 것도 한동안 회자 됐다.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고, 복지 지출은 꼴찌다. 성 평등 순위는 136개국 중 111위다. 노인 빈곤율 1위에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도 OECD 평균보다 쉽다. 그런데도 더 쉬운 해고가 필요하다고 아우성이다 ‘한국이 놀라운 60가지 이유’ 중 몇 가지 사례다. 60개의 뉴스 화면을 갈무리한 합성 사진은 ‘한국이 헬조선인 60가지 이유’와 수저계급론의 근거로 세간에 오르내렸다.

바라건대 올해는 더 이상 이런 얘기들이 화제의 중심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절망을 요구하는 강제퇴직도 없었으면 싶다. 일자리 창출한다면서 비정규직만 잔뜩 양산해놓고 일자리 늘었다고 흰소리하는 일도 그만두었으면 한다. 맨날 쌈질만 한다고 욕먹는 정치권도 올해는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줬으면 좋겠고 그런 정치권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며 책임을 슬그머니 떠넘기는 일도 없었으면 싶다.

힘든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으면서 이런 푸념밖에 할 수 없는 기성세대인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젊은 세대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절망이 지배하는 사회는 불행하다. 낭떠러지에도 끝이 있고 어둠이 아무리 깊어도 햇살은 스며든다는 평범한 진리가 실현되는 그런 새해였으면 좋겠다. 잿빛구름 걷어내고 미세먼지도 날려버리면서 진흙탕 속에서도 연꽃이 피고 쓰레기 더미에서도 생명의 싹이 움트듯 그렇게 절망의 슬픈 곡조를 넘어 희망의 기쁜 노래와 환희의 불빛이 찾아들기를 소망한다. 돌아보면 세상이 그렇게 팍팍하기만 한 건 아니다. 계층의 사다리를 타고넘는 우리 사회의 역동성도 아직은 남아있다고 믿는다. 어렵고 힘들어도 자신만의 꿈을 꾸는 이들이 있다. 이들에 의해 사다리는 다시 놓여 지고 세상은 조금 더 앞으로 간다. 새해를 맞으며 풀죽은 목소리지만 희망을 노래하고 싶다. 그거라도 하고 싶다.

/박현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박현수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