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권력의 뜻을 거스르는 자의 가치

윤진현

발행일 2016-01-18 제18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셰익스피어 '겨울이야기'
로맨스이며 질투 다뤘지만
통제를 원하는 권력자 욕망과
정의의 실현에 관한 연극…
권력 휘두르는 권력자에 맞서
정의를 실천하는 자 간절하다


2016011701001119400057601
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올해는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400주기가 되는 해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상연되고 있다. 국립극단에서도 지난 1월 10일부터 셰익스피어 말년의 작품 '겨울이야기'가 상연되는 중이고 하반기에는 '십이야'가, 4월에는 중국화극원의 '리처드3세' 초청공연이 준비되어 있다. 셰익스피어의 위대성을 새삼 되풀이할 필요는 없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사유와 인식으로 인도하는 그의 작품은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무엇보다 인간사회의 역학, 그 정치성을 기반으로 인간에게 중요한 것을 환기하는 데 탁월하다. 현재 공연되고 있는 '겨울이야기'만 해도 그렇다. 단순하게 보면 그냥 로맨스이고 질투에 관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는 통제를 원하는 권력자의 욕망과 이를 넘어서는 정의의 실현에 관한 연극이다.

이 작품은 시칠리아의 왕 '레온테스'가 아내 헤르미오네와 친구 보헤미아의 왕 폴릭세네스의 관계를 의심하여 결국은 왕비와 자식을 모두 잃고 15년을 자책과 고통에 시달리다가 다행히도 되찾는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양치기의 딸로 자라난 레온테스의 딸 페르디타와 폴릭세네스의 아들 플로리젤이 사랑이 빠지고 이들 사이를 반대하는 아버지 폴릭세네스를 피해 시칠리아로 와서 레온테스의 보호를 받는 사건이 엮여 전개된다. 불륜과 질투, 영아유기, 신분을 넘어선 사랑 등 오늘날 막장 드라마의 기원이 되는 흥미진진한 화소가 총출동한다. 물론 그뿐이었다면 그냥 잊혀졌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그 같은 진부하고 뻔한 사건 위에서 지금/여기에서 중요한 현재적 문제를 탁월하게 제기한다. 이번 '겨울이야기'에서 다시금 생각하게 된 것은 왕을 섬기되 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정의의 힘이었다.

시칠리아의 왕 레온테스는 친구 보헤미아의 왕 폴릭세네스가 더 머물러달라는 자신의 부탁은 거절하였으면서도 아내 헤르미오네의 권유는 받아들여 더 머물겠다고 하자 두 사람 사이를 의심한다. 얼핏 보면 레온테스의 의심은 개연성이 부족하다. 더 머무르라 만류하다 못해 아내에게 지원을 요청하고는 아내가 친구를 붙잡는 데 성공하자 곧바로 의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권력자의 심리이다. 자신의 명령은 소용없는데 다른 사람의 명령이 수용되었을 때 권력자는 분노한다. 그 분노가 아내와 친구에 대한 것이기에 불륜으로 의심되는 것이고 만약 이것이 신분이나 계급의 관계일 때는 반역, 거역, 불복종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는 곧바로 카밀로의 '거역'과 연속된다.

이 교만한 권력자는 급기야 신하 카밀로에게 보헤미아의 왕 폴릭세네스를 살해하라 명령한다. 카밀로는 레온테스의 잘못을 알기에 왕의 명령이지만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폴릭세네스를 보호하여 함께 보헤미아로 탈출한다. 그리고 카밀로는 다시 폴릭세네스 왕을 거역한다. 아버지 레온테스에게 버림 받고 양치기의 딸로 자라난 페르디타는 보헤미아의 왕자 플로리젤과 사랑에 빠진다. 폴릭세네스 왕은 변장하고 아들에게 와서 연인을 부왕에게 소개하고 사랑을 허락받으라 권유한다. 그러나 몇 번을 권해도 아들이 말을 듣지 않자 격분하여 아들을 버리고 양치기와 페르디타를 벌하겠다고 협박한다. 자신의 말보다 아내의 말이 힘을 가진 것을 알자 이들을 의심하는 레온테스 왕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카밀로는 사랑하는 연인을 떼어놓는 것이 옳지 않다고 보고 폴릭세네스 왕을 거역하여 이들 젊은 연인을 시칠리아로 보내어 결국 부녀상봉을 가능하게 한다. 아울러 레온테스 왕의 곁에서 왕이 자책하며 후회하도록 직언을 계속하는 파울리나 부인도 왕이 충분히 반성할 때까지 왕비 헤르미오네를 숨겨두었다가 조각이 살아난다는 이벤트를 벌여 왕과 왕비를 다시 만나게 하니 이 또한 권력자를 위해 거짓을 감수하며 진실을 지키는 능동성을 의미한다.

권력자가 정의보다 권력을 휘두르는 데 열중하는 징후가 역력하다. 감히 그 뜻을 거슬러 정의를 실천하는 자가 간절하다.

/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윤진현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