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사실과 소문

박형주

발행일 2016-01-22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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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히 퍼지는 SNS로 '근거없는 음모론' 더 기승
방대한 데이터·통계홍수로 서로 다른 해석 '충돌'
이미 와버린 '빅데이터 시대' 21세기 경쟁력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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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 · 아주대 석좌교수
요새 농담 중에 '죄짓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이라는 게 있는데, '감옥에 가면 인터넷을 못쓰게 하니까'가 답이라고 한다. 우리 삶에서 인터넷을 쓸 수 없다는 것이 공포감을 줄 정도로 필수적인 게 돼 버린 것이다. 이렇게 삶에서 없으면 못사는 게 돼버린 인터넷을 사람들은 어떤 용도에 쓸까? 많은 이들이 꼽는 가장 중요한 용도는 단연 SNS, 즉 사회연결망 서비스의 사용이다. 한때 대세이던 트위터는 시들해졌다는 얘기도 들리고, 페이스북은 아직 여전한 인기를 누리지만, 대세는 시각적인 소통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즐기는 인스타그램 등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는 일종의 집단적 소통 중독증에 걸린 건지도 모르겠다. 영화 마션에서 화성에 고립된 주인공 맷 데이먼이 일체의 정보를 접할 방법이 차단된 상태에서 취향에 맞지도 않는 디스코 음악이라도 열심히 듣는 장면은 그래서 수긍이 간다. 중독에서 벗어나는 과정의 금단 현상과 유사한 게 아닐까?

자연스레 SNS는 개인적 소통의 채널을 넘어서 여론이 모이고 형성되는 길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사실과 소문이 섞여서 온갖 음모론도 돌아다닌다. 요즘 나도는 정체모를 글 중에 일부는 상식과 달라서 우리를 혼란에 빠트린다. 제목부터 생경하고 강하다. 예를 들면, '녹차를 마시느니 걸레 짠 물을 마셔라', '현미는 사람을 천천히 죽이는 독약이다', '배추김치를 먹으면 머리가 나빠진다', '두부 먹으면 몸이 썩어 죽는다', '압력밥솥에 지은 밥은 죽음의 물질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공포심을 타고 빠르게 전파되곤 하는 이런 주장이 내세우는 사례들은 대부분 샘플 크기가 작아서 통계적 처리의 관점으로는 무의미하다.

최근에 다시 회자된 음모론의 백미는 미국의 아폴로 유인 우주선의 달 착륙 장면이 조작된 거라는 것이었다. 사실 이 주장은 꽤 오래 전부터 나온 것인데, 냉전시대 구소련의 스푸트닉 우주선 발사로 자존심에 상처받은 미국 정부가 조작을 감행했다는 의심에서 출발했다. 그 뒤로 과학적으로 보이는 근거를 덧붙여가며 진화했고 여러 버전이 출현했다. 최근 버전은 유명한 영화 감독인 스탠리 쿠브릭이 사망 전에 찍은 것으로 보이는 인터뷰 동영상이었다. 조작된 착륙 동영상을 제작한 실행자가 자기였다고 쿠브릭이 고백하는 인터뷰여서 화제가 됐다. 하지만 쿠브릭의 가족및 지인들의 관찰과 사실 확인에 따르면 비슷한 외모를 가진 배우를 출현시켜 연출한 허위 인터뷰로 보인다고 한다.

'좋아요' 기능이나 공유 기능을 통해서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SNS의 특징 때문에 앞으로도 이런 근거 없는 음모론은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결국 사용자는 광범위한 데이터를 이해하고 사실과 소문을 구별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 비판적 시각과 검증의 잣대로 무장해야 하고, 방대한 정보의 바다에서 논리적 생각의 힘에 기대어 홀로 항해할 수 있어야 한다. 고대 아테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비밀을 수와 기하학에서 찾았다. 수학은 변덕과 궤변에서 자유로운 피안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어서 진리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믿었다. 반면에 현대의 우리는 수(數)에 치여 산다. 아무런 의미 없는 방대한 데이터에 둘러싸여 헤매고, 넘치는 통계의 홍수 속에서 서로 다른 해석들의 충돌을 목도한다.

그러니 제멋대로로 보이는 방대한 데이터에서 질서와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는 관점의 출현은 얼마나 놀라운가. 빅데이터와 수학의 결합은 그래서 경이에 가깝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가 음모론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리지 않도록 보호해줄 뿐더러, 종종 시대의 흐름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준다. 플라톤이 이미 간파했던 것처럼 수와 논리는 감성적 사고의 대척점에 있는 게 아니고 그 한계를 보완하고 설득력을 더하는 동반자로 기능한다.

이미 우리 곁에 와버린 빅데이터 시대는 이러한 관점으로 인공지능의 개념조차 바꾸어 버렸고 구글 같은 데이터 회사가 무인자동차의 선두주자가 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방대한 데이터에서 의미를 이끌어 내는 능력은 이제 21세기의 경쟁력이 되었다.

/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 · 아주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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