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식 칼럼] 백남준 다시 보기

이남식

발행일 2016-02-02 제12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新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시도
오늘날 화두인 '창조경제'를
이미 80년대에 던졌다는 점
그의 실험정신·인간미 등을 통해
인류사회에 새로운 시대정신을
잉태했다는 사실 잊지 말아야

2016020101000042800000251
이남식 계원예술대학 총장
지난 1월 29일은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선생 (1932~2006)서거 10주기였다.

거장이 떠난 지 10년을 맞아 국내외적으로 백남준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아직 많은 사람은 백남준이 어떤 분이며 어떠 한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그에 대한 일반 평가가 너무 절하되어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그가 남긴 대부분의 비디오아트가 이미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TV 브라운관을 사용하고 있고, 영상을 재생하는 장치 또한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것이 많으므로 이에 대한 유지 보존 또한 문제로 지적되면서 단색화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세계미술 시장에서 대단히 저평가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올해 벌어지고 있는 백남준을 기념하는 여러 가지 의미 있는 행사 중에서 실제로 백남준 선생과 스튜디오에서 함께 작업하였던 세 분이 10년 만에 다시 한자리에 모여 거장을 기억하며 어떻게 앞으로 백남준의 작품을 유지 보존할 것인가에 관한 워크숍을 열어 많은 소장자, 갤러리, 학계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마크 파스팔, 폴 게린, 그리고 이정성 세 분은 백남준 선생과 함께 작품의 기술적인 부분을 함께 작업하였던 분들로, 아날로그적으로 영상을 편집하거나 전자회로를 설계하고 제작할 수 있는 테크니스트 (technician + artist)들이다.

이분들의 회고담을 들어 보면, 백남준 선생은 당시 최첨단 기술인 텔레비전의 새로운 예술 미디어로서의 가능성을 누구보다 먼저 일깨우기 위하여 최고의 기술자들과 협업을 시도하였다. 비디오편집기나 비디오분배기가 없던 시절에 스튜디오에서 직접 제작한 장치들을 이용하여 영상을 편집하고 많게는 1천대가 넘는 텔레비전 세트들을 동시에 조작하는 작업들을 하기 위하여 백 팩토리 (PAIK FACTORY)를 만들어 프로덕션 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앤디워홀의 팩토리와 비견할 만하다.

하지만 백남준의 진면목은 미래를 예측하는 안목이 아닐까 한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예술가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조지 오웰은 그의 소설 '1984' (1949)에서 보여준 모든 삶을 감사하는 빅브라더로서의 텔레비전이 아닌, 새로운 유희의 대상이며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기술, 후에 인터넷의 등장으로 사용된 '인포메이션 수퍼하이웨이'는 백남준이 처음으로 사용한 '일렉트로닉 수퍼하이웨이'에서 기인한 것처럼, 낙관적인 미래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 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시도하였다는 점에서는 마치 창조경제를 지향하는 오늘날의 화두를 이미 80년대에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1993년 백남준특별전과 함께 '황금사자상'을 수여하며 그의 예술적 기여를 인정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가 보여준 실험정신과 유머, 인간미, 배려함 등을 통하여 새로운 시대정신을 잉태하면서 인류사회에 큰 획을 그은 것이다. 아쉽게도 예술에 대한 이해나 환경이 척박했던 시절에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다 보니 이제는 많은 사람의 기억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듯하다. 다행히도 경기도의 백남준 아트센터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의 원형을 잘 지키며 이를 발전시켜 가는 세계적인 센터로, 백남준 선생의 삶과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가 아닌가 한다. 이러한 장소를 더 많은 사람이 자주 방문하면서 한 시대의 정신을 이끈 거장들의 영감을 받아 이 시대에 새로운 창조의 불씨를 지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백남준 선생은 생전에 향후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관리해 갈 것인가에 대하여 지침을 남기셨다. 비디오 관련 기술은 5년이 멀다 하고 발전하고 있으므로 원래 텔레비전의 브라운관이 이제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으며, VHS비디오나 레이져 디스크도 모두 디지털로 바뀌었다. 백남준 선생은 이를 예견하여 외형의 조형적인 형태는 유지하되 기술의 진보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기술로 대체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놓은 것도 아마 미래를 직시하셨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제 돌아가신 지 10년, 백남준의 의미에 대하여 다시 새겨볼 때이다.

/이남식 계원예술대학 총장

이남식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