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따뜻하면서 중정(中正)한 법원

손수일

발행일 2016-02-15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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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 첨예한 분쟁의 심판자로
치우침없이 中道 걷는 것은
성인의 가르침처럼 칼날 위에
서는 것보다도 어려울 수 있어
이해충돌속 법률·양심에 따라
주재자의 자리를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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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일 법무법인 로쿨 대표변호사
금년 병신년(丙申年) 새해는 붉은 원숭이해라 하여 불처럼 따뜻하고 밝은 지혜로움을 가지라는 덕담들을 건넨다. 이 덕담은 오늘날 분출하는 분쟁의 원만한 해결이나 죄의 경중을 지혜롭게 가려 공정한 재판을 이끌고자 노력하는 우리 법원에 전하여 주고 싶다. 근자에 우리 법원은 높은 문턱을 낮추어 국민과 소통하고 따뜻하게 다가서고자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법정의 높다란 법대를 낮추어 재판받는 양 당사자와 눈높이를 맞추고 법정내외에 밝은 그림을 걸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한다거나 종합민원실내의 무료 상담을 상설화하고 있다. 또한 많은 법원예산을 들여 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국선변호나 소송구조를 확대하고 있다. 법원이 재래의 권위주의적 모습을 벗어나 국민들에게 부드럽게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모습은 법적 약자인 국민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국민을 위한 사법적 지원은 경제적 사회적 약자가 억울하게 패소하거나 부당하게 처벌받지 않도록 적절한 범위에서 절제되어야 한다.

최근 국비로 보수를 제공받고 형사재판에서 국선변론만 전담하는 국선전담변호사는 법원별로 10~20명 이상까지 선발하고 있다. 변호사업계의 불황이 깊어짐에 따라 지망하는 변호사가 늘어 국선전담변호사 선발은 수십대 일의 치열한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다. 경제력 취약 등 국선변호인 선임 조건도 완화되어 대부분 받아들여지고, 상소이유서 제출이 필수적인 항소심 및 상고심은 신청이 없어도 국선변호인이 선임되어 통보되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경제력이 충분한 피고인 중에서도 재판 초입에서 국선 변호인에게 맡겨 재판부의 성향을 저울질하다가 여의치 않다고 생각되면 사선을 선임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국선변호를 확대하다 보니 힘없는 피고인에게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고자 하는 국선변호의 본래 취지를 넘어서는 면도 있다. 또한 다른 사람 또는 공익에 피해를 주었다고 기소된 피고인에 대한 변호를 강화하다 보면 그 피해자보호가 소홀하게 되니 피해자를 위한 국선변론도 필요하다는 논의도 제기되고 있다.

심판을 해야 하는 법원이 심판받는 당사자나 이해관계인을 어디까지 지원하고 배려해야 하는가? 근대 자유민주주의 삼권분립 법치국가에서의 사법의 역할은 국법을 해석 적용하여 공익과 국민의 정당한 권익을 지켜주는 사후적, 소극적 역할이 그 본질이다. 법원이 따뜻한 사법서비스를 확대하고 재판장이 아무리 친절하게 재판한다 하여도 이해 충돌하는 당사자 양쪽을 모두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죄를 지은 피고인의 권익보호에만 치중하다 보면 그 범죄피해자의 권리나 공익의 보호가 소홀하여질 수도 있다.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저울을 들고 있듯이 재판의 본질적 가치는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아니하고 엄정한 중립을 지키는 데에 있다. 자유민주주의 재판제도가 실체적 진실발견을 위하여 최선이라고 채택한 제도는 원·피고 사이 또는 검찰과 피고인 간에 서로 간 공격 방어의 변론을 하는 대심구조(對審構造)이다. 따라서 재판주체인 법원이 재판받는 한쪽 당사자를 위하여 지원하는 국선변호 또는 소송구조는 당사자의 대등과 균형이라는 본래의 목적과 범위에 맞게 절제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단기간에 산업화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달성한 반면 경제적 계층, 세대간 양극화와 경제 불황의 장기화, 이해집단의 권익 주장의 과잉 분출로 법적 분쟁 양상이 질적 양적으로 심화되고 있다. 분쟁해결의 선진화를 이루자면 중용(中庸)의 도리와 중정(中正)의 품격을 갖춘 따뜻하고도 엄정한 사법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복잡 첨예한 분쟁의 심판자로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아니하는 중도(中道)를 지키는 일은 성인의 가르침처럼 칼날 위에 서는 것보다도 어려울 수 있다.

주역(周易)에 나오는 중정유경(中正有慶)이란 말처럼 법원은 소용돌이치는 이해관계 충돌 속에서도 법률과 양심에 따라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정(中正)하고 따뜻한 주재자의 자리를 지킨다면 경사스러움이 있지 않겠는가.

/손수일 법무법인 로쿨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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