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지역 문화원과 귀명창

정영길

발행일 2016-02-26 제13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지역별 다양한 문화자산 있어야 국가경쟁력 향상
정부·지자체, 특성 맞는 프로그램 계발·보급 필요
기업이 원하는 특허 스토리텔링 등도 지원해 줘야


2016022601001715200090481
정영길 원광대학교 교수·작가
판소리 용어 가운데 귀명창이란 말이 있다. 명창은 국악에서 노래를 특출하게 잘 부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귀가 명창이라니? 귀는 소리를 듣는 역할을 할 뿐 발성기관이 아니다. 한자어와 고유어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역설의 미학을 보여주는 조어다. 단순한 애호가의 차원을 넘어 일정한 식견을 갖춰 판소리를 제대로 향유할 줄 하는 사람을 명창에 버금간다고 해서 귀명창이라 부르지만 실은 명창을 뛰어넘는 역할을 한다. 아무리 훌륭한 소리꾼의 노래라도 이걸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소음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문화는 특출한 소수에 의해 비롯되지만, 이를 즐기는 다수의 소비자에 의해 정착되고 확산된다. 단순한 소비 차원을 넘어 우리 일상에 파고드는 생활화 과정을 통해 문화는 꽃이 핀다. 귀명창의 성원에 힘입어 문화가 파급되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귀명창 경험을 해 볼 기회가 사실상 없다. 모든 문화 행사가 중앙 위주인데다 서울에서 흥행에 성공한 것만이 지방 순회공연을 기획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 단체에서 주관하는 각종 축제도 사실상 먹자판이 대부분이다. 고급문화 체험을 통해 감성 근력을 키울 기회가 거의 없는 셈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그러다 보니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문화의 문외한이 될 수밖에 없다. 문화의 귀(耳)도 운동과 마찬가지로 꾸준한 훈련을 해야 감응력이 향상된다. 문화를 향유하는데도 트레이닝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중앙집권적이기 때문에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기회 자체가 박탈된 환경에 놓여 있다.

그러나 지방문화는 중앙에 종속된 영원한 변방문화가 아니다. 또 하나의 다른 중앙문화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지역의 정체성을 근간으로 또 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지방문화를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지방자치 단체도 긴 안목으로 개성 있는 고급 지방문화를 창달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지역마다 다양한 문화 자산이 축적돼 있어야 국가 경쟁력이 향상될 수 있다. 지방문화의 제자리 찾기는 자치단체의 의지와 중앙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처럼 지역마다 유사한 기념물을 짓거나, 축제 행사를 남발하여 재정만 축내면 희망이 없다. 이런 행태가 고착되면 지방의 문화 귀명창이 줄어들어 지방문화 융성은 요원하게 된다.

이것을 보정하는 일환으로 지역 문화원을 활성화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문화원은 지역문화의 진흥을 위해 설립된 법인으로 지역문화 발전에 이바지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예산이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의 지역 문화원들이 향토사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향토사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것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지역학 연구의 현장성 제고에 기여를 하고 있지만 이 역할만으로는 부족한 점이 많다. 무엇보다 양질의 문화가 확산될 수 있도록 지역 문화원이 그 소비층을 두텁게 하는 산파역을 담당해야 한다. 지역 특성에 맞는 사업을 펼치거나 문화 귀명창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계발 보급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 거주하는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상품 및 기술의 작명은 물론 특허에 필요한 스토리텔링 등도 지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미래는 문화가 여지(輿地)며 산업생산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기술과 상품도 이성이 아닌 감성에 호소해야 경쟁력을 갖는 시대가 될 것이기에 사회복지에 버금가는 문화보급 사업을 지역 문화원을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벌여나가야 한다. 그래야 백범 김구선생이 희망한 문화강대국의 꿈도 이루어질 수 있다. 허구한 날 시위 문화만 보고 자란 아이들에게, 우리도 언젠가는 피아노 잘 치는 대통령, 시낭송을 즐기는 총리가 통치하는 그런 나라가 도래할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줄 때가 되었다.

/정영길 원광대학교 교수·작가

정영길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