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혁의 역사산책

[김준혁의 역사산책] 개성 벽란도(碧瀾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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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개성은 예로부터 송도(松都)라고 불렀다. 소나무가 많은 도시라는 의미이다. 개성의 주산인 송악(松嶽) 역시 소나무가 너무도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개성은 한편으로 개경(開京)이라고도 한다.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이곳을 수도로 삼았기 때문에 서울을 열었다는 의미로 개경이라 했다.

이처럼 여러 이름을 가진 도시 개성은 고려시대 세계적인 도시였다. 중세시대 유럽 최고의 도시인 베네치아의 인구가 겨우 10만 명이었는데 개성의 인구가 20만 명이었으니 개성은 정말 세계적인 도시였다. 이 도시가 이처럼 세계적인 도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무역항 벽란도(碧瀾渡)가 있었기 때문이다.

벽란도는 개성에서 서해로 흘러가는 예성강 끝자리에 있는 포구였다. 서해와 바로 만나는 지점에 있는 벽란도는 말 그대로 푸른 물결이 넘치는 곳으로, 밤도 낮처럼 환하게 밝혀진 곳이었다. 이곳은 중국 상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멀리 아라비아 상인들과 유럽의 상인들도 교역하러 왔다. 지중해에서부터 고려의 벽란도까지 무역하러 올 정도로 개성에는 없는 물품이 없었다.



당시 송나라에서 배가 들어오는 날이면 벽란도 일대가 인파로 뒤덮였다. 1014년(현종 3)부터 1278년(충렬왕 4)까지 모두 120여 차례, 총 5천여 명에 달하는 중국인이 입국했다. 벽란도에서 개경까지는 삼십 리(12㎞)였는데, 외국 사절들은 벽란도에서 하루 유숙한 뒤 다음날 도성으로 향했다. 벽란도에는 중국인을 상대하는 술집이 따로 있었고, 개경에는 청하관, 충주관, 사점관 같은 전용 숙소까지 있었다. 송나라 사절의 한 사람으로 고려에 왔던 중국인 서긍(徐兢)이 쓴 책 '고려도경'에 따르면 당시 개성엔 화려한 저택이 즐비했고 외국인 전용 숙소도 여럿 있었다. 여성은 물론 남성도 비단으로 치장했다. 기름·종이·말(馬)·돼지의 시장이 각각 있을 정도로 상업이 발달했다.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뛰어난 지리적 여건과 세심한 외국인 배려정책에 힘입은 바가 크다. 외국인들의 편의를 위해 외국 사신이 들어오면 벽란정으로 안내해 우벽란정에 조서(詔書)를 안치하고 좌벽란정에서 사신을 대접해 사신이 도착하거나 떠날 때 반드시 하루씩 묵었다가 갈 수 있게 했다. 타인들에 대한 고려인들의 배려는 외국인들이 벽란도를 찾게 하는 기반이었다. 이처럼 고려인들의 개방성과 신뢰를 주는 행동은 개성을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금속활자와 같은 전 세계 최고의 문화를 만들어 냈다.

최근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로 인해 북·미간의 갈등이 남북 갈등으로 변화하면서 개성공단이 폐쇄됐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핵개발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6·15정상회담 이후 남북 화해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일은 서로의 신뢰를 없애는 참으로 안타까운 조치이다. 개성이라는 도시가 역사적으로 개방과 신뢰로 성장한 도시였기에 그 안타까움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개성이 다시 개성다워지기 위해서는 우리 남북이 모두 조금씩 양보해 개성공단을 부활하고 개성의 역사문화도시 관광을 재개하는 길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북·미간의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한반도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이뤄내 남과 북의 화해와 평화가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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