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교 칼럼] 여기가 참 아름답다

강은교

발행일 2016-03-01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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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지나갈땐 못보던
언덕길의 수많은 것들과
지하철속 스마트폰 삼매경 풍경
빽빽한 엘리베이터안 유모차
엄마의 언성·아이의 환한 웃음…
사소한 사람들의 이곳이 아름답다


언덕길을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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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시인
언덕길에는 차를 타고 지나갈 땐 못 보던 것들이 많이 있다. 아직도, 저런 곳이 있었나 싶은, 빨간색과 파란색이 줄 쳐진 이발소 표시의 등이 인상적인 이용원, 길가 공터에 고개를 쳐든 가느다란 파 들, 언뜻 바다를 생각나게 하는 어떤 집 담에 붙은 조약돌들, 아버지 어머니 며느리가 총출동 되어 닭백숙 쟁반을 나르던 식당이 '우다다 미술학원'이란 노란 페인트 글씨를 유리창에 써붙이고 생뚱맞게 우산꽂이를 앞에 세우고 서 있다. 유리창에 가득 붙어 나풀거리는 글씨들, 무지개빛 우산을 타고 금방이라도 하늘을 날 것 같다. 못 보던 꽃들도 있다. 길 한켠에 부끄러운 듯 서 있는, 구청에서 조성한 것이 분명한 바위들 사이에 팔이 가는 매화, 키도 작은 복수초 꽃잎. 차들이 마구 지나다니는 이런 길에서 꽃잎을 펼치다니, 참 용감하기도 한 꽃들, 세사람의 발레리나가 발을 곧추세우고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무용학원과 떡들이 가득 놓여져 있는 떡집(오늘 떡들은 화사한 빵에 밀려나는 자신들의 처지를 아는지, 판자로 얼기설기 만든 가판대에 추레하게까지 보이며 앉아 있다)을 지나, 버스 종점을 지나, 노래없는 시대의 노래방을 지나, 팥칼국수 집을 지나, 늘 나에게 과일이 가득 매달린 열대의 어느 숲을 생각하게 하는 과일가게를 지나, 마네킹들이 몸매를 자랑하며 눈웃음치고 있는 아웃도어 매장을 지나, 김밥집을 지나, 민들레 내과라는 간판을 허공중에 뾰족이 세우고 있는 의원, 노란 민들레 허리를 떠올리며 역의 계단을 내려간다.

마침 지하철이 온다. 천천히 서는 지하철 안이 환히 들여다보인다. 빈자리가 몇 개 있다. 아 저기 앉아야지,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지하철 안으로 부지런히 들어간다.

그러나 발 빠른 어떤 청년이 나를 밀치듯 털썩 앉는다. 나는 머쓱해져 지하철의 손잡이를 잡는다.

청년은 눈을 내리깔고 주섬주섬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이윽고 열차가 떠나고 곳곳에 재빠르게 자리를 차지한 젊은이들이 모두 눈을 내리깔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앞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불편한 사람이 혹시 있는지 주변을 살피는 사람은 물론 없다. 모두 스마트 폰을 들여다본다. 열차가 서자 얼른 일어나, 재빠르게 승강장에 내리는 사람들,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사람들에 밀려 넘어질 뻔하다가 겨우 에스컬레이터의 난간을 붙든다. 위로 올라간다.

어떤 빌딩, 유리문을 민다. 너무 무겁다. 미처 들어가기도 전에 앞사람은 문을 확 던지듯 밀치고 나간다. 유리창에 잠시 내 코가 박힌다.

누구인가 내 발을 밟는다. 오히려 그가 나를 꼬나본다. 아래위로 훑어보기까지 한다. 나는 나도 모르게 "미안합니다"하고 고개를 꾸벅 숙인다.

사람들로 빽빽한 어떤 엘리베이터의 안, 사람들은 앞사람의 머리꼭지를 보며 엉덩이가 서로 닿을 듯 서 있다. 갑자기 한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공중을 찢는다. 또 한 여자의 비명 같은 목소리. 두 목소리는 싸우기 시작한다. 모두 깜짝 놀란다. 유모차에 탄 어린아이가 빽빽 울기 시작한다. 두 여자는 싸운다. 그중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젊은이답게 더 힘 있고 날카롭다. "왜 유모차를 밀쳐요! 다시 한 번 유모차에 손을 대면 경찰에 신고할 거얘요." 경찰에 신고한다는 소리에 엘리베이터 안은 이상한 정적이 감돈다. 모두 뭔가 잘못한 듯이 고개를 떨군다. 엘리베이터는 5층에 멈춘다. "내가 누군지 알아? 뭐 이런 것들이 있어!" 그 여자가 유모차를 당당하게 밀고 문을 나간다. 모두 유모차에 몸이 닿을세라 이리저리 몸을 옹크린다. 그때다. 빽빽 울던 아이가 뒤를 돌아본다. 아이는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환히 웃고 있다. 눈부신 웃음, 환희의 눈동자란 저런 것인가! 엘리베이터 안이 포근해진다. 사람들은 모두 안도한다. 사소한, 참으로 사소한 사람들의 여기, 여기가 갑자기 아름다워진다.

/강은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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