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지연의 용인술, 시간을 휘두르는 권력의 기술

윤진현

발행일 2016-03-21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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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적으로 할일 미루거나
고통의 시간을 연장해가면서
타인을 괴롭히는 대인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은
참으로 무서운존재
참으로 경계해야 할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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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옛말이 "도둑질도 하지는 않을망정 배워는 두라"고 했다. 도둑질을 배워두라니? 해서는 안 될 짓을 왜 배운단 말인가?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하기 싫은 일과 해서는 안 될 일, 할 줄 모르는 일이 일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한탄하는 일이 많아졌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 할 줄 모르는 일과 같은 세상은 정말 좋은 세상이다. 유감스럽지만 우리 사회가 그러한 좋은 세상에 미달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닥치게 되면 대처를 해야 하니 알아두어야 한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많다. 그 으뜸이라면 '학대'가 아닐까 싶다. 학대란 다른 생명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괴롭히고 가혹하게 대하는 행동이다.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전제로 한다. 이는 죽음을 능가하는 고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리 말하면 학대는 죽음의 순간을 계속 연장하면서 다른 생명을 계속 되풀이 살해하는 행동이다. 사악하기로는 으뜸이라 하겠다. 폭력도 나쁘지만 '지연', '연장'이야말로 학대를 학대로 만드는 핵심이다.

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알아두어야 할 대인기술 중 하나가 바로 이 '지연', '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정이 어려워 약속을 어기거나 판단을 할 수가 없어서 결정을 미루는 것과는 명백히 다르다. 고의적으로 해야 할 일을 차일피일 미루거나 고통을 주는 시간을 연장해가면서 타인을 괴롭히는 대인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은 참으로 무서운 존재, 참으로 경계해야 할 존재이다. 사람이 정복하지 못한 유일한 대상, 시간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라고 봐야 한다. 그런 자들의 내면을 사실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근대 이후 인간이 인간에 대한 정보를 축적하고 참고하는 영역은 인문학이지만 다양한 권력자의 실체를 이 시대 인문학은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TV드라마에 등장하는 인간의 모습을 한 재벌집 자식이나 권력자의 모습은 시청자의 희망사항일 뿐, 실제 모습은 아니다.

문학이 대부르주아지의 내면을 기록했던 것은 잠깐이었다. 프랑스의 대문호 발자크(Honore de Balzac)의 걸작 '외제니 그랑데 Eugenie Grandet' 정도가 그 단편을 보여준달까. 주인공 그랑데 영감은 전통적인 '수전노(守錢奴)' 인물로 자본주의적 비약을 보여준다. 부인의 지참금으로 재산을 불리고 동전 한 푼도 절대로 그냥 쓰지 못하게 하며 지참금을 바라고 딸 외제니에게 구혼하러 오는 남자들을 휘둘러 이익을 도모하는 것쯤은 별 것 아니다. 그 정도 인물은 우리 문학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랑데' 영감이 대단한 것은 같은 수전노 사이에서도 탁월한 승리를 거두기 때문이다. 아우 빅토르가 파산해 엄청난 빚을 아들 샤를에게 남긴 채 자살하자 그랑데 영감은 파리로 가서 채권단과 협상한다. 그랑데 영감은 가문의 신용도 지키고 빚도 갚지 않기 위해 최고의 전략을 구사하니 바로 '지연작전'이었다. 그랑데 영감의 재산규모로는 충분히 빚을 갚아줄 수 있었지만 영감은 빚을 갚는 대신 채권자들이 스스로 이자를 포기하고 원금을 깎아주도록 끝없이 결정을 유보한다. 그랑데 영감의 대응 앞에 악귀 같다는 채권자들도 속수무책 처분만 바라고 결국 원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과에 감지덕지 고마워할 지경이 된다. 그 핵심 기술이 바로 지연책이니 그랑데 영감은 본래 어눌한 체, 무식한 체하면서 상대방이 모든 속내를 드러낼 때까지 결정을 미루는 치세, 용인술의 대가였던 것이다. 이 '연기'의 기술은 '탈무드'에서도 만날 수 있으니 그 역사는 수천년이며 오늘도 여전히 정치판, 경제판 한편에서 빈번히 사용된다. 이기고 싶은 자라면, 아니 이러한 비인간적 학대형 공격에 자신을 지키려면 쓰지는 않더라도 반드시 익혀두어야 할 방법이 아닌가. 물론 이것은 가진 자의 방법이다. 없는 사람이 함부로 구사했다가는 먹이가 지나가고 기회가 사라져 후회하기 십상이다.

/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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