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교 칼럼

[강은교 칼럼] 좀 어리숙하기 또는 천천히 걷기 프로그램

너무 똑똑한 알파고의 가슴은
장자의 '텅빈 방' 같은 동양식 가치
또는 순진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텅빈 방에 햇빛이 꽂힌다'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반응할까?
세계인 사는법도 이미 입력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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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시인
알파고와 바둑기사와의 대결 생중계를 보면서 '알파고는 굿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굿은 일종의 '가난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잔치'라고 흔히 말하는데, 참 괜찮은 표현이란 생각이 든다. 거기엔 형식상 굿의 주인이 그 동네 사람들의 점괘를 봐주는 장면이 삽입된다. 점의 내용이란 별것 아니다. 아들이 대학에 붙겠는가, 셋째가 시름시름 앓는 데 언제 낫겠는지, 이번 사업을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남편의 바람이 잦아들까… 이런 것들이다. 인간이 원하는 것들이란, 결국 이런 것이라는 듯이, 사람들은 부끄럽지만 상당히 절박하게 질문한다. 무당은 신에게 그 질문을 들고 간다. 무당이 심각한 얼굴로 신에게 묻는 동안엔 북소리, 장구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말하자면 '조용하게 있고 싶은 신'을 귀찮게,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의 '아양'인 셈이다. 무당은 그 신의 대답을 질문한 사람에게 들려준다. 그러면 그 사람은 대답을 얻어 속 시원한 얼굴로 마른 북어의 그 재빛 '아가리'에 꼬깃꼬깃한 돈을 활짝 펴서 물려준다. '다음 사람… 아아아, 춘천댁, 요즘 어떠우…' 무당은 목쉰 소리로 신을 찾아온 아낙네를 즐겁게 부른다. 신이 춘천댁의 굽은 어깨를 흔든다. 춘천댁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러나 기대에 차서 원하는 바를 이야기한다. '지금 이사해도 될까요? ' '조금 있다가 찬바람이 불면 이사해!' 무당은 단호하게 말한다.



한때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유행했던 서양 평론가, 벤야민의 에세이에는 참 재미있는 구절이 있다. 하긴 장자가 벌써 썼던 문구이다.

'국도는 직접 걸어가는가 아니면 비행기를 타고 그 위를 날아가는가에 따라 다른 위력을 보여준다.'

이 귀중한 지면에 이런 별것 아닌 문장을 인용하는 이유는 알파고의 생중계를 보면서 알파고에겐 이 '천천히 걷기'의 프로그램이 입력되어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니, 이미 알파고에겐 동양 현자들의 느리게 걷는 프로그램들도 입력되어 있다? 그런게 없을 것 같애? 하는 구글의 말이 들려오는 것 같다. 마치 신의 말처럼.

아니면 이런 프로그램은 어떨까. 좀 어리숙하기 프로그램.

어떤 나라를 가보니, 거기선 서로 대통령을 하지 않겠다고 한단다. 국회의원들이 있는 의사당 건물은 우리나라로 말하면 폐교를 수리해놓은 것 같고 대통령이 사는 집은 거기 흔하디흔한 이층집이다. 그래도 마당에 깃발은 날리고 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대통령이란 직업이 '사이드 잡'이란 점이다. 다른 생계 일을 하면서 대통령 일을 봉사 삼아 한다는 것이다. 마치 신동엽의 시에 나오는 '자전거타는 대통령처럼'.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그 중립국에선.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

하긴 시이니 물론 그렇겠지만 시집을 읽는 대통령이 있는 나라… 그러고 보니 오래전 나도 '시집'은 정치인들이 읽어야 한다고, 혼자 기염을 토하면서, 그때 출간되었던 새 시집을 당시의 대통령께 보냈었던 일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고 그 철없는 용기가 놀랍고도 부끄럽기만 하다. 물론 '응답'은 없었다. 하긴 그 시집을 비서진들이 보고 폭발물 걱정을 하던 끝에 대통령께는 전하지도 않은 채 휴지통으로 던졌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어리숙한 나'의 정말 어리숙한 만용이었다.

너무 똑똑한 서양식 가치의 극치인 알파고의 가슴은 장자의 '텅빈 방' 같은 동양식 가치, 또는 '좀 어리숙한, 평범한' 사람들의 가치 '텅빈 방에 햇빛이 꽂힌다'는 식의 가치에 대해선 어떻게 반응할까. 아니, 그것에게 '텅빈 방'의 프로그램은 있을까. 아니, 세계의 모든 사는 법에 대한 프로그램이 이미 되어 있다고?

/강은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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