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귀농정책 성공하려면

이한구

발행일 2016-04-06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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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인들 "시골사람들 냉대한적 있었느냐" 목청
토박이들 "개인주의문화 거슬린다" 거부감
'기존주민과 부조화' 역귀농 원인 상당한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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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지난해 8월 제주도청 소속 공무원이 현지 언론사의 기자로부터 협박 및 폭행을 당하고 제주시 연동의 한 상가건물 4층에서 투신했던 사건이 있었다. 충격인 것은 그의 자살동기였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낸 문자에 "토착 언론의 횡포"에 시달렸다며 제주도 특유의 괸당문화를 고발한 것이다. 괸당이란 친척, 혈족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나 이웃 간에도 친척처럼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지함을 의미한다. 덕업상권(德業相勸)과 환난상휼(患難相恤)로 상징되는 공동체사회를 지탱해온 매우 소중한 문화유산이나 이방인들에겐 종종 배타적인 패거리문화, 이지메문화로도 작용한다. 대표적인 국가가 일본이다. 재일동포들이 오늘날까지 1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았어도 이들은 여전히 남의 나라 백성인 것이다. 일본의 상징인 '대화(大和)'란 자기들만의 하모나이징인 것이다.

한국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혈연, 학연, 지연 등에 근거한 동류(同類)문화가 도처에서 확인된다. 특히 제주도는 육지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데다 조선시대에는 죄인들의 유배지로 전락해 도민들의 유대의식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웃사촌에겐 정상가격으로, 외지인에겐 바가지를 씌우는 식의 이중가격이 상징적이다. 그러나 국장급 고위공무원이 극단적 선택으로 괸당문화의 부당함을 호소할 정도이면 너무 심했다. 오죽했으면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병상을 찾아 사과까지 했을까. 유래지규(由來之規)가 '글로벌 제주'의 발목을 잡을 개연성이 크다.

농촌사회의 텃세문화가 주목된다. 귀촌귀농의 점증이 배후요인이다. 국내적으로 귀농이 주목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부터였다. 대량실직을 배경으로 절박한 이들이 먹거리를 찾아 농촌을 찾았던 것이다. 이후 장기 저성장에 기인한 만성적 실업난은 귀농을 부채질했다. 급격한 산업화가 낳은 신중년들의 전원(田園)으로의 회귀욕구는 설상가상이었다. 이따금씩 전해지는 억대 부농 뉴스는 20~30대 젊은이들까지 유혹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부터 농촌에서 스마트농업 창업을 시도한 것이다.

정부를 비롯한 지자체들의 귀촌, 귀농드라이브는 주마가편이었다. 도시에서는 과잉인구에 기인한 주거난, 교육난, 교통난, 생계난에 시달리는 반면에 농촌은 빈곤과 고령화, 공동화 등으로 경제기반 침식이 확대재생산 되었던 것이다. 국제적인 자원내셔널리즘은 또 다른 당위였다. 농어촌의 지자체들은 경쟁적으로 정착지원금과 주택마련자금, 농업자금, 신규영농 지원 등 한 보따리의 선물(?)을 제공했으며 정부는 저리의 농지구입자금 알선 및 양도소득세 감면은 물론 농지에 대한 사전소유 규제도 풀어주었다.

2000년 이후 귀농, 귀촌가구 수는 해마다 20% 이상 늘어났다. 2014년에만 낙향건수는 총 4만4천586가구로 전년 대비 37.5%나 증가했다. 경기도를 찾는 귀농·귀촌인구는 2012년 7천671가구에서 2014년 1만1천96가구로 2년새 62.8%나 늘었다. 경기도청은 이들이 귀농·귀촌에 성공할 수 있도록 내년부터 맞춤형인 '따복농장'을 운영키로 했다. 그러나 문제도 많다. 역귀농(逆歸農)인구도 동반상승하는 것이다. 역귀향의 정확한 데이터는 확인할 수 없으나 간과는 금물이다. 영농실패 내지 실망스런 소득, 자녀교육 애로 등이 원인이나 농촌사회 활착에 대한 마찰적 장애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의 귀농귀촌 실태조사에 따르면 텃세 등 기존주민과의 부조화가 수입 감소, 생활불편 다음으로 비중이 큰 것으로 확인되었다. 경기도 여주의 한 귀농인은 이장들의 횡포와 왕따, 길들이기 등으로 고통이 심하다며 '도시에선 언제 시골사람들을 냉대한 적 있었느냐'며 목청을 높였다. 토박이들도 할 말이 많다.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훤히 꿰는 지경인데 귀농인들의 개인주의문화가 눈에 거슬리는 것이다. 동구 밖에 '귀농 안받는다'는 현수막이 걸릴 정도이다. 문화갈등이 귀농의 걸림돌로 작용할 개연성이 크다. 조광조 선생에게서 새로운 향약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나.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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