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 최동호 시인

혼자일때, 외롭고 고독하고 슬플때… 詩가 시작된다

민정주 기자

발행일 2016-04-13 제9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한국시인협회 인터뷰15
한국시인협회 41대 회장으로 취임한 최동호 시인이 협회 사무실 인근 운현궁을 걷고 있다. 임기 2년 동안 범국민 시쓰기 운동을 전개할 뜻을 밝혔다.

천년전이나 지금이나 서정시는 가장 강렬하고 아름답고 깊숙한 소통의 수단
'인공지능의 세상' 인간이 인간적인 면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
시인협회장 임기 2년간 시쓰기 운동… 내년 남북시인대회 문인교류도 추진


아직 이세돌 九단과 알파고가 대국을 시작하기 전인 3월 초, 최동호 시인은 '인간들이 알파고에게 인간을 도둑맞았다'고 썼다. 많은 이들이 인간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때, 최 시인은 승패와 상관없이 인공지능이 깊숙이 스며든 세상을 통렬하게 감각하고 있었다.

일평생 인간을,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데 바친 그는 앞으로 다가올 세상이 걱정스럽다고 했다. 진짜와 가짜가 더욱 교묘하게 뒤섞일 세상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남을 수 있을까. 너무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까. 그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시(詩)라고 말했다.

40여 년을 시인으로 살아온 그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일지도 모른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시는 너무 멀고, 어렵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을 듣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는 사람을 식당에서 봤어요. 집사람이 알아보고 일러주길래 그 쪽을 봤는데 그 때의 내 느낌은, 티비에서 본 그가 진짜인가 여기서 밥먹고 있는 그가 진짜인가 순간적으로 헷갈리더라고요.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이 보내는 인상이 그만큼 강한거예요. 알파고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가상과 현실 사이의 벽은 이미 흔들리고 있어요. 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죠."

최 시인은 인공지능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인공지능이 시를 쓰면 웬만한 시인보다는 잘 쓸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러나 그가 걱정하는 것은 인간을 뛰어넘은 인공지능의 능력이 아니다.

"기계가 깊숙이 들어올수록 인간의 삶은 더 각박해집니다. 그동안은 인간이 유일절대한 존재라는 전제에서 인류의 문화는 발전해왔어요. 인공지능과 함께 사는 세상이 본격적으로 도래하며 인간의 존엄성이 많이 상쇄되고 신도 부정될 거예요. 그런 세계에서 인간의 인간적인 면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는 인공지능이 더 잘 쓰더라도, 시를 쓸 때 인간을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은 천 년 전에도 서정시를 썼고 지금도 쓰고 있어요. 그때 쓰인 서정시는 지금의 인간이 읽어도 슬프고 아름답습니다. 시는 가장 강력하고 깊숙한 소통의 수단이에요.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운 것이 시이고, 난해한 시도 있지만, 말로써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시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사는 곳에는, 섬이나 오지라도 언제나 시가 있었어요. 시가 사라졌을 때, 시가 사라진 곳이 기계의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최 시인의 시가 시작된 것은 수원에 살던 초등학생 때부터다. 그는 겨울날 수원 남문을 청소하느라 곱은 손 안으로 들어오던 햇볕을 기억하고, 방과 후 혼자 오른 팔달산에서 느낀 외로움을 지금껏 간직하고 있다.

중학교 교복 모자를 동네 아이가 채어 달아났을 때, 모자가 나에게서 분리된 또 하나의 자아라고 느꼈고, 4·19혁명이 일어났을 때 수원 종로거리에서 본 버스를 타고 달리던 데모대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떠올리며 역사 속 인간 개인의 모습을 엿보았다.

"시라는 것은 결국 자신과의 대화예요. 나는 시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혼자일 때, 외롭고 고독하고 슬플 때 시작돼요.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지만 미처 알아듣지 못한 자신의 말들을, 자신의 낮은 목소리를 끊임없이 찾아내며 그것을 통해 자기완성을 해나가는 것이 시입니다."

한국시인협회 인터뷰1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직업이 될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소설'가'는 직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시'인'이라는 직업은 없습니다. 시인은 그저 시를 쓰는 사람이에요. 백석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높고 쓸쓸하고 외롭고 가난한 것, 그러나 자기를 지키는 것이에요. 늘 시를 쓰려고 노력했지만 공식적으로 시인이 되지 못한 친구가 있어요. 저는 그 사람이 진짜 시인이라고 했습니다. 시인이 직업이 되는 세상은 오지 않을 겁니다. 시와 관련된 문화산업은 성장할 수 있겠지요. 인공지능의 시대에는 시적인 것에 대한 욕구나 수요가 커질 거라고 봐요. 정서적 결핍감을 채워줄 것을 원하겠죠.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시를 쓸 수 있어요. 시를 쓸 수 없는 것은 너무 좋은 시를 쓰려하거나, 자신의 상처를 보지 못하거나, 자기를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해서입니다."

지난 달 한국시인협회 제41대 회장에 선출된 그는 임기 2년 동안 시 쓰기 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5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에는 자녀와 부모가 서로에게 시를 쓰는 시간을 갖도록 하고 싶어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부모님께 시를 쓰라고 했었어요. 수업시간에 발표하고 부모에게도 보여주는 과제였죠. 어떤 학생은 아버지가 시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며,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어요. 요즘은 부모 자식간에도 대화가 없잖아요. 시가 촉매제가 될 수 있습니다."

내년에는 한국시인협회 탄생 60주년을 맞아 세계시인대회 및 남북시인대회 개최를 추진한다.

"남북 갈등이 너무 심하니까 시협 창립 60주년을 구실 삼아서라도 남북시인대회를 열자는 거예요. 오히려 이런 분위기이니 새로운 돌파구나 실마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분위기로는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지만, 가장 힘없는 분야에서 시인의 상상력을 발휘하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원래 남북이 가까워질 때는 문인 교류가 먼저였어요. 가장 부담이 없기도 하니까요. 문인 교류를 시작으로 소통의 장을 여는 것이죠. 언제까지 극한 대립으로 가겠어요. 이 정부도 마무리 할 때쯤에는 화해 무드로 끝내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지금 모두 불안해하고 있잖아요. 그런 사회 분위기를 부드럽게 푸는 것은 문화예술이고 시도 그 중 하나니까 시인협회 대표로서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지요."

2016041301000946300053095

#도둑맞은 신의 분노

최동호

에덴의 동산에서 신은
요염한 이브에게
사과를 도둑맞았다
분노한 신은 인간을 용서할 수 없었다

올림퍼스 신들은 프로메테우스에게
불을 도둑맞았다
인간들은 신의 배신자 프로메테우스를
영웅이라 숭배했다

인간들은 바로 오늘 알파 고에게
인간을 도둑맞았다
컴퓨터가 영웅을 도둑질했다
신의 분노는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창조했다

한국시인협회 인터뷰6

#남문 시장의 봄

최동호

봄 싹은 누구도 자를 수 없다
수원 남문 시장 길거리 파란 미나리 뿌리들
봄 싹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처녀애들 앳된 얼굴처럼 하얀 냉이 뿌리들

한국시인협회 인터뷰5

■최동호(崔東鎬) 시인·문학평론가는?

現 고려대 명예교수/경남대 석좌교수/한국시인협회 회장
연구경력 고려대학교 문학박사(1981)/ IOW 대학(1992)/ 와세다대학(1995)/ UCLA(1999) 등에서 동서시 비교 연구
197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황사바람'(1976), '아침책상'(1988), '딱따구리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1995), '공놀이하는 달마'(2002), '불꽃 비단벌레'(2009), '얼음 얼굴'(2011), '수원 남문 언덕'(2014) 등
시론집 '현대시 정신사'(1985), '디지털 문화와 생태 시학'(2000), '진흙 천국의 시적 주술'(2006), '디지털 코드와 극서정시'(2011), '정지용 시와 비평의 고고학'(2013), '황순원 문학과 인간 탐구'(2015) 등

글/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 · 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민정주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