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 박수현 묘향산한의원 원장

"그러게 작작 쏘다니지" 보약같은 핀잔에 침구실 웃음꽃

권준우 기자

발행일 2016-04-20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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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한의원_박수현15
지난 2001년 3월 '국내 1호 탈북 한의사'가 된 탈북 한의사 박수현(50)씨가 18일 오후 성남시 수정구 수진동 묘향산한의원에서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만의 인생철학을 소개하며 웃음짓고 있다

탈북 한의사·한의학 박사학위 취득… 끊임없이 '국내1호' 타이틀
"모르면 모른다, 양약이 낫겠다" 환자 마음 읽어주는 진솔한 진단
'한의사 의료기기 문제'… 시장 확대되면 환자 판단할 기회 "찬성"


지난 2002년, 36살의 청년 박수현을 경인일보가 만났다(경인일보 2002년 2월18일자 9면). 그는 탈북자였다. 통역을 부탁한 친구를 따라나섰다가 고향을 등졌고, 중국의 자전거 물결과 고층빌딩에 충격을 받아 남한행을 결심했다. 두만강을 건넌지 딱 열흘만이었다.

낯선 한국 땅에서 처음 그를 맞은 것은 같은 동포의 따뜻한 환대가 아니라 의심의 시선과 차가운 멸시였다.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엄격했던 당시의 반공 정서 속에 내던져진 그는 여타 탈북자들이 그러하듯 쌀 속의 겨처럼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다 분리되어 버릴 듯했다.

그러나 그는 남한이 기회의 땅이라는 생각을 고치지 않았다. 청진의대 한의학부에 재학한 경험을 살려 자신을 감시하던 정보과 형사의 지병을 고쳐 준 것이 계기였다.

단번에 그의 팬이 되어버린 형사는 박씨를 경희대 한의학과에 추천했고, 94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생면부지의 영어, 낯선 한자(북한은 전공서적에도 한자를 잘 쓰지 않는다)를 기어이 극복해 2001년 3월 '국내 1호 탈북 한의사'가 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이북에서 복무한 부대 이름을 따 성남 모란시장 한구석에 '묘향산한의원'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터전을 세웠다.

그 후 14년이 지났다. 28살에 탈북해 만 22년간의 남한 생활, 인생의 양을 재는 저울추가 있다면 남과 북에서 살아온 삶의 무게가 어느 정도 균형점을 이룬 셈이다. 이제는 중년이 된 박수현(50) 원장의 삶도 많이 달라졌다.

1998년부터 3차례에 걸쳐 북에 있던 가족들을 탈북시킨 그는 두 동생에게 한의사의 길을 권유해 이젠 '탈북자 출신 3형제 한의사'라는 명성을 쌓았다. 지난 2010년에는 탈북자 최초로 한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국내 1호' 명함을 한장 더 보탰다.

탈북 출신에 화려한 이력을 보고 혹자는 그를 '코리안드림'에 성공한 유명인사쯤으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박 원장에겐 여론의 주목을 받는 스타의 향기보단 동네 복덕방 아저씨 같은 구수함이 더욱 짙게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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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걷는 법 없이 늘 종종걸음으로 다니는 그는 인터뷰 사진을 촬영하는 내내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과 인사하기 바빴고,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환자를 살핀다며 불현듯 벌떡벌떡 일어나 등을 보이기 일쑤였다.

진료 과정도 희한하다. 진맥하고 침을 놓는 것은 여느 한의원과 똑같아 보이는데 환자도 반말, 의사도 반말이다. 일하다 넘어졌다는 환자의 말에 박 원장이 "그러게 작작 좀 쏘다니지"라고 퉁을 놓자 침구실 가득 박장대소가 터지는 식이다.

"개원을 한 게 2001년 4월 15일이니 만 15년이 지났습니다. 시간이 오래되니 단골도 많죠. 고령으로 돌아가신 단골들도 많습니다. 병원 운영을 거창하게 하지 않으려고 해요. 환자들은 마음이 편한 게 최우선이거든요. 웬만한 병은 심리적 요인이 크다 보니 가족같이 구는 의사가 좋고 저도 그렇게 하는 게 더 재미납니다."

유년시절을 함경도에서 보낸 박 원장의 입담은 거침이 없다.

지난해 대다수 병원을 울상짓게 한 메르스 사태도 묘향산한의원은 비켜갔다. 남한으로 건너온 뒤 그의 인생 지론은 '하고 싶은 대로'다. 한의사로서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 이건 차라리 양약을 먹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환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시원하게 해 주는 것이 그의 의료 비법이다.

낯빛만 보고도 환자 상태를 가늠하는 베테랑 한의사의 진솔한 진단이 환자들에게 오히려 신뢰를 주는 듯 했다.

박 원장에게 지난 14년 동안 달라진 세계관을 듣고 싶다고 물으니 "바뀔 것이 뭐가 있겠냐"며 소탈하게 웃었다. 그러나 파란만장한 인생유전 덕분일까. 남한에 완벽하게 적응한 지금도 그는 여전히 비범하게 움직이고 있다.

예를 들면 지난달 23일 게임문화재단 주최 포럼에서 연사로 나선 일이 그렇다. '탈북자'와 '한의사' 그리고 '게임'이라는, 상관관계가 애매한 조합은 한 어린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공부에 통 흥미가 없고 게임에만 매진하고 있어 총명탕이라도 지어 먹이겠다는 엄마를 따라온 어린 환자에게 박 원장은 "니네 엄마가 너 잘되게 하려고 70만 원짜리 약을 지으러 왔어. 근데 그 돈 너한테 주면 너는 약을 지어 먹을래? 게임기를 살래?"라고 대뜸 물었다.

억지로 끌려온 자리에 시종일관 툭툭 대던 아이는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게임기가 갖고 싶다고 말을 했고, 박 원장은 "그럼 얼른 엄마를 안아주고 뽀뽀를 해 줘라. 널 위해서 쓰기로 한 70만 원으로 게임기를 사고 나머지는 엄마에게 맛있는 것을 사 줘라. 그리고 게임기를 놓는 동안엔 공부를 열심히 해라"고 조언했다.

아이는 한의원 문을 나서는 동안 연신 감사하다며 인사를 했고 아이 엄마도 흡족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런데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본 이가 진료를 위해 방문했던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이었다.

박 원장의 말에 감탄한 그는 포럼에서 연설을 해 줄 것을 권유했고, 강단에 선 박 원장은 '게임은 스트레스를 푸는 하나의 좋은 수단일 뿐 좋고 나쁨이 없다. 단지 이를 사용하는 사람이 과몰입하면 중독이 되는 것이다. 순기능을 확대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청중에게 큰 호응을 샀다.

여담이지만 박 원장 역시 일하는 틈틈이 게임을 즐겨 하고 있다. 모의전투게임 '서든어택'에서 '묘향산'이라는 아이디로 활동하는 그는 이미 게임 속에서 대령 계급에 오른 고수다.

박 원장은 "누구나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해 좋은 직장을 잡길 바라지만 스트레스에 치인 아이를 더욱 세게 내몬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며 그것을 좀 더 옳은 방향으로 이끌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것이 부모와 자식 간의 진정한 소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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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그의 지론은 자녀교육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갓 20살이 된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이던 시절, 박 원장은 아들을 데리고 중학교와 검정고시 학원, 대안학교 등을 돌며 스스로 진로를 선택하게 했다. 보름간 장고한 아들이 검정고시를 선택하자 그는 두말 않고 학원을 끊어줬다.

"다른 부모들이라면 미친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들도 충분한 고민을 했고, 그런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법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검정고시 동안 아들이 게임에 빠지기도 했고 공부에 소홀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아들이 원하는 바를 하게 한다는 원칙을 바꾸지 않았고 게임을 하는 아들에게 밥을 떠먹여 가며 자유롭게 키웠습니다. 그랬더니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성숙한 아이가 되더군요. 저와도 친구처럼 소통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이런 박 원장에게 '헬조선'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들의 사정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는 "대한민국은 지옥이 아니라 기회의 땅"이라며 "살아가는 이들이 지옥으로 느끼는 이유는 부모들이 자식의 삶을 지나치게 한정 짓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와는 또 다른 타이트함이 있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자유로운 것 같지만 사회적 분위기와 통념 등으로 인해 애당초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과도하게 구분해 놓았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삶도 마찬가지라 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즐거움이 있고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직업이 있지만 청소년기의 교육부터 '하고 싶은 일'과 '하면 안 되는 일'로 구분하고 있으니 경쟁 속에 내 몰린 삶이 오죽 하겠냐는 설명이다.

한의학계의 이슈인 '한의사 의료기기 허용' 문제에 대해선 성남시한의사회 홍보이사라는 직함을 잠시 내려놓고 진솔한 의견을 냈다. 한의사에게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면 오히려 양의사들을 찾는 환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게 요지다.

박 원장이 만 22년의 남한생활 동안 체득한 시장경제의 원리로 봤을 때 의료기기 시장이 확대되면 환자들이 스스로 판단해 전문가를 찾아갈 것이라는 얘기다. 또 박 원장은 같은 이유로 한의학의 영역을 개방하는 데도 찬성했다.

애초에 한 번의 모험으로 인생을 바꾼 박 원장이다. 작은 일에 애면글면 사는 인생은 두만강을 넘을 때 끝장낸듯, 인생을 자기 뜻대로 질주하듯 살아가고 있었다. 그에게 미래에 대한 고민은 보이되 걱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 행복하시냐'는 질문에도 그는 대답이 필요없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더할 나위 없다"고 짧게 답했다.

박 원장이라고 어려운 일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자신의 결정에 확신을 갖고 뒤를 후회하지 않는 그의 태도는 부러운 것이었다. 14년 만에 다시 만나본 그는 남한사람도 북한사람도 아닌 온전한 '박수현'그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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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현 묘향산한의원 원장은?


1989년 2월 청진의대 한의학과 입학
1993년 10월 두만강을 건너 탈북해 중국을 경유, 한국 정부에 귀순
1995년 2월 경희대학교 한의학과에 2학년으로 편입
1996년 12월 강선덕씨와 결혼
1999년 2월 부모와 형, 두 동생까지 탈북 후 귀순
2001년 3월 탈북자 출신 국내 1호 한의사 자격증 취득
2001년 4월 성남 모란시장에서 '묘향산한의원' 개원
2010년 2월 탈북자 최초로 한의학 박사학위 취득

글/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 · 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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