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기업 이윤이 시민 생명보다 우선하는가

이진호

발행일 2016-05-05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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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제품 사망 70명 등 피해자 1천여명에 달해
가습기 살균제 가해 13개기업 구상금 지급 거부
수사 빨랐더라면 증거인멸 더 줄일 수 있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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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독극물이 든 약품을 복용한 시민들이 잇따라 사망한 사건에 현명하게 대처한 존슨앤존슨사의 일화는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모범사례다.

1982년 9월 29일 시카고에서 열두 살짜리 소녀(메리 켈러만)가 초강력 타이레놀 캡슐을 복용한 지 한 시간도 안 돼 사망했다. 같은 날 아침, 우편 배달원 애덤 제이너스 역시 이 약을 먹고 사망했다. 장례를 치른 애덤의 형 제임스와 형수 테레사도 애덤의 욕실에 놓여 있던 타이레놀을 복용하고 이틀 만에 사망했다. 비슷한 시기에 한 도시에서 초강력 타이레놀을 복용한 시민 7명이 목숨을 잃었다.

경찰 조사결과 희생자들이 복용한 타이레놀마다 치사량을 훨씬 넘는 시안화칼륨(청산가리)이 들어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경찰은 사망자들이 복용한 타이레놀은 각기 다른 공장에서 생산됐고, 구매처가 다른 점으로 미뤄 누군가 약품 유통과정에서 허술한 포장을 뜯어 청산가리를 넣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회사 측에선 현상금까지 걸었지만 결국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존슨앤존슨은 첫 번째 사망 보도가 나간 일주일 뒤 문제의 약품을 전국에서 모두 회수했다. 전량 회수 방침은 소매가 기준으로 1억달러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존슨앤존슨의 시장점유율은 35%에서 8%로 폭락했다. 엄청난 손해를 입었음에도 존슨앤존슨은 유가족을 위로하고 회수 전담 부서를 마련했다. 시민들의 공포심을 덜고 언론에 대응하기 위해 무료 상담 전화 1천800대를 설치 하는 등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제임스 버크 회장도 직접 언론 매체와 뉴스, 토크쇼 프로그램에 나와 공개 사과하고 후속 조치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사건 발생 직후 존슨앤존슨은 조작이 불가능한 '타이레놀 젤캡'을 개발했다. 같은 해 11월 11일에는 3중 밀폐 방식의 제품을 내놨다. 이런 노력 덕분에 사건이 발생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시장점유율은 다시 29%로 상승했고 시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후 29년 뒤인 2011년 4월. 서울 아산병원에 중증 폐렴 임산부 입원이 증가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가습기 살균제가 폐 손상을 일으키는 위험이 있음을 파악하고 수거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사건 발생 5년 전인 2006년 서울아산병원 홍수종 교수가 가습기 살균제의 심각성을 알렸고, 2007년 말에도 대학병원 소아청소년 의료진도 관심을 촉구했지만, 보건당국은 이를 무시했다. 그 사이 독극물이 든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수백 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현재 정부가 1차 판정에서 발표한 옥시 제품 피해자 177명 가운데 사망자는 70명에 이른다. 아직도 정부 판정을 기다리고 있는 피해자만 1천여 명에 달한다. 제품이 2001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한 것을 고려하면 조사에서 빠진 사망자나 피해자가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사태의 또 다른 문제는 주범이 옥시 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가해 기업으로 지목한 업체는 모두 14개에 이른다. 이들 업체 가운데 산도깨비를 제외한 옥시레킷벤키저, 롯데쇼핑, 홈플러스, SK케미칼, 애경, 이마트, GS리테일, 퓨앤코, 홈케어, 한빛화학, 제너럴바이오 주식회사, 세퓨, 용마산업사 등 13개 기업은 지금까지도 구상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옥시에 대한 검찰 수사는 사망자 유가족의 끊임없는 눈물겨운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12년 5월부터 2016년 4월 19일까지 진행된 1인 시위만 381회에 이른다. 검찰 수사가 빨랐더라면 옥시의 증거인멸이나 조작을 좀 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크다. 기업 이윤이 시민 생명보다 우선하는 암울한 시대다.

/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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