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교 칼럼

[강은교 칼럼]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우리말·외래어가 줄임말과
자투리말로 정신없이 범벅되어
스마트폰 '문자 메시지'는
단군이래 최초로 전 국민을
작문 공부하게 만들었지만
덕분에 잃어버린 말 너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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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시인
요즘은 '글쓰기'가 두렵다. 나도 모르게 '자투리'말이 튀어나오고, 본래의 단어 뜻이 잘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스마트 폰의 '문자 메시지'는 단군 이래 최초로 전국을 작문교실로 만들고 전국민으로 하여금 작문을 공부하게 하고 있지만, 덕분에 잃어버린 말들이 너무 많게 되었다. 놀이터에서 만난 초등학교 다니는 한 아이가 '생파'에 간다고 한다. 생파가 무어냐고 하니까 생일파티라고 한다. '생선'을 가지고 간다고 한다. 생일선물이란다, 우리말과 외래어가 정신없이 줄임말·자투리말로 범벅이 되어 있다. 어떤 말들은 영어인지, 우리말인지,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어린이날, 내가 저녁을 산다니까 손녀가 "올작에 가고 싶어요"한다. "'올작'이 뭐니? 어디니?"하니까 레스토랑 이름, 올리브-장작이란다. 그 레스토랑의 특징은 이름대로 화덕에 굽는 이태리 피자라고 딸이 설명한다.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 눈은 푹푹 날리고 / 나는 혼자 쓸쓸이 앉어 소주를 마신다 /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 나타샤와 나는 / 눈이 푹푹 싸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 나타샤가 아니올리 없다 /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 한다 /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 세상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백석의 유명한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이다.

스마트 폰을 열면 나오는 이 시를 새삼 이 귀중한 자리에 인용하는 이유는 아름다운 우리말, 그러나 '외국어같은'울림을 주는 사투리 때문이다. 특히 2련 7행의 '마가리'. '마가리'란 뭘까, 외국어 지명인가? 그런데 오랫동안 잊고 있던 장승욱씨의 '우리말 도사리'를 보니, '마가리'란 집의 종류 중에서 움집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 장승욱 씨는 '도사리'에 참 많은 말들을 모아놓았다. 스마트 폰 덕분에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우리말사전도 슬그머니 없어져 버린 요즈음, 그의 '도사리'는 가끔 아주 '어이없는 말 이해'에서 나를 구해주곤 한다.

그에 의하면 집의 이름도 많기도 하다. '도끼집(연장을 제대로 안쓰고 도끼 같은 것으로 거칠게 건목쳐서 지은 집)', '말집(쌀을 되는 말처럼 모양 없게 지은 오막살이집)', '까대기(담이나 벽에 임시로 붙여서 지은 가건물)'. '움파리(움을 파서 만든 움막)', '마가리'도 움막처럼 비바람이나 겨우 막을 수 있도록 간단하게 꾸민집, 심마니들이 쓰는 산막(누게). 이렇게 알고 나니 이 시행의 아름다운 이미지는 더 밝게 드러난다. '마치 배가 고픈 듯이 울고 있는' 깊은 산골의 가난한 움집, 고독하고 가난하지만, 나타샤와 있으면 전혀 그렇지 않은 곳, 이상향! 이 참에 또 백석의 시 하나를 더 볼까.

가즈랑집은 고개 밑의 / 산너머 마을서 도야지를 잃는 밤 즘생을 쫓는 깽제미 소리가 무서웁게 들려오는 집 / 닭 개 즘생을 못놓는 / 멧도야지와 이웃사춘을 지나는 집 <'가즈랑집' 중에서>

이 시에서 '가즈랑집'은 어떤 집일까? '쇠메'는? '깽제미' 소리는 어떤 소리의 비유?

아무튼 시대가 갈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1930년대 백석의 시다. 외래어들에, 자투리말들에 어이없이 눌리고 있는 우리의 말이 새삼 눈부신, 깊은 울림을 얻는다. 눈부신, 깊은 의미가 따라온다. '생파'에 '생선'을 가지고 가는 이 시대에도.

/강은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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