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경인칼럼] 창문세를 걷어야 하나

도시민 불편없이 자연경관 보고 즐길 권리 있는 것
정부, 경제살리기 구실로 최소한의 규제 마구 완화
광화문광장 진경산수 감상 기회마저 잃을까 두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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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수원대 교수 · 객원논설위원
17세기 영국에는 창문세(Window Tax)라는 세금이 있었다. 유리 값이 워낙 비싸 서민들 주택에는 거의 창문이 없었다. 집에 창문이 있다는 것은 집주인이 부자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왕실이 재정난에 시달릴 무렵인 1696년 12월 31일 영국의회는 주택의 창문 숫자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전대미문의 창문세법을 전격적으로 통과시켰다. 집집마다 창문들이 점차 사라졌다.

서울의 진산(鎭山) 인왕산은 언제 봐도 정겹다. 눈에 익은 풍경들이 겸제 정선(鄭敾)의 대표작품인 인왕제색도(仁旺霽色圖)의 실제 모델이어서 더욱 감회가 새롭다. 겸제는 안견, 김홍도, 장승업과 함께 조선 4대 화가로 한국에 진경산수화란 새로운 지평을 연 대가가 아닌가. 광화문광장에서 세종대왕 동상을 등지고 북쪽을 바라보면 우측으로부터 북촌, 청와대 뒷산 그리고 서촌을 감싸안은 인왕산 등의 스카이라인이 옛 모습 그대로이다. 야은(冶隱) 선생의 '5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란 시구가 흥을 돋운다.



서울에서는 한눈에 파노라마처럼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지방도시도 같은 양상이다. 경관이 좋은 곳일수록 흉물스런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사방을 에워 싼 때문이다. 더욱 가관은 땅값이 비싼 곳일수록 빌딩 숲이 너무 지나치다는 점이다. 헬기를 타고 도심 상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파트와 사무용 빌딩들이 마치 송곳처럼 빽빽하게 하늘을 향해 꽂혀 있는 모습이어서 소름이 돋는다. 국민 절대다수가 조망권을 박탈당한 채 살고 있는 것이다.

1960, 70년대 산업화 영향으로 도시가 급속도로 팽창했는데 수익성을 우선한 토목건축논리가 경쟁적으로 도시에 차단벽을 친 것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부터 도시생태계 훼손은 더 심해졌다. 주거난 해소를 위해 2008년 9월부터 향후 10년 동안 500만호의 주택을 건설하기로 하고 재개발, 재건축 대폭 완화와 그린벨트 내의 보금자리주택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도심 내 오피스 및 주거용 건물부지난 해소차원에서 고도제한까지 풀은 탓에 서울 잠실에는 123층짜리 스카이 스크레퍼가 출현했으며 지난해 8월에 입주한 서울 동부이촌동의 래미안 첼리투스는 최고 56층으로 한강변에서 가장 높아 남산과 높이가 맞먹는다.

올 8월 입주예정인 38층의 반포 아크로 리버파크는 한강변의 스카이라인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민족의 젖줄 한강 조망이 완전히 차단될 수도 있어 보인다. 조망 혜택이 클수록 부동산가격이 치솟는 때문이다. 경기도 하남시의 T오피스텔은 실내에서 한강이 보이는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 간의 시세 차이가 5천만 원이다. 박근혜 정부의 규제 완화는 점입가경이다. 도심 난개발을 막기 위해 1962년 건축법 제정 당시부터 반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유지해 온 '도로 사선(斜線)제한 규정'을 작년 5월 건축법 개정으로 없앤 것이다. 도로 인근에 건물을 지을 경우 도로에서 사선을 그었을 때 건물높이가 도로 폭의 1.5배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건축법상 별도의 제한규정이 없는 경우 이 조항이 두루 적용되어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해치는 '나 홀로' 고층빌딩의 난립을 막는 역할을 해왔는데 최소한의 장치마저 사라진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사선제한 폐지로 투자자들의 수익이 늘어 한해 1조원 이상의 투자 효과가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경치 감상은 계량화가 곤란한 무형자원으로 전형적인 공공재이다. 공기나 햇빛처럼 특정인의 소비가 다른 사람의 소비에 지장을 주지 않음은 물론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공짜로 구경이 가능한 것이다. 도시민들은 불편 없이 자연경관을 보고 즐길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이다. 또한 스카이라인을 지켜나가는 것은 도시경쟁력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정부가 경제 살리기를 구실로 손톱 밑 가시들을 마구 뽑아버리고 있으니 이젠 광화문광장에서의 진경산수를 완상(玩賞)할 수 있는 기회마저 사라질까 두렵다. 국민들의 볼거리를 앗아가는 건축물에 창문세를 신설하면 어떨까?

/이한구 수원대 교수 ·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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