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차별을 승인하는 사회, 다시 평등을 생각하며

윤진현

발행일 2016-05-16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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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오해하는 '돈키호테형'
재산·권력, 인간 평등에 우선
왜곡된 세계관 우리 사회 횡행
부단한 투쟁·희생으로 성취한
'인간·민주주의·평등'에 대해
근본에서 다시 생각해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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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흔히 저돌적이고 무모한 인물을 '돈키호테형'이라고 한다. 스페인의 대문호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중세 기사소설에 심취한 라만차의 사나이 '돈키호테'는 이웃의 평범하고 어리숙한 처녀를 고귀한 공주로 오해하고 이 공주를 지키겠다, 기사의 맹세를 한다. 그리고는 풍차를 거인이라며 공격하고 죄수들을 폭정의 희생자라 단정하고는 호송행렬을 습격해 탈옥시키는 등 도처에서 '악'을 발견하고 이를 척결하겠다며 좌충우돌 소동을 빚는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17세기 초반 스페인과 유럽에서 새삼스럽게 유행했던 중세 기사도 소설과 대결한다는 목표로 집필된 것이었다. 요즘식으로 보자면 유행하는 막장드라마가 인간의 갈등과 선택에 바른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쓴 것이라고 보면 될까.

그런데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돈키호테'라는 탁월한 인물의 중심이 무모하고 저돌적이라는 점에 있는 것은 아니다. 돈키호테는 말 그대로 현실을 '오해'하는 인물이다. 비현실적으로 추상화한 세계, 대체로는 역사적으로 과거를 이상화해 그 세계를 철석같이 믿고 이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인 것이다. 용이 날아다니고 거인이 세계를 위협하는 중세를 현실로 살고 있다.

물론 혼자서 중세를 살든, 고대를 살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나아가 전 시대의 옳은 가치를 실천하는 경우라면 '이 시대 마지막 선비' 같은 낭만적이면서도 존경 어린 찬사를 바칠 수도 있다. 소설 속의 돈키호테 또한 고귀한 공주로 표상되는 중세적 가치, 달리 말하면 절대적 가치가 의심되고 선악시비가 상황에 따라 재고되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충성심을 가졌다는 점에서 연민과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하여 여기에서 비롯된 영화, 뮤지컬, 연극, 애니메이션 따위에서는 멋진 로맨스로 각색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인물을 현실에서 만난다면 재앙이다. 왜냐하면 돈키호테가 전제하는 중세적 세계는 낭만적인 허다한 가치와 장점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에게는 끔찍한 세계, 그러니까 대다수 인간에게는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세계이며, 하여 부단한 투쟁과 희생으로 극복해온 세계이기 때문이다. 상상해보자. 태어나보니 신분이 평민이나 천민인데 단지 그 이유로 상위신분의 인간 앞에서는 허리를 펴지 못하고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살아야 한다. 심지어 홀로 밥을 먹을 때도 평민은 다리가 낮은 밥상이나 아예 밥상도 없이 밥을 먹는 세상이다. 능력이나 형편과 무관하게 모든 것에 제약이 있고 심지어 더 나은 삶을 꿈꾸어서도 안 되는 것이 당연한 세상, 요컨대 아주 끔찍한 세상 아닌가.

그런데 이러한 세상을 받아들이는 인간이 있다. 여전히 인간 세상에는 고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이 있고 자신들은 특정한 고귀한 인간에게 충성을 다하는 옳은 인간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가상의 로열패밀리에 대한 맹목적 충성으로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잘못된 줄 모른다. 이들의 비현실적인 충성심은 돈키호테가 그랬듯이 풍차를 파괴하고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을 옹호하며 나아가 이들로 하여금 더 큰 죄를 짓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경중을 따지자면 풍차를 파괴하거나 이웃 처녀를 공주로 착각하는 따위의 행동은 당장 현실적으로 피해를 주어서 그렇지 차라리 가벼운 일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의 왜곡된 세계관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차별을 승인한다. 재산과 권력이 인간적 평등에 우선할 수 있다는 위험한 사고가 생각보다도 훨씬 넓게 우리 사회에 횡행하고 있지 않은가. 민주화를 이룩하면서 극복해 온 것으로 생각했던 이 노예적 세계관이 여전히 강성하게 번영하고 있었다. 소설에서는 단지 돈키호테의 정신병으로 간주되지만 그것은 '돈키호테'가 발표되던 17세기 새로이 부상하던 근대의 중심, 근대적 의료이성이 해결책으로 수용되던 시절의 답변일 뿐이다.

인간과 민주주의, 평등에 대해서 근본에서 다시 생각해야 할 때이다.

/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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