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대] 대 침체와 큰 사치

김방희

발행일 2016-05-19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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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 장기화 되면서
미래 기약할 수 없는 젊은 세대들
새로운 소비 선택하는데 집중
특급호텔 뷔페·소문난 맛집 찾기
고가 수입차 구매·해외여행 등
엄청난 비용·수고 마다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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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불황에 관련된 가장 유명한 속설은 치마 길이와 작은 사치(small luxury)일 것이다. 경기가 안 좋을 때 치마가 짧아진다는 주장은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오늘날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대중 심리에 관한 이야기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유명한 가설은 우연과 오해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 19세기 중후반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기나 1920년대 미국의 대호황기에 여성의 치마가 너무 길어 길을 쓸고 다녔다는 기록이 촉매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 미니스커트가 호황기인 1960년대 등장해 크게 유행한 것도 잘 들어맞지 않는다.

1930년대 등장한 작은 사치는 속설의 수준을 넘어섰다. 이 용어는 유례없는 대공황기였던 당시에도 속옷과 스타킹처럼 큰 부담 없이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상품들은 잘 팔렸던 데서 비롯됐다. 2001년 미국에서 정보통신(IT) 기업 거품이 붕괴될 당시, 한 화장품 회사 사장은 작은 사치 대신 립스틱 효과라는 용어를 썼다. 불황에도 불구하고 자사의 립스틱은 아주 잘 팔렸다는 근거에서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미국에서는 립스틱 판매마저 크게 줄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립스틱이나 혹은 예전의 속옷, 스타킹을 대신하는 최근 상품은 네일케어(nail polish)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여성들이라면 실감하겠지만, 요즘 같은 불황기에도 네일케어 숍은 예약이 쉽지 않을 만큼 성업 중이다. 작은 사치의 예는 꼭 이런 업종뿐만이 아니다. 순항 중인 커피 전문점도 여기에 해당된다.

작은 사치와 SNS, 그리고 밀레니엄 세대가 결합한 결과는?

글로벌 경제의 침체기가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가 경기 회생에 나선 지 7년이 지났다. 하지만 미국 경제를 제외하고는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세계 각국은 금융위기 이후 풀린 돈 탓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기존의 통합 이슈에 더해 이민까지, 유럽은 근본적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문제가 꼬이기만 하고 있다. 예기치 않은 중국의 성장 둔화와 예정되다시피 한 일본의 아베노믹스 실패까지, 세계 경제는 온갖 악재로 가득 차 있다.

대서양 양안에서는 요즘 불황을 규정하는 말로 '대침체'(Great Recession)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다분히 1930년대 대공황(Great Repression)을 의식한 말이다. 당시에 비해 금융과 실물 분야에 비해 충격이 크지는 않지만 기간은 결코 짧지 않다는 뜻이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 상황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공황기 작은 사치는 소비자들이 단순히 소비를 줄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상식에 반하는 현상이었다. 일부 분야에서는 소비를 늘린다는 것이었다. 대침체기인 요즘은 새로운 소비를 선택하는 데서 더 나아가 여기에 소비를 집중시키는 경향마저 나타난다. 과거 열 번 외식을 했다면 지금은 두 번으로 줄인다. 작은 사치는 기존에 가지 않았던 새로운 외식업체를 고르는 정도다. 하지만 지금은 특급 호텔 뷔페라든가 소문난 맛집을 찾아가는 엄청난 비용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사회관계망(SNS) 확산과 밀레니엄 세대(1982~2004년 출생자)의 등장이 새로운 유형의 소비를 부채질하고 있다. 특별한 관심을 받으며 자란 이들은 남들에게 자신들이 특별하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소비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 되면서 이들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이전 세대와 달리 집에 별 관심도 없다. 젊은 세대는 수고한 자신들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수입차를 구매하고, 고가의 해외여행을 계획한다. 자신의 처지와 능력에 부치더라도 일단 저지른다. 시쳇말로 지르기 식 소비다. 과거 장기 불황기의 작은 사치에 빗대, 이런 새로운 소비 유형은 '큰 사치'(big luxury)라고 부르는 것이 맞겠다.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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