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교동과 고려의 맛

정진오

발행일 2016-05-19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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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 옛사람들 즐겨먹던 요리 어땠는지 알길 없어
남북 분단으로 그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 잊혀져
꼭꼭 숨겨진 것들 찾아내는게 진정한 가치 재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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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지난 17일 오후, 편집국의 한 선배가 물었다. "오늘 우리 신문 1면에 나간 시(詩) 말이야. 그 시 속에서 물고기 회를 치는 데 파는 왜 뜯는 거지. 닭은 왜 홰에 오른다고 한 것이고?" 그 선배는 '파 뜯고 회를 칠 제 닭은 홰에 오르려 하네'란 시구를 몇 번이나 읽었던 모양이다. 분명 음식과 연관이 있는데 파, 회, 닭이 잘 연결되지 않는다. 사실 그날 치 시를 준비하면서 그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고려 말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지은 '교동(喬桐)'이란 제목의 시인데 뜻이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아 이색에 대한 책을 쓴 대학교수한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고려 말 교동은 수도 개성과 가까운 해상 물류의 중심지였다. 수많은 배가 오가다 보니 사람도 들끓었다. 교동 특유의 먹거리가 있었을 것이다. 파전이나 생선회가 유명했을 것이고 닭요리가 일품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북분단과 함께 위치를 잃은 교동은 음식 정체성마저 잃고 말았다. 교동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려의 맛'을 상실한 것이다. 이제는, 고려시대 교동사람들이 무엇을 먹었을지 그저 상상만 할 뿐이다.

얼마 전 책꽂이에 장식처럼 꽂혀 있던 옛 서적 '동문선(東文選)'을 뒤적이다가 생각지 않게도 이색이 지은 '교동' 시를 찾는 행운을 얻었다. '동문선'에 실린 1편의 이 '교동' 시는 이색이 지은 '교동 3수'라는 3편의 연작 시 중 하나라는 점과 이색의 교동관련 시 1편이 더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며칠 사이에, 교동의 문학적 토양을 넓힐 수 있는 아주 귀한 소재를 확인한 셈이다. 다만 '동문선' 속의 '교동' 시와 '목은집'에 실린 그것의 해석이 다소 달랐는데, 그 점은 전문가들이 좀 더 연구해야 할 문제로 보였다.

우리에게 과제를 던져주는 '교동의 문학'은 이색의 시뿐이 아니다.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도 작게는 교동, 크게는 인천의 입장에서 아주 귀한 작품이다. 1984년 10권짜리로 나온 '장길산'에는 지금 행정구역으로 따져 인천관련 지명이 등장하는 곳만 총 118쪽에 달한다.

강화와 교동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교동은 개성이 수도이던 때에도, 한양이 수도이던 시절에도 물산의 집합처였다. '장길산'에는 그 번화한 교동의 모습이 생생하다. 주인공 장길산의 의형제인 해적(海敵) 우대용이 해적선을 처음 만든 곳도 교동이었다. 교동이 한반도 서해안 물류 라인의 허브였다는 반증이다.

이색의 교동 시에는 돛단배가 해 질 녘까지 분주히 오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는 조선 시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학 속에 그 모습이 녹아 있다. 하지만 지금 교동의 상황은 처참하다. 최근에 다리가 놓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외지인이 맘대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남북분단 때문이다. 그 70여 년 사이에 교동은 자기 정체성을 모두 상실하고 말았다. 교동에 살던 옛 사람들이 어떤 회를 즐겨 먹었고, 닭요리는 어떠했고, 파전의 맛은 어땠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교동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려의 맛'을 완전히 잊고 만 것이다.

인천시가 '인천 가치 재창조 사업'에 시정 역량을 모으고 있다. 이와 관련한 수많은 사업들이 준비되고 있다. 누구나 다 아는 것은 재창조할 가치가 없을 것이다. 있던 것인데 잘 드러나지 않은 것, 많은 이들이 알아야 하는데 꼭꼭 숨겨진 것을 찾아내는 게 진정한 가치 재창조 사업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교동도 할 말이 참 많다.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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