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이야기가 아닌 것'과 스토리텔링

김창수

발행일 2016-05-25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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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감 아닌것 이야기로 만드는 소재 가까이 있어
진정한 가치는 남들이 안 돌본것 성찰한 경우 많아
가치의 재발견 위해선 다른 각도에서 삶 바라봐야


사본 -2016김11
김창수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 객원논설위원
이야기 르네상스 시대이다. 문화기획, 문화산업, 관광분야는 물론 교육현장, 상품 광고에서도 방법은 스토리텔링으로 귀결된다. 스토리텔링은 신비로운 주술처럼 여겨진다. 마치 마이더스왕의 손이 닿은 사물이 황금으로 변하듯이, 이야기의 세례를 받은 사물들은 침묵에서 깨어나 생동한다. 바위나 나무가 노래하고, 낯선 공간이 친근한 장소로 바뀌고,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던 인물이 눈앞에 현현하게 된다. 스토리텔링을 만능키처럼 여기게 된 것은 이야기가 지닌 마법성, 혹은 이야기의 서사성, 이야기를 즐기는 인간의 본능, 상호소통기능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스토리텔링의 의미에 대해 서사학자들은 '스토리(story)와 텔링(telling)'의 합성어로 '이야기하기'이며, 상대방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를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행위이다. 영어권에서는 스토리텔링을 음성과 행위를 통해 청자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으로 통용된다. 한국어로 '이야기하기' 나 '구연(口演)'이 대응어를 사용할 수 있겠는데 언중들은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야기하기'나 '구연'이라는 말이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의 본질적 의미를 온전하게 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스토리텔링을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는 것은 스토리텔링의 복합적인 특성 때문이다.

그런데 스토리텔링의 본질은 '이야기가 아닌 것을 이야기로 만드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닐까? 전설이나 신화와 같이 기존의 이야기를 재가공하는 것도 스토리텔링이라 할 수 있지만 그 경우는 소설이나 동화와 같은 문학장르로 구분된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스토리텔링이란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을 이야기로 재구성하고, 이야기가 아닌 것에 이야기적 요소를 결부시켜,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뛰어난 스토리텔링은 역설적으로 이야기가 아닌 것에서 이야기의 요소를 발견해서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공한 경우이다. 그런데 '스토리텔링'은 이야기 만들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스토리텔링은 이야기 아닌 것을 이야기로 만들고 그 이야기를 전하고 듣는 상황을 가정한 '대화'이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골집과 같은 공간이 필요한데, SNS나 블로그와 같은 뉴미디어가 바로 우리시대의 이야기 공간이다.

맨부커상 수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우리의 가족과 사회에 관통하고 있는 관습 혹은 폭력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잔혹한 폭력 사건이 발생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우리는 폭력에 둔감하거나 마비되어 있다. 관습이란 이름의 일상적 폭력에 대해서는 아예 상식이라 여긴다. '채식주의자'는 독특한 인물 설정과 탐미적 문체가 빛나는 소설이지만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 본다면, 폭력이 일상화된 묵시록적 사회에서 더이상 '이야기 거리'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야기감을 이야기로 만들어 독자들로 하여금 일상을 되돌아 볼 수 있게 만든 작품이다.

스토리텔링이 이야기가 아닌 것, 혹은 이야기감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는 것을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라면 그 소재는 멀리서 구할 필요가 없다. 진정한 가치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남들이 돌보지 않은 것을 성찰한 결과일 경우가 많듯이, 가치의 재발견이나 감동적 스토리텔링을 위해서는 일상에서 물러나거나 다른 각도에서 우리 삶과 사회를 바라보는 수고가 필요하다.

/김창수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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