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고택기행

[인천 고택기행·22] 강화도 1928가옥

동서양이 어우러진 두 얼굴근대한옥, 문화를 융합하다

{ 1928가옥 : 1928년 황국현씨가 지은 고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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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강화 남문 1928가옥 전경.

황씨 후손으로부터 도예가 최성숙씨가 매입
원형 복원작업 진행… '체험 프로그램' 계획
다락에 서양 발코니 같은 난간 설치돼 눈길
헤링본 무늬 마룻바닥·에칭기법 유리문 등
영국풍 양식 결합된 누마루·대청마루 '독특'
황씨 사위 김근호, 전기공급·전화설치 한몫
김주경과 인연 강화찾은 백범 기념사진 남겨
전문가 "인천시 특성인 문화융합 건축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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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강화읍 남문안길 7(신문리 326)에 있는 이른바 '강화 남문 1928가옥'(황씨 고택)은 전통과 근대문물이 만난 '문화융합지대 인천'을 상징하는 근대한옥이다.

명칭 그대로 1928년에 건립된 이 집은 40년 가까이 빈집으로 방치됐다가 최근 새 주인을 만났다. 그전까지는 굳게 잠긴 대문 안을 들어가 본 사람이 많지 않아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28가옥이 건립된 당시에는 이미 서양 또는 일본 건축양식이 한옥에 스며든 때다. 이 집 역시 전통한옥의 외양을 갖췄지만, '이국적인 디테일'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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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마루에는 창문틀을 표구화한 그림 여러 장이 붙어있다. 근대 이후 한옥 대청마루는 거실 또는 응접실 역할을 하면서 서구식 주거양식으로의 변화를 가져왔다

본래 집주인은 건립 당시 강화도 부농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황국현이다. 그와 관련한 기록이나 자료가 없어 행적을 알긴 어렵지만, 고급 목재(백두산 잣나무)를 사용한 당시로선 최신식 주택을 지은 것으로 보아 상당한 재력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남아있는 1920~30년대 이 집에서 찍은 결혼식이나 잔치 사진에 등장하는 식구들의 말끔한 용모가 이를 뒷받침한다.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집안 식구끼리 기념사진을 촬영했다는 자체가 '부의 상징'이다. 그래서 강화사람들은 이 집을 '황부잣집'이라고도 불렀다.

1928가옥은 80년 넘게 황국현의 후손이 소유했다. 집주인이 바뀐 것은 2012년 말 도예가 최성숙(61·여) 씨가 황국현의 후손으로부터 집을 매입하면서다. 자연보호·사적보존을 위한 국제 민간단체인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 회원이기도 한 최성숙 씨는 강화도 일대에서 은퇴 후 머물기 위한 한옥을 4년 가까이 찾다가 이 집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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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국현의 장례식 모습. 1930년대 초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속 집의 지붕은 기와가 아닌 초가라는 게 눈길을 끈다. /최성숙 씨 제공

그는 4년째 1928가옥을 건립 당시 원형 그대로 복원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황국현의 후손을 여러 차례 만나기도 했다. 최성숙 씨는 "88년이란 세월을 유지해온 집을 하루아침에 손댄다면 금방 망가질 것"이라며 "최소한 5년 이상은 집에 살아보면서 어떻게 복원하고 유지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1928가옥은 본채(사랑채), 문간채, 별당채, 곳간채로 구성돼 있었으나, 현재 본채와 문간채만 남았다. 아직 실측하지 않아 정확한 건축규모는 알 수 없으나 대지 991.7㎡(300평)에 본채가 132.2㎡(40평) 면적이라고 한다. 본채는 'ㄱ'자 한옥으로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사랑방과 누마루가, 왼쪽에는 2칸으로 나뉜 안방이 있다.

부엌 위에는 상당한 규모의 다락이 있는데, 다락 외부에는 전통한옥에선 찾아보기 힘든 서양의 발코니 같은 난간이 설치된 독특한 구조다. 개방된 공간인 대청마루에 유리문을 단 것도 근대한옥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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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가옥 누마루는 전통한옥양식에 영국풍 유리창과 마룻바닥이 가미된 특징을 보인다.

1928가옥의 누마루는 영국풍이 결합됐다. 헤링본(herringbone) 무늬의 마룻바닥과 에칭기법(부식법)으로 다양한 문양을 낸 크리스털 유리문 등은 모두 영국식이다. 그런데 누마루에서 사랑방으로 통하는 들문은 전통 문살에 창호를 바른 우리식이다.

1900년 강화읍에 한옥성당을 지은 영국 성공회의 영향인 것으로 추정된다. 헤링본 무늬 마룻바닥은 대청마루에서도 나타난다.

건립 당시 사진을 보면, 이 집의 지붕은 기와가 아닌 초가지붕이었던 점이 수수께끼다.

고급 재료를 사용하고, 당시 최신 인테리어를 적용한 한옥의 지붕이 초가지붕이었던 것에 대해 현 집주인 최성숙 씨는 "주변 대부분 주택이 초가집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부를 애써 드러내지 않는 겸손의 의미로 초가지붕을 올린 게 아닌가 생각된다"며 "전문가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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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다락방 외관도 고풍스러운 장식으로 꾸며졌다. 다락의 규모는 일반적인 한옥보다 크다.

1928가옥에 얽힌 수많은 강화도 이야기는 집의 매력을 더한다. 이 집의 본래 주인이던 황국현은 슬하에 1남 2녀를 뒀다고 한다. 황 씨의 첫째 사위는 김근호(金根鎬·1907~?) 씨로 선박회사인 동양기선 전무와 배재학당 이사장을 지냈다.

그는 1934년 강화도에 처음 전기를 공급하고 전화를 설치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는 수공업 형태로 이뤄지던 강화도 직물산업이 근대적 기틀을 갖추고 국내 최대규모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김근호 씨는 일제강점기 강화도에서 활발했던 청년운동과 소년운동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 때 서울 자택에서 북한군에게 피랍된 것으로 알려진 김근호 씨는 2012년 정부 6·25납북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납북자로 공식 인정됐다.

백범(白凡) 김구(金九·1876~1949) 선생이 1946년 11월 강화도에 방문했다가 1928가옥 앞에서 지역 유력인사들과 찍은 사진도 아직 남아있다. 김구는 1896년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에서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인 쓰치다를 죽인 '치하포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인천감리서에서 옥살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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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이 1946년 11월 강화도 방문 때 1928가옥에 들러 지역 유력 인사들과 함께 찍은 사진.

당시 강화도에 사는 김주경(김득경)은 재산을 탕진하며 김구 구명 운동에 나섰다. 인천감리서에서 탈옥한 김구는 1900년 김주경을 만나러 강화도에 갔지만, 그를 만나지 못하고 3개월간 강화에 머물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백범일지'에 따르면, 해방 후 귀국한 김구가 가장 먼저 수소문을 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 김주경이다. 해방 후 김주경과 관련한 사람들을 찾아 강화에 온 김구가 김주경의 집이 있던 자리에 지은 1928가옥을 찾은 것이다. 강화도는 김구가 독립운동가 유완무를 만나 그의 권유로 이름을 '김창수'에서 '김구'로 바꾼 곳이기도 하다.

집주인 최성숙 씨는 조만간 1928가옥에 대한 '한옥 문화체험 프로그램' 운영을 시작해 집에 대한 소개와 집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낼 계획이다. 그는 "예약을 통해 정해진 시간에 제한된 인원에게 집을 공개할 생각"이라며 "집의 원형과 역사를 함께 보존해 100년을 넘어 200년을 버텨낼 한옥으로 가꿀 것"이라고 했다.

김창수 인천발전연구원 인천도시인문학센터장은 "인천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문화융합을 건축으로 구현한 사례"라며 "건축물 자체는 물론 살았던 사람에 대해 주목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글 =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 사진 =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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