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한 나무의 주검

강맑실

발행일 2016-06-03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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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년 주민들 사랑 받으며 동고동락했던 '당산나무'
영주댐공사로 줄기 잘리고 새까만 피 토한채 죽어
나무는 인간들 때문에 피폐해진 땅 살리려는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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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어느 날 메일로 충격적인 사진 몇 장이 날아왔다. 비계파이프가 얼기설기 얽힌 사이사이로 새까맣게 타들어가 죽은 거대한 시체 한 구가 보였다. 수많은 팔이 잘린 온몸 이곳저곳에 이불 홑청처럼 큰 붕대가 친친 감겨 있었다. 붕대는 대부분 풀려 바람에 나부끼고 시체가 흘린 새까만 피로 뒤범벅된 지 오래인 듯했다. 거대한 몸 곳곳에는 링거 줄 몇 개가 무심히 엉켜 있었다. 곡절 많은 세월을, 고단한 역사를 묵묵히 견뎌왔을 그 몸은 비록 팔들이 모두 잘려나갔지만 꿈틀대듯 솟아오른 몸통의 근육들 속에 금방이라도 용트림 치며 끄응, 하고 살아날 것만 같은 힘찬 생기를 정지시키고 있었다.

맞다. 새까맣게 타들어간 이 거대한 시체는 나무다. 메일로 덩그마니 사진만 날아온 터라 사연이 궁금해 차를 몰고, 그 거대한 주검이 인간들에게 항거하듯 서 있을 영주 댐으로 달려갔다. 나무의 주검 앞에는 '보호수'라는 이름 아래 묘비처럼 이렇게 씌어 있었다.

"품격:마을 나무, 지정번호:11-28-3-4-19, 지정일자:1982.10.26., 수종 및 수령:느티나무 450년, 소재지:영주시 평은면 강동리 304"

450년 세월을 마을사람들 사랑 듬뿍 받으며, 그늘진 평상에서 나눈 숱한 사연들 들어가며 동고동락했을 오지랖 넓은 당산나무. 바람둥이 까치가 집을 서너 채나 지었을 가슴팍 넓은 느티나무. 우듬지 사이로 다람쥐들 오르내리고 까치가 집을 비운 사이 박새며 참새가 후드득 날아들어 잠시 쉬어갔을 다정한 나무. 영주 댐 공사로 느닷없이 수몰지역으로 지정된 마을에서 건져낸 450세의 연세 많으신 나무는 인간으로 치면 12대가 넘는 세월을 뿌리박고 살아온 땅에서 파헤쳐져 하늘 향해 뻗은 팔 같았을 수많은 줄기를 몽땅 잘린 채, 몸통만 남아 낯선 곳으로 강제 이송되었다. 뿌리가 잘려나가 제대로 서있기도 힘든 나무를 살리고자 인간들이 설치한 비계파이프와 거추장스런 붕대와 영양제 주사를 비웃듯, 나무는 새까만 피를 토해내며 죽었다.

현장을 안내해준 지율스님은 삶의 터전이 옮겨지는 순간 나무 스스로 생을 거부한 거라고 말했다. 지율스님은 부처의 마음은 곧 생명을 살리는 마음이라며 생명 파괴의 현장 곳곳을 찾아다니며 천막을 짓고 산다. 지율스님을 중심으로 한 환경모임 '내성천과 친구들'은 영주댐 건설 무효화 소송까지 제기했다. 영주댐 건설이 진행되는 동안 주변 지역에 계속 산사태 현상이 일어나고 최근에는 시멘트 댐 벽체 아래서 물이 솟아나와 이대로 담수를 할 경우 댐의 붕괴 위험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뿐이랴. 낙동강 상류의 지천인 내성천에 들어선 영주 댐 때문에 황금 모래밭이 끝없이 이어지던 내성천은 물길이 막혀 황폐해지고, 주변 논들은 물이 말라 타들어간다. 수많은 유적지와 문화재가 사라졌고 예쁜 학교와 자그마한 소방서와 동네를 이어주던 다리들이 사라졌다. 마을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사라졌다. 영주 댐은 정말 필요했던 것일까. 지율 스님과 '내성천의 친구들'은 내성천 회룡포 부근에 예닐곱 평짜리 4대강 기록관을 세우고 있다. 어리석은 역사가 되풀이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리라.

"난 몰랐거든.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어. 모두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구. 봐. 저거 봐, 놀랍지 않아? 모두, 모두 다 물구나무서 있어."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렇듯 나무는 인간들의 탐욕으로 얼룩진 이 땅에 뿌리박고 영양분을 섭취하는 게 아니라, 인간들 때문에 피폐해진 이 땅을 두 팔로 지탱하면서 안간힘 쓰며 살려내려는 건 아닐까. 이미 이 땅을 지탱해줄 힘을 포기한 450세 느티나무의 주검에서 우리의 주검을 본다. 이 땅을, 우리 인간을 지탱해줄 나무들을, 수많은 생명체를 앗아간, 지금도 진행 중인 4대강 사업을 어찌할 것인가.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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